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누가누가 있나? 한국인이 된 러시아인들!

카테고리

누가누가 있나? 한국인이 된 러시아인들!

 

 

한국과 러시아는 다채로운 교류를 통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 냉전 해빙을 기점으로 양국은 본격적으로 스포츠, 문화 예술,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적 교류를 이어왔고,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켜켜이 교류의 시간이 쌓이는 동안 한국에 애정을 갖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아가 한국을 이해하고자 한국 국적을 취득한 러시아 사람들도 생겨났다. 교류를 넘어 한국인이 된 러시아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사진 1. 한국과 러시아 국가대표 축구 경기 모습

 

 스포츠는 국가 간 인적 교류의 대표적인 사례다. 다양한 종목에서 경쟁하고 스포츠맨십을 나누는 사례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 선수가, 혹은 러시아 출신 선수가 각국의 스포츠 리그에서 함께 팀을 이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축구의 경우 K리그에서 활동한 러시아 출신 선수의 수가 20여 명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놀라운 기록과 활약으로 K리그 팬들에게 각인된 두 명의 선수가 있다.

 

 

사진 2. 신의손 선수 경기 모습

 

 

신의손 선수

 

발레리 콘스탄치노 비치 사리체프. 구소련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두샨베(현 타지키스탄 수도) 출생인 이 선수는 축구팬들에겐 ‘신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독학으로 골키퍼 기술을 익힌 신의손 선수는 1978 SKA-파미르 두샨베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입단한 뒤로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선보이던 그에게 1990-91 시즌은 특별하다. 이 시기 그는 유럽축구연맹(UEFA) 컵에 출전해 프랑스 AS모나코를 꺾고 8강까지 진출했고, 1991 시즌 소련 1부 리그 최고 골키퍼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절정의 기량과 발굴의 실력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신 선수는 본격적인 유럽 진출을 모색하는 등 선수생활의 새로운 길을 찾았다. 하지만 토르페도 구단과 이적 팀 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곧 영입 제안은 사그라졌다. 소속이 애매해진 그는 우연찮게 K리그 진출을 타진했고, 1992년 천안 일화 천마(Ilhwa Chunma, 현 성남 FC)에 입단했다. 그때 그는 서른셋, 300경기 이상 뛴 노련미 넘치는 선수였다.

 

그의 입단 전까지 천마는 하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골문을 안정적으로 지키고, 공격력을 강화한 천마는 1992년 정규리그 준우승과 아디다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천마는 승승장구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우승해 K리그 3연패를 달성은 물론, 1996년 아시안슈퍼컵과 컨티넨탈컵에서도 우승했다.

  

골키퍼 불모지에 가까웠던 K리그는 신의손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앞다퉈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1995년 당시 8팀이었던 프로 구단 중 6곳이 외국인 골키퍼를 고용하는 상황이 됐다. K리그는 외국인 골키퍼 출장 제한 제도를 만들어 제재를 가했고, 이로 인해 신 선수의 출장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사진 3. 신의손 FC안양 GK코치

 

 

줄어든 경기 수에 그는 슬럼프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부임한 고 차중복 감독은 그를 방출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아깝게 생각한 안양 LG 조광래 감독이 그를 골키퍼 코치로 영입했다. 선수와 코치의 차이 때문일까?‘ 신의손 효과’는 기대 이하였고, 그를 선수로 복귀시키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오게 됐다. 귀화를 통해 신 선수를 한국 국적의 선수로 그라운드에 복귀시키는 것. 불혹의 나이, 2년 이상 경기는커녕 훈련조차 하지 않은 그의 상황에서는 파격적인 제안 그 자체였다.

 

그라운드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제안에 신 선수는 귀화 시험에 몰입했고, 2000 2월 마흔의 나이에 선수로 돌아왔다. 신의 손(Hands of God). 팬들에게 애칭으로 불리던 신의손이 그의 인생에 또 다른 이름이 된 순간이었다. 그해 11월 십자인대 부상을 입었지만 다음 해 성공적으로 복귀한 그는 2001 35경기 29 실점으로 0점대 실점률을 기록했다.

 

신의손 선수는 뛰어난 경기력으로 팬들의 환호하게 만든 축구선수일 뿐 아니라 한국의 축구 문화를 변화시킨 인물이다. 그를 통해 한국 축구가 골키퍼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골키퍼 코치가 팀에 한 명도 없던 나라였다. 필드 플레이어와 골키퍼가 똑같이 훈련했지만, 서로 훈련 방식이 전혀 다르다. 골키퍼는 축구에서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다. 팀 전체가 강한데 골키퍼가 약하면 우승할 수 없다. 다들 골키퍼를 무시했는데 이제는 골키퍼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 대한축구협회 공식 매거진 <ONSIDE> 인터뷰

 

 

 

신의손 선수는 마흔다섯에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러 프로팀, 여자 프로축구팀, U-20 국가대표 축구팀과 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맡은 그는 현재 FC안양 GK코치를 담당하고 있다. 

