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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 그가 사랑한 모든 것과 그의 사랑이 홀로 남아 숨 쉬는 곳 - 이중섭의 편지를 읽고 제주도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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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 그가 사랑한 모든 것과
그의 사랑이 홀로 남아 숨 쉬는 곳
- 이중섭의 편지를 읽고 제주도를 거닐다

 

 

당신은 화가 이중섭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한민족의 정신을 닮은 듯한, 우직한 소를 사랑한 화가로만 알고 있지는 않은가? 기억을 더듬어 학창시절의 미술교과서를 펼쳐보니 ‘민중화가’로 기록된 그의 얼굴만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이밖에도 화가 이중섭의 이름 앞과 뒤에 붙어있는, 짐짓 거창하게 들리는 수식어들은 어쩐지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그러다 우연히, 지독히도 소박한 삶을 살다 떠난 그의 고단한 생에서 기대 않던 낭만을,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림 1. 화가 이중섭

 

 

지금부터 이중섭을 기억하는 책과 그의 숨결이 닿아 있던 현실을 넘나들며 우리가 몰랐던 이중섭에 대해 다시 쓰고자 한다. 생활고로 인해 멀리 떨어져 살던 부인에게 보낸 숱한 편지들과 그가 세상에 남긴 그림을 엮은 책,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을 읽고 생전의 그가 오래 머물렀던 제주도 생가를 거닐며 발견한 이중섭을 소개해 본다.

화가 이중섭, 작품 대신 그를 읽어 보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1916-1956)>


오래 전, 제주도에는 소를 닮은 화가가 살았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화가 이중섭을 말하면 소를 떠올릴 정도로 그의 작품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굉장히 뚜렷하게, 그리고 상징적으로 남아 있다. ‘소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그의 삶은 실제로도 소처럼 우직했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가 몰랐던 낭만적인 모습들이 사이사이 숨어 있었다.

 


그림 2.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1916-1956)> 표지

책에는 이중섭이 일본에 있던 아내 이남덕(마사코) 여사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이남덕 여사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 이중섭이 결혼 전 아내에게 띄운 그림엽서 등이 살뜰하게 담겨 있다.
 
‘아고리(턱이 길다고 해서 붙여진 이중섭의 애칭)’니, ‘발가락 군(발가락이 예쁘다고 해서 붙여진 이남덕 여사의 애칭)’이니 애틋한 별칭을 쓰며 주고받은 편지는 일본과 한국을 가로 막고 있는 바닷물의 짠 내음이 더해져 축축하게 읽힌다. 서로를 향한 애틋함을 짓누르는 고단함, 때로는 절망까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이들은 쉼 없이 서로를 다독이지만 삶은 좀처럼 여의치 않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이남덕 여사에게 바닷고기보다 많은 뽀뽀와 사랑을 전한 말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춘다.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몇 달씩 반복하던 글이 아프게 새겨진다. 조금씩 지쳐가는, 짧아져 가는 그의 다짐이 보인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이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 모든 불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이중섭으로 하여금 용케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붓을, 펜을 들고야 말게 한 것인지 말이다. 당시 조국의 현실을 작품의 제재로 삼았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꿈에 그리던 가정을 꾸리고도 차마 개인의 안위를 찾지 못했던 사람, 천재성에 깃든 민족적 성향은 그의 정체성이자 비극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 3. 이중섭 미술작품_흰 소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남덕군,

그동안도 건강한가요? 덕분으로 일주일쯤 전에 무사히 서울에 닿았소.
이번에 낸 작품이 평판이 아주 좋았으니까 서울에서의 소품전도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친구들은 자기들 일처럼 기뻐하면서 하루 빨리 소품전 제작을 시작하라고 권해줍디다.

일주일 후에는 친구가 방 한 칸을 빌려 준대요. 쌀값도 당해준다는 얘깁니다.
다시없는 나의 남덕군, 태현이, 태성이를 위해서, 대제작(표현)을 위해서, 힘껏 버티겠소.
기어코 승리를 할 테니까 기대하고
그때까지 안정에 유의하고 하루 빨리 기운을 내어주시오.

-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中

 


그림 4. 이중섭 미술작품_길 떠나는 가족

나의 가장 사랑하는, 귀여운 당신
‘선은 재빨리’라는 속담을 잊지 말고
우리 네 가족만이 사랑하고 지켜 나갈 소중한 시간을 아끼고 지켜 나갑시다.
자, 힘껏 힘껏 서로 껴안읍시다. 내 따뜻한 뽀뽀를 받아 주시오.
강하게 강하게 껴안아 우리들의 소중한 아름답고 건강한 시간을 지키십시다.
큰 표현을 합시다. 꼭 한 주일에 한 번씩은 편지 주시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中

 


그림 5. 이중섭 미술작품_서귀포의 환상

 

한순간도 그대 곁에 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군요.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
그 후에 더위를 견뎌 내면서 어느 정도 건강해지셨어요?
태현이와 태성이도 더위에 지치지 않고 잘 놀고 있는지요.
나의 감격인 그들의 하나하나의 동작을 내 눈으로 보고 싶소.
하나하나를 뜨거운 마음으로 표현하고 싶소.
하루 빨리 만나고 싶어서 못 견디겠소.

