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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사람을 틔운다 ②영화 <은교>
#은교 , #영화 , #시 , #박범신

시는 사람을 틔운다 ②영화 <은교>

 

 


그림 1. 영화 <은교>에서, 시인 이적요와 은교
 


 이번 편에서는 작가 박범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은교>를 통해, 시적 감수성의 유무에 따른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은교>는 노인의 소녀에 대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작중 인물들을 사회적 신분을 배제하고, 시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로 나누어 볼 때, 이적요와 은교는 그 기준에 있어 가까워질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나이와 성별 등을 떠나서도 찾아볼 수 있는 관계의 모델이라고 생각됩니다. 전편에서 소개한 <일 포스티노>의 네루다와 마리오의 관계와 같이 말입니다.
 영화의 첫 시작은 노시인 이적요의 차분하나 메마른 일상을 비춥니다. 전설과 같은 시인으로서 문학계에 명예는 높으나 가족도 없고 일상의 기쁨과 생기도 없는 이적요의 현재를 단편적으로 보여줍니다. 단 한 사람, 그의 곁을 나름 살뜰히 보살펴 주는 이가 있다면 제자인 서지우입니다. 그는 <심장>이라는 소설로 갓 이름과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로서 이적요의 집에 주기적으로 들러 살림을 보살펴 주기도 합니다. 그는 <심장>의 낭독회에서 “사람에 따라 같은 사물이라도 다르게 보이는 법이지” 라는 구절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내면에서 나온 글일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문학적 감수성보다는 야심을 채우고 성공을 거두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시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그리고 그녀, 은교가 그들에게 뛰어듭니다. 시인과 제자가 외출한 사이, 시인의 집 마당에 내어놓은 흔들의자에서 잠든 모습으로 말입니다. 잠시 사지를 거두고 쉬고 있는 백사슴과 같은 은교의 모습에 시인은 쉽게 눈을 떼지 못합니다. 서지우의 부름에 깬 은교는 자신이 여기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런 의자에 앉아 보고 싶었어요. 이 의자 주인이세요?” 이적요를 보며 묻습니다.
 목욕탕에서 일하며 생활을 꾸리는 어머니와 여러 동생들이 있는 가정의 장녀로, 아마도 호젓하거나 문학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환경에서 자랐을 은교는, 두툼한 녹음에 감싸인 단정하고 고요한 집,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오래된 책들, 문학의 감성이 존재함으로써 다듬어진 생활에서 풍겨나는 분위기를 정원의 흔들의자에서까지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 2. 시인의 서재를 정돈하는 은교

 

 

 바빠진 서지우를 대신하여 이적요의 집안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은교의 시선은 여러 번, 이적요를 둘러싼 그 같은 분위기와 나름의 질서를 찾아내며 신기함 또는 동경을 느끼는 듯합니다. 이적요 역시, 첫눈에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은교인 만큼 그녀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마음에 말없이 곰살가운 행동을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교가 서재의 책상을 정리하며 이적요에게 묻습니다.

 

은교: 할아버지, 연필들이 다 뭉툭해요. 은교가 예쁘게 깎아드릴까요?
이적요: 그냥 두어라. 뾰족한 연필은 슬픈 거다.
은교: (피식 웃으며) 연필이 뭐가 슬퍼요?
이적요: 뭐가 슬플까?
은교: (연필을 잠시 만지작거리며 보다가) 할아버지, 저기요... 연필이요. 뾰족해서 슬퍼요?
그럼 뾰족한 연필들은 다 슬픈 거예요? 그런 게... 시예요?

 

이에 대한 대답은, 어둠에 젖은 녹음이 그윽한 정원에서 이적요가 은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적요: 어떤 사물에서, 각자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때로... 이승과 저승만큼 멀거든.
연필을 떠올리면, 학교로 뛰어가는 소년이 보인다. 달각... 달각... 책보에서 필통 부딪히는 소리가 마냥 좋았단다.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됐을 때, 달그락... 달각, 그 소리가,
연필들이 내는 울음소리 같더구나.
그러니까, 연필들은 내게 눈물인 거지.

