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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아는 삶 ① – 에밀 졸라의 <목로 주점>

살아가며 아는 삶 ① – 에밀 졸라의 <목로 주점>

 

그림 1. <목로 주점>을 원작으로 한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포스터

 자꾸만 자신이 처한 자리보다 위를 바라보게 되는 사회에서, 우리에겐 언젠가부터 정돈되지 않은 어려운 삶을 사는 이들을 냉정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생겨난 듯합니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 저렇게 되었다, 성실하지 못해서 그렇다, 마음이 넓지 못하니 사람들과 둥글둥글 지내지 못한다 등, 그 이유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에 대해 우월감을 품기도 합니다.
 여기, 위의 흠 잡은 부분들에 자유로운 여자가 있습니다.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목로 주점>의 여주인공 제르베즈입니다. 그녀는 어떤 역경에도 쉬 포기하지 않고 삶을 꾸려갈 만큼 마음이 굳세고 긍정적이며,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했으며, 덤으로 외모까지 아름다웠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성공하여 유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도리어 처절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개개인의 삶이란 사회에서 내세운 회로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음을, 이 편에서는 <목로 주점>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초년의 어려움, 그리고 극복하려는 노력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자연주의 문학은, 인간생활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투철하게 접근한 문예사조입니다.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의 모습을 해부ㆍ분석을 통해 삶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를 대표하는 작가인 에밀 졸라는 총 20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는 <루공-마카르 총서>를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묘사해 냈습니다.
 루공 가와 마카르 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들은, 작중 인물들이 가진 다양한 직업들과 이야기,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전과 환경 등을 통해 당시의 사회를 축약하여 보여줍니다. 그중 <목로 주점>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자 에밀 졸라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목로 주점>의 첫 장면은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외곽인 구트도르 가에서 시작됩니다. 스물 두 살의 금발 미인이지만 한쪽 다리를 저는 제르베즈가 허름한 셋집 발코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앙투안 마카르의 딸로 플라상에서 자란 제르베즈는 열네 살의 나이에 같은 동네의 청년 랑티에와 사랑에 빠져, 아이 둘을 낳고 파리로 상경합니다. 어떻게든 새 일거리를 구해 파리에 자리를 잡으려 하는 제르베즈와는 달리, 모자 만드는 직업을 가졌던 랑티에는 여기저기 놀러만 다니다가 이웃의 비르지니라는 여자의 여동생과 어울려 외박을 합니다.

 

 


그림 2. 세탁소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제르베즈와 비르지니

 저당을 잡히느라 변변한 가구조차 남지 않은 방, 아이들만을 남기고 제르베즈의 옷가지까지 남은 것을 모두 훑어 가지고 랑티에는 새 여자와 떠나 버립니다. 세탁장으로 일하러 나갔다가 아이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제르베즈는 큰 절망에 빠지는데, 하필 그 때 랑티에와 떠난 여자의 언니인 비르지니가 빨랫감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비웃고 조롱하는 듯한 그녀의 눈초리와 태도에 제르베즈는 폭발하여 비르지니와 몸싸움을 시작합니다. 온갖 노골적인 욕설과 구타가 여자들뿐인 세탁장을 질펀하게 채웁니다. 비르지니에게 굴복할 뻔한 고비를 넘기고, 제르베즈는 그녀를 엎어 놓고 볼기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랑티에를 빼앗긴 분노가 철썩철썩 소리가 되어 울려 퍼집니다.

 그로부터 3주일이 지난 어느 날, 제르베즈는 함석공인 젊은이 쿠포와 함께 콜롱브 영감의 술집인 목로 주점에서 브랜디에 절인 살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르베즈의 미모와 성실성에 반한 쿠포는 랑티에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쿠포는 조심스러워 하는 제르베즈의 태도를 허물어 보려는 듯 쾌활하고 스스럼없는 어조로, 그녀의 지난 이야기와 생각을 이끌어 냅니다. 랑티에와 사귀고 아이를 낳은 경위며, 그녀의 앞날에 대한 결심까지 말입니다.

