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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운공기행록(谷耘公紀行錄) 조선 시대 관료의 생활상이 담긴 일기
《곡운공기행록(谷耘公紀行錄)》은 곡운(谷耘) 권복(權馥)(1769~?)이 관직 생활 중 여러 지역을 오가면서 체험한 것을 기록한 기행일기이다. 시험관의 신분으로 직접 목도한 과거(科擧)의 운용과 관련된 생생한 실상, 노정에서 소요되는 각종 경비, 물품 목록, 유배지로 다녀오는 과정, 어사(御史)가 되어 살펴본 백성들의 생활, 중앙 관원에 대한 지방 고을의 접대 문화 등을 소상하게 기록하였다는 면에서 제도사, 경제사, 사회사적 의의가 큰 자료이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는 지방 관아의 아전이 지은 1편의 한글 가사(歌辭)가 실려 있어서 가사 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한글 변화의 연구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곡운공기행록(谷耘公紀行錄)은 곡운(谷耘) 권복(權馥)(1769~?)이 관직 생활 중 여러 지역을 오가면서 체험한 것을 기록한 기행일기이다. 시험관의 신분으로 직접 목도한 과거(科擧)의 운용과 관련된 생생한 실상, 노정에서 소요되는 각종 경비, 물품 목록, 유배지로 다녀오는 과정, 어사(御史)가 되어 살펴본 백성들의 생활, 중앙 관원에 대한 지방 고을의 접대 문화 등을 소상하게 기록하였다는 면에서 제도사, 경제사, 사회사적 의의가 큰 자료이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는 지방 관아의 아전이 지은 1편의 한글 가사(歌辭)가 실려 있어서 가사 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한글 변화의 연구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그림 1. 《곡운공기행록》한古朝63-46



 

권복의 기행문집
 

이 책은 일종의 기행일기 모음집이다. 일반적인 일기처럼 일상의 연속적인 기록이 아니라,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한 단편 일기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의 분량은 총 88장인데 크게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 다섯 부분은 각각 남유록(南遊錄)(28), 교남일록(嶠南日錄)(13), 수의기행(繡衣紀行)(27), 서정일록(西征日錄)(17), 금릉별곡(金陵別曲)(3)이다. 다른 이의 작품인 금릉별곡을 제외한 나머지 4편의 기행일기는 각각 저자가 특별한 경험을 했던 시기의 기록들이다.

 

전라좌도 경시관이 되어 겪은 42일간의 이야기
 

「남유록」은 저자가 50세를 맞은 1818(순조 18), 811일부터 923일까지 총 42일 동안 전라좌도(全羅左道)의 과거를 주관하는 경시관(京試官)의 일원이었을 당시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전라좌도는 전라도의 동쪽 산악지대에 속하는 고을들로서, 남원, 담양, 무주, 광주 등의 24개 고을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시관은 지방의 시험을 관리하기 위해 파견된 중앙 관료를 말한다.

 

체제는 소서(小序), 노정(路程), 시역(試役), 어하(御下), 심방기문(尋訪記問), 유상(遊賞), 풍정(風情), 위의(威儀), 기거(起居), 음식(飮食)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괄 부분인 소서를 제외하고는 저자가 직접 제목을 달아서 하나의 단편 저작처럼 분류한 것을 보면, 바로 전해인 1817년에 장원 급제하여 막 벼슬을 시작한 저자가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지방 출장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서에서는 89일에 경시관으로 선발된 것에서부터 전체적인 일정을 간략하게 추려 적었고, 노정에서는 811일에 대궐에서 하직한 뒤로 923일에 복명할 때까지의 여정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9일 동안에 710()를 가서 구례(求禮)에 도착했다는 것과, 9일 동안 700리를 가서 동복(同福)에 이르렀다는 것을 통해 당시의 지역 간 이동 소요 시간을 파악할 수 있다.