 이 장면은 시어를 빚어내는 데 개인의 경험이 가지는 의미를 말하면서, 이적요가 은교에게 자신의 체험을 진솔하게 나누며 가까워지는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은교도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인 듯, 이어지는 장면에서 학교 수업 중 필기를 하다가, 문득 필통을 들어 귓가에 가져다 대고 가만히 흔들며 그 소리를 듣습니다. 살아온 세월이며 쌓아온 일들이 제각기 다른 노시인과 고등학생도, 시적인 감성을 잠시나마 공유하며 한 뼘 가까워진 것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밤, 영화의 분위기가 좀 더 달라지며 두 사람의 관계의 느낌도 변화하는 일이 생깁니다. 어머니에게 매 맞은 은교가 비 오는 밤 이적요의 집으로 찾아든 것입니다. 이적요는 비에 젖은 은교의 교복 웃옷을 헤어드라이어로 꼼꼼히 말려 주는 자상한 모습을 보입니다. 은교는 그 모습을 좋은 듯이 바라보다 지난 번의 대화에 화답하듯 말합니다.

은교: 연필을 보면요, 엄마 생각이 나요. 어렸을 때요, 엄마가 제 연필을 깎아 주시다가요,  연필 깎는 칼로 자기 뒷꿈치를 막 긁어내는 거예요. 구부리고 앉아서. 엄마가 때밀이를 한 다음부터는 그럴 일이 없어졌지만요. 지금은 자꾸 진물이 나서, 드라이기로 말려 줘       야 돼요. 뭐가 더 나쁜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연필 깎는 칼이 슬퍼요. 발뒤꿈치가 슬픈 건가요?
이적요: (끄덕이며) 그러면 시가 되는 거지.
은교: ... 슬픈 연필. 슬픈 발뒤꿈치.

 


 
그림 3. 산행 중, 소중한 의미가 담긴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은교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이적요의 집을 찾아온 서지우는, 은교가 밤새 시인의 집에 있었음을 알고 여러 착잡한 생각에 빠져듭니다. 노시인과 은교가 시의 감성을 어렴풋이나마 나눌 수 있다는 것보다도 서지우는 불순한 쪽으로 생각이 기웁니다. 서지우는 이적요를 두고, 그에게 인정받는다는 면에서 은교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은 산행을 나갑니다. 산에서 쉬어가던 중 거울을 보는 은교를 서지우가 툭 건드리고, 은교는 보던 거울을 놓치고 맙니다. 엄마에게 받은 생일 선물이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은교에게 서지우는 같은 모양의 거울로 또 사주겠다며 눙치려 합니다. 그러자 은교가 홱 돌아보며 말합니다.

서지우: 하나 사준다니까. 똑같은 걸로 하나 사주면 되잖아.
은교: 그게 어떻게 똑같아!!!
서지우: 얘가 정말...
은교: (벌떡 일어서서) 선생님한테는 똑같은 거지만, 나한테는 저승과 이승만큼 먼 거예요. 엄마가 처음으로 준 생일 선물이라구. 똑같은 걸 사도 똑같지가 않아!
서지우: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뭐가 똑같지가 않아?!

 두 사람이 이처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이적요가 발을 내딛습니다. 자칫 미끄러져 떨어지면 목숨이 끝날 듯한 벼랑 아래 거울을 향해서 말입니다. 남은 두 사람의 만류, 그리고 서지우의 도움도 말없이 뿌리치고 이적요는 끝내 거울을 주워 올라옵니다. 거울을 내미는 이적요를, 은교는 어떤 말도 이에 따를 수 없다는 듯 벅차게 끌어안습니다. 이 장면에서, 이적요와 그토록 오랫동안 같이하며 배울 기회를 누렸음에도 아직 대상의 독자성이며 고유성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서지우와, 이적요와의 몇 번의 대화만으로도 시적 감수성에 성큼 다다른 은교의 차이점이 느껴집니다.