 

 자신의 유일한 결점이라면, 자기는 너무 정에 약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좋아해서, 곧 수없는 불행을 자기에게 안겨 주게 되는 그런 사내에게도 흠뻑 빠져 버리는 일이라고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그처럼 그녀는 한 사내가 좋아지면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 사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을 꿈꾸는 것이었다. 

-<목로 주점> p. 38

 “사실 나는 욕심 많은 여자가 아니에요.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요...... 내 소원은 착실하게 일하는 것, 세 끼 빵을 거르지 않는 것, 작아도 좋으니 아담한 집에서 잠자는 것, 즉 침대가 하나, 테이블이 하나, 의자 두 개만 있으면 족해요. 그 이상은 필요치 않아요........ 그리고 참, 아이들을 착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중략) 그래요.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엔 자기의 침대에서 죽고 싶다는 희망을 갖는 거예요....... 나도 평생 열심히 일하고 나서 내 집, 내 침대에서  죽고 싶어요.” -p. 41

 이 때만 해도 이처럼 소박한 바람은 소원의 축에도 들지 않을 만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와 쿠포는 아직까지는, 살구만을 다 먹고 그릇에 남은 브랜디는 마시지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의 선대가 술로 인해 몰락하거나 목숨을 잃었음을 잊지 않고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 3. 결혼을 준비하는 제르베즈와 쿠포

 그로부터 한 달여간을 쿠포는 제르베즈를 설득하며, 또 그녀 곁에서 일상을 함께하고 도우면서 친밀감을 쌓아갑니다. 그런 쿠포의 간절한 마음에 결국 제르베즈도 결혼을 승낙합니다. 둘은 결혼을 위해 가족들에게 인사를 갑니다. 쿠포에겐 누나가 둘 있었는데, 작은 누나인 로리외 부인은 그 남편과 함께 금의 원석을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로리외 내외의 거친 태도와 돈 버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한 흐트러진 차림, 그리고 쿠포의 결혼을 축복하지 않고 그녀에게서 흠을 잡는 듯한 태도를 보고 제르베즈는 언짢아 합니다. 제르베즈가 그 집에서 나오기 전, 로리외 부인은 금을 붙여 나가지 않나 확인하기 위해 제르베즈에게 신발 바닥을 보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쿠포는 결국 제르베즈와 결혼을 합니다. 쿠포의 주장으로, 그들의 사정에 비해서 나름의 격식을 차려 결혼식과 잔치를 치릅니다. 헌 드레스를 고쳐 웨딩 드레스처럼 입었지만 제르베즈는 만족합니다. 시청에 가서 간단한 법적 결혼식을 마치고, 때마침 내린 비를 피해 모여든 초대 손님들과 난생 처음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저녁에 마을 요릿집에서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하는 것으로 결혼식은 마무리됩니다. 그 후 4년이 흐르는 동안, 쿠포 부부는 행복한 신혼 생활을 해 나갑니다.

 제르베즈와 쿠포는 이 근처에서 사이좋은 부부로 이름이 났다. 자기네끼리 오붓하게 살며 싸움도 하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정해 놓고 생투앙 근처를 한 바퀴 산책했다. 아내는 포코니에 부인네 가게에서 매일 12시간씩 일을 하면서도 집안을 1수(프랑스 돈 단위)짜리 동전처럼 깨끗하게 치웠다. 아침 저녁 가족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남편은 취하는 일 없이 반 달마다 품값을 꼬박꼬박 집에 들여놓았으며, 자기 전에는 바람을 쐬기 위해 창가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그들 부부의 예의바름은 곧잘 동네에서 본보기로 내세워졌다. –P.95-96

 


그림 4. 행복한 신혼을 보내는 제르베즈와 쿠포

 

