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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통해 만나는 세계문화, 《창을 순례하다》
#창문 , #창을순례하다 , #책 ,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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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통해 만나는 세계문화, 《창을 순례하다》

 

 

그림 1. 다양한 모양의 창들(포르투갈 사진작가 Andre Vicente 작품)

 

 

 누군가에게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서로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된 집이, 또 누군가에게는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 널찍한 집이 이상적인 모습의 집일 수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벽지의 색깔이나 공간의 배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창’이다. 집이란 모름지기 환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인 터라,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온 사방에 창문이 큼지막하게 달려 있다.

 물론, 필자뿐만이 아니라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집에 창문은 몇 개인지, 또 방향은 어느 쪽으로 나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고시원 같은 경우에는 창문 하나에 몇 만원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이니, 집이라는 공간에서 ‘창’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면서 창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들은 (감히 추측컨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많은 풍경들을 마주하지만, ‘창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 속에 숨어 있는 그 나라, 그 지역의 문화를 읽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는 창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기능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렇기에 그 동안은 무심히 지나쳐왔다. 그러나 오늘 만나볼 책, 《창을 순례하다》는 말한다. 창을 통해서도 우리는 세계 각 나라의 풍토, 관습, 문화성을 알 수 있다고,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창’을 무심히 지나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세계 28개국을 함께 돌아다니며 ‘창’을 통해 각 나라의 문화들을 들여다 본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이 책은 3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기에 처음 마주하면 그 묵직함에 놀랄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매 장마다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 짧은 설명들이 덧붙어 있는 형태여서 금세 뚝딱 읽을 수 있다. 그러니 책의 두께에 당황하여 조급히 책을 덮지 마시라!

 

 

그림 2. 《창을 순례하다-건축을 넘어 문화와 도시를 잇는 창문이야기》 책표지

 이 책은 도쿄공업대학교의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에서 공동으로 함께 엮어낸 책이다. 책을 처음 펼치면 책의 도입부분에서 저자들은 이야기 한다. 창을 단지 집을 이루는 하나의 구조 혹은 제품으로만 바라보지 말라고 말이다. 창을 하나의 행동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면 그 안에서 창의 풍요로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창을 단순히 어떤 구조물로 바라보기 보다는 창을 통해 드나드는 빛이나 바람, 열기들, 혹은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의 사물들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 놓여진 ‘창’을 보려고 하면 그 안에서 숨겨져 있던 창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직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의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세계의 여러 창들을, 그리고 그 안에 숨어있는 또 다른 가치들을 찾아보도록 하자.

1. 빛과 바람과 함께하는 창

 

그림 3. 터키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Blue Mosque)의 창

 


 창문이 없는 방은 빛이 새어 들어올 틈이 없어 컴컴하고 어둡다. 때문에 ‘창을 낸다’는 행위는 어둠의 무게를 빛을 통해 가볍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창의 크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재료에 따라, 그리고 배치되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서 내부로 흘러들어오게 되는 빛의 양이 달라진다. 빛은 창을 통해 들어와 ‘좁게’ 모이기도 하고, ‘넓게’ 퍼져나가기도 한다. 

 위의 사진은 터키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Blue Mosque)의 큰 창이다. 사진에서는 창이 모두 열려있어 마치 오페라 극장의 발코니처럼 보이지만, 안쪽에 달린 창을 닫고 나면 연속되어 있는 창들 모두가 빛을 가득 품은 ‘빛의 방’이 된다. 어둠 속에 여러 개의 ‘빛의 샘’이 생기는 셈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이렇게 빛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집안을 가득 채워주게 만드는 창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안 전체가 하나의 빛을 품은 공간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밝은 공간은 사람에게도 그 밝은 기운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모든 창이 이처럼 집안을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빛을 한 덩어리로 모이게 하는 창들이 있다면, 반대로 빛을 수많은 입자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빛이 흩어지는 창’도 있다. 빛을 흩어지게 만드는 창의 경우에는 ‘빛이 모이는 창’보다는 조금 덜 밝되 대신 빛의 움직임들이 조금 더 세밀해진다. 그렇다면 이번엔 지중해 연안의 튀니지로 넘어가보자.

 

 

그림 4. '튀니지언 블루(Tunisian Blue)' 색의 내닫이창

 위 사진은 튀니지의 시디부사이드에 있는 19세기에 지어진 별장 안나비의 집(Dar el Annabi)이다. 외출이 금지되었던 이슬람 여성들이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창이다. 그래서인지 창이 활짝 열리는 것이 아니라 아래쪽만 비스듬히 열린다. 또 창문 위쪽은 격자무늬로 되어 있어 빛이 흩어지면서 안쪽으로 들어오게 된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창문의 위쪽 부분에는 빛이 은은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두껍지 않은 소재로 색깔 창을 달아놓았다.
 
