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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조선의 군사무예를 집대성한 병서
《무예도보통지》는 1790년정조14 4월, 4권4책에 언해본彦解本을 별도로 묶어 목판본木版本으로 편찬한 병서로써 보병무예 18가지와 기병들이 익힌 마상무예 6가지가 수록된 군사무예 훈련서이다. 이 병서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을 비롯하여 국내 몇몇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병서에는 조선의 무예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군사들이 익힌 무예까지 포괄하여 모두 스물네가지 ‘무예24기’로 정리되어 있다.


 

    

그림 1. 국립중앙도서관 소장희귀본 《무예도보통지》古0236-7



조선의 무예를 통일한 실용 무예서
 

  《무예도보통지》는 1790년정조14 4월, 4권4책에 언해본彦解本을 별도로 묶어 목판본木版本으로 편찬한 병서로써 보병무예 18가지와 기병들이 익힌 마상무예 6가지가 수록된 군사무예 훈련서이다. 이 병서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을 비롯하여 국내 몇몇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병서에는 조선의 무예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군사들이 익힌 무예까지 포괄하여 모두 스물네가지 ‘무예24기’로 정리되어 있다.
그 속에는 실용實用의 정신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으로 온 국토가 잿더미가 됐고, 병자호란으로 조선의 국왕이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지만, 그래도 견디고 살아남아야 했다. 국가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일에는 적국의 무예도 오직 ‘실용’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군사들이 익히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학兵學은 실학實學이고, 《무예도보통지》는 그 실학의 중심이었기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병서는 정조시대에 모든 것이 한번에 완성된 것은 아니다.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날카로운 창검에 대항하기 위하여 1598년에 《무예제보武藝諸譜》라는 이름으로 6가지의 군사 무예가 실린 무예서가 편찬되었다. 그리고 광해군 때 1610년에는 일본군과 발호하는 청나라 기병을 상대하기 위하여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이라는 이름으로 4가지 무예가 더해졌다. 
이후 정조의 생부生父인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하던 1759년에는 보병들이 익혔던 단병접전용 군사무예 18가지를 모두 모아 《무예신보武藝新譜》라는 이름으로 발간하였다. 마지막으로 1790년에 조선의 보병과 기병이 근접전투를 위해 익혔던 군사무예를 모두 모아 스물네가지로 정리하여 ‘무예24기’ 가 수록된 《무예도보통지》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전쟁 통에 부모자식을 잃었을지라도, 또 다른 죽음과 전쟁을 막기 위하여 병서는 만들어지고, 군사들은 쉴 새 없이 훈련을 지속해야 했다. 조선 후기, 평화의 시기이자 르네상스 시대로 불렸던 정조시대에 와신상담臥新賞膽의 마음가짐으로 조선의 군사무예를 통일시킨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무예도보통지》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의 병서이며, 허학虛學이 아닌 실학實學의 시기가 정조시대인 것이다.

 