 그처럼 생활하며 모은 수입으로 그들은 좀더 좋은 방에 거처를 옮기고, 살림 하나하나에도 소박한 소유의 즐거움을 느끼며 나날을 보냅니다. 그들 사이에는 딸 나나도 태어납니다. 나나의 출생 전후의 제르베즈의 태도를 읽으면, 그녀가 지나치게 자기 자신은 돌보지 않는다 싶을 만큼 희생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그녀가 해산을 한 것은 4월 마지막 날이었다. 오후 4시쯤 포코니에 부인네 가게에서 커튼을 다리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곧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의자에 기대어 고통으로 몸을 비틀고 있다가 조금 가라앉자 다시 다리미질을 했다. 급한 일이었기 때문에 일을 마저 끝내려고 버텼다. (중략) 그러나 계단에까지 오자 심한 통증이 일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누가 볼까봐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사라졌다. 그녀는 잘못 생각했던 것인가 여기고 안심을 하며 문을 열었다. 저녁에는 양의 어깻죽지 고기로 찜을 할 생각이었다.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양고기가 노르스름하게 익어 갈 무렵 다시 땀이 나며 진통이 왔다. (중략) 그러자 그만 침대까지 갈 힘도 없어지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마루 위에서 해산을 했다. 15분쯤 후에 산파가 도착했을 때도 그 곳에서 산후 처리를 했다. -P.99-100

 

 해산한 지 사흘째 되는 날부터 제르베즈는 포코니에 부인네 가게에서 뜨거운 가마솥의 열기 때문에 땀을 흠뻑 흘리면서 다시 페티코트를 다리기 시작했다. –P. 105

 아기 나나의 세례 축하연을 계기로 쿠포 부부는 새로운 친구를 사귑니다. 이웃에 사는 구제라는 대장공 청년과 레이스를 뜨는 일을 하는 그 어머니였습니다. 정돈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제르베즈에게 구제 모자와 그들의 생활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사귀며 성실하게 생활한 덕에 그들의 저금은 상당한 수준이 됩니다. 그 즈음 구트도르 거리에 새로이 빈 가게가 나고, 제르베즈는 그 집에 세탁소를 내고자 하는 꿈을 갖습니다. 그 꿈은 손에 닿을 만한 거리에 있었으나, 뜻밖의 사고로 순식간에 멀어지고 맙니다. 오랜만에 제르베즈가 딸 나나를 데리고 높은 지붕 위에서 함석판을 고치는 일을 하던 남편 쿠포를 찾아가는데, 나나가 아빠에게 여기를 보라며 손을 흔듭니다. 주의가 흐트러진 사이 쿠포는 지붕에서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모두 쿠포가 회복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만, 제르베즈는 남편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믿고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남편을 간호합니다. 그 모습에 구제는 감동하여 그녀에게 깊은 마음을 품게 됩니다. 다행히 쿠포는 점차 회복되어, 두 달이 지나자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쿠포의 성실함은 그 즈음부터 사그러들기 시작합니다.

 

 

그림 5. 부상당한 쿠포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제르베즈

 

 

  얼음이 언 날 같은 때 누가 다리가 부러졌다는 말을 들으면 일부러 달려가서 놀려 주던 이 장난꾸러기도 자신의 사고에는 완전히 기가 죽고 말았다. 그에게는 깨달음이란 것이 없었다. 두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신을 저주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지냈다. 정말 한쪽 다리를 소시지처럼 끈으로 둥글둥글 동여매고 벌렁 누워서 보내다니, 살아 있다고 말할 순 없다. 아아, 이런 짓을 하고 있자니 천장에 관해서는 박사가 되어 버린다. (중략) 이런 불평을 하면서 결국엔 언제나 운명을 저주하는 것이었다. 이런 재난은 불공평하다. 자기처럼 선량하고 게으르지도 않고 주정뱅이도 아닌 노동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합당치 않다. -P.120-121

 

 예전의 쾌활성이 다시 살아났다. 능숙한 말솜씨도 오랜 와병 생활 중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러는 동안 그는 살아 있는 즐거움과 더불어 손발을 내던지고 감미로운 잠 속에 근육을 맡겨 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회복기를 틈타서 그의 피부로 파고들어 그를 자극시켜 마비시키는 나태의 느린 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산책길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엔 완전히 원기를 되찾아 농담도 하고 인생이 아름답다고도 생각하게 되었지만, 왜 그 아름다움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는가 하는 것까지는 몰랐다. P.121

 쿠포도 분명 성실한 면이 있었지만, 뜻밖에 찾아온 불행 앞에서는 자신을 보존할 수 있을 만큼 특별히 마음이 강건하거나 생각이 깊지 못했던, 그저 보통 사람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제르베즈의 꿈 또한 그 일과 함께 사그라든 듯했습니다. 쿠포의 치료비로 저금을 다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르베즈의 마음에 든 꿈의 불씨를 알아차린 구제는, 그의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빌려줄 테니 가게를 얻으라고 제안합니다.


