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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배우는 열정과 철학 - ‘야신(野神)’ 김성근에 대하여...
야구 , 김성근
야구에서 배우는 열정과 철학 - ‘야신(野神)’ 김성근에 대하여...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 손꼽히는 프로야구에는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인기 선수들보다 더 많이 받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야신(野神)’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감독이었으나, 지난 9월 팀의 해체로 자유의 몸이 됐다. 매년 시즌이 끝나면 팀마다 감독 영입 0순위로 떠오르는 김성근 감독. 그를 향한 팬들의 구애는 구단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만큼 뜨겁다. 결국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린 지난 1025, 김성근 감독은 3년 연속 꼴찌라는 불명예를 얻은 한화 이글스와 3년 계약을 체결해 준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LG 트윈스보다 더 큰 화제가 됐다.

1942년생, 칠십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에게 왜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그래서 준비했다. 그의 저서 『野神 김성근, 꼴찌를 일등으로』, 『김성근이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와 정철우 기자의 『리더 김성근의 9회말 리더십』을 토대로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에 대해 차근차근 살펴보려 한다.

 

 

 

               그림 1. 김성근 감독 관련 도서

그림 1. 김성근 감독 관련 도서

 

 

김성근 감독이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7‘SK 와이번스부임 첫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다. 김성근이라는 이름 앞에 야신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 20021111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한국시리즈는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으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축제의 현장에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 선수들의 아쉬움과 통한의 눈물도 있었다. 한국시리즈에 앞서 준 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푸 치르고 올라온 LG는 당시 전력 차이가 컸던 삼성을 상대로 6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다. 그때 삼성 김응룡 감독이 우승 소감에서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고 야신이라는 별칭이 김성근 감독의 이름 앞에 붙게 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야신이라는 수식어가 만개한 건,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부터다. 2000년 창단한 SK는 우승에 목말라 있었고, 2006년 시즌이 끝난 후 야인으로 떠돌던 김성근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결과 부임 첫 해, 창단 첫 우승으로 오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SK는 물론 김 감독에게도 의미가 큰 우승이었다. 1984OB 베어스를 시작으로 SK까지 프로야구 6팀의 감독을 역임했지만, ‘우승 한 번 못해 본 감독'이란 꼬리표를 드디어 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2. 2010년 SK 와이번스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헹가래

그림 2. 2010SK 와이번스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헹가래

 

 

SK의 우승 이후 비주류로 분류됐던 김성근 감독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또한 20082년 연속 우승, 2009년 준우승, 2010년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자 김성근 리더십은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동안 혹독한 훈련과 냉철한 운영으로 선수들을 다그치는 외골수로만 알려졌던 김성근 감독을, 누구보다 많은 선수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리더 김성근으로 재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김성근 감독의 이면에는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이해심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놀라웠고 새로웠다. 지독하리만큼 냉정한 승부사의 인간적인 모습과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이끄는 리더의 우직함에 팬들은 감동했고, 열광했다.

 

 

아주 도드라진 장점이 있다면 그걸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단점 고친다고, 또 그 단점이 미워서 쓰지 않는다면 장점까지 묻힌다. 리더가 생각을 바꾸면 낭비되는 자원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리더 김성근의 9회말 리더십』 73

 

 

익히 알려졌듯이 김성근 감독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2세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야구를 한 그는 운동도 공부도 부족한 게 많았지만 피나는 노력 하나로 버티고 극복해왔다고 말한다. 야구가 너무 좋아서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

 

 

야구를 향한 나의 의지와 열망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아무리 가난이 심술을 부려도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은 창의력의 원천이 됐다. ()에서 유()를 가능하게 해줬다. 타고나기를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늘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되는 방법을 찾아냈다.” -『野神 김성근, 꼴찌를 일등으로』 40

 

 

