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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봉제문화거리와 돌산마을, 재봉틀 소리에 맞춰 시간의 계단을 오르다
#봉제 , #전태일 , #노동 , #창신동 , #돌산마을


<창신동 봉제문화거리와 돌산마을>

재봉틀 소리에 맞춰 시간의 계단을 오르다.

 

 

동대문과 혜화 사이에 위치한 종로구 창신동. 의류 도매상과 소매상이 즐비한 동대문에 인접해 자연스럽게 봉제공장이 들어선 이곳엔,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일감이 빠져나가고 대형 공장 중심의 생산체제로 바뀐 지금도 900여 곳의 작은 공장들이 남아있다. 덕분에 옷을 만드는 재봉틀 소리와 원단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골목 곳곳을 걷다 보면, 낡게만 보이던 첫인상은 사라지고 정겹고 활기찬 느낌이 든다.

 

 

 

  그림 1. 새 원단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

 

2014년 도시 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된 후, 문화단체와 사회적 기업들이 들어서며 오래된 골목에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이곳, 창신동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자.

 

1. 창신동 봉제문화거리


 

 

그림 2. 봉제거리 박물관 안내판

 

 

지하철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낙산방향으로 걷다가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오토바이가 늘어선 창신시장 골목을 만나게 된다. 그 골목으로 5분쯤 걸어가면 찾을 수 있는 봉제거리 박물관표지판. 보통 박물관이라고 하면 깨끗한 건물 안 각종 물건이 보관된 유리관을 떠올리지만, 오래된 봉제공장들이 있는 647번지 거리자체가 박물관으로 지정된 것이다.


 

그림 3. 앞에 원단과 오토바이가 서있는 봉제공장의 모습

 

 

삶의 터전 자체가 박물관이 된 이곳 창신동에선 647번지 뿐만 아니라, 산자락 밑에도, 가정집으로 보이는 건물 곳곳에서도 작은 봉제공장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림 4. 계단 끝에 붙은 봉제공장 간판 그림(), 원단 주문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오토바이()

 

 

재봉틀 소리로 이른 아침을 여는 이곳 창신동 봉제공장들에서 만들어내는 옷은 하루 평균 326000. 실로 따지면 2500미터짜리 실타래 8000개가 넘으며, 이를 한 줄로 늘어뜨리면 2174㎞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 19회를 오가는 것만큼의 길이라고 한다.  

 

 

그림 5. 어느 작은 봉제공장 벽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실타래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봉제공장들이 창신동에 들어선 것은 대체 언제부터일까?

 

197011,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한 청년이 분신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우리에겐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잘 알려진 재단사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환경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것이다.

 

햇빛도 들지 않는 좁은 다락방에서 하루 14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전태일. 자신도 가난에 시달리면서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는, 함께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폐렴에 걸려 해고되자 이를 도우려다 함께 해고되는 일까지 겪는다. 당시 공장들엔 환기장치가 없어서 폐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게다가 시다(보조원)’라고 불리던 어린 소녀들은 초과근무수당도 받지 못한 채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까지 공부하며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가난한 시절, 저임금에도 노동자는 넘쳐나던 당시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결국 그는 자신을 희생하여 고통 속의 다른 노동자들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그림 6. 영화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스틸컷

 

  

환갑을 넘긴 어느 봉제사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 봉제를 배울 당시엔 환경이 아주 열악했어요. 일요일은커녕 명절에도 쉬는 날이 없었죠. 잠 안 오는 약을 먹이고 사장들이 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밤새도록 재봉틀을 돌리다가 잠깐 졸아 다치는 일이 허다했지요.”

 

전태일의 분신으로 각계각층에서 각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평화시장은 이전과 같은 극단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1970년대 말 평화시장 일대 봉제공장은 땅값과 임대료가 싼 인근 창신동으로 터전을 옮기게 된 것이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이곳 봉제공장들엔 새로이 봉제 일을 배우려는 청년들도 없고, 구인지를 붙여도 일손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으는 창신동 봉제인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봉제 일을 시작해서 이제 30년이 됐다는 김선숙 봉제사는 이 일이 진심으로 행복하다며, 사람들에게 봉제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봉제인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그녀의 표정엔 자부심이 우러나온다.

 

  

그림 7. 오랜 시간 담벼락에 붙어 있어 모서리가 떨어져나간 구인지

 


하지만 2007뉴타운바람이 불며 창신동 봉제거리의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낡은 가옥, CCTV조차 없는 어두운 골목은 더 이상 사람들이 살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주민들 80퍼센트의 반대에 부딪혔고, ‘재개발이 아닌 재생으로 변경된다. 낡은 것을 전부 없애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창신동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도로 곳곳을 넓히거나 보수하고, CCTV 등을 확충해 안전을 확보하며, 주차장이나 공원 같은 주민 편의시설을 만들어 주거 환경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림 8. 보수 중인 도로의 모습 (), 문화단체의 참여로 색다른 활기를 더해가는 창신동 ()

 

지금도 골목 곳곳에서 진행 중인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 올해 말이면 국비 200억이 투입된 마중물사업(도시재생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대부분 완료된다고 한다.  

 

 

그림  9. 2017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봉제박물관 조감도

 

  

도시 재생사업으로 창신동은 울퉁불퉁하던 콘크리트가 아스팔트로 바뀌고, 거리 곳곳엔 CCTV가 설치됐으며, 백남준 카페 운영 등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최근 드라마 도깨비’, ‘시크릿 가든’, ‘미생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주말이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종종 이곳을 찾고 있다는 점 또한 고무적이다.  