성공을 맛보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우여곡절 끝에 가겟집을 빌려 자신의 세탁소로 고칩니다. 완성된 세탁소의 모습은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화사한 느낌으로 묘사됩니다. 이제까지의 그녀의 노고를 치하하는 듯한, 또 그녀가 사는 동안 누리고 싶었던 아름다움의 요소만을 따다 꾸민 듯한 세탁소였습니다.

 처음 며칠간 제르베즈는 볼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린아이처럼 기쁨을 느꼈다.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자기 가게를 돌아보면서 미소지었다. 멀리서 보면 다른 가게들이 늘어선 가운데 자기네 가게만이 유난히 깨끗해 보였다. 담청색 간판에는 ‘고급 세탁소’ 라는 노란 글씨가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진열장 안에는 작은 모슬린 커튼을 걸어 놓고, 밑에는 파란 종이를 깔아서 세탁물의 흰빛을 돋보이게 해 놓았다. (중략)
 하늘색으로 칠한 가게가 그녀는 예쁘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도 파란색 일변도였다. 로코코식 페르시아 천을 본뜬 벽지는 나팔꽃이 덩굴진 포도나무 시렁 모양이었다. 작업대는 방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큰 테이블로, 그 위에 두툼한 다리미 방석을 깔고, 파릇하고 큰 꽃무늬가 있는 마직 보자기를 덮어 탁자 다리를 가려 놓았다. 제르베즈는 걸상에 앉아 새 도구들을 둘러보곤, 그 아름다운 재산에 행복을 느끼며 얼마간 기쁨의 한숨을 내쉬었다. -P.130

 로리외 부인처럼 그녀가 누리게 된 것들을 질시하는 이들도 있지만, 제르베즈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녀가 어려울 적 꿈꾸었던 삶의 태도를 실천하기라도 하려는 듯, 열심히 가게를 꾸려 나가면서도 사람들에게 친절한 태도를 잃지 않습니다.

 

 이웃에서 말하듯이 그녀는 운이 좋았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녀는 마디니에 씨, 노처녀 르망주, 보슈 부부 등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세탁을 했다.(중략)
 제르베즈가 지금처럼 상냥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양처럼 순하고 빵처럼 부드러웠다. 그녀가 앙갚음으로 쇠꼬리라 부른 로리외 부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와도 친하게 지냈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 다음에는 약간 자포자기적인 기분이 되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관대해지는 것이었다.
 “만일 동물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서로 상대방을 용서해야 해요.”
하는 것이 그녀의 입버릇이었다. -P.134

 그녀는 일을 게을리하려 드는 남편에게도 관대함을 보입니다. 천성은 나쁘지 않지만 마음의 중심은 단단하지 못했던 쿠포는 점점 술과 식도락, 유흥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만취한 채로 한창 바쁜 제르베즈의 세탁소에 와서 잔뜩 흐트러진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면서 세탁소 직원들에게 추잡한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제르베즈는 너그럽게 넘깁니다. 그녀는 그런 처신이, 남편과 자신 둘 다에게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제르베즈의 세탁소에서 때때로 일을 맡아 하던 이웃의 비자르 부인이, 술취한 그녀의 남편에게 무자비하게 맞아 죽는 일이 생깁니다.

 방바닥 한가운데에는 비자르 부인이 빨래터에서부터 젖은 스커트가 허벅지까지 걷어올려진 채 머리채를 끌리며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비자르가 발길질을 할 때마다 신음하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마누라를 처음에는 주먹으로 때렸으나 지금은 발로 차고 있었다.(중략)


 그러는 동안에 브뤼 영감이 제르베즈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함께 열쇠장이(비자르)를 타일러 문 밖으로 밀어 내려고 했다. 그는 말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뒤돌아보았다. 핏기없는 눈에서는 알코올이 타고 살인자같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중략) 방바닥에서는 비자르 부인이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감은 채 더욱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 때 비자르는 비로소 마누라를 때려 죽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다시 되돌아와 발광하면서 함부로 허공을 치다가 그만 자기를 때리고 말았다.
 이 처절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제르베즈는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랄리를 보았다. 네 살 난 그 여자아이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두들기는 광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엊그제 젖이 떨어졌을 뿐인 계집애 동생을 감싸듯이 끌어안고 있었다. -p.162