시역에서는 저자가 경시관으로 참여하였던 구례의 향시(鄕試)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사흘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2,000장에 이르는 시권(試券)을 다섯 번이나 읽었다는 대목에서 저자가 공정한 선발을 위해 얼마나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시제(試題) 등 과거 시험 전반의 절차와 관련한 세세한 기록은 법에 규정된 내용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과거 시험 실상을 생생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어하는 아랫사람을 부린다는 뜻으로, 수행하던 사헌부의 관원들이 도중에 폐를 끼치거나 과거에서 부정행위 등 수작을 부리는 일을 막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기술하였다.

한편, 심방기문은 여정 중에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거나 성묘를 한 일 등을 적은 것이고, 유상은 저자가 본 것들과 노닌 곳들에 관련된 기록이며, 풍정은 거쳐 간 고을에서 만났던 기녀(妓女)들과 관련된 것이다. 위의는 자신을 맞이하는 여러 고을의 의식(儀式)과 의장(儀仗)에 대해 기술한 것이고, 기거와 음식은 각각 여러 고을에서 묵었던 건물과 대접받았던 음식에 대해 적은 것인데, 다른 주제에 비해 짧게 기록되어 있다.

 

이번에는 경상좌도 경시관이 되다

 

「교남일록」은 저자가 56세이던 1824(순조 24) 721일 경상좌도(慶尙左道) 경시관으로 임명된 과정부터 다음 달 20일에 복명하기까지 총 40일간 이동한 1,925리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교남은 영남의 다른 이름이고, 경상좌도는 지도상에서 경상도를 둘로 나누었을 때 왼쪽에 해당하는 울산, 경주, 안동 일대의 37개 군() 지역을 가리킨다. 과거를 주관하러 내려갔을 때의 기록이라는 면에서 「교남일록」의 수록 내용은 「남유록」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유록」이 일정한 체제 하에 내용을 분류하여 설명한 것에 비해, 「교남일록」은 따로 제목을 붙여 분류하지도 않았고, 분량도 대폭 줄어들었다.

「교남일록」을 통해 진보현(眞寶縣)에서 열린 과거의 초장(初場)에 응시자가 무려 1900명에 이르렀고, 제출된 답안 시권이 7,042장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관향(貫鄕, 본관이라고도 한다)인 안동에서 안동 권씨(安東權氏) 종인(宗人)들이 기존 관행에 따라 별도로 문중 단위의 환영 행사를 개최해 주었다는 것도 특이하다고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종회록(宗會錄)과 제수(祭需)를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곡운공기행록》의 내지 첫 장.

곡운공기행록 (谷耘公紀行錄)’

이라는 책 이름이 있으며,

그 바로 다음 줄에

남유록(南遊錄)’이라는 제목이

있고, 이어서 「남유록」의

본문이 실려 있다.























 

저자 권복이 평안도 순안으로

유배를 다녀올 때의

노자 내역이다.


















 

73일간 2,010리의 암행 기록
 

수의기행은 저자가 58세가 되던 1826(순조 26) 327일에 경기도 암행어사로 임명된 이후로, 611일까지 총 73일간, 2,010리 길을 암행한 기록이다. 일기와 함께 별도의 제목을 단 서계(書啓), 별단(別單)으로 구성하였다.

일기 부분은 기후와 이동하는 동안의 동정을 대략적으로 기록하였다. 비로 인해 길이 막혀 유숙하는 날이 많았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궂은 날씨로 암행어사 임무 수행과정이 수월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계는 암행 후에 보고하는 것으로, 경기도 관찰사 서장보(徐長輔) 이하 각 고을 수령 및 중군(中軍), 경력(經歷)들의 치적, 평판에 대해 파악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별단은 순영(巡營)에서 이자놀이를 하는 채전(債錢), 성을 지키는 군사의 군량 및 기타 비용인 성향(城餉) 등 경기도와 관내의 대표적인 9개 폐단을 별도로 선정하여, 상세하게 내용을 기술한 것으로, 각 항목의 뒤쪽에 의정부의 회계(回啓)가 부록으로 덧붙어있어 해당 건의 처리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유람에 가까운 유배 기록
 