195987일 재일 교포 학생야구단 선수 자격으로 처음 고국 땅을 밟았던 소년 김성근은 1961년 한국 실업야구팀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이듬해 열린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도 출전했다.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좌완 투수에 구속이 빠르고 컨트롤이 좋아 한국에서 투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는 평가까지 들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선수 생활은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왼쪽 팔꿈치에서 시작된 통증은 팔 전체로 퍼져 1966년을 끝으로 투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1965년 한일 수교가 이루어지기 전, 부모와 형제가 있는 일본을 등지고 영주 귀국까지 감행하며 선택한 한국에서의 황금기는 고작 5년에 불과했다. 이후 타자로 전향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967316, 선수로서 하향세일 무렵 결혼을 했고 이어서 큰딸이 태어났다. 가정을 꾸리며 한국에서의 생활은 안정을 찾아갔지만, 야구가 잘 안 되어서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당시 기업은행 소속이었기 때문에 은행 업무라도 제대로 배우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업무가 끝나면 항상 술 마시기 바빴다. 급기야 야구도 가정도 모두 엉망이 됐고, 살면서 가장 큰 위기가 닥쳤다. 결국 1968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의 나이 고작 27살에 찾아온 비극이었다.

 

야구선수 출신의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김성근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마산상고 출신 기업은행 간부가 모교를 도와달라며 마산 지점으로 발령을 낸 것이다.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을 아는 듯, 1969년 여름, 운명처럼 지도자로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때 28살 젊디젊은 감독은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림 3. 2010년 KBS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가수 이하늘을 레슨 중인 김성근 감독.

그림 3. 2010KBS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가수 이하늘을 레슨 중인 김성근 감독 .

 

 

내 별명 중 하나가 잠자리 눈이다. 가만히 서서 사방을 다 본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로 연습 때 내가 쳐다보고 있는 줄 알고 열심히 하거나, 내가 안 본다고 생각하고 요령을 피우는 선수가 가끔 있다. 열심히 하는 건 괜찮지만 요령을 피우다 걸리는 선수는 그날 쓰러질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그것이 누구이든 본다는 것은 평상시에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뭐가 바뀌었는지, 왜 바뀌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가 나온다. 바로 여기에서 선수가 가야 할 길이 나온다. 나는 그 길을 찾아내야 한다.” -『김성근이다』 50

 

 

김성근 감독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편견 가운데 하나가 구단과 마찰이 심하다는 것이다. 1984OB 베어스를 시작으로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까지 대부분 감독직에서 경질됐다.

 

그는 항상 전력이 약한 팀을 맡아 강팀으로 이끌었지만 번번이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우리와 맞지 않습니다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로 잘렸다. SK에서 3번의 우승을 이뤄냈지만 시즌 도중 경질됐다. OB, 태평양과 쌍방울, LG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성근 감독은 선수와 경기를 위해서는 타협을 몰랐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해서 경기의 책임자는 감독이며 성적이 나쁘면 감독이 물러난다. 그래서 김 감독은 항상 선수기용 및 코치 선임, 훈련 등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요구했다. 하지만 구단은 이를 불쾌히 여기며 수시로 간섭을 했다. 구단 입장에선 약한 전력을 키워 우승권으로 이끄는 김성근 감독의 탁월한 능력은 필요하지만, 구단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김성근 특유의 고집스러움은 마뜩잖았다. 그래서 성적이 좋아도 항상 경질되는 보기 드문 감독이 됐다.

 

 

위에 당하는가, 밑에 당하는가 기로에 섰을 때 내 철칙은 위에 당하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손가락질을 받을 처지라면 위에서 받아야 한다. 그것이 리더다. 위에 잘 보이려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면 내가 어떻게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나. 야구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더 절실하게 하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손가락질을 받을 때 나 하나 편하자고 생각하면 나도 쉽게 야구 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이 그러면 이미 그 조직은 망한 조직이다. 감독이 자기 자리를 정확히 지켜야 선수들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내가 욕을 먹든 안 먹든 그건 나중 문제다. 내가 감독으로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수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그때그때 편한 길을 선택해서 살아간다.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한다. 다 같이 망하는 길이다.” -『김성근이다』 173

 

 

늘 경질되는 감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유독 많다.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벼랑 끝까지 내모는 악마감독으로 유명하지만, 그를 향한 제자들의 신뢰는 상상 이상이다. 200212, LG에서 해임된 전직 감독 회갑연을 제자들 100여 명이 모여 성대하게 치러준 일화는 지금도 회자하고 있다. 그 자리에는 그가 감독을 맡았던 OB, 태평양, 쌍방울, 삼성, LG의 전 현직 선수와 코치들도 대거 참여했다. 해임된 감독의 회갑연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림 4. 김성근 감독의 회갑연 기념사진.