 

 비자르가 이처럼 아내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퍼붓는 이유는 작품 속에 다음과 같은 말로 나와 있습니다. ‘그는 취해 돌아오면 반드시 때려 줘야 할 여자가 필요했다.’ 누군가가 그처럼 폭력에 노출되어 목숨까지 잃는 지경인데도, 그것을 막아 줄 사회적 장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자신의 삶에 가해지는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좋은 일이 생기면 그 기분에 매몰되고, 나쁜 일이 생기면 그에 또 수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습관이 생겨나는지도 모릅니다. 제르베즈의 생일이 다가오자, 그녀와 쿠포 일가는 먹성을 호사스럽게 충족할 만한 생일 파티를 계획합니다. 살찐 거위구이와 송아지고기 스튜, 베이컨을 곁들인 완두콩 등 읽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일 만한 식단을 짜고 손님도 열네 명이나 초대합니다. 잔치를 준비하는 그들의 속내는 처음 생활을 꾸려갈 때와 어느덧 달라져 있습니다.

 

 로리외 부부를 놀라게 하는 일이 2주일 동안에 걸친 쿠포 부부의 꿈이었다. ‘좋다! 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줘야지. 우리는 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줘야지.’ 가능하다면 한길 복판에 테이블을 차려 놓고 통행인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다. ‘돈이란 곰팡이가 슬게 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잖겠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때라야 돈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 이제 그녀는 로리외 부부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20수를 가지고 있으면서 40수를 가진 것처럼 보이려 했던 것이다. -p169

 

 

그림 6. 제르베즈의 생일 잔치, 거위구이를 내오는 제르베즈

 어쨌든, 생일 저녁 제르베즈는 손님들과 실컷 먹고 또 웃으며 파티를 즐깁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맛깔진 묘사와 흐벅진 즐거움이 넘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마치 삶의 절정과 같은 때에 찾아드는 불행의 전조마냥, 전 동거남인 랑티에가 마을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남편이 미친 듯 화를 낼까 걱정하던 제르베즈의 예상과는 달리, 쿠포는 다음날 어쩐 일인지 랑티에를 데리고 집에 들어와, 랑티에의 친아들인 에티엔과 인사를 시키며 우호적으로 대합니다. 랑티에는 능란하고도 교활한 처신으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며 자리를 잡습니다. 머물 집을 구하려는 랑티에에게, 쿠포가 자기들 집에 세들어 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합니다. 제르베즈는 내심 꺼려하지만, 결국 일은 성사되어 세 사람의 희한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신사인 양 굴었지만 점차 랑티에는 제르베즈를 유혹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그것을 알아차린 구제는 사모하는 제르베즈가 점점 좋지 않은 상황에 빠져드는 것이 안타까워, 함께 멀리 떠나자고 합니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늘 그녀에게 진심이었던 구제의 마음을 받아들여 떠나지도, 그렇다고 그녀가 처한 기묘한 상황에 선을 긋지도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 쿠포는 랑티에의 꼬임에 점점 더 온갖 호사스런 요릿집과 술집을 전전하며 주흥(酒興)에 빠져 제르베즈가 번 돈도, 자기 자신도 잃어 갑니다.
 어느 밤, 집에 돌아오니 술취한 쿠포는 온 침실을 토사물로 범벅이 되도록 만들어 놓고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그 틈을 타 랑티에는 자기의 침실에서 함께 있자며 제르베즈를 유혹합니다. 남편에 대한 혐오감과 흔들리는 분별심 사이에서 제르베즈는 어쩔 바 모르며 랑티에에게 떠밀려 가고, 그 모양을 어느 새 자란 딸 나나가 몰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후 마을에는 제르베즈에 대해서 나쁜 소문이 퍼져 나가지만, 그녀는 오히려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이 나날을 보냅니다.

