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연행일기초(燕行日記艸) 왕복 칠천 리 사신길
《연행일기초(燕行日記艸)》는 1694년(숙종 20년)에 의정부(議政府) 사인(舍人)으로 있던 유득일(兪得, 1650∼1712)이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경험한 것을 기록한 자필 초고본이다. 8월 2일에 한양을 출발하여 9월 28일에 북경에 도착, 10월 3일까지 머물렀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귀국할 때의 여정은 기록되지 않은 미완성 연행일기이다. 대부분 초서로 기록되어 있고 또 첨(籤)을 붙인 부분이 많아서 상태가 좋지 않다.

연행일기초(燕行日記艸)1694(숙종 20)에 의정부(議政府) 사인(舍人)으로 있던 유득일(兪得, 16501712)이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경험한 것을 기록한 자필 초고본이다. 82일에 한양을 출발하여 928일에 북경에 도착, 103일까지 머물렀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귀국할 때의 여정은 기록되지 않은 미완성 연행일기이다. 대부분 초서로 기록되어 있고 또 첨()을 붙인 부분이 많아서 상태가 좋지 않다.





 
                        

그림 1. 연행일기초(貴古朝)51-21

이 자료의 표지 제목은 저자인 유득일이 쓴 것이 아니라 후에 소장자가 표지를 새로 만들면서

적은 것이다. 이후 이것이 잘못 된 것임을 알고 붉은 줄을 긋고 옆에 바르게 연행일기초라고 적었다.




 

유득일이 칠천 리 사신길에 오른 까닭
 

동국대학교 임기 중 교수가 기존의 연행록을 총정리하여 2006년 《연행록 연구》 증보판을 간행하였는데, 이 책에 의하면 원((()에 사신으로 방문한 횟수는 모두 579회라고 되어 있다. 고려의 기록은 누락되어 있어 고려에서 송()으로 간 사신 행차를 합하면 그 횟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신으로 가는 목적은 사은사(謝恩使), 동지사(冬至使), 성절사(聖節使) 등 다양하다. 16944월에 갑술환국(甲戌換局)이 일어나 소론과 노론이 재집권하게 되자, 그동안에 폐비(廢妃)로 있었던 인현왕후 민씨(閔氏)가 다시 왕비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중국 측에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진주사 겸 주청사(陳奏使兼奏請使)를 보냈다. 정사(正使)는 박필성(朴弼成, 16521747), 부사(副使)는 오도일(吳道, 16451703)이며 서장관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유득일이다.

유득일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숙(寧叔), 호는 귀와(歸窩)이다. 대사헌과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유창(兪瑒)이고, 스승은 박세채(朴世采)이다.

이들 삼사(三使)169482일에 출발하여 1217일에 돌아왔다. 《연행일기초》의 내용은 왕복 전체를 다 기록한 것이 아니라 82일에 한양에서 출발하여 928일에 도착하고 103일까지 머문 기록이다. 그 이후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한양에서 북경까지는 3,600리 정도 된다. 보통 한양에서 의주(義州)까지 1,500, 의주에서 북경까지 2,600리라고 한다. 험준한 산을 건너갈 때면 걸어서 가기도 했겠지만 대부분 가마나 말을 타고 갔다. 한양 도성에서 압록강을 건너갈 때까지 삼사가 똑같이 출발하고 같은 장소에서 숙박한 것은 아니었고, 장소를 함께 정해두고 제각각 출발하여 목적지에서 만났으며, 압록강을 건너가고 나서는 청나라 지역이므로 항상 함께 행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102일 기사에 의하면 압록강을 건너온 후로는 삼사가 매번 함께 모여 식사를 하였으며 돌아가는 길에서도 역시 그렇다.”라고 하였다.

