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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향의(家禮鄕宜) 《주자가례》의 주체적인 해석과 수용
가례향의 , 조익 , 예서 , 주희 , 주자가례 , 사대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조익(趙翼)이 지은 《가례》 해설서로, 민가의 상례(喪禮)·관례(冠禮)·혼례(婚禮) 등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였다.

《가례향의(家禮鄕宜)》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이 엮은 예서(禮書)이다. 송(宋)나라의 학자 주희(朱熹)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가례(家禮)》를 바탕으로 당시 조선의 상황에 맞게 세부 내용을 첨삭한 책이다 .중국의 예법을 경직되게 묵수하지 않고, 우리의 풍속에 맞게 주체적으로 변형하여 수용하고자 했던 노력의 구체적 결과라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많지는 않지만 《주자가례》가 전래되기 이전으로 추정되는 고유의 풍속이나 고유의 제수(祭需) 용어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다.



 

그림 1. 가례향의《家禮鄕宜》 古朝29-24


 

중국의 《가례》를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적다



 제목의 ‘향의(鄕宜)’는 ‘향(鄕)에 적절한 것’이라는 뜻이다. 향은 도회나 국가, 조정에 대비되는 향촌의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책의 서문에 의하면 포저는 후자의 개념으로 ‘향의’를 사용하였으므로, ‘가례향의’는 ‘조선의 현실에 맞는 《가례》’라는 의미다. 
《가례》는 조선조 사대부의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책이다. 조선조 지식인의 학문에 대해 논할 때면 으레 성리학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예학 또한 그에 못지않은 필수 교양이었다. 《가례》는 바로 그 예학의 가장 기본 바탕이 되는 책이다. 더구나 관혼상제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일이었으므로 더더욱 중시되었다.
그러나 책이 저술된 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고 언어와 풍습이 다른 나라였기 때문에 일부 의절에 있어서는 조선의 시속(時俗)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소위 ‘가가례(家家禮)’라고 하여 가문마다 다른 의절이 있었는가 하면, 당파에 따라 의절을 달리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례》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별도의 연구가 필요했다. 그 결실중 대표적인 것이 조호익(曺好益)의 《가례고증(家禮考證)》,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家禮輯覽)》,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家禮增解)》 등이다. 다만, 이들은 대부분 이론적인 주석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에 비해 《가례향의》는 실용적인 측면에 더 주안점을 둔 책이다. 실제로 간행하여 널리 이용되지는 못하였지만, 저자가 스스로 서문에서 밝혔듯 일반 백성들까지도 혼동 없이 널리 이용하게 하는 것이 저술 목적이었다. 이런 의도는 편집 체제에서도 잘 드러난다. 통례(通禮),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순으로 구성된 《가례》의 체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제례처럼 생활 속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것을 맨 앞에 두고, 드물게 있는 것은 뒤로 배치하였다. 드물게 겪는 일도 경중에 따라 젊은이에 해당하는 관례와 혼례를 상례의 뒤쪽에 배치하였다.

 

중국보다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예를 지키다

 

조익은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던 이른바 속례(俗禮)의 가치를 인정하고 폭넓게 수용하고자 《가례》를 바탕으로 통일을 기하되, 시속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가례》의 내용과 배치되더라도 당세에 널리 행해지고 있거나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 예절이라면 그대로 써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밝혔으며, 《가례》에는 없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서식이나 의절은 명明나라 구준(丘濬)이 지은 《가례의절(家禮儀節)》과 김장생의 《상례비요(喪禮備要)》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보충하였다. 
특히 그는 형편에 맞게 예를 행해야 함을 강조하여 형식에 얽매여 예의 본질이 훼손되는 폐단을 막고자 하였다. 예문에 규정되어 있는 물품이라도 조선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다른 물품으로 대체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례 때 보공補空에 쓰이는 의복의 가짓수도 형편에 맞게 하도록 하였다. 또 관례의 건관(巾冠), 초립(草笠), 도포(道袍), 직령(直領), 단령(團領) 등 소요되는 의관(衣冠)이나 기물(器物)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조선의 토속적인 것으로 대체하게 하고, 가난하여 《가례》의 규정대로 물품을 갖출 수 없는 경우라면 속례를 따라 쓰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였다.
음식에 대해서도 고인이 생전에 접하지 못했던 것을 굳이 어렵게 구해서 바치거나, 대체할 만한 다른 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문에 규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이중으로 진설하는 일이 없게 하였다. 《가례》의 예문에는 있지만 조선에서는 제사에 쓰지 않던 만두 대신 흔히 쓰이는 국수를 그대로 쓰게 한 것이나, 소금과 초장은 우리나라의 청장(淸醬)에 해당하므로 이중으로 진설할 것이 없이 청장만을 쓰도록 한 것,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차茶는 아예 진설하지 않도록 한 것이 그 예이다. 또 조선에는 향(香)이 귀하여 매일 분향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여 향 없이 절만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만약 가난하여 제기를 별도로 구비할 수 없다면, 평소 사용하는 음식 그릇을 정결하게 씻어서 사용하는 것 또한 괜찮다고 보았다.