 

 모자장이(랑티에)에게 안겼던 직후에 남편에게 접한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남자를 바꿀 때마다 자기 몸뚱이도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차차 익숙해졌다. 매번 몸을 닦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게으름이 그녀를 나태하고 만들고, 행복해지겠다는 욕구가 지겨운 지금의 생활에서 모든 행복을 한껏 끌어 내렸다. 그녀는 이제 자기나 남에게도 무리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지 않도록 사태를 이끌어갈 것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방종은 제 2의 습관이 되었다. 이제 와서는 그것이 먹고 마시는 일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다. -P.231

 

 그녀 안에 자리잡은 이 같은 마음은 훗날 그녀의 삶이 완전히 망가지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타락은 일상을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다며 저지르는 일들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림 7. 랑티에(왼쪽)와 쿠포, 두 남자를 감당하게 된 제르베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지 않고 되는 대로 돈을 쓰는 습관과 그를 부추기는 랑티에 때문에, 쿠포 가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가게 사정이 나빠질수록 나태와 불결도 더해져, 점원들도 어쩔 수 없이 모두 내보내는 지경에 이릅니다. 밀린 집세 독촉에 제르베즈는 결국 자신이 그처럼 소중히 여겼던 세탁소를 팔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는 예전에 제르베즈와 심하게 싸웠던 비르지니가 차리는 과자 가게가 들어섭니다. 생쥐 같은 랑티에도 제르베즈 집을 나와 비르지니에게 접근합니다.


몰락

 

 쿠포 가는 좁고 너절한 방을 새 거처로 삼습니다. 쿠포는 알콜 중독이 되어, 틈만 나면 상스러운 말과 욕설을 내뱉으며 작품 초반의 쿠포와 비교하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그 즈음 성인기를 앞둔 딸 나나는 외모가 꽃처럼 피어남과 함께, 어릴 때부터 지녔던 맹랑한 기질을 왕성한 에너지로써 드러냅니다. 여공으로 일하면서도 자신이 사내들의 눈길을 끌 만큼 매력이 넘친다는 사실을 체감한 나나는, 부모가 술주정과 나태함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때때로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르자 진절머리를 내며 결국 집을 나갑니다.

 나나는 목에 거는 비로도가 달린 십자가 모양의 장식이나, 핏방울이라 생각될 만큼 작고 귀여운 산호 귀고리를 가지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또 보석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누더기만 걸치고 있기란 정말 지겨웠다.(중략) 좋은 옷도 입고 싶었고, 연극 구경도 가고 싶었고, 좋은 가구가 딸린 자기 방에서 살아 보고도 싶었다. 그녀는 욕망으로 인해 핏기를 잃고 서 있었다. 파리의 보도에서는 넓적다리를 통해 어떤 열기가 전해져 올라왔다. 이것은 그녀의 마음을 부추기는, 갖가지 향락에 빠지고 싶은 격렬한 갈망이었다. 더구나 그것은 결코 바라볼 수 없는 소망은 아니었다. 마침 이럴 때 그 노인이 그녀의 귀에 여러 가지 말을 속삭였던 것이다. -p.280

 젊음의 무분별한 욕망과 거친 환경에서 나나가 타락하게 되는 내면의 욕구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욕망에 휘둘리고 또 타인에게 욕망을 일으키는 존재인 나나는 졸라의 또 다른 작품인 <나나>의 주인공이 되어 파란 많은 삶을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나나가 가출하자 제르베즈는 더욱 더 망가져 갑니다. 초반의 그녀가 보였던 삶의 태도와 대조할 때, 그녀에게 애정을 품었던 독자라면 넘기는 책장에서 쓴맛을 느낄 지경입니다.

 

 그렇다, 어미에게  애정도 갖지 않은 그 못된 것은 내 더러운 페티코트에 남아 있던 성실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가지고 나간 것이다. (중략)
 제르베즈는 이제 완전히 몰락하여 세상 일에 개의치 않게 되었다. 한길에서 도둑년이란 욕을 들어도 돌아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달 전부터 그녀는 이미 포코니에 부인의 가게에서 일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손님들로부터 트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 제르베즈를 쫓아내야 했다. 몇 주일 동안에 그녀는 여덟 집이나 세탁소를 전전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나 2,3일 안에 목이 잘렸다. 그 정도로 부주의하고 더러우며 자기 직업을 잃을 정도로 멍청하여 세탁물을 못쓰게 만들었던 것이다. (중략)
이 정도로 몰락하면 여자로서의 어떤 자존심도 사라지고 만다. 제르베즈는 예전의 그 기품, 미태(媚態), 사랑, 예절, 존경에 대한 욕구를 모조리 묻어 버리고 말았다. 앞뒤 어디를 걷어채건 전혀 무감각했다. 너무나 무기력하고 해이해졌던 것이다. -p. 281-282