 

 


그림 4. 불안과 열등감으로 흔들리는 서지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서지우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이적요와 처음 만났을 때의 자신을 떠올립니다. 교단에 섰던 이적요는 자신의 강의를 들으며 아름다운 별을 어떻게 그 아름다움과 동떨어진 대상에 비유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해 온 서지우에게 “별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별은 그냥 별일 뿐이야.” 라며, 보는 주체에 따라 별도 각각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말로 문학적 감수성이 깨지 않은 서지우를 자극하고, 서지우는 자신이 무기공학과 학생인 점을 생각하여 예를 드는 이적요에게 “그 무기가... 총칼 같은 무기가 아니고, 유기물, 무기물 할 때의 무깁니다 선생님” 이라는 말로 이적요에게 대거리를 합니다. 첫 만남부터 그저 서지우가 이적요를 순하게 따르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배우려 하기보다는 은밀한 열등감을 먼저 품었다는 것을 은연중 보여줍니다.

 서지우가 그처럼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의 유무와 불안한 입지로 인해 흔들리고 있을 때, 은교가 자기의 것과 같은 헤나 문신을 이적요의 가슴에 그려 주면서 이적요의 환상은 좀 더 성적이고 정념 어린 것으로 나아갑니다. 헤나가 그려지는 동안 이적요는 무청처럼 젊어진 자신이 티 없는 은교와 사랑을 나누는 환상을 꿈꿉니다.
 물론 이 영화가 나왔을 때의 논란과 같이, 도덕적이며 사회적인 면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장면이며 이적요의 욕망이 불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많은 선례와 같이, 창작자에게 어떠한 종류이든 본능이 살아난다는 것은 창작력이 생겨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적요는 단숨에 은교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환상을 글로 옮깁니다. 그 물 흐르듯 하는 창작의 속도는 이어지는 서지우의 단 한 줄도 쓰기 어려워하는 창작의 모습과 대비됩니다.
 은교가 이적요에게 시의 세계를 안내받았다면, 이적요에게 은교는 시 그 자체가 됩니다. 그러나 이 같은 관계를 서지우는 채 이해하지 못하고, 몇몇 실마리로 그들의 관계를 오해하여  분노합니다. 시인의 서재에 있는, 작품을 보관하는 반닫이에서 이적요가 쓴 단편 <은교>를 발견한 서지우는, 위와 같은 분노가 극에 달하자 <은교>를 꺼내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합니다. 이 일은, 그 때까지 시적이고 또 관념적인 데 무게가 실렸던 노시인과 은교의 관계, 그리고 서지우 자신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 갑니다.

 

‘그 순간, 그 공기, 온도, 습기, 그 따뜻함...’이 갖는 힘

 


그림 5. 자각하지 못하는 새 가까워지는 은교와 서지우

 

 

 앞서 시의 세계와 노시인에게 아련한 동경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시의 감성에 한 발씩 다가가던 은교는, 서지우가 자신을 주제로 하여 <은교>를 썼다는 것을 알고 동요합니다. 시적 표현이 천연의 숲속처럼 풍요롭게 나타나는 <은교>, 그저 문학작품으로 보아도 아름다울 글이 자신을 주제로 하여 써졌다는 것을, 시적 감수성이 열리기 시작한 여고생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자신이 시 그 자체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희열과 같이 벅찬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때껏 이적요의 인정과 관심을 두고 때로 티격태격했던 서지우에게, 정말로 그가 <은교>를 쓴 것인지 반신반의하면서도 끌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같은 은교를 몸으로 먼저 대하며, 서지우는 그 의미를 묻는 은교에게 “외로워서 그런다, 외로워서” 라고 답합니다.
 시를, 문학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은 어떤 대상이 가지는 고유의 무엇, ‘절대성’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절대성은 사람을 상대적인 것들이 범람하는 세상의 외로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대상의 고유성을 기반으로 한 문학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소통하게 하고, 길게 말하지 않아도 단숨에 와 닿는 표현으로 순식간에 읽는 이를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는 외로움을 느껴도 그것을 다른 이에게 온전히 전할 수 없어, 그와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적요는 당연히 분노합니다. 자신이 갓 되찾은 시의 힘으로 써낸 새로운 삶의 정수와도 같은 작품을 통째로 도난당한 분노는 서지우와의 관계를 끊게 합니다. 은교도 전처럼 대하지 못합니다. 시인의 집은 한동안 작품이 시작되기 전과 같은, 아니 전보다 더한 적막과 쓸쓸함에 잠깁니다.