 

 

사진 4.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의 이성남 선수

 

 

이성남 선수

 

K-리그에 강한 인상을 남긴 러시아 출신 선수들. 골키퍼에 신의손 선수가 있다면, 공격수엔 이성남 선수를 빼놓을 없다.

 

이성남 선수는 2003년 한국 국적 취득 전까지 데니스 블라디미로비치 락티오노프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다.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출신인 그는 1994 FC사할린 흘름스크로 프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32경기에 출장해 12골을 넣는 등 팀 내 최다 득점자로 활약했지만 팀이 러시아 3부 리그로 강등되면서 프로 클럽의 지위를 상실했다.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 선수는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했다.

  

탄탄한 몸과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 빼어난 공간 활용능력으로 이성남 선수는 2013년 강원 FC에서 은퇴하기까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성남 선수가 K-리그에 남긴 기록들은 화려하다. 그는 ▲FA컵 득점왕(1996) K-리그 도움왕(1997) K-리그 컵대회 득점왕(1999) K-리그 베스트 11(1999 , 2000, 2003)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몸담았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는 ▲K-리그 우승 2(1998, 1999) K-리그 준우승 2(1996, 2006) FA컵 우승 1(2002) FA컵 준우승 2(1996, 2006) K-리그 컵대회 우승 3(1999, 2000, 2001)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2(2001, 2002)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2 (2001, 2002) ▲아시아 슈퍼컵 우승 2(2001, 2002)의 진기록을 세웠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2003 2월 이 선수가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게 되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그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만큼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다. 2005년에는 팬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10주년 베스트 11’에 미드필더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간 몸담았던 그의 두 번째 팀인 성남 일화 천마에서도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이 선수는 ▲K-리그 우승 1(2003) K-리그 컵대회 우승(2004)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2004)의 성과를 거뒀다.

 

 

사진 5. 강원 FC 시절의 이성남 선수

 

 

한편, 뛰어난 실력으로 1998년 러시아 U-23대표로 발탁돼 2년간 7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었다. 2002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벨라루스와의 LG컵 경기에 러시아 국가대표로 데뷔했고, 그해 8월 스웨덴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성남 선수는 2008년 고국 러시아 2부 리그 팀인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적했다. 하지만 2 시즌 동안 27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비르가 1부 리그로 승격한 뒤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 규정에 따라 출전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선수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2012년 강원 FC의 입단 테스트를 받고 K-리그로 복귀했고, 이듬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어릴 때 한국에 와서 여기서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축구선수로 크게 성장할 수 있던 것은 물론이다. 나는 축구가 좋다. 한국은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이 돼 있는 나라다. 한국은 저에게 행운의 나라다.

 

- 중앙일보 인터뷰

 

 

 

이성남 선수는 2013년 현역 은퇴 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5팀인 매탄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2팀인 리틀윙즈 코치를 역임하고 있다.

 

 

사진 6. 오슬로대학교 동양학과 박노자 교수

 

 

박노자 교수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티호노프 교수. 구소련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시절 북한영화 <춘향전>을 본 이후로 한반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찮은 계기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조선학과 재학 중 북한으로 단기연수를 떠나려 했던 그는 북소 관계 악화로, 평양이 아닌 서울에 잠시 머물게 됐다. 3개월을 서울에서 보낸 뒤 러시아로 돌아간 그는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했고, 1996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을 알지도 못했고, 연고가 전혀 없었지만 한국학을 공부해 학위과정을 마친 것이다.

  

박 교수는 이후 경희대학교에서 러시아어 전임강사로 일하며, 한겨레신문 외부 필진으로 글을 기고하는 등 진보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2001년 한겨레출판을 통해 출간된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한국 사회에 지적 파장을 일으키며 박노자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2권으로 기획된 책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 각각 18만 부, 5만 부 가량이 팔린 스테디셀러다. 또한, 2010년 오마이뉴스와 예스24가 공동으로 진행한 선정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중 한 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진 7. 당신들의 대한민국

 

박노자가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도는 전근대적 유물들'이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라는 교집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군국주의로부터 비롯된 무장 숭배가 남한에서는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과 김유신 동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주체탑이라는 변형된 형태로 발견된다는 논리 역시 흥미롭다.

