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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도 사람이 있었다-① -책에서 살펴본 광기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전쟁 , #덩케르크 , #군함도

전쟁 속에도 사람이 있었다-

-책에서 살펴본 광기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전쟁에 관한 여러 문장들 중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라는 독일 소설가 에릭 레마르크가 1957년 쓴 <Der schwarze Obelisk(검은 오벨리스크)>에서 나온 문장입니다. 이토록 전쟁은 개개인의 생사에 대해서는 역사의 몫으로 남기며 흘려 보내버립니다.

 

종전된 지 이미 100년이 훌쩍 넘은 1차 세계대전과 72년을 맞은 2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책과 영화를 통해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1, 2편으로 나누어 총알과 포탄이 쏟아지는 비정하고 살벌한 전쟁, 그 광기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영화와 동명 제목으로 주목 받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인류애를 보인 사람들의 이야기,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의 역사서 <덩케르크>와 한수산의 장편소설 <군함도> 그리고 전쟁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빼앗겨버린 이야기인 그래픽 노블 <안네 프랑크의 일기-1942 6 1일부터 1944 8 1일까지의 기록>과 프랑스 국민작가 자크 타르디의 <내 이름은 타르디: 포로수용소>를 소개합니다.  

 

 

 

그림 1.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의 'The Epic of Dunkirk'를 번역한 <덩케르크>.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 영국 본토로 338000명이 철수하다

 

1940 5 26일부터 6 4일까지 프랑스 북부 해안의 덩케르크 지역에서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독일군에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연합군 33 8000명이 영국 본토로 돌아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민간인 선원이 대규모 군사 작전에 투입되어 군인과 함께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해군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을 뛰어넘은 이 기적 같은 작전의 성공으로 영국 국민은 단합할 수 있었고, 철수한 병력으로 군대를 재건하여 독일군에 대한 반격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작전 직후에 출간된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시 영국 해군 지휘관으로 복무했던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이 옥스퍼드 대학 시절부터 인정받은 유려한 문체와 성실한 자료 수집, 그리고 실제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참여한 군 지휘관들을 인터뷰하여 당시의 상황을 사실감 있고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전쟁 배경부터 작전을 수행한 개인의 불안함, 심리까지 묘사하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초반 패색이 짙던 영국에서 씌어졌다고 보기 힘들만큼 독일군의 각종 무기와 전술, 저지대 국가(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 대한 공습 과정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유럽 국가들의 상황, 그리고 연합군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철수하였으며, 이때 사용했던 각종 군함과 민간 선박들에 대해 전문가의 시각으로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에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되었던 긴박하고 참혹한 상황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병력과 자진해서 작전에 뛰어든 민간인의 불안과 공포, 열정과 의지, 희망과 좌절이 뒤섞이는 심리를 그들의 육성과 자료 그대로 담아내 전장의 모습을 세밀하게 재현했습니다.

 

최근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동명의 영화를 제작하여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습니다. 놀란 감독은 영화 개봉 직전 한국 팬들과의 라이브 채팅을 통해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영화로 만들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믿었고, 그 이야기의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본질이 전 세계 어디서든 공명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림 2.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처절하고 긴박했던 순간에서도 인류애를 보여주다

 

<덩케르크>에서는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직접 배를 몰고 바다로 간 사람들, 한번 떠나면 귀환을 장담할 수 없었던 긴박했던 상황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남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긴박했던 2, 그것은 거대한 드라마였고 인간의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그때의 패주는 승리로, 요컨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이 승리로 바뀌었다.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한 것은 군민이 하나가 되어 나섰던 영국의 극한 노력이었다. (2장 덩케르크를 향하여, 53p)

 

1940 5 22, 연합군에게는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운명을 가름하는 날이었습니다. 북쪽의 연합군을 포위하고 괴멸시키고자 했던 독일군은 칼레와 불로뉴, 덩케르크로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항공기가 헤이그의 병영을 기습 폭격함으로써 현대 유럽 문명사에서 가장 거대하고도 긴박한 드라마의 막이 올랐다. 불과 두 시간 전에 800명의 네덜란드 병사들이 야간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 대부분은 잠자는 동안 독일의 폭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1장 모든 것의 시작, 25p)

 

하지만 5 24 2차 세계대전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불리는 히틀러의 진격 중지 명령이 떨어집니다. 영국군을 쫓아 해안으로 돌진하던 독일군은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덩케르크 전방 16km 지점에서 갑자기 멈췄습니다. 당시 불로뉴는 이미 함락되었고, 칼레는 독일군의 수중에 들어갔었습니다. 남은 연합군 병력은 유일하게 연합군이 점령 중인 덩케르크로 퇴각하고 있었죠. 독일군의 진격추세라면 연합군은 덩케르크에서 몰살당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전멸을 위협하는 독일군에 밀려 후퇴한 영국 원정군에게는 바다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한편 덩케르크의 남쪽과 북쪽에 퇴각로를 만들면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때 히틀러의 진격 중지 명령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림 3.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주역인 윈스턴 처칠 수상과 버트럼 램지 제독이 지도를 보고 있다.

