전체메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그 과학자와 나무는 닮았다 <랩걸>
#랩걸 , #독서 , #호프자런 , #나무

그 과학자와 나무는 닮았다 <랩걸>

 

 

여러분이 생각하는 과학자는 어떤 모습입니까? 아마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복잡하게 생긴 도구와 장비로 연구에 몰입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상상해왔습니다만, 그 상상 속 풍경을 현실적으로 바꿔준 여성 과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랩걸>의 저자 호프 자런입니다.

 

 현재 오슬로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는 호프 자런은 세계적인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호프 자런의 모습은 수없이 실험하고 실패하는 모습, 실험 외에 여러 가지로 힘든 과학자의 환경, 유리천장에 부딪힌 여성의 한계, 엄마이자 아내로서 살아가는 모습 등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설명하는 나무의 신비한 이야기까지. 랩걸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반응하고 움직이는 나무의 경이로운 생태, 그와 마찬가지로 끈기 있게 노력하고 시도하는 호프 자런의 시간을 그려냅니다.

 

나무를 닮은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

그림 1. 호프 자런

 

사람이 심은 씨앗, 동물과 곤충의 몸에 붙어 옮겨진 씨앗과 꽃가루 등등. 그 작은 존재는 물과 햇빛, 토양을 만나 나무가 됩니다. 나무는 자라는 동안 해충에 시달리거나 동물로부터 위협을 느끼기도 합니다. 가뭄이 오거나 홍수가 날 때도 나무의 생은 위태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을 살아가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나무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열정과 끈기를 닮은 과학자가 있습니다. 식물로 세상을 비추어 보는 과학자 호프 자런입니다. 호프 자런(HOPE JAHREN) 1969년 미네소타 오스틴에서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자랐다. 화학 실험 도구가 늘어서 있는 실험대에 키가 닿지 않을 때는 그 밑에서 놀았고, 키가 큰 다음에는 실험대에서 놀았다. 아버지는 미네소타 시골 한가운데에 있는 전문대학에 자리한 실험실에서 물리학과 지구과학 입문을 42년에 맞먹는 시간 동안 가르쳤다. 아버지는 자신의 실험실을 사랑했고, 나와 오빠들도 그곳을 사랑했다.

 

호프 자런의 성장에 아버지의 영향이 상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과학적 재능은 오로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만은 아닙니다. 가난하고 영리했던 호프 자런의 어머니는 전국 과학 영재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베이비시터 일을 하며 학비를 벌어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호프 자런의 어머니처럼 가난한 여성이 충분히 공부하는 것을 시대는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록금을 벌만큼 베이비시터 일을 하려면 오후에 열리는 기나긴 실험 수업에 참여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951년 당시 대학은 남성들, 주로 돈이 있는 남성들, 적어도 어느 가정의 베이비시터가 아닌 다른 돈벌이가 있는 남성들을 위한 곳이었다.

 

꿈을 접은 호프 자런의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네 아이를 낳은 후 20년간 자녀 양육에 전념합니다. 부모의 과학적 재능과 학업을 향한 열정을 보고 자란 호프 자런은 어머니가 포기했던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합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일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과학자로서의 삶을 딸이 실현시킨 셈입니다.

 

 

공부는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그림 2. 호프 자런의 <랩걸>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미네소타 대학교에 다니던 호프 자런은 돈 때문에 열 개 정도의 일을 했습니다. 대학 출판부의 교정일, 농학과 학과장 비서, 수업용 녹화 카메라 담당, 실험실 유리 닦기, 병원 약국 등에서 일을 하며 장학금으로는 부족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언젠가 큰 실험실을 갖게 될 거란 믿음을 갖고 버틴 4년이었습니다. 기다림이 있어야만 성장이 가능한 나무처럼 그녀에게도 기다림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과정에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1994년 여름, 버클리대학교의 석박사 조교가 된 호프 자런은 현장학습단을 이끌고 식물의 뿌리가 만들어낸 균열을 기록하는 실험을 떠납니다. 이때 그의 평생지기가 될 친구 빌을 만납니다. 빌의 영리함을 한 눈에 알아본 호프 자런은 지도교수에게 빌의 고용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함께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친구가 됩니다.

 

시간이 흘러 1996년 호프 자런은 박사학위를, 빌은 학사학위를 받습니다. 온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축하를 하고 떠들썩하게 보내는 졸업식날 가족 중 아무도 오지 않은 빌과 호프 자런은 실험실에서 유리관을 만들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날 밤 함께 작업하면서 나는 미래를 상상해봤다. 그 미래에서 나는 영원히 매주 참고용 유리관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것과 똑같은 측정기의 바늘이 춤추는 것을 보면서 나는 주름이 지고 머리가 하얗게 되고 있었다. 그것은 우울한 장면이었지만 동시에 안도감을 주는 것이기도 해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단 하나였고 다른 미래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날 호프 자런은 빌에게 자신과 함께 애틀란타로 가서 함께 실험실을 꾸리자고 제의합니다. 그리고 평생 이 둘은 든든한 팀웍을 유지하는 동료가 됩니다.

 

 

연구만 할 수 없는 연구자의 생활

 

낙엽수의 삶은 연간 예산의 지배를 받는다. 낙엽수는 매년 3월에서 7월까지 짧은 기간 동안 나무 전체를 덮을 새잎을 길러내야 한다. 그해 생산량을 맞추지 못하면 작년에 자신이 차지했던 공간을 경쟁자에게 빼앗길 것이고, 거기서부터 길고도 느린 내리막길이 시작돼서 언젠가 설 곳을 잃고 죽게 된다. 앞으로 10년 후에도 살아 있으려면 올해 성공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되고, 다음 해, 그 다음 해에도 마찬가지다.