 

 

 

물론 이들 '우상숭배'가 남북한 정권의 정통성 부여와 이를 통한 체제 유지라는 필요성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지적을 빠뜨리지 않는다. 박노자는 이처럼 감춰진 기만과 폭력을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보수언론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 <당신들의 대한민국> 출판사 서평 中

  

책을 출간한 한겨레출판 이기섭 대표는 이 책에 대해 한국 사회의 진보진영에서도 보지 못하는 점을 귀화 외국인이 날카롭게 집어낸 것에 독자들이 공감을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00년부터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동양학과에서 교직을 맡고 있지만 2001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박노자라는 이름은 스승 미하일 박 교수의 성과 러시아의 아들(露子)이라는 한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한국의 정치·사회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국적 취득을 통해 한국인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노르웨이에서 정규직을 얻었지만, 여전히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사진8-1, 2, 3. 박노자 교수의 저서

 

 

박 교수는 언어는 물론, 역사, 정치, 문화, 사회 현상 등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로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펼치고 있다. 기고와 같은 방식은 물론 직접 정치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은 좌파가 굉장히 약하다. 유럽에서는 노동 계급을 대표하는 좌파가 그래도 20~30% 득표를 한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 정도로 계급적 대표성이 있는 정당이 없다. 계급적 대표성이 있는 진보신당은 안 알려져 있다.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하고, 그 노동 계급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게 하기 위해 내 목소리를 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시사IN 인터뷰  

 

박노자 교수는 2012년 제19대 총선에,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진보신당 측은 자본주의 극복에 대한 신념, 이주 노동자와의 연대 활동 등 그가 보여준 행보가 당의 정체성과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비록 정책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그는 활발한 저술과 기고를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한국인이 된 러시아 사람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한국인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어떨까.

 

 

 

 

 

 

 

- 자료 출처 -

*기사

신의 손으로 K리그를 평정한 사나이, 신의손
http://m.kfa.or.kr/news/column_view.asp?BoardNo=1147&Page=1&Query=
K리그 전설의 ‘신의손’, “제 2의 신의손 키울터”
http://news.mt.co.kr/mtview.php?no=2016060810197837746
FC안양, GK 코치로 신의손 선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3/2017112302247.html

​​신의손-이성남 "축구를 할 수 있는 한국이 좋다"
http://news.joins.com/article/1798898
'한국인' 이성남, K리그 복귀 추진
http://osen.mt.co.kr/article/G1001200019

[이종탁이 만난 사람]노르웨이 거주 10년 박노자 교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52225422
박노자 “촛불시민, 정부·정치권 계속 압박해야 진보 실현”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5080
[권은정의 파워인터뷰3] 박노자를 만나다
http://www.peoplepower21.org/Magazine/729924
[행복한 책읽기] ‘당신들의 대한민국’
http://news.joins.com/article/4199649
['지난 10년 최고의 책' 만든 사람들 ③] 오연호, 김언호, 송영석, 이기섭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18941
교보문고 <당신들의 대한민국. 1>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barcode=9788984310636#N
박노자 “통합진보당은 계급정당 아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675

 

*사이트
K리그1 외국인 선수 명단
https://ko.wikipedia.org/wiki/K%EB%A6%AC%EA%B7%B81_%EC%99%B8%EA%B5%AD%EC%9D%B8_%EC%84%A0%EC%88%98_%EB%AA%85%EB%8B%A8#%EB%9F%AC%EC%8B%9C%EC%95%84

이성남-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B%8D%B0%EB%8B%88%EC%8A%A4_%EB%9D%BD%ED%8B%B0%EC%98%A4%EB%85%B8%ED%94%84

박노자-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B%85%B8%EC%9E%90

 

 

 

 

- 이미지 출처 -

그림 1.
https://www.voakorea.com/a/1793401.html
그림 2.
http://m.kfa.or.kr/news/column_view.asp?BoardNo=1147&Page=1&Query=
그림 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3/2017112302247.html
그림 4.
http://www.edaily.co.kr/news/news_detail.asp?newsId=01115206583357536&mediaCodeNo=258
그림 5.
http://m.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87
그림 6.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B%85%B8%EC%9E%90
그림 7.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barcode=9788984310636#N
그림 8-1.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9060771&orderClick=LAG&Kc=
그림 8-2.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84318618&orderClick=LAG&Kc=#N
그림 8-3.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89890100&orderClick=LAG&Kc=

 

 

☞ 작성 글은 등록일을 기준으로 하며 출처 사이트의 사정으로 링크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세검색

자료유형
KDC 분류
발행년도 ~

다국어입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