 

서울시는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봉제박물관, 낙산성곽 동길로 이어지는 봉제거리를 조성하고, 많은 방문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보도·간판·전선·건물 벽면 등을 정리하고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랜드마크를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단순히 건물과 거리를 정비하는 것을 넘어, 봉제산업 활성화를 위해 봉제전문인력을 2020년까지 1780명 신규 양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청이 추진하고 있는 봉제분야 소공인 특화지원센터를 유치하고 봉제협회, 협동조합 등과 연계한 직업현장교육을 실시해 경력단절여성,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등 취업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는 설명이다.  

 

2. 일제시대 채석장의 흔적을 간직한 돌산마을(절벽마을)

 

 

그림 10. 창신동 언덕과 계단

 

 

창신동의 언덕과 계단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절벽 위에 지어진 낡은 집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때는 커다란 돌산(화강암)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해 석재를 채취해가면서 보기에도 아찔한 절벽이 남게 된 것이다.

 

그림 11.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돌산 절벽의 모습. 

직경 100m, 높이 40m의 거대한 절개지는 마치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깊은 산이었다는 이곳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단종과 이별하고 64년간 홀로 지낸 곳이기도 하단다. 이후 사람이 별로 없어 채석장으로나 쓰였는데, 1950~1960년대에 먹고 살기 위해 상경한 이주민과 피란민이 몰려들어 판자촌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특히 가까운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종업원들이 이곳에 주로 숙소를 잡았다고 한다. 우리에겐 다소 아찔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미래를 꿈꾸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최선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그림 12. 암석 위에 지어져 아슬아슬한 풍경을 자아내는 집들

 

  

도시 재생 결정과 함께 젊은 예술가들의 손길이 더해진 창신동의 모습은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다.

 

 

그림 13. 예쁜 그려진 도서관 안내 벽화

 

그림 14. 창신동 꼭대기에 위치한 달카페의 화장실 입구

 

 

그림 15. 드라마 시크릿 가든길라임 집으로, 드라마 도깨비유인나 집으로 등장한 곳 

깨진 창문에 테이프가 붙어있던 길라임의 집은 새로운 주인이 인수하며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보수되었다.

 

  

낡은 계단을 끊임 없이 오르며, 곳곳에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집들을 보고 있자니, 아버지의 낡은 사진 앨범 한 권이 생각났다. 태초엔 무슨 색이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속까지 누렇게 빛 바랜 앨범이다. 스프링에 녹까지 슬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찌그르르 괴상한 소리까지 토해내는 앨범을 볼 때면, 아버지께서는 꼭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도 그땐 이게 최고 고급 앨범이었어.”

 

확인할 길은 없지만 누구도 아버지에게 새 앨범으로 바꾸라고 하지 않는다. 세월의 때가 묻은 그 앨범이 비록 지금 고급이 아닐지라도, 오래된 흑백사진에 담긴 추억을 보관하기엔 여전히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림 16. 아버지의 낡은 앨범

 

 

창신동의 집들도 그렇다.

 

가파른 계단을 쉬엄쉬엄 오르시는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그곳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한 최선이자 최고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여전히 추억 위에 발 뻗을 수 있는 그 공간이 최고의 보금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이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도시 재생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으며, 집값이 다른 곳보다 저렴함에도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동네가 살기 불편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후의 정도가 심한 창신동 23번지 일대는 다시 재개발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옷을 만드는 것도 패턴-재단-재봉-마무리-완성(시야게)’ 라는 5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어느 일방의 강압적인 주장으로는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아는 창신동 주민들. 그들은 서로의 입장차이를 줄여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좋은 의견을 나누며,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 17. ‘우린 모두 연결되어있어라는 글귀가 적힌 소통 공작소의 모습

 

 

오늘도 재봉틀이 열심히 돌아가는, 짐을 실은 오토바이들이 경사지고 좁은 골목길을 노련하게 누비는, ‘낡음보다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다가오는 창신동. 봉제 박물관이 문을 열 예정이라는 9월에, 지나간 시간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이곳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한다.

 

 

- 자료 출처 -
*기사
“[패션르포]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소리, 봉제 산업의 메카, 창신동”, 조선비즈, 2017.03.06.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2/2017030200752.html
 “봉제의 품격이 느껴지는 창신동”, 뉴스1, 2017.07.7.
http://news1.kr/articles/?3042233
“창신동, 봉제 문화 공간으로 변신하다”, 뉴스1, 2017.07.17.
http://news1.kr/articles/?3050305
“봉제 골목 ‘창신숭인’의 도시재생 4년”, 머니투데이, 2017.08.12.
http://news.mt.co.kr/mtview.php?no=2017080715461332706&outlink=1&ref=http%3A%2F%2Fsearch.naver.com
“전국 438곳, 죽어가던 도심 살리기 시작됐다”, 조선비즈, 2017.05.18.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8/2017051800004.html
“서울시, 부활하라 봉제산업. 박물관 특화거리 조성, 산업활성화 견인키로”,국민일보, 2015.10.16.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282530&code=11131100&cp=nv
“도깨비 유인나의 집은 시크릿가든 길라임의 집이었다”, 문화뉴스, 2017.01.11.
http://www.munh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839


*사이트, 블로그
[네이버 캐스트] 창신동 돌산 밑을 발견하다 – 채석장 절벽아래 자리잡은 동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8959&cid=58927&categoryId=58927
[네이버 지식백과] 전태일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56959&cid=40942&categoryId=33385

 

 

 

- 이미지 출처 -

그림 6. 네이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7577&imageNid=5742828#tab
그림 9. “서울시, 부활하라 봉제산업. 박물관 특화거리 조성, 산업활성화 견인키로”,국민일보, 2015.10.16.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282530&code=11131100&cp=nv
그 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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