 

 

그림 6. 겨울날, 시인의 집을 다시 찾은 은교

 

 

 그러는 새 눈이 날리는 겨울이 되고, 시인의 생일을 잊지 않은 은교가 찾아옵니다. 자신을 오롯이 찾아와준 은교를 대하며, 이적요는 잃었던 시를 다시 되찾은 듯 뭉클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봅니다. 잠시나마 따뜻하고 소박한 시간을 보내는 이적요와 은교, 거기에 <은교>의 성공으로 거들먹대는 서지우가 끼어듭니다. <은교>는 물론 서지우의 <심장>도 이적요가 쓴 작품이었다는, 이적요와 서지우 사이의 숨은 비밀이며 그들 사이에 팽배한 적대감을 채 알지 못하는 은교는 뜻하지 않게 서지우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서지우는 문학성보다는 세속의  성공이 무조건적이라며 뻐기는 주사로 이적요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 모두를 파국에 이르게 만드는 일이 그 밤 벌어지고 맙니다. 은교는 돌아가지 않고 서지우에게로 향하고, 두 사람이 성적 관계를 갖는 모습을 이적요가 보게 된 것입니다.  순백의 빛을 통해 유미적으로 그려졌던 이적요의 은교에 대한 성적 환상에 비해, 실제로 벌어지는 서지우와 은교의 정사는 아름다움이랄 것이 없는 날것 그 자체입니다. 아마도 작품 내에서 의도적으로 대비하여 그렇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이적요에게 그 광경은 엄청난 타격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뒤늦게 다시 찾은 시적 영감, 그리고 티 없는 아름다움을 상징했던 은교는 이제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일견 앗아간 듯 보이는 서지우에 대한 활화산 같은 분노는 이적요에게 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일을 꾸미게 만듭니다. 노시인이 계획한 대로, 혹은 계획에 어긋나게 일이 흘러가던 그 시간, 시인은 <은교>의 원본 원고를 불에 태웁니다. 그 뒤로 비추이는 시인의 서재 속 책상 위에는 연필들이 모두 심이 부러지거나 뭉툭한 채로 내돌려져 있습니다. 한때 은교와 노시인 사이를 시의 감성으로 이어주었던 그 연필들이 말입니다.

 마지막 부분,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듯한 은교는 노시인을 찾아갑니다. 한때 그 분위기만으로 동경을 샀던 시인의 집은 피폐하기 그지없습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폐인과 같은 모습으로 모로 누운 이적요의 뒤에서, 은교는 시절이 변했음을, 그리고 뒤늦게야 아무리 이야기로 전했다 하더라도 타인이 대신 쓸 수 없는, ‘그때 그 순간, 그 공기, 온도, 습기, 그 따뜻함...’의 절대성을 깨달았음을 말합니다. <은교>는 이적요의 작품이었음을 알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잃고 전과 같을 수 없는 이적요는 은교가 떠나가고 난 뒤에야 나직이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잘 가라, 은교야.”

 

 

그림 7. 뒤늦게 진실을 깨닫고 찾아온 은교

 은교는, 원작 소설에서나 영화 속에서나, 시인의 시각을 거쳐 우리에게 그 특별함이 전달될 뿐 기실 평범한 그 나이 또래의 소녀였는지도 모릅니다. 또래들이 쓰는 속어며 줄임말이 그녀의 일상어이고, 나날의 생활도 남다를 것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런 그녀가 시인의 공간에 들어서고, 시인의 서재를 접하면서 조금 다른 언어를, 그리고 그로 인한 다른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녀 자신이 창작의 기쁨을 잃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Muse,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합니다)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녀를 둘러싼 등장인물들 간의 내밀한 감정들이 상충하여 안타까운 결과를 빚습니다.
 비록 아픈 대가를 치르고 뒤늦게 깨달았지만, 대상의 고유성과 절대성에 대한 감각은 시적 감수성이 잠재되어 있었던 은교에게 뿌리를 내렸을 것입니다. 

 

 

 

 

- 자료 출처 -

*영화
<은교>, 정지우 감독, 박해일, 김고은, 김무열 주연, 2012년

 

 

 

- 이미지 출처 -

그림 1-7. 영화 <은교> 네이버 영화 페이지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8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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