“해(醢)는 중국은 육장(肉醬)이고, 우리나라는 어물(魚物)을 소금에 절인 것이다. 육어(肉魚)는 곧 육탕(肉湯), 어탕(魚湯)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탕소(湯所)’이다. 만두(饅頭)는 곧 우리나라의 ‘쌍화(霜花)’로서 보리 가루로 만드니, 이른바 면식(麵食)이다. 고(糕)는 우리나라의 ‘떡’으로서 쌀가루로 만드니, 이른바 ‘미식(米食)’이다.”


예법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포저


포저가 이처럼 당시로서는 선뜻 주장하기 어려운 융통성을 보이는 근저에는 궁극적으로 자잘한 예법에 밝은 사람보다는 진정성을 지닌 사람을 높이 치는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악을 억누르고 선을 추구하며, 빈궁이나 영달에도 뜻이 변하지 않으며, 신실하고 곧은 사람이라야 예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몸이 스스로 선인善人, 군자君子가 되지 못할 것이니, 예절에 익숙하다고 한들 귀하게 여길 것이 있겠는가?”


위의 발문(跋文)에서 보이는 포저의 말처럼, 정성스런 마음이 있다면 자잘한 세부 의절의 차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가례향의》는 10항 21자의 필사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이 유일본이다. 문리(文理) 상 직접 쓴 것에서 나타날 수 없는 오자(誤字)가 종종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포저의 수고본(手稿本)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조전(祖奠) 조항에 보이는 ‘부복망(俛伏望)’은 명백히 ‘부복흥(俛伏興)’의 오자이다. 이것은 ‘망(望)’자와 ‘흥(興)’자의 초서가 비슷한 것에서 착오가 생긴 것으로 보이는데, 본인이 직접 필사할 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오류이다. 《가례》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전재하여 싣고, 변경한 내용이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는 ‘○’ 표시나, ‘안(按)’, ‘우안(愚案)’이라는 말을 쓰고,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첨부하였다. 
저자인 조익의 자는 비경(飛卿)이고, 호는 포저 또는 존재(存齋)이며,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20세 전에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와 외숙조(外叔祖)인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에게서 문장을 배웠으며, 이후로는 뚜렷한 스승이 없이 자득하여 성리학(性理學)과 예학(禮學)에 깊은 조예를 이루었다. 24세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삼사(三司)의 관장, 예조판서, 좌의정 등을 지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문집인 《포저집(浦渚集)》과 《연보》 20책, 《논어천설(論語淺說)》등 주요 경서에 대한 해설서를 모은 《포저유서(浦渚遺書)》10책, 주자의 편지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분류하여 추린 《주서요류(朱書要類)》 6책, 《가례향의》 2책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림 2                                                                        그림 3

 

그림 2는 《가례향의》의 첫장으로, 이 책이 《가례》의 체제와 내용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은 《가례》에 규정된 음식들과 당시에 실제로 사용되던 음식을 대비시켜 제시한 내용으로, 이를 통해 ‘탕소(湯所)’, ‘쌍화(霜花)’ 등 고유의 음식 용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는 ‘○’ 표시나, ‘안(按)’,‘우안(愚案)’이라는 말을 쓰고,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첨부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집필자

글.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문집번역실 선임 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한문학 한시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고전번역원에서 문집 번역에 종사하고 있으며, 고전번역교육원 강사를 겸하고 있다. 고전번역원의 연구소장, 번역사업본부장을 역임하였다. 《오음유고》, 《가례향의》 등 30여 책의 번역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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