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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 청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한 군사지도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 청나라 , 군사지도 , 영고탑 , 여진족 , 유조변책
18세기 전반에 청의 침입에 대비할 목적으로 제작된 군사지도이다. 조선의 서북지방과 청나라의 만주 일대의 하천과 주요 산, 군현, 도로망과 군사요지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조선의 북부 지역과 만주를 함께 그린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보물 제1537-1호)는 세로×가로의 크기가 무려 161.5×192.9cm나 되는 대형지도다. 초록색, 진초록색, 분홍색, 노란색, 하늘색 등 천연물감의 원색이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영인 도록집이나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만으로도 그 색을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제작자의 원래 의도대로 벽면에 걸어놓고 바로 앞에서 보아야 크고 화려한 고지도가 풍기는 웅장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실물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감동이 조금이나마 전해질 수 있도록 같은 크기의 원색 영인본을 만들어 지도자료실 벽면에 상설 전시하고 있다.

 


 


그림 1.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한貴古朝61-77 

그림 2. 영고탑이 표시된 부분. 지도 제작 당시 영고탑은 청나라가 돌아갈 곳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지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곳이다. 함께 있는 호수는 징푸호다.

그림 3. 만리장성 동쪽에 그려진 나무 울타리는 유조변책으로, 다른 민족들이 들어와 살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경계선이다.

 
 

우리나라 북부 지역과 만주를 한눈에 보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에서 ‘서북(西北)’은 조선을 기준으로 서쪽과 북쪽 지역을, ‘피아(彼我)’는 저들(彼)인 청나라와 우리(我)인 조선을 가리킨다. ‘양계만리(兩界萬里)’는 두 나라의 경계를 중심으로 만(萬)리 되는 지역을, ‘일람지도(一覽之圖)’는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그림, 즉 지도를 뜻한다. 따라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는‘우리나라와 청나라의 경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북부와 만주의 만 리 되는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지도’라는 의미다. 지도의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제작 시기는 지도에 수록된 내용에 따라 170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왼쪽 위에는 여진족의 역사가 요약되어 있다. 

먼저 ‘영고탑(寧古塔)은 숙신씨(肅愼氏)의 옛터다’라는 문구로 시작되는데, 숙신씨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BC.770~BC. 221) 중국 문헌에 기록된 여진족의 이름이다. 계속해서 여진족의 역사가 이어지다 마지막 부분에 청나라가 성장하여 명나라를 정복한 후 세 명의 장군을 두어 만주를 관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는 심양(瀋陽)에 주둔하며 봉촌 등 서만주의 땅을, 하나는 선창(舡敞)에 주둔하며 영고탑 등 동만주의 땅을, 하나는 애허성(艾滸城)에 주둔하며 흑룡강등 북만주의 땅을 관리했다. 여기서 선창은 중국의 지린시(吉林市)부근에 있었고, 애허성의 위치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또 청나라 강희제(1661~1722) 말년에 흑룡강 북쪽의 몽골을 우려하여 장군 한 명을 더 두었는데, 주둔지는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뒷부분에는 몽골에 대한 정보가 서술되어 있다. 몽골의 48개 부족 중 동북 지방의 부족들이 가장 강성하며, 그중 하나인 대비달자(大鼻撻子)(러시아)가 흑룡강 북쪽에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몽골 부족의 영역은 한반도 동북쪽의 흑룡강에서 시작, 만리장성 북쪽을 거쳐 서쪽으로 뻗어 나가 한나라 때의 서역(西域)인 우란(于蘭)에 이른다. 이는 중국, 즉 중화문명 지역보다 몇 배나 더 넓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은 48개 부족이 힘을 겨루어 동서남북 네 황제를 두었으며, 액라사(厄羅斯) 즉, 대비달자와 객이객(喀爾喀)(몽골)이 중국의 동북쪽에 있다는 내용으로 끝맺는다.



청나라의‘영고탑 회귀설’로부터 시작되다


그러면 조선에서는 왜 이와 같은 지도를 만들었을까? 1637년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나라의 태종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1644년 청나라가 중국을 장악한 이후에도 조선에서는‘오랑캐에게는 백 년을 지탱할 운세가 없다’는 명분론적 전망이 우세하였다. 또 청나라가 중원에서 쫓겨난다면 여진족의 오랜 근거지인 영고탑으로 돌아간다는‘영고탑 회귀설’이 1700년대 중반까지 조선 지식인에게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청나라가 영고탑으로 쫓겨 갈 때 북쪽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몽골군의 공격을 받아 바로 가지 못하고 조선의 북쪽을 거쳐 갈 것이기 때문에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세 인식 때문에 1600년대 후반부터 1700년대 중반까지 몽골-만주-조선의 북부를 함께 그린 군사지도의 제작이 활발했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도 그중 하나인데, 지도의 정밀함과 화려함이 뛰어나 2007년 12월 3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의 북부 지역은 조선에서 그린 지도를, 만주 지역은 청나라에서 그린 지도와 지리지를 참조하여 제작되었다. 
이 지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보는 청나라가 중국에서 쫓겨날 때 돌아갈 곳이라고 여겨진 영고탑의 위치와 그곳까지 이르는 길에 대한 것이므로, 백두산을 제외하면 지도의 중앙 위쪽으로 세 개의 섬이 있는 호수와 함께 영고탑이 가장 눈에 띄게 표현되었다. 영고탑은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의 최남단인 무단장시(牧丹江市) 닝안현(寧安縣)에 있었는데, 함께 있는 호수는 징푸호(鏡泊湖)다. 청나라 최초의 수도였던 성경(盛京),즉 지금의 선양(瀋陽)에서 영고탑에 이르는 통로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고, 조선의 함경도 회령과 경원에서 선춘령(先春嶺)을 거쳐 영고탑에 이르는 길도 나타나 있다.