 앞서 다녀 온 터키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나무격자가 세워진 창들이 달린 전통주택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또한 같은 이유로 여성들에 대한 문화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빛이 흩어지는 창’의 유형이 이러한 여성들에 대한 과거의 억압적인 문화로 인해 생긴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방범(防犯)을 이유로 개폐하지 못하는 창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혹은 이름 그대로 빛을 흩어서 은은하게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을 설계하는 경우도 있다. 빛이 직사광선의 형태로 실내로 곧바로 들어오게 되면 내부가 환해질 수는 있지만 지나치게 많은 양의 햇빛이 쏟아지게 되면 눈이 부셔 일상생활에 불편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서관 같은 경우에는 위쪽에는 색이 들어간 얇은 재질로 된 창을 설치해 은은한 빛을 연출하고, 아래쪽에 개폐가 가능한 창을 작게 만들어 놓은 경우도 있다.

 창은 그 나라의 문화와도 관계가 있지만,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용되는 공간이냐에 따라서도 그 모습을 달리한다.

 그렇다면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창은 어떨까?

 

 
그림 5. 롱샹 예배당의 창

 

 위 사진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롱샹 예배당의 모습이다. 두꺼운 벽에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깊이 있는 창들이 달려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 덕분에 한 쪽 벽면 전체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일만큼 아름답다. 이처럼 빛을 조각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표현되는 창들도 있다. 이런 창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그림 6. 신비한 느낌이 드는 깊은 창

2. 사람들과 함께하는 창

 두 번째 챕터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창>에서는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창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중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창의 모습은 바로 ‘일하는 창’인데, 이는 어느 나라에 가든 마주칠 수 있는 ‘세계 공통 언어’와 같은 창이다.

 예컨대 상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상품들을 진열하고 있는 창이나 혹은 음식점의 주방을 밖으로 보여주는 창들이 ‘일하는 창’에 속한다.

 

 


그림 7. 이탈리아 피렌체 보석상점의 '일하는 창'
 


 또 어떤 창들은 사람에게 여유를 안겨준다. ‘앉는 창’은 창 바로 옆에 앉아 쉴 수 있는 창을 말한다. 창가에 앉은 사람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오가는 사람들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내부에 있으면서도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가 되어줌으로써 분리되어 있지만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창은 사람이 깨어있을 때뿐만 아니라 잠이 들었을 때에도 함께 할 수 있다. 사람이 누울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공간이 있는 창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그 창을 ‘잠자는 창’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 안에서 낮에는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잠이 들고, 밤에는 별빛을 받으며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림 8. '앉는 창'이자 '잠자는 창'
 


 위 사진은 ‘앉는 창’이자 ‘잠자는 창’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느낌의 아늑하고도 넓은 창이다. 아마도 이런 창이 집에 있다면 우리는 종일 이 곁에서 식사를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다가 잠이 들지 않을까?

3. 이색적인 창
 
 책의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사실 ‘이색적인 창’이 아니라 ‘교향시’다. ‘창문 이야기를 하다가 웬 교향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제목을 바꾸어 소제목을 달아보았다. 저자는 창들이 정해진 차례대로 배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완벽한 교향곡의 음표가 떠올랐는지 마지막 챕터 제목을 ‘교향시’라고 붙여두었다.

 마지막 장은 크게 ‘이어지는 창’, ‘중첩하는 창’, ‘창 속의 창’이라는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어지는 창’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같은 모양의 창들이 연이어 붙여져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창을 말한다. 이번에는 우리의 대표적인 이웃나라 일본으로 건너가 보자.

 

그림 9. 일본에 있는 사찰 즈이류지의 '이어지는 창'

 위 사진은 일본 도야마 현 다카오카에 있는 사찰 즈이류지의 모습이다. 널문과 장지문이 겹쳐진 창이 45회나 반복되어 이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전체적으로 질서정연한 모습의 외관을 지니게 되었다. 사찰 내에서 사람이 지켜야 하는 규율이 있는 것처럼, 창들 또한 지켜야 하는 규율이 있는 것마냥 규칙적인 모습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들은 사찰의 분위기를 한층 더 차분하고 정돈되게 보이게 한다.

 


그림 10. 인도의 하와마할 궁전 계단참

 인도 자이푸르의 하와마할(Hawa Mahal) 궁전의 창은 독특하다. 창 속에 다시 작은 창이 있다. 개폐할 수 있는 창은 작은 창이다. 인도 또한 여성은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종교적 규율 때문에 내닫이창 ‘자로카(Jharoka)’는 아주 작게 만들어 놓았다. 이 창으로 퍼다(Purdah, 이슬람 여인들의 얼굴가리개)를 한 여인들이 궁전 밖의 모습을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지켜볼 수 있다. 따라서 그 크기는 사람 얼굴 하나면 꽉 찰만큼 아주 작다.