 

기록에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청에 대한 반감
 

압록강을 건너고 나서는 민간인 집에서 숙박한 경우도 많은데 한인(漢人)의 집에서 숙박하면 반드시 ‘(漢人)’이라고 표현을 하였다. 이것을 통해 청인(淸人)을 오랑캐로 얕잡아 보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830일 기사에 통원보(通遠保)에 도착하였다. 교억종(敎憶宗)이란 사람 집에서 숙박하였는데 명문 집안이라고 하였다. 교억종은 한인이며 수레를 빌려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집안 살림살이가 다소 넉넉하였다.”라고 적혀있다. 91일 기사에 고가령(高家嶺)을 넘어 저녁에 연산관(連山關)에 도착하여 한인 형만덕(衡萬德) 집에서 숙박하였다. 맑은 계곡 물 한 구비가 산을 휘감고 마음을 감싸 흘렀다. 여울물 소리가 베개를 흔들어 밤이 되어도 잠들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으며, 918일 기사에는 산해관(山海關)에서 묵다. 한인 왕구령(王九齡)의 집에서 숙박하였다. 이 사람은 부자라서 집이 굉장히 넓고 화려하였다. 채색한 의자와 병풍, 분칠한 하얀 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휘황찬란하였다.”라고 하였다.

기록을 보면 종종 청나라 조정을 노정(虜庭)오랑캐 조정이라고 낮잡아 말하였다. 102일 기사를 보면 삼배구고(三拜九叩)의 예식을 행하고 노정에서 절을 하고 무릎을 꿇으면서 노린내와 먼지를 실컷 먹고 있으니 분한 마음을 말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민족인 만주족이 중국과 그 주변 국가들을 지배했던 당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척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사 오도일과 주고받은 시
 

부사 오도일의 《서파집(西坡集)》 권5에 수록되어 있는 《후연사록(後燕槎錄)》은 당시 연행 길에서 지은 시를 모은 것으로 모두 75수이다. 유득일의 《연행일기초》와 함께 연구하면 당시 연행길의 참모습을 보다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후연사록》에는 정사 박필성과 주고받은 시는 없고, 유득일과 주고받은 시가 다수 전한다.

유득일의 다른 문집은 전해지지 않아 그가 남긴 글은 《연행일기초》뿐이다. 다행히 《후연사록》에 오도일과 유득일이 주고받은 시가 있으니 그들의 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2. 연행일기초2.

연행일기초를 펼쳐보면 종이의 상태도 좋지 않고, 글도 깔끔한 활자가 아닌 초서로 적혀있음을 알 수 있다. 옛사람들이 초고본을 어떻게 작성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學士前身是季札                                                          百年天地漲腥塵                   

그대의 전신은 오吳나라 현자인 계찰인가                      천지에 백 년 동안 비린내와 먼지가 가득하고

觀風此日作行人                                                          千里吾邦苦畏人

풍속을 살피려고 오늘날은 외교 사신이 되었다네                                        천 리길 우리나라가 안타깝게 위축되었다네

來時玉署曾聯席                                                                慘見漢儀成左衽

지난날에 홍문관에서 함께 근무하였고                             중화 문물이 오랑캐로 변하였음을 보니 마음이 안타까워

去路金臺更接茵                                                                 空吟秦國賦文茵

연경에 사신 가면서 다시 자리를 함께하네                        공연히 타향에서 글을 짓는다

頻把酒杯消寂寞                                                                  平生擊劍偏多恨

자주 술잔을 잡고서 적막함을 없애면서                             평생에 칼 두드리며 지나치도록 한이 많았는데

幾將詩句弄精神                                                                  此地停槎倍愴神

몇 차례나 시구를 붙들고 정신을 가다듬네                        이곳에 사신으로 오니 슬픔이 갑절이나 되누나

殊方忽覺重陽近                                                                  莫說亂離當日事

타국에서 갑자기 중양절이 다가옴을 알았지만                  병란이 일어난 그때 일은 말하지 않겠지만

不獨黃花笑逐臣                                                                   可堪中夜泣孤臣

국화가 사신길 다니는 그대를 비웃지는 않으리라             한밤중에 눈물 흘리는 외로운 신하라네

 

         유득일, 「심양 숙소에서 지은 시」                                 오도일, 「심양 숙소에서 서장관의 시에 차운하다




 

앞서 말했듯이 유득일의 문집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위의 시 역시 정확한 제목은 알 수 없다. 여기서는 편의상 심양 숙소에서 지은 시라는 임시 제목을 달아 주었다. 다음으로 살펴볼 시는 오도일이 지은 심양 숙소에서 서장관의 시에 차운하다(瀋陽館次書狀韻)라는 시인데, 위에서 살펴본 유득일이 지은 시에 차운한 것이다.