 

 

이 덕분에 포위망에 갇힌 40만여 명의 연합군은 연합군의 주력을 해안으로 탈출시킬 수 있었습니다. 1940 5 26일 버트럼 램지 사령관의 지휘하에 33 5000명 이상의 철군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곤경에 처해있는 영국 병사들을 선박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신의 배를 징발해달라는 민간인의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또 증기선의 선주와 승무원들은 예외 없이 자발적으로 징발에 응했습니다. 

 

한 선주가 해군성에 전화를 걸어왔다. "해군에서 내 요트를 징발했다고 들었소만."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만..." ", 괜찮소. 어쩌다 보니 요트에 30파운드어치의 오래된 브랜디와 샴페인이 실리게 됐는데, 부디 병사들이 그걸 발견해줬으면 좋겠구려." (4장 분주해진 선박들, 86p)

 

덩케르크는 불타고 있었고 항만 주변 수역은 요동쳤습니다. 비좁은 부두에서 25만 명이, 그리고 인근 해변에서 10만여 명이 승선할 거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독일군의 강력한 폭격에도 무수한 외륜선, 예인선, 그리고 소형 선박들이 부두로부터 군대를 실어왔고, 그보다 더 가벼운 배들은 거센 물살을 가르고 모래언덕에 있는 많은 병사들을 2.5km 떨어진 선박들로 쉬지 않고 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해변에 접근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 모래언덕 사이에 숨어 있는 병사들을 찾아서 데려오기 위해 장화와 양말을 벗고 배 밖으로 나갔던 선원들은 분명 불편했을 것이다. 병사들을 가득 실어 기울어진 선박으로 회항하는 여정은 더욱 고되었다. 게다가 병사들은 하선시키고 모든 과정을 다시 되풀이해야 했으니 말이다. (22장 성공의 비밀, 370p)

 

 

 

그림 4. 덩케르크 해변에서 대기 중인 선박으로 이동하는 병사들의 모습.

 

 

이 책에는 일반 어선, 요트까지 나서 병사들을 구출한 '작은 배'들은 인간애를 느끼게 하는 숭고함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철도 종사자, 공장 노동자, 간호사들 등 자진해서 배를 끌고 철수 작전을 도운 일반인들의 생생한 증언과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1940 6 4, 해안에 남아 있는 선박은 거의 없었습니다. 세계 전쟁사 최대 규모의 철수(혹은 구출) 작전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지치고 고된 몸으로 영국에 돌아간 병사들, 그들을 실은 열차가 역에 설 때마다 지역민들은 병사들에게 줄 음식을 가져오곤 했습니다.

 

 

 

그림 5. 덩케르크에서 구조된 후 기뻐하는 영국 병사들의 모습.

 

 

그림 6. <군함도> 1, 2.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작가 한수산

 

<군함도>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동안 1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의 망상에 휩싸인 일본의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이 군함도에서 핍박받았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세계대전은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광기의 시대를 관통해가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쳤던 우리는 1945년 일제의 항복으로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제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받았던 우리 민족은 사람으로서의 오롯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림 7. <군함도> 작가 한수산.

 

 

한수산은 1988년 한 일본의 서점에서 반전운동가 오카 마사하루 목사가 쓴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접했습니다. 한 인터뷰를 통해 "이 책과 만났던 것을 운명"이라고 언급하면서 이 책을 통해 하시마 탄광(군함도)의 조선인 강제 징용과 나가사키 피폭에 대해 쓰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작가는 이후 소설의 무대가 되는 군함도와 나가사키에만 십여 차례 방문하고 일본 전역을 비롯해 원폭 실험 장소인 미국 캘리포니아 네바다주까지 다녀왔으며,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치밀한 현장 취재를 거쳤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2003년 대하소설 <까마귀>(해냄)를 펴냈고, 작품을 보완할 필요성을 느낀 작가는 2009년 일본어판 <군함도>(작품사)를 출간할 무렵 한일 동시 출간으로 기획했던 전폭적인 수정 작업을 2016년 초 마침내 완료했습니다.

 

최근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군함도. 예능프로그램에서는 군함도의 실물이 방영되어 그 역사적 진실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영화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서라도 조선인들을 탈출시키고 싶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림 8. 영화 '군함도' 포스터.