그림 3

 

 

자신의 실험실을 갖고 과학자로 살기만을 꿈꿔온 호프 자런이지만 그녀를 괴롭힌 것들 중에는 의 문제가 컸습니다. 학계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은 매 3년마다 연방정부로부터 새 계약을 따내야 하고 계약에서 보장하는 연구자금으로 실험실에 고용한 사람들의 월급을 지불했습니다. 연구자금에는 실험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장비, 연구에 필요한 출장 경비도 포함됩니다.

 

만약 새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 학문적 업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실험실 직원들의 생계가 위태로워집니다. 문제는 모든 과학자들에게 고루 돌아갈 만큼 연방정부가 줄 수 있는 계약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토양과학과를 우등 졸업한 빌을 실험실에 데려 왔음에도 호프 자런은 그의 월급을 수시로 밀리곤 했습니다.

 

언젠가 과학 분야의 교수를 만나면 연구 결과가 잘못될까 걱정이 되느냐고 물어보라. 연구가 불가능한 문제를 선택했거나 연구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를 간과했을까 걱정이 되는지 물어보라. 지금도 여전히 찾고 있는 해답이 가지 않은 여러 길에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지 물어보라. 과학 분야의 교수에게 무엇이 가장 걱정인지 물어보라. 길게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 마디로 답할 것이다. 돈이오.””

 

결혼과 출산이 과학자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림 4

 

서른두 살이 되던 해의 호프 자런은 한 모임에서 남편이 될 클린트를 만나 얼마 뒤 결혼을 합니다. 이쯤이면 책의 3분의 2 정도 경과한 지점입니다. 많은 분들이 빌과 호프 자런의 연애와 결혼을 상상하시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끝까지 우정을 유지합니다. 대신 호프 자런의 부부와 빌은 가족처럼 지내게 됩니다.

 

우리는 핫도그와 솜사탕을 먹고 세 발 뛰기 경주를 보고 동물을 만질 수 있는 어린이용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어딜 가나 입장료 할인을 받았다. 가족 할인이었다.

 

시간이 지나 호프 자런은 평생 해본 일 중 가장 힘든 일이라 표현하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작은 체구에 임신을 하고 조울증을 앓고 있어도 약을 먹을 수 없는 상태를 버텨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한 점은 임신 기간 동안 실험실 출입을 금한 학교의 태도였습니다. 화가 나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남편이 달랩니다.

 

진정해. 이게 현실이야. 그냥 임산부를 보고 싶지가 않은 거야. 그리고 임신한 채 이 건물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니까.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는 거야. 단순한 이유야.

 

당시가 2002년이었습니다. 불과 16년 전의 미국이지만 임신한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이 매우 차가웠던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임신 가능성이 없는 남성 과학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차별입니다. 안타까운 그녀의 경험을 읽으며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하는 현재를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젊고 뛰어난 지구물리학자에 이름을 올리다

그림 5

 

 

식물을 다루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식물은 반으로 갈라놔도 뿌리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 위를 모두 잘라낸 나무의 둥치는 다시 온전한 나무로 자라기 위한 시도를 매년 하고 또 한다. (중략) 어쩌면 누군가가 베어버리려고 한 것 때문에 더 우거진 나무가 될지도 모른다.” 

 

출산과 자녀 양육의 무게를 남편과 나눠지며 호프 자런은 포기하지 않고 실험에 매달립니다. 그 결과 호프 자런은 풀브라이트상을 세 번 수상했고, 2005년에는 젊고 뛰어난 지구물리학자에게 수여하는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받으며 이름을 알립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는 하와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화석삼림 연구를 왕성하게 수행했습니다. 지금도 그녀는 오슬로 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자취는 타고난 학업능력이나 주어진 것을 잘 해내는 능력에서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곁에서 든든하게 지지해준 동료 빌과 남편 클린트, 여성이자 엄마로서 생을 맛보게 해준 아들의 도움과 배려로 학계에서 혹독하게 버텨온 것입니다. 이제 호프 자런은 자신의 입장과 주위의 배려로 도달한 현재를 겸허하게 표현합니다. 있는 힘껏 물과 햇빛을 모아 소리 없이 줄기를 뻗치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과학은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또 하루가 밝고, 이번 주가 다음 주가 되고, 이번 달이 다음 달이 되는 동안 내내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숲과 푸르른 세상 위에 빛나는 어제와 같은 밝은 태양의 따사로움을 느끼지만 마음속 깊이에서는 내가 식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오히려 개미에 가깝다. 단 한 개의 죽은 침엽수 이파리를 하나하나 찾아서 등에 지고 숲을 건너 거대한 더미에 보태는 개미 말이다. 그 더미는 너무도 커서 내가 상상력을 아무리 펼쳐도 작은 한구석밖에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다.”

 

 

 

 

 

 

 

 

- 자료 출처 -

*서적

랩걸, 호프 자런, 2017, 알마

 

 

 

- 이미지 출처 -

그림 1, 2. 호프 자런의 <랩걸> - 알마출판사 포스트
https://post.naver.com/my/series/detail.nhn?seriesNo=269271&memberNo=27848074&prevVolumeNo=7637805
그림 3~5. 나무 이미지 – 픽스히어
https://pxhere.com/ko/photo/1279109
https://pxhere.com/ko/photo/1281136

 

 

☞ 작성 글은 등록일을 기준으로 하며 출처 사이트의 사정으로 링크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세검색

자료유형
KDC 분류
발행년도 ~

다국어입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