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검신록(檢身錄) 어느 유학자의 수신 지침서
오늘날 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 것인지 망각하고, 더 다양하고 높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학문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 공자가 말하기를 “옛날의 학자는 자기를 위한 공부(爲己之學)를 하였는데, 오늘날의 학자는 남을 위한 공부(爲人之學)를 한다.”라고 하였는데, 위기(爲己)란 도(道)를 자기 몸에 얻으려는 것이고, 위인(爲人)이란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위기의 결과는 남까지 성취시켜주는 것이지만, 위인의 결과는 자기마저 상실하는 데에 이른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는 어디를 보며 가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오늘날 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 것인지 망각하고, 더 다양하고 높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학문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 공자가 말하기를 옛날의 학자는 자기를 위한 공부(爲己之學)를 하였는데, 오늘날의 학자는 남을 위한 공부(爲人之學)를 한다.”라고 하였는데, 위기(爲己)란 도()를 자기 몸에 얻으려는 것이고, 위인(爲人)이란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위기의 결과는 남까지 성취시켜주는 것이지만, 위인의 결과는 자기마저 상실하는 데에 이른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는 어디를 보며 가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림 1. 검신록》 古1570-13



 

36년의 공력을 쏟아부은 술이부작(述而不作)
 

공자는 평생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편집하였고, 예와 악을 바로잡고, 《춘추(春秋)》를 편수하였고, 《주역(周易)》에 십익(十翼, 경문의 해석)을 달아 그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그런데도 전술(傳述)하기만 하고 창작(創作)하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함을 삼가 우리 노팽(老彭)에게 견주노라.”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유가(儒家)에서는 성인(聖人)이 아니면 감히 창작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고, 설사 창작을 하더라도 짓는다는 뜻의 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적는다는 뜻의 술()이라고 하였다. 검신록역시 이런 맥락에서 창작물이 아닌 전대 성현의 말씀을 전술한 편집서에 해당한다. 이 책은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31세 때인 1710년에 시작하여 49세 때인 1728년에 수집 작업을 완료하였고, 중간에 병 때문에 중단하였다가 세상을 떠나기 전 1746년에 서문을 쓰는 것으로 완성하였다. 장장 36년에 걸쳐 32종의 서적에서 171건의 내용을 발췌하여 109개의 강()53개의 목()으로 구성하였다.

 

구성 내용을 살펴보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몸을 단속하여 기질을 바로잡고, ()을 구하는 방법을 경전 등에서 발췌하고 요약해 놓은 것이다. 발췌한 책으로는 《주자어류(朱子語類), 《회암집(晦庵集), 《근사록(近思錄), 《논어(論語)》가 인용된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사서삼경 외에 《소학(小學), 《효경(孝經), 《예기(禮記), 《심경(心經), 《이정전서(二程全書), 《연평답문(延平答問), 《서산독서기(西山讀書記), 《동래집(東萊集), 《면재집(勉齋集)》 등이며, 우리나라 책으로는 《퇴계집(退溪集)》에서 두 곳, 《율곡전서(栗谷全書)》에서 네 곳을 발췌하였는데, 강이 아닌 목에 배치하였다. 전반부는 자신의 수양과 학문 및 기질 변화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후반부는 타인과 관계에서의 행동 규범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맨 앞에 《논어》 「헌문(憲問)」에 실린 위기지학을 배치하여 이 책 전체의 강령으로 삼고, 뒤이어 《시경》 「국풍(國風) 석인(碩人)」의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자기가 말하는 위기지학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 뒤에는 위기지학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공자, 맹자, 안연, 정자, 장재(張載)의 말을 차례로 인용하여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여기에 율곡의 「자경문(自警文)」에 나오는 털끝 하나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했다면 이는 곧 내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공부하는 자세를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이 책의 제목인 검신(檢身)’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는데, 정자의 「사물잠(四勿箴)」을 비롯하여 《예기》, 《시경》, 《서경》의 경구를 인용하여 행동 하나하나를 어떻게 검속할 것인지를 밝히고 있고, 여기에서도 율곡의 모든 악()이 혼자 있을 때를 삼가지 않은 데에서 생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마무리하고 있다. 그 뒤에 독서 방법과 순서, 존심(存心), 징분질욕(懲憤窒慾, 분한 생각을 경계하고 욕심을 막음), 변화기질(變化氣質)에 대한 내용이 배치되어 있다.



 

그림 2. 1746년에 도암이 직접 쓴 서문.

이 책을 편찬한 이유를 대해 처음에는 자신 한 몸을 검신하려는 것이었는데,

성현의 말씀을 혼자만 독차지할 수 없어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뜻이었다고 밝히며,

이것이 유학(儒學)에서 인()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낙론(洛論)의 종장이었던 도암이 지적인 학문을 바탕으로 한 인격수양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수십 년의 공을 들여서 수집하고 정리한 책이다. 이기심성론에 대한 담론이 치열하던 시기에 도덕적 실천 영역을 새삼 제기하여 지()와 행()의 균형을 잡으려는 학자의 안목과 우려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그림 3. 이 책 전체의 강령으로 삼고 있는 《논어》의 위기지학부분.

뒤이어 《시경》 「국풍 석인」의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

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자기가 말하는

위기지학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림 4. 부록에 실려 있는 「인불가이불학설」.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익혀 실천해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도암의 학문에 대한 견해가 잘 드러나 있다.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실천해야 사람이다
 

중용(中庸)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며, 밝게 분변하며, 독실히 행하여야 한다.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라고 하였는데, (((()은 지에 해당하고 독행(篤行)은 행에 해당한다. 이 말은 학자가 학문함에 있어 넓고 깊은 지식을 갖춤과 동시에 독실한 행을 겸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도암의 학문에 대한 생각 역시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을 통해서 지식을 넓히고, 몸을 단속하고 지식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다. 사람의 도리를 학문을 통해서 알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할 때에 비로소 사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허울만 사람일 뿐 금수와 다를 게 없다. 이러한 도암의 학문에 대한 견해는 부록에 실려 있는 인불가이불학설(人不可以不學說)에 잘 드러나 있다.

