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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놀이의 고장 함안의 무진정을 찾아서
#무진정 , #낙화 , #귀거래사 , #함안

낙화놀이의 고장 함안의 무진정을 찾아서

 

그림 1. 무진정

 

 

경상남도 함안에 소재한 무진정은 경남 비경 100선에 꼽힐 정도로 유서 깊고 아름다운 명소입니다. 함안의 자랑이자 낙화놀이로 유명한 무진정을 찾아가 봅니다.

 

 

 

무진정(無盡亭)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관리중인 유형 문화재로서 조선시대의문신이었던 무진(無盡) 조삼(趙參) 선생이 후진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함안면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은 정자입니다. 조삼 선생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서 이곳 함안과 대구를 포함한 5곳의 목사(牧使)를 지냈으며 이후 벼슬을 마다한 채 귀거래사를 읊으며 귀향했다고 합니다. 이 곳 무진정은 그렇게 그의 호를 따서 지어진 곳입니다.

 

 

 

귀거래사[歸去來辭]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작품으로서 그가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을 진술한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각운(脚韻)을 밟고 있다. 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간주하여 읊었고, 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3장은 세속과의 절연선언(絶緣宣言)을 포함,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으며, 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쓰는 동기를 그 서문에서 밝혔는데, 거기에는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 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직하였다고 전한다. 이 작품은 도연명의 기개를 나타내는 이와 같은 일화와 함께 은둔을 선언한 일생의 한 절정을 장식한 작품이다. (두산백과)

 

 

그림 2. 돌다리

 

 

무진정을 감싸고 있는 작은 호수에 걷고 싶게 만드는 돌다리가 놓여있습니다. 보통 정원의 호수를 관통하는 돌다리들은 아치 형태로도 많이 만드는데 이곳의 다리는 어떤 굴곡이나 꺾임 없이 길쭉하게 뻗어있습니다. 수면 위로 살짝 올라온 다리를 건너다 보면 맑은 물 속이 투명하게 보입니다  

 

 

그림 3. 무진정 전경(1)

 

 

그림 4. 무진정 전경(2)

 

 

함안에서는 매년 4월 초파일에 이곳 무진정에서 낙화놀이를 합니다.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고 하나 17세기 조선중엽부터 전해지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낙화놀이는 연등 사이에 불에 태운 참나무 숯가루로 만든 낙화를 매달아 물 위에서 하는 불꽃놀이입니다.

 

근래에는 지자체별로 연중 다양한 축제와 행사를 개최합니다. 그 행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놀이는 늘 인기 만점의 퍼포먼스인데 하늘로 쏘아 올리는 다양하고 화려한 불꽃을 한 순간이라도 놓칠 새라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짧게는 10여분간 지속되는 불꽃의 아름다움은 가끔 아쉬움으로 남기도 하는데 낙화불꽃은 그러한 시간적 제약 없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우리 전통의 불꽃놀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해가 지는 무진정 호수 수면을 바라보니 밝게 타올라 흩뿌려지는 참나무 숯가루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낙화놀이는 앞서 소개한대로 17세기 중엽 시작되었으나 잠시 그 맥이 끊겼다가 1985년 현재의 형태로 복원되어 이후로는 매년 무진정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그림 5. 무진정 전경(3)

 

 

그림 6. 정자 초입

 

 

정자로 향하는 초입입니다. 길의 좌우편의 커다란 돌들에는 이곳의 습한 기운 탓인지 이끼가 두껍게 끼어있었습니다. 완만한 경사의 계단을 지나니 급한 경사의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을 올라 정자를 향해 봅니다.

 

 

 

무진 조삼 선생은 1473(성종4)에 출생하여 성종 20(1489) 진사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이후 중종 2년이 되던 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목사를 역임한 후 내직으로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생원·진사시

 

생원·진사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로 나뉘어져 있었다. 생원시는 오경의(五經義)와 사서의(四書疑)의 제목으로 유교경전에 관한 지식을, 그리고 진사시는 부()와 시()의 제목으로 문예창작의 재능을 각각 시험하였다. 그리하여 합격자에게 생원 또는 진사라고 하는 일종의 학위를 수여하였다. (중략)

 

 

 

생원·진사시 설치의 본래 목적이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부여하는 데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생원 또는 진사로서 성균관에 입학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성균관의 운영이 부실해 입학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중략)

 

 

 

생원이나 진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가문과 후손의 영예를 위해서도 절실한 소원이었다. 물론, 그들 중 관계 진출을 목적으로 다시 문과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더 그러하였다.

 

그들은 생원이나 진사가 관계(官界)와는 인연이 멀다는 사실에 더 큰 의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었다. 생원 또는 진사야말로 학자로서의 공인된 지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깨끗한 선비로서의 위신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었다.

 

생원·진사시가 국가 시험제도로서 본래의 의의를 거의 상실한 뒤에도 계속 실시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회 풍조 탓이 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림 7. 무진정 전경(4)

 

 

그림 8. 무진정 전경(5)

 

 

무진정은 사진과 같이 앞면이 3, 옆면은 2칸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곳의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 지붕으로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으로 시공되어 있습니다..

 

 

 

무진정은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는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1976 12 20일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문화재입니다.

 

 

  

그림 9. 낙화놀이(1)

 

  

그림 10. 낙화놀이(2)

 

 

낙화놀이

 

‘낙화유(落火遊)’·‘줄불놀이’라고도 한다. 밤하늘에 흩어지는 불꽃을 관상하던 운치 있는 놀이로, 주로 뱃놀이나 시회·관등놀이 등에서 놀이의 흥을 돋우기 위해 행하였다.

