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김환기 그리고 김향안
#미술 , #김환기 , #김향안

김환기 그리고 김향안

 

 

 그림 1. Kim WhanKi 金煥基 (1913-1974), <3-II-72 #220>, Oil on cotton, 254×202cm, Painted in 1972

 

 

지난 5 27일 홍콩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개최된 25회 서울옥션 홍콩 세일에서 시작가가 약 77억 원에 책정되었던 1972년 작 김환기의 붉은색 전면 점화 <3-II-72 #220>가 약 85 3천만 원에 최종 낙찰되어 한국 미술 작품 중 미술품 경매 낙찰 가격 1위에 등극했다. 서울옥션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로써 역대 한국 미술 작품 경매 낙찰 가격 1위부터 6위까지를 모두 김환기의 작품이 차지하는 대기록이 세워졌다고 한다. 설명이 불필요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김환기와 지금의 그의 명성을 가능케 한, 김환기를 성장시킨 아내이자 조력자였던 김향안. 이들에 대해 탐구해보자.

  

 

그림 2. 1957년 파리 작업실에서의 김환기

   

 

김환기는 누구인가?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면에서 출생한 김환기는 1933년 동경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해 수학했다. 1937년에는 동경 아마기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그 후 한국으로 귀국해 1948년 유영국, 이규상 등과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서울 화신 화랑에서 제1회 신사실파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는 서울대학교 예술학부 미술과 교수를,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홍익대학교 교수와 학장을 차례대로 역임하며 국내 미술 교육에도 힘썼다. 아내 김향안의 도움으로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는데, 1956년에는 파리 M. 베네지트 화랑에서 여섯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1958년에는 파리 앵스티튀 화랑에서 열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여 <>, <하늘> 등의 작품을 출품했다. 꾸준한 해외 활동으로 점차 세계 예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회화 부분에서 명예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그다음 해에는 뉴욕의 아시아 하우스 화랑에서 개인전을 펼쳤다.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늘 식지 않았기에, 뇌출혈로 인해 향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작업을 지속하며 역사에 기록되는 작품들을 남겼다.

  

서울옥션은 김환기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현상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주요한 테마 중의 하나는 회화적 과정에서 작가의 역할의 문제다. 1960년대 뉴욕의 추상표현주의에서 작가의 주관이 강조된 이후 지나치게 회화가 주관적으로 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작가가 회화적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그림(미니멀리즘)이 등장한다. 이후 현대회화는 회화적 과정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해 지속해서 고민해오고 있다.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환기는 이러한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김환기가 볼 때 회화적 과정에서 작가의 주관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 못지 않게 작가가 회화적 과정에서 아무 참여도 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환기는 회화적 과정에서 작가 본인의 개입을 포기하지 않지만, 동시에 작가 스스로가 회화를 완성하지 않는 식으로 이러한 문제에 접근했다.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작가 자신을 넘어서 있는 외부 세계를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이러한 방식을 회화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그의 번짐 작업이다. 마치 화선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릴 때 먹이 자연스럽게 번져나가듯 김환기는 유화를 쓰면서도 작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번짐 작업에 집중했고, 이러한 번짐 작품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전면점화 작업이다. 미술시장의 가치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미술사적 가치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술시장에서 김환기 작품에 대한 수요는 작가의 이러한 미술사적으로 선구적인 측면에 대해 인정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3. 서로에게 평생의 동반자였던 김환기와 김향안

 

 

김환기의 아내이자 조력자였던 그녀, 김향안

 

 

김환기가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물론 그의 선구적 예술 세계가 인정받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내 김향안이 없었다면 지금의 김환기 또한 없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곧 지성이다.” 생전 김향안이 한 말이다. 그렇다면 김향안은 김환기를 어떻게 지성으로 성장시켰을까?

 

김향안의 원래 이름은 변동림이었다. 1936 6, 스물셋에 시인 이상과 결혼을 했지만,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이상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그는 다음 해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김향안은 이상과 사별한 후 홀로 살아가다 1944년 김환기를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이때 아이가 셋 있던 김환기와의 결혼을 가족들이 반대하자 변씨 성을 버리고 남편 김환기를 따라 김 씨로 성을 변경하였으며, 이름도 남편 김환기의 호였던 향안으로 개명했다. 김환기가 호를 수화로 바꾼 이유도 김향안에게 자신의 호를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서 공부한 엘리트였던 김향안은 꾸준히 프랑스어를 공부하여 김환기가 예술가로서 파리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모든 부분에서 힘썼다. 미국에서도, 서울에서도 김환기를 위한 김향안의 노력은 끝나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김향안은 남편의 성과 호를 따 자신의 이름을 바꾼 그 순간부터 김환기가 아티스트로서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전 생애에 걸쳐 온 힘을 다해 조력한 것이다.