 

어떤 사람이 도암에게 선생께서 일찍이 사람은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듣고자 합니다.”라고 물었다.

도암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실제로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대가 듣고자 한다면 내가 다 말하겠다. 대저 사람이란 만물의 영장(靈長)이다. 하늘이 사람을 만들어 금수와 다르게 한 것은 사람이 되는 이치가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되어서 금수에서 면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이 되는 일이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미 사람이 되는 실제 이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이 되는 실제의 일을 행한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라는 이름에 부합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름은 비록 사람일지라도 실상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른바 학문이라는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지, 애당초 나의 분수 밖에 있는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미 사람이 되는 실상을 다하지 못하고서 남들이 혹시 자기를 금수에 견주면 발끈 성내지 않을 사람이 없다.

금수는 참으로 천시하고 미워할 만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배부름,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달려들고 회피하는 일은 금수 또한 잘한다. 그러나 군신(君臣)과 부자(父子) 같은 큰 인륜과 사물의 당연한 법칙은 금수는 원래 하지 못하거늘 나 또한 하지 못한다면, 금수는 막혀 있는데 사람은 트여 있고 금수는 치우치게 부여받았는데 사람은 온전하게 부여받았다는 구별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머리는 둥글고 발은 네모난 형상을 가지고 스스로 사람이라고 할 뿐이다. 금수를 가지고 금수에 견주는데 무슨 노할 것이 있겠는가? 또한, 매우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금수는 천시하고 미워할 만하다는 것을 알아서 자기를 금수에 견주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을 갖추고 있어서 그것이 발로되어 측은(惻隱), 수오(羞惡), 공경(恭敬), 시비(是非)의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 단서를 진실로 확충시킬 수 있으면 금수에서 면할 뿐만 아니라 성인의 경지라고 하더라도 점차 도달할 수 있는데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겠는가?

대저 사람으로서 사람이 되는 실상을 모두 행해야 비로소 성인이다. 사람이 배울 때 반드시 먼저 성인이 되겠다는 뜻을 세운 뒤에야 비로소 진보가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원대한 뜻을 세우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비방하기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미친 사람이다.’라고 하는데, 금수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성인의 무리가 되기를 바라야 한다. 자신이 비록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찌 차마 남이 하는 것을 비방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자포자기하는 사람은 참으로 기질(氣質)이 강하고 약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원인을 찾아보면 모두 시속이 해쳐서 그렇게 된 것이다. 시속에서 가장 나쁜 것은 내가 배우는 것을 두고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성도(聖道)의 찌꺼기를 얻어서 사람이 되었으니, 그중에 큰 것을 말하면 부자, 군신, 장유, 붕우, 부부이고, 그중에 작은 것을 말하면 거처(居處), 음식(飮食), 동정(動靜), 어묵(語黙)이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그 당연한 법칙을 행하지는 못하지만, 성인이 말한 사람이 되는 도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저들도 오히려 이것을 빌려서 하나의 사람 모양을 갖추고 있거늘, 만약 성인이 말한 학문이라는 것이 없다면 시속 사람들 또한 무엇을 근거로 사람 축에 들겠는가? 남들이 자기를 사람으로 대우하기를 바라면서 사람이 되는 도를 배우기를 싫어한다면 그 또한 미혹된 것이다.”



 

유학자 도암 이재
 

저자인 이재는 조선 후기 숙종 대부터 영조 대까지 활동한 도학자(道學者)이자 관료이다. 자는 희경(熙卿)이고, 호는 도암, 한천(寒泉)이며,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어려서 중부(仲父) 이만성(李晩成, 1659~1722)에게 수학하였고, 1702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였다. 이조와 병조의 낭관 및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역임하였다. 1716가례원류(家禮源流)의 편찬자를 둘러싸고 시비가 일자 노론의 입장에서 소론을 공격하였고, 이후 노론의 중심인물로 활약하였다. 신임옥사(辛壬獄事) 때 벼슬을 빼앗기고 쫓겨났다가 영조 때 노론이 득세하자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에 서용되었으나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소론이 득세함에 따라 문외출송(門外黜送)되어 여주(驪州)로 이사하였고, 1728년 용인 한천동(寒泉洞)으로 이사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40대 중반까지는 관직에 있었고, 40대 후반부터는 강학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따라서 그의 저술은 대부분 49세에서 67세 사이에 이루어졌다. 저서로는 오선생휘언(五先生徽言), 근사록심원(近思錄尋源), 서사윤송(書社輪誦), 주형(宙衡), 주자어류초절(朱子語類抄節), 심경집주초절(心經集註抄節), 중용강설(中庸講說), 사례편람(四禮便覽), 이송선생예의통편(二宋先生禮疑通編)등이 있고, 존양편(尊攘編)1743년에 저술을 시작하였으나 말년까지 완성하지 못하였다.








집필자
 

. 홍기은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조선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번역학을 전공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연구소장, 성과평가실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갈암집(葛庵集), 기언(記言), 명재유고(明齋遺稿), 대산집(大山集), 홍재전서(弘齋全書)등이 있다.

 

 

관련콘텐츠


     朱子語類


     家禮源流


     家禮源流


     四禮便覽

상세검색

자료유형
KDC 분류
발행년도 ~

다국어입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