 일반적으로 ‘창’이라고 하면 개폐 가능한 문이 달린 창만을 생각하겠지만, 작은 창 주위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 또한 일종의 창이다. 작은 창이 ‘눈의 창’이라고 한다면,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창은 바람만이 드나들 수 있는 ‘바람의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격자형 창이 벌집처럼 많아 하와마할은 ‘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린다.

 ‘창’이라고 하면 으레 ‘유리로 막아진 벽의 구멍’을 떠올리기가 쉬운데, 《창을 순례하다》 책을 통해 여러 나라의 다양한 모양의 창을 접하면서 유리가 없는 창, 돌로 된 창, 식물로 경계 지어진 창 등을 보며 창의 모습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생활모습만큼이나 여러 가지임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하와마할의 ‘바람의 창’을 단지 벽에 뚫려 있는 구멍이라고만 여겼을 뿐 ‘창’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림 11. 바깥에서 바라 본 인도 하와마할의 창

 지금까지 책 《창을 순례하다》를 통해 여러 나라의 다양한 모양의 창들을 살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통유리로 된 커다란 창을 좋아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빛을 은은하게 통과시키는 창들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또 각 나라마다 각기 다른 재질과 모양으로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는 창들을 보면서 이제는 여행을 다니면서 건물들의 창들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을 들여 보기로 마음먹었다.

 창은 내부이자 외부이며, 경계이자 통로인, 아주 독특한 존재다. 단순히 집의 채광과 환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삶을 연결하는 하나의 다리로서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창을 순례하다》 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느꼈다. ‘나는 누구인가’는 주변 존재들과의 관계 안에서 결정지어지듯, 창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탄생하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창은 내부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의 분위기, 더 나아가서는 거리와 도시의 느낌을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살펴 본 하와마할 또한 창의 모양과 배열이 달라졌다면 건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창은 그 지역의 기후와 풍토,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과 관습, 사회적 규율을 말해주는 하나의 언어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관계 속에서 창을 다시 읽다 보니 그저 익숙하기만 했던 창이 낯설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언제나 낯섦 속에는 ‘새로움’이 도사리고 있는 법. 그 새로움 속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새로움이 필요한 당신에게 《창을 순례하다》를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 자료 출처 -


*서적

<창을 순례하다>,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 푸른숲, 2015.

 

 

 

 

- 이미지 출처 -

그림1. 다양한 모양의 창들(포르투갈 사진작가 Andre Vicente 작품)
http://andrevicentegoncalves.com/blog/2015/06/03/windows-of-the-world/
그림2. 《창을 순례하다-건축을 넘어 문화와 도시를 잇는 창문이야기》 책표지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168706
그림3. 터키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Blue Mosque)의 창
http://different-doors.com/blue-mosque/
그림4. '튀니지언블루(Tunisian Blue)' 내닫이창
http://www.voyagevirtuel.info/tunisie/pages/sidi-bou-said-moucharabieh-traditionnel-89.php
그림5. 롱샹 예배당의 창
http://www.lankaart.org/article-le-corbusier-chapelle-notre-dame-du-haut-de-ronchamp-115717674.html
 그림6. 신비한 느낌이 드는 깊은 창
http://sigalonenvironment.soup.io/tag/Le%20Corbusier
그림7. 이탈리아 피렌체 보석상점의 '일하는 창'
https://pixabay.com/ko/%ED%94%BC%EB%A0%8C%EC%B2%B4-%EB%B3%B4%EC%84%9D-%EB%B3%B4%EC%84%9D%EC%9D%B4-%EA%B2%8C-%EC%9D%B4%ED%83%88%EB%A6%AC%EC%95%84-%ED%8F%B0-%ED%85%8C-%EB%B2%A0-%ED%82%A4-%EC%98%A4-228901/
그림8. '앉는 창'이자 '잠자는 창'
http://www.architectureartdesigns.com/42-amazing-comfy-built-in-window-seats/
그림9. 일본에 있는 사찰 즈이류지의 '이어지는 창'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Zuiryuji_Temple_2010-08-29_07.jpg
그림10. 인도의 하와마할 궁전 계단참
http://www.pickpackgo.in/2015/04/rajasthan-part-4-hawa-mahal-jantar.html
그림11. 바깥에서 바라 본 인도 하와마할의 창
http://guia.rehoteles.com/5-cosas-que-hacer-en-jai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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