-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中

 


그림 6. 이중섭 미술작품_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당신의 힘찬 애정을 전신에 느껴 저는 마냥 기뻐서 가슴이 가득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나는 온 세계의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합니다.
당신만 있으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충분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 아내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 中

이중섭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바다마을
제주도 이중섭 거주지 & 이중섭 거리


이중섭은 흔히 짐작하게 되는, 방랑하는 예술인이 아니라 아이들과 부인을 절절하게 사랑하는 가난한 예술가였다. 이제 세상에 없는 그 대신 조용히 그의 정신을 보듬고 있는 제주도 생가를 방문해보려 한다. 부디 이 동행에 당신이 참여해주시기를 바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중섭과 그의 부인 이남덕 여사(마사코)는 한국에서 혼례를 올리고 마침내 정식으로 부부가 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중섭은 한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정착하지 못하고 전국을 전전하는 생활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가 피난을 와서 잠시 거주했던 곳이 바로 아름다운 섬, 제주도다.

 

 


그림 7-1. 이중섭 제주도 거주지

 

 


그림 7-2. 이중섭 제주도 거주지

이곳에서 이중섭 가족은 1.4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며 찬 없이 밥을 먹고 고구마나 깅이(게)를 삶아 끼니를 때우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훗날 그가 남긴 기록 속 복기에 따르면, 이때가 화가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가족과, 이웃과 함께 어울리며 그가 웃으며 지낼 수 있던 유일한 공간이었으리라.

 

 


그림 7-3. 이중섭 제주도 거주지

 

 

은은히 불어오는 바다 내음을 맡으며 근근이 작품 활동을 했던 1년이 그에게 얼마나 찰나 같았을까,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후 그는 생활고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과 생이별을 하고, 자신은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남은 생 동안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갇히고 마는데,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쓸쓸히 타계하고 만다.

 


그림 8-1. 이중섭 거리

 

 


그림 8-2. 이중섭 거리

 

 

‘이중섭 거주지’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언덕이 바로 ‘이중섭 거리’이다. 4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화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피난 당시 거주했던 초가를 중심으로 1996년 조성된 거리이다. 거리 곳곳에는 이중섭의 삽화가 들어간 기념품이나 각종 수공예품, 편집숍 등이 즐비해 있으며, 각종 음식점 등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맛집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림 9-1. 이중섭 거리

 

 


그림 9-2. 이중섭 거리


화가 이중섭을 기리는 한 시인의 마음

 

내가 만난 이중섭

                       김춘수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더움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 자료 출처 -

*서적
≪운명의 승리자 박열≫, 후세 다쓰지 글, 현인, 2017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가네코 후미코 글, 이학사, 2012
≪대역죄인 박열과 가네코≫, 김세중 글, 스타북스, 2017


*기사
[블랙뤼미에르의 영화 뒤집기] '박열' 혁명가의 가장 통쾌한 독립운동 (매일경제)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452933
[이것은 실화다③] 박열 - 후미코 감옥 포옹사진에 발칵… 일본 판사 사표 (아시아경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70314200555294


*사이트, 블로그
박열 의사 기념관
http://www.parkyeol.com/
통일부 블로그 - 식민지 조선의 풍운아, 박열
http://blog.naver.com/gounikorea/221043903842

 

 

 

- 이미지 출처 -

그림 1 영화 '박열' 포스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5716
그림 2.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실제 사진(왼쪽)과 이를 재현한 영화 '박열' 포스터
http://interview365.mk.co.kr/news/77314
그림 3. 청년시절의 박열
http://pneumothorax.tistory.com/10
그림 4. 박열(오른쪽)과 가네코 후미코의 도쿄 시절 사진
http://www.parkyeol.com/board/bbs/board.php?bo_table=data03&wr_id=17&page=2
그림 5. 관동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쿄 시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08012&cid=42997&categoryId=42997
그림 6. 재판 중 서로를 바라보는 박열, 가네코 후미코(위)와 이를 재현한 영화 '박열' 속 장면
http://www.ytn.co.kr/_sn/1407_201706270812022455
그림 7. 영화 '박열' 속 한 장면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55716
그림 8. 출옥 후 동지들과 함께 한 박열(왼쪽에서 네 번째)
http://www.parkyeol.com/board/bbs/board.php?bo_table=data03&wr_id=17&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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