그림 4. 김성근 감독의 회갑연 기념사진 .

 

 

2013년 발간된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에서는 이런 김 감독의 성향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데, 40여 년을 야구감독으로 살아온 김성근의 선수들을 향한 애정과 리더로서의 철학을 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제자 10명의 편지도 함께 실려 있다는 점이다.

 

 

감독님이 개인적인 영광만을 생각했다면 초지일관 그 많은 선수들을 그렇게 치열하게 지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도 감독 생활을 해봤잖습니까. 롯데에 가서 더 먼 앞날을 내다보고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해 달려들어 보니까 더욱 절절하게 알겠더라고요. 한국 땅에서 감독님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실력뿐이었지요. 얼마나 절실하셨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제자들에게도 이어진 거지요. 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선수들을 보면 분명 마음속으로 생각하셨을 거예요. ‘이놈들을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된 선수로 만들어서 인간 대접 받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초지일관 선수들한테 독한 연습을 시키셨던 거고요.”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48

 

 

현재 LG 트윈스를 이끄는 양상문 감독의 편지 중 일부 내용이다. 지금은 한국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한 SK의 김광현, 국민 우익수로 불리는 LG 이 진영, 롯데의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 모두 김성근 감독과의 일화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 편지에는 진심이 담겨있어 코끝이 찡해진다.

 

 

                                          그림 5. 2007년 우승 기념 축승회에서 제자 박경완(오른쪽)을 격려하는 모습

그림 5. 2007년 우승 기념 축승회에서 제자 박경완(오른쪽)을 격려하는 모습

 

 

김성근 감독은 자신을 찾아오는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고양 원더스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상대 팀 2군 선수들이 줄지어 김성근 감독을 찾아왔고, 이는 팬들에게 심심찮게 목격됐다.

지난해 LG와 기아의 경기에 깜짝 해설자로 나섰을 때, 김 감독은 “LG의 용병 레다메스 리즈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발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선수들을 위한 조언에는 그곳이 호텔 방이든, 식당이든, 길거리든 상관이 없었다. 치열하게 승리를 다투는 상대팀 선수여도, 그 선수가 외국 용병이어도, 일면식 한번 없는 선수라고 해도 내치는 법이 없다. 오직 하나라도 더 가르쳐서 보내고 싶은 아버지의 심정만 있을 뿐이다.

 

 

내가 잘한 게 있다면 그건 선수들을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거야. 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있나. 아무리 아파도 걔들 훈련할 땐 빠진 적이 없어. 그러다 보면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을 알아준 선수들한테 고맙지.” -『리더 김성근의 9회말 리더십』 227

 

 

운동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엄한 아버지 같지만, 운동장 밖에서는 한없이 퍼주는 인자한 할아버지로 변신하는 감독.

부상 선수가 속출하고 팀 성적이 곤두박질쳐도 감독님이 계시니까 괜찮다는 선수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감독.

자식 같은 선수들을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는 단 한 번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던 감독.

 

남에게는 헌신하되, 자신에게는 혹독한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참 모습이다라는 김성근의 진심이 언론과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김성근 감독에게 사인을 요청하면 항상 일구이무(一球二無)’라는 한자를 써준다.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라는 뜻이다. 그의 인생과 꼭 닮았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는 항상 내일이 없다. 오늘 그리고 지금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필사적인 야구가, 이렇게 절박한 야구가, 이렇게 치열한 야구가 또 있을까? 야구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야구인 인간 김성근. 이처럼 멋진 리더가 그려낼 꼴찌 한화 이글스의 내년 시즌이 궁금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림 6. 김성근 감독 사인볼.

그림 6. 김성근 감독 사인볼 .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진실. 진실 속에 모든 게 이어진다. 진실만 있으면 어떤 경우, 어떤 사람하고도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지게 된다. 나는 리더로서 선수들을 챙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게 행복하다. 선수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역으로 절실하게 고마운 것이다. 절실한 순간을 끌어안는 사람은 영원한 순간을 차지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리더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 리더는 절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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