 

915일 기사에는 복주(福州) 출신의 김당(金漟)이 유람차 심양에 왔다가 우리 사신 일행을 만나 인사를 하였다. 그가 시를 짓고 화답시를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부사 오도일과 더불어 즉석에서 차운시를 지어 주고 또 종이·부채·붓 등을 선물하였다.”라고 하였다. 위의 기사에 의하면 유득일도 차운시를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으나 시는 따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도일이 지은 시는 복주 수재 김당이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福州秀才金漟韻)후연사록에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南紀古稱多俊士

남쪽 지역에는 예로부터 뛰어난 인재들이 많다고 하였는데

見君文質更彬彬

그대를 보니 학문과 바탕이 잘 어울려 빛난다네

新詩別是多情思

그대가 지은 시에 애틋한 감정이 많이 있는 것은

似慰羈遊弱國臣

아마도 사신 행차 온 우리 약소국 신하를 위로하는 것이리라

 

오도일, 복주 수재 김당이 지은 시에 차운하다





 
 
 

그림 3. 국역연행일기초에 실려 있는 연행노정도.

한양한성에서 북경까지 유득일의 연행노정이 그림으로 잘 나타나 있다.

 

유득일의 연행길

 

82일 한양 출발 → 3일 개성 (開城) 4일 금천 (金川) 5일 평산 (平山) 6일 서흥 (瑞興) 7일 황주 (黃州) 8일 중화 (中和) 9일 평양 (平壤) 11일 순안 (順安) 12일 숙천 (肅川) 13일 안주 (安州) 15일 가산(嘉山) 16일 정주 (定州) 17일 선천 (宣川) 18일 용천 (龍川) 19일 의주 (義州) 26일 구련성(九連城) 27일 탕참 (湯站) 28일 봉황성 (鳳凰城) 29일 송참 (松站) 30일 통원보 (通遠堡)

 

91일 연산관 (連山關) 2일 낭자산 (狼子山) 3일 요동 (遼東) 4일 십리보 (十里堡) 5일 심양 (瀋陽) 7일 변성 (邊城) 8일 주류하 (周流河) 9일 백기보 (白旗堡) 10일 소흑산 (小黑山) 12일 신광녕 (新廣寧) 13일 십삼산 (十三山) 14일 고교보 (高橋堡) 15일 영원위 (寧遠衛) 16일 동관역 (東關驛) 18일 산해관 (山海關) 20일 유관 (楡關) 21일 영평부 (永平府) 22일 사하역 (沙河驛) 23일 풍윤현 (豊潤縣) 25일 계주 (薊州) 26일 삼하현 (三河縣) 27일 통주 (通州) 28일 북경 (北京)

 

북경에 도착한 이후에는 103일까지 대불사(大佛寺)에서 머물렀다.












집필자
 

. 임재완 태동고전연구소 연구원

성균관대 한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미술관 리움 선임연구원과 수원 역사박물관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우리나라 고전에 대한 번역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옛 편지 낱말사전공저, 조선시대 문인들의 초서 편지글, 성재집(省齋集), 강재집(剛齋集),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등이 있다.

 

 

 

 

관련콘텐츠

(국역) 연행일기초


중국 내 연행노정고


연행노정, 그 고난과 깨달음의 길

      西坡集

  연행록 연구

상세검색

자료유형
KDC 분류
발행년도 ~

다국어입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