1974년 남편과 사별한 후에도 김향안은 오직 김환기를 위한 행보를 이어나간다. 1975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김환기 <회고전>이 개최될 당시 뉴욕과 상파울루를 오가며 전시를 준비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전시를 위해 빚을 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후에도 뉴욕과 파리에서 열린 김환기 개인전 개최를 이끌었으며, 1976년에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이끌기 위해 환기재단을 설립하였다. 또한, 1992년에는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개관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김환기의 작품을 소개하고 알렸다. 남편에 대한 사랑은 늘 김향안의 동력이 되었다.   

 

 

그림 4. 환기미술관 외부 전경

 

 

김환기를 향한 김향안의 진심 어린 사랑이 담긴 공간, 환기미술관

 

부암동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환기미술관의 설립은 김향안의 생전 숙원사업이자 사명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김환기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수화는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다며 일기장에 앞으로의 계획을 적었다. 서울 서교동에 있는 집의 빈터에 4층짜리 집을 짓고 두 층은 가족이 쓰고 두 층은 사설 미술관을 하고 싶다 했다.’ -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김환기가 일기장에 소망을 적고 나서 27년이 흐른 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환기미술관이 아내 김향안에 의해 탄생했다. 김환기에 대한 애정,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빚어낸 환기미술관의 설립 역시 김향안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림 5. 환기미술관 내부 전경

 

 

환기미술관은 본관, 별관, 수향산방 이렇게 세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본관과 별관에서는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를 감상할 수 있으며, 수향산방은 김환기와 김향안의 호인 수화향안에서 이름을 딴, 부부가 결혼 후 신혼을 보냈던 성북동 수향산방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공간이다. 건물의 디자인은 김환기가 생전 구상했던 아틀리에의 형태를 반영했다고 하며 종종 이곳에서 특별 전시가 열리기도 한다.

 

 

 

그림 6.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다음은 환기미술관 내 수향산방 내부 벽면에 김향안이 쓴 글이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내 영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 영혼은 수화(김환기)의 영혼하고 같이 미술관을 지킬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살고 있는가? 수화의 영혼이 나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소나무 두 그루가 미술관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부정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신념으로 살아왔고 빨리 나도 내 자리에 눕고 싶으나 좀 더 남은 사명 때문에 고역을 겪고 있다."

 

 

 

그림 7.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표지

 

김환기와 김향안, 둘의 사랑에 대해 탐구하는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김환기와 김향안, 둘의 사랑에 대해 더욱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현주 작가의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최강희의 야간비행>,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 등을 거쳐 오랫동안 라디오 작가로 활동해 왔으며 <다시, 사랑>, <그래도, 사랑> 등 사랑에 관해 풀어낸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정현주 작가는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에게 보낸 그림편지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그들의 사랑을 지속시켰던 힘에 대해,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그녀가 직접 파리로 가 김환기와 김향안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사랑이 가진 본연의 의미에 대해 그려 낸 결과물이 바로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이 책에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김환기의 그림편지와 드로잉, 순수함 가득한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한국의 피카소’,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아티스트 김환기로서의 존재감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 김환기의 모습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정제되지 않은 순수하고 애절한 마음이 그대로 담긴 편지를 읽다 보면 누구나 둘의 사랑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어진다. 또한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는 부부가 함께 파리에서 머물던 시절, 가난했지만 낭만적이었던 그때의 나날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림 8. 김환기와 김향안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가 수록된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자꾸 꿈을 꾸는 남자가 그 꿈을 현실이 되게 하는 아내를 만났다.
남자는 자꾸 큰 세상을 그렸고 아내는 그 큰 세상에 남편을 서게 했다.

 

함께 있음으로 해서
두 사람의 세상은 커지고 넓어졌다.
계속 꿈을 꿀 수 있었다.’

 

-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진정한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에 도취되거나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닌, 각자의 자존감을 지킨 채 서로를 지성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 남편 김환기와 아내 김향안. 그들은 잠들었지만, 그들이 보여준 사랑은 여전히 남아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 자료 출처 -

*기사

환기 미술관 http://www.whankimuseum.org/
NEWS1 <김향안이 없다면 김환기도 없다…'이름에 새긴 사랑의 언약'>
http://www.news1.kr/articles/?2626201
[네이버 지식백과] 환기미술관 [Whanki Museum, 煥基美術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0829&cid=46660&categoryId=46660
출판사 ‘예경’ http://www.yekyong.com/shop/item.php?it_id=1510291480

 

 

*사이트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예경, 2015.

서울옥션 제공 2018년 5월 27일자 보도자료

 

 

 

 

☞ 작성 글은 등록일을 기준으로 하며 출처 사이트의 사정으로 링크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세검색

자료유형
KDC 분류
발행년도 ~

다국어입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