 

 

 

뽕나무나 소나무 또는 상수리나무 껍질을 태워 만든 숯가루를 한지주머니에 채우고 그것을 나뭇가지나 긴 장대 또는 추녀 끝이나 강가 절벽 위에 줄을 매고 매달아 불을 붙인다. 그러면 불씨주머니에 든 숯가루가 타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이러한 모습이 마치 ‘불꽃’이 떨어져 날아가는 것 같아 ‘낙화놀이’라고 불리었다.

 

 

 

이 놀이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동의 경우 뱃놀이·낙화놀이·달걀불놀이·줄불놀이 등의 네 가지 놀이로 이루어진다. 이곳의 낙화놀이는 선조 때의 공신 유성룡(柳成龍)이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한 뒤 그의 형과 더불어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했다는 유래를 근거로 17세기초부터 놀아왔다고 하나, 그 시기는 훨씬 이전으로 소급될 수도 있다.

 

 

 

하회동은 낙동강이 ㄹ자형으로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가운데 있으며, 강가에 만송정(晩松亭), 북쪽 연안에 겸암정(謙菴亭)·옥연정(玉淵亭)이 있고, 두 정자 사이에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룬 부용대(芙蓉臺)가 있어, 낙화놀이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다. 음력 7 16일 밤 달이 떠오르면 10여명의 선비들이 기생들을 거느리고 나룻배를 타고 강물 위에 뜬다.

 

 

 

배에는 네 기둥을 세워 차일을 치고, 휘황한 초롱을 달아 주위를 밝힌다. 서로 술잔을 권하며 정담을 나누다가 흥이 생기면 <적벽부>를 외우면서 시창(詩唱)으로 청풍과 명월을 즐기는데, 기생들도 장구를 치면서 노래와 춤으로 흥취를 돋운다.

 

 

 

이때 배 위 하늘에는 줄불로부터 불꽃이 꽃가루처럼 떨어지고, 상류로부터는 수많은 달걀불이 흘러내리며, 부용대 마루에서는 불덩이를 던져 강기슭이 불꽃으로 뒤덮이게 한다. 줄불은 가장 이채롭고 아름다운 것으로 마을주민들이 여름철부터 만든 것이다.

 

 

 

뽕나무 숯가루에 소나무껍질 숯가루를 약간 섞어서, 창호지로 만든 45㎝ 가량의 봉지에 넣는다. 이 봉지는 지름이 23㎝ 정도로 길이 5㎝ 되는 곳마다 노끈으로 허리를 묶고, 긴 새끼줄을 마련하여 45m 간격으로 한 봉지씩 단다.

 

 

 

새끼줄을 부용대 마루 위의 소나무에 걸고, 끝은 만송정의 소나무에 매어다는데, 만송정 쪽에서 마른 쑥으로 봉지 끝에 불을 붙이면, 부용대 쪽에서 서서히 당겨올린다. 봉지의 불은 천천히 타오르면서 ‘따닥따닥’ 소리를 내고 불꽃이 꽃가루 흐르듯이 허공에서 물 위로 떨어진다.

 

 

 

이러한 줄불은 서너 곳에 마련하나 때로는 부용대 절벽과 겸암정 사이에도 걸어 다는 일이 있었다. 달걀불은 원래 빈 달걀껍질에 심지를 박아서 기름을 부어 불을 켜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와서 바가지 쪽을 100여개 마련하여 기름을 먹인 솜뭉치를 놓고 불을 붙였다.

 

 

 

그리하여 부용대 위쪽 형제암 부근에서 2030개씩 띄워 보내면 물결을 타고 천천히 옥연정 앞 소를 향하여 흘러가서 맴돌게 되어, 뱃놀이에 한층 흥취를 더하게 된다. 이 무렵에 이따금 낙화가 있다. 부용대 절벽 마루 위에 서너 명이 올라가서 솔가지를 다발로 묶은 단에 불을 붙여 “낙화야!” 하는 소리와 함께 강을 향하여 힘껏 내던진다.

 

 

 

이 낙화는 시뻘건 불덩이가 되어 떨어지다가 밑쪽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고, 그 흩어지는 불꽃이 장관을 이루게 된다. 이 놀이는 낙동강을 적벽강에 대비시키고 부용대를 적벽으로 생각했으며, <적벽부>의 칠월 기망(旣望)을 본떠서 7 16일에 놀았던 것으로 보인다.

 

 

 

계절적으로 농한기인 데다가 낙동강의 수량도 적절하여 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얻을 수 있는 시기이다. 광복 이전까지 전승되다가 중단되었으나 그 뒤 재현된 바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림 11. 해가지는 무진정

 

 

편한 휴식이야 말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큰 특권입니다. 일에 지치고 학업에 지치고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하는데요. 글을 쓰다 보니 무진정을 지었던 조삼 선생이나 귀거래사의 도연명 시인 등이 관직을 고사하고 낙향한 것으로 보아 그들 역시 당시 세속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반면 즐거운 은퇴가 가능했던 시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니 은퇴가 또 하나의 기로와 선택에 서야 하는 시기의 현대인들이 측은해지기도 합니다.

 

 

 

질 좋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고민해 봅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우리도 가끔은 어떤 목적이나 이유 없이 하루 정도 귀거래사를 읊으며 자연에 몸을 맡겨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자료 출처 -

*서적
귀거래사 [歸去來辭] (두산백과)
생원·진사시(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낙화놀이(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현장 안내자료

 

 

 

- 이미지 출처 -

그림 1~8, 11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그림 9 낙화놀이(1)
http://sports.hankooki.com/lpage/sisa/201604/sp20160407170142137040.htm
그림 10 낙화놀이(2)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html?no=33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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