「서정일록」은 저자가 60세이던 1828(순조 28) 1024일부터 1125일까지의 일기로서, 1028일 평안도 순안(順安)으로 유배를 떠나 1125일에 집에 돌아오기까지의 짧은 유배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겨울에 우레가 치는 변고가 있었는데도 대간의 신분으로 조강(朝講)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배의 명목이지만, 봉조하(奉朝賀) 이조원(李肇源)의 국문을 강하게 청하다가 대리청정(代理聽政) 중이던 순조의 세자, 즉 익종(翼宗)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 실제적인 유배의 이유였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저자가 유배를 당하는 사람의 절박함보다는 유람에 가까운 여유 있는 심사를 보인다는 점과 유배지까지 가는 연도의 고을 수령들이 그를 죄인이 아니라 중앙 관료처럼 대우하여 융숭하게 접대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115, 유배지인 순안에 이르러서도 청결한 숙소와 다양한 음식을 제공받았으며 11일에 죄를 용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정작 유배지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6일 정도에 불과했다.

















 

저자가 경시관으로 안동 지역을 방문하여, 시조의 태사묘(太師廟)에 참배할 때의 제수 목록이다




























 

책 마지막에 부록처럼 실려있는 국한문혼용 가사 「금릉별곡」

시작 부분. 김해의 아전 문도갑이

1832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200여 구의 한글 가사이다.















 

부록 격의 국한문 혼용 가사
 

이 작품은 일찍이 이상보(李相寶)와 박노춘(朴魯春)에 의해 처음 학계에 소개되었고, 널리 알려졌다. 앞서 밝혔듯이 금릉별곡은 권복이 지은 것이 아닌 김해(金海)의 아전 문도갑(文道甲)1832(순조 32)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200여 구의 한글 가사이다. 금릉(金陵)은 김해의 다른 이름이며 권복은 평안도 순안으로 유배 갔다 돌아온 이후 1829(순조 29) 928일에 김해부사로 임명되어 1831년까지 3년 동안 수령으로 재임하였다. 이는 순조실록에서 확인되는 권복의 관력과 일치한다. 권복의 선정을 칭송하는 내용이므로, 서정일록뒤에 부록으로 전재한 것으로 보인다. 국한문 혼용으로 쓰였고 당시 우리말의 용례, 어법 등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조선 시대 지방 관아의 전속 아전이 지은 희소 가사 작품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가사 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문헌이다.

 

권복의 일기를 모아 펴낸 유일본
 

곡운공기행록1221(20자인 경우도 산견됨)의 필사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이 유일본이다. 내용 첫머리 제목에 곡운공(谷耘公)’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고 글씨의 획이 바른 것으로 보아, 본인이 아닌 자손 중에서 누군가가 편차(編次), 정서(淨書)한 것으로 판단된다. 목판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곽(匡郭)이나 계선(界線)이 없으며, 주석은 두 줄의 작은 글씨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인 권복은 자()가 치란(穉蘭)이고, ()는 곡운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795(정조 19) 식년시(式年試)에서 진사로 합격하였고, 49세이던 1817(순조 17) 정시(庭試)에서 장원을 하여 벼슬길에 나섰다. 이후 사헌부 지평, 집의, 사간원 정언을 거쳐, 사간원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세자의 조강에 불참한 죄로 순안으로 유배된 적도 있으며, 경기 지역 암행어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집필자
 

.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한문학 한시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고서담당 사서로 재직했고, 고전번역원 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겸 TFT팀장을 맡고 있으며, 고전번역교육원 강사를 겸하고 있다. 오음유고, 가례향의30여 책의 번역서와 다수의 논문을 펴낸 바 있다.



 

 

관련콘텐츠

(국역) 곡운공기행록

     서정일록

    金 陵 別 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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