 

 

한수산은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알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 고난을 겪은 조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숨결을 되살리는 데에도 큰 공력을 들이며 군함도에서 다만 '사람'이고 싶었던 징용공들의 일상과 인간적인 면모, 역경 속에서도 그들이 꿈꾼 안타까운 사랑과 희망을 가슴 아프면서도 핍진하게 복원했습니다.

 


 

그림 9. 이재갑 개인전에 전시된 '군함도'의 모습.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8 14일부터 11 30일까지 열린다.

 

  

지옥의 섬 군함도에는 사람이 있었다

 

 

<군함도>에서는 군함도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등장합니다. 이곳은 하루 15시간의 노동, 쉴 틈을 주지 않는 채탄 할당량,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사고는 끝이 없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너지는 갱목의 낙반사고로, 감시와 매질을 못 견딘 발작으로 죽고 다치는 동료들을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조선인 광부들은 말도 안 되는 이 벌레 같은 삶 속에서도 동료의 득남을 축하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등 일상을 영위해 갑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의기투합한 몇몇 사람들은 탈출을 결심하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건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무릎 꿇고 살아서는 안돼. 그렇게 해서는 살 수도 없고, 그러니 싸워야 해. 싸워도 함께 싸워야 해. (1, 192p)

 

<군함도>는 군함도를 탈출한 조선인들의 삶도 추적합니다. 등장인물 중 뒤늦게 군함도를 탈출한 우석과 일주는 나가사키로 찾아 들어 우석의 먼 친척 육손이가 맡아 운영하는 터널 공사장에서 기숙하게 됩니다.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조선인 일꾼들을 피해 조선인 차별의 참상과 함께 일본 피차별민들과 연대한 후루카와 탄광의 조선인 광부 파업사건을 들은 우석은 어떤 희망을 발견하며 더욱 투쟁의지를 굳힙니다.

 

그것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사람, 단체와 단체가 하나로 뭉치는 연대였다. 힘을 모으는 것. 나뭇가지도 하나씩은 부러지지만 묶여서 한아름이 되면 불에 탈지언정 부러지지는 않는다. (…) 나에게는 꿈꾸는 내일이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을 깨우쳐야 한다.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나아가야 한다. (2, 339~340p)

 

자신의 안위도 중요했지만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  

 

1945 8 9 11 2,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땅 위의 건물과 사람이 남김없이 파괴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폭심지 2km 상공의 새들이 죽어서 떨어지고 물속의 물고기들도 죽어 떠올랐습니다. 여기저기 불타고 부러진 사람들의 상처는 8월의 폭염 아래서 금세 곪아서 냄새를 풍겼습니다. 엄청난 수의 파리떼가 상처에 들러붙었지만 쫓을 힘도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 속에서도 조선인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시체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던 것도 조선인들이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다친 사람들을 들것에 싣고 병원으로 가다가도아이고!’ ‘어머니!’ ‘물 좀 주세요, !’ 하는 조선말 신음소리를 들으면 그들을 거리에 내버렸다. (2, 460p)

 

하지만 등장인물 지상은 조선소의 동료들을 모아 구호대를 조직합니다. 그토록 차별과 멸시를 받았으면서도 참화 속에서 그들은 오로지 사람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시체를 모으고 수습해 화장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습니다.

 

삼태기같이 생긴 것에 담아 나르던 시체들도 이제는 양동이나 커다란 통 같은 것으로 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체에서 살이 떨어져 나오고 피부가 훌러덩 벗겨지곤 했기 때문이다. (2, 461p)

 

한수산은 2016년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쟁점을 제기하며 독자들에게 과거사를 넘어 우리의 미래를 질문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국인 피폭자들이 살아야 했던 비참한 실상과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대두하고 있는 피폭 2, 3세의 문제까지" 수많은 문제들을 제기하며 독자들에게 간곡한 바람을 전했습니다.

 

"젊은 독자들이 이 '과거의 진실'에 눈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뎌주신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각성과 성찰을 시작하신다면, 이 작품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역사의 비극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화수분처럼 깃들어 있는 건, 아마도 비극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자는 인류의 다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2편에서도 계속해서 2차 세계대전을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1편에서 영화와 책으로 함께 소개된 이야기였다면, 2편에서는 그림으로 소개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자료 출처 -

*기사
창작과비평 <군함도> 소개자료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843836

뉴스엔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708081735010210

교유서가 <덩케르크> 소개자료

 

 

 

- 이미지 출처 -

그림 1, 3, 4, 5. 교유서가
그림 6, 7. 창작과 비평
그림 9.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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