문치규장文置奎章, 무설장용武設壯勇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 문제로 인하여 등극 초반부터 신하들과많은 정치적인 마찰을 일으켰다. 특히 당시 중앙군영인 오군영표軍營을 이끌고 있던 각 군영대장의 경우 혼인이나 정치적인 거래를 통하여 기득권층인 노론과 정치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조정의 중요한 회의에서 고위 문무관의 첫 인사가 “사돈,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라는 말이 비일비재할 정도였다. 따라서 정조에게 당시 오군영의 군사력은 믿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이러한 정조때 이전부터 토착화된 문벌文關과 무벌武關의 지속적인 정치적 결합은 정조가 제대로 된 개혁정치를 풀어나가는데 결정적인 한계로 나타났다. 정조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학문적으로는 ‘규장각奎章閣’이라는 새로운 싱크탱크였으며, 군사적으로는 ‘장용영壯勇營’이라는 친위 군영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정치권에는 당색黨色에 물들지 않은 인물이 없었다. 자신들도 치열한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무리를 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규장각의 각신閣臣 즉 신입관료는 당색에 물들지 않은 새롭게 과거 급제한 사람을 정조가 직접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抄啓文臣制를 통해 직접 선출하였다. 그리고 서얼허통庶孽許通 즉, 반쪽짜리 양반이라 불리던 서자와 얼자들 중 능력이 뛰어나면 규장각 각신으로 선발했다. 바로 정조의 백성관인 ‘백성은 나의 동포’요, ‘한집 식구’라는 개혁적인 정치성향을 통해 답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장용영의 경우는 기존의 오군영에서 가장 무예실력이 뛰어난 군사들을 따로 차출하여 조금씩 부대의 인원을 늘렸다. 또한 정조가 직접 무예 훈련 현장까지 살피며 정성을 쏟았고 다른 군영보다 실질적 권한을 더 줌으로써 장용영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이후 장용영이 서울에 내영內營, 수원화성에 외영外營이라는 양영 체제를 구축하면서 기존 오군영의 군세를 능가할 정도로 굳건해졌다. 
  《무예도보통지》는 바로 규장각과 장용영의 합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규장각의 각신이었던 박제가와 이덕무, 그리고 장용영의 초관이었던 백동수가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 모두는 서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실력으로 당당하게 정조의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다. 박제가는 이 병서의 목판에 판각할 글씨를 직접 썼고, 이덕무는 규장각의 모든 사료를 뒤져 군사관련 고증작업을 진행했다. 백동수는 장용영의 군사들을 지휘하여 직접 무예자세 하나하나를 몸으로 펼쳐내었다. 그리고 장용영 군사들은 이 병서에 수록된 무예를 가장 철저하게 익혔다.
  또한 정조는 이 병서의 인쇄 및 편찬과 관련한 모든 실무 작업을 장용영에 서국書局을따로만들어 진행하게 했다.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의 경우 거의 모든 병서의 편찬은 연하친병輦下親兵이라고불릴 정도로 중앙군영의 핵심이었던 훈련도감訓鍊都監에서 도맡아 진행했지만, 《무예도보통지》 만큼은 장용영이 주축이 되었다. 그렇게 규장각과 장용영은 정조가 펼치고자 했던 세상을 위한 두 날개가 되었다.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왕권수호
 

  그런데 사도세자에 의해 만들어진 《무예신보》의 보병무예 18기의 경우는 모두 보병들이 익히는 단병무예로 증입이 이뤄졌다. 이후 정조대에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보병무예 18기에 마상무예 6기를 더해 기병강화의 의지를 실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무예도보통지》의 편찬 의도는 새롭게 추가된 무예를 살펴볼 때 기병을 위한 마상무예를 강화하고 생부인 사도세자의 위업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정조의 굳건한 의지가 담긴 것이다. 임오화변 이후 사도세자와 관련된 논의는 영조의 명으로 금지되었다. 따라서 사도세자가 대리청정 시 군무軍務의 일환으로 편찬한 《무예신보》는 정조가 유일하게 생부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일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정조가 아버지 묘소를 수원으로 이장하고 쓴 현륭원행장顯陰園行狀 중 《무예신보》를 언급한 부분에는 효종孝宗의 대청對淸의 식에 대한 강한 동조를 보였다. 사도세자가 북벌을 추진하였던 효종과 닮아 실제로 무예를 익히는 것을 좋아하였고 사도세자의 유업 또한 대청방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정조는 전대인 영조 때 초반 발생한 이인좌의 난, 즉 무신난成申亂 때 신속한 기병투입을 통해 내부반란을 진압한 것을 인지했기에 혹시 모를 반란에 대처하기 위하여 마상무예를 대대적으로 보강시킨 병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듯 《무예도보통지》 는 새로운 조선 건설을 위한 가장 실용적인 병서이며, 백성과 군사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결정판이기도 하다.


 

집필자

글.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중앙대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조선시대 군사사와 무예사에 관한 글쓰기와 함께 말을 타고 검을 휘두르며 실제로 《무예도보통지》 에 수록된 ‘무예24기’를 지금도 수련하고 있는 검객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무예를 통해 사유할 수 있는 무예 철학과 몸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병서, 조선을 말하다》, 《무예 인문학》 등 다수의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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