주기에 담긴 제작자의 견해

산해관(山海關)에서 끝나는 만리장성의 동쪽에 그려진 나무 울타리가 눈에 띈다. 이는 제방을 쌓고 버드나무를 심어 경계선 역할을 하도록 만든 유조변책(柳條邊柵)이다. 청나라의 발상지로서 한족을 비롯한 다른 민족 사람들이 들어와 살지 못하도록 만든 경계선으로, 곳곳에 통행을 검문하기 위한 문을 만들어 놓았다. 압록강 북쪽의 봉황성(鳳凰城)(랴오닝성 펑청시에 있다.)에서 시작하여 활처럼 휘며 만리장성과 연결되는 것을 먼저 쌓았고, 동북쪽으로 뻗어 나간 것을 나중에 추가하였다. 만리장성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진 유조변책은 몽골 세력과의 경계선 역할을 하였는데, 그 바깥에는 몽골(蒙古)과 관련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유조변책 안에는 청나라 초기의 주요 지역들이 있다. 성경은 지금의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으로 1625년부터 1644년까지 청나라의 수도였다. 흥경(興京)은 1616년에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며 수도로 삼았던 곳으로, 지금의 선양 동쪽에 있는 랴오닝성 푸순시(撫順市)의 신빈만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顯)에 있었다. 바로 오른쪽에는 누르하치 조상의 무덤들이 있는 노성(老城)이란 지명이 보인다. 이밖에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경으로 가는 사신 길과 주요 통과 지점이 표시되어 있는데, 곳곳에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투 관련 내용 등의 주기(週記)가 있다. 동쪽의 청석령(靑石岺)과 서쪽의 대릉하참(大凌河站)사이에 주요 통과 지점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길은 명나라 때 북경을 오가던 사신 길이다. 조선의 북부 지역에서 가장 큰 원은 고을, 중간 크기의 원은 군사기지인 진보(鎭堡), 폐사군을 제외한 세로로 긴 타원은 찰방역(察訪驛), 가장 작은 원은 군사 요충지에 있는 역(驛)을 나타낸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첫째, 최전방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둘째, 두 강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주요 길 위에 셋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남쪽을 가로막는 동서 또는 남북 산줄기 위의 주요 고개 아래에 주로 설치되어 있었다. 

지도 오른쪽 아래에 적힌 주기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으며 가운데가 좁고 아래쪽이 넓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언급한 후,‘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큰 산줄기(大嶺)가 척추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구부리고 서 있는 것 같고, 영남지방의 대마도와 호남지방의 탐라도 또한 두 발이 지탱하는 것 같다’는 풍수의 유기체적 국토관을 서술하였다. 둘째, 기존 지도가 압록강과 두만강의 유로를 동서의 직선으로 그리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것과 어긋나는 두 강의 방향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근거로 올바르게 고쳐야 함을 역설한다. 지도 위의 압록강과 두만강의 흐름이 내용과 거의 같아 이 계통 지도의 최초 제작자의 견해임을 알 수 있는데, 1600년대의 뛰어난 지도 제작자 윤영(尹鍈)(1611~1691)으로 추정된다.

 
그림 4.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는 벽면에 걸어놓고 
바로 앞에서 보아야 그 웅장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사진은 국립중앙도서관 지도자료실 벽면에 걸린 같은 크기의 원색 영인본






참고문헌

<조선후기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저 | 일지사 | 1998 | 911.057-배927ㅈ
<조선과 중화> 배우성 저 | 돌베개 | 2004 | 911.05-14-60
<문화재대관 보물 : 지도 천문 무기>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 2014 | GP608.911-15-1


집필자

글.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2002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로 있다. 대표작으로는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2007, 푸른역사과 <조선의 지도 천재들>, <근대를 들어올린 거인 김정호>2011, 새문사가 있다. 최근에는 세계 문명이 구현된 전통도시 서울과 읍치 및 마을, 우리나라의 고지도 변천사,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 말해야 하는 이유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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