 

 


그림 8. 알콜 중독이 된 쿠포와 무기력에 빠진 제르베즈

 

 이제는 제르베즈도 남편 못지않게 기회만 생기면 술을 들이키기 시작합니다. 그 즈음 쿠포는 술에서 깬 날이 없다시피 되어 결국 쓰러져 병원에 들어갑니다. 어느 겨울날 집세를 간신히 내고 나자 집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어 제르베즈는 최악의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이런 아픔이라면 공복보다는 차라리 해산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온몸을 뒤틀어 굶주림을 참다가 남의 신세라도 질 생각으로 나선 길에, 제르베즈는 아버지 비자르의 폭력을 내내 감당하던 8살짜리 장녀 랄리가, 결국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 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랄리의 죽음은 작품 내에서 비극성과 참담함을 더욱 강조하며, 이런 일이 벌어지는 환경에서 개인의 고결함이 얼마나 힘이 발휘할 수 있을지를 묻습니다.
 제르베즈는 굶주림 끝에 결국 거리의 여자로까지 나섰다가, 하필 손님을 붙드는 길에 구제를 마주칩니다. 자신의 좋은 점을 알아보고 변치 않는 사랑을 주었던 사람에게 그처럼 나락에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제르베즈는 차라리 죽기를 바랄 만큼 절망합니다. 남편 쿠포는 병원에서 누구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며칠을 발작하여 날뛰다가 숨을 거둡니다. 그 모습을 본 제르베즈도 점점 머리가 이상해져, 마비된 정신과 굶주림 속에서 건물의 계단 밑 공간을 거처로 얼마간 지내다가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목로 주점>은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답게 작중 인물의 삶에 사회적 문제를 드리워 치밀하게 묘사해 냅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매 장면마다 속어를 가리지 않은 감칠맛 나는 표현들을 넣어 마치 눈앞에서 일이 벌어지는 듯한 실감을 안겨 줍니다. 그로써 주인공의 상황이 가깝게 느껴지는 만큼, 제르베즈가 처절하게 몰락하는 과정은 더더욱 독자로 하여금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제르베즈도 잘못 생각하고 행한 부분은 있지만, 이 같은 결말을 얻을 만큼 결정적인 악행을 저질렀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성실히 일하며 좋은 아내이고 어머니이며 이웃이고자 했지만, 그 욕망이 도리어 언젠가부터 그녀에게 독이 되었다는 것을, <목로 주점>을 읽으면서 느끼게 됩니다. 주변이 그저 아무 일 없이 돌아가기만을 바라기보다는, 처한 현실을 냉철히 파악하여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할 일에는 입을 열고 행동을 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하지만 그 역시 사고력을 향상시킬 초년의 배움이나 여유를 누리지 못했던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굳어진 관념들과 인습이 실정법보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환경에서, 한 개인의, 특히 한 여성의 됨됨이와 바른 가치관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분들이 그녀 주변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그녀의 변화와 몰락을 재촉한 것은 아닐까요.

 

 

 

 

 

 

 

 

- 자료 출처 -

*서적

<목로 주점>, 에밀 졸라 저/ 손석린 옮김, 세계문학선집, 어문각

 

*사이트
네이버 지식백과-루공-마카르 총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76218&cid=41773&categoryId=44397
네이버 지식백과-자연주의 문학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36059&cid=43667&categoryId=43667

 

 

 

- 이미지 출처 -

그림 1, 2 영화 <목로 주점> Daum 영화 페이지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444
그림 3, 4, 5, 6
https://www.imdb.com/title/tt0049259/
그림 7
http://ideyvonne2.canalblog.com/archives/2013/09/14/28015154.html
그림 8
https://avxhm.se/video/Kerva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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