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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女士) 전성시대
여성선비 , 여사 , 여성
여성선비, 곧 여사(女士)라는 용어는 『시경(詩經)』 「대아」에 보인다. ‘여사는 여자로서 사행(士行)이 있는 자’라고 주석해놓고 있다. 기원전부터 여사라는 용어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당나라 때 학자 공영달(孔潁達)은 ‘선비는 남자를 이른다(士者, 男子之大號)’고 못 박고 있다.

                                                                                             그림 1

 

  여성선비, 곧 여사(女士)라는 용어는 『시경(詩經)』 「대아」에 보인다. ‘여사는 여자로서 사행(士行)이 있는 자’라고 주석해놓고 있다. 기원전부터 여사라는 용어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당나라 때 학자 공영달(孔潁達)은 ‘선비는 남자를 이른다(士者, 男子之大號)’고 못 박고 있다. 

                                                                                        그림 2. 『조선왕조실록』 세종 15년 윤8월 15일 기사에 등장 ‘女士’.

그림 2. 『조선왕조실록』 세종 15년 윤8월 15일 기사에 등장 ‘女士’.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15년 윤8월 15일 기사에 처음 등장한다. 친족을 잘 보살피고 가정을 다스림에 항상 자비롭고 화목한 생각이 간절했고, 홀몸이 되어서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절개를 지킨 신안택주(信安宅主)에게 여사라고 칭하고 있다. 이후로도 가끔 여사 용례가 있다. 
  『승정원일기』에서는 순조 때 수렴청정을 한 정순왕후, 조선에서 유일하게 헌종과 철종 2대에 걸쳐 수렴청정을 했던 순원왕후에게도 여사라고 칭했다. 일반적으로 양반가 여성에게는 절개나 화목한 가정의 내치內治를, 왕실 여성에게는 치인(治人)의 덕성을 들어서 여사로 불렀다. 

 

  ‘한국문화대탐사팀(아산정책연구원․문화국가연구소)’이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해보니, 여성선비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렇다’는 응답이 절반에 약간 못 미친 46.3%, ‘잘 모르겠다’가 37.7%, ‘아니다’가 15.2%였다. 여성선비가 있다고 답한 이들에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모름/무응답이 52.7%로 여성선비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부족함을 보여줬다. 36.3%가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신사임당을, 3.7%가 박근혜 대통령을 꼽았으며, 유관순, 허난설헌 등이 각각 1.5%, 1.4%였다. 
 

                                                         그림 3.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신사임당 36.3% · 박근혜 대통령 3.7% · 유관순 1.5% · 허난설헌 1.4%를 ‘여성선비’로 꼽았다.

그림 3.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신사임당 36.3% · 박근혜 대통령 3.7% · 유관순 1.5% · 허난설헌 1.4%를 ‘여성선비’로 꼽았다. 

 

  흔히 전통사회에서는 여성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서원이나 성균관 같은 공교육이 없었다는 것이지, 사대부 집안의 여성들은 집에서 한글과 한문을 배웠다. 따라서 여성도 충분히 독서인이 될 수 있었다. 독서인은 선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므로 여성도 선비의 자질이 있었다. 다만 여성에게는 벼슬자리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인(治人)의 단계에는 나가지 못하고 수기(修己)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수렴청정을 했던 일부 왕실 여성만이 예외였던 셈이다. 

  조선후기 영․정조 시대는 문예부흥기였다. 사회 전반의 생산력 증가와 생활수준 향상에 힘입어 서민문화가 꽃 피웠고, 지식축적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의식을 지닌 여성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유교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남성 사대부들처럼 고전과 경서를 읽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마침내 한문으로 저술을 하기 시작했다. 조선후기 때는 개인 문집을 남긴 여성선비들이 많았다. 한 마디로 여사女士 전성시대였다. 

  김호연재(金浩然齋) - 『호연유고(浩然遺稿)』 
  임윤지당(任允摯堂) - 『윤지당유고(任允摯堂稿)』 
  남의유당(南意幽堂) - 『의유당일기(南意幽堂記)』 
  이사주당(李師朱堂) - 『태교신기(胎敎新記)』 
  서영수합(徐令壽閤) - 『영수합고(令壽閤稿)』 
  이빙허각(李憑虛閣) - 『규합총서(閨閤叢書)』 
  김삼의당(金三宜堂) - 『삼의당고(三宜堂稿)』 
  강정일당(姜靜一堂) -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이들은 모두 여성 독서인이자 문인들이었으며 유교적 소양을 갖춘 지성들이었다. 
  이 무렵, 중국 문인들에게까지 알려진 조선 후기 여성문인 서영수합(1753~1823)의 시 한편을 감상해보자. 

 

 

겨울밤 책을 읽으며 

맑고 맑은 거문고 소리 휘돌고 
검푸른 칼의 기운 아득한데, 
한밤중 눈 속에 매화가지 비껴 있고 
달빛은 책상 위 책을 가만히 비추네. 
여린 불로 느긋이 차를 끓이고 
술 데우자 은근한 향 넘치네. 
흐린 등불이 걸린 오래된 벽으로 
반짝반짝 새벽빛이 서서히 찾아든다. 

淸切琴聲轉 蒼茫劍氣虛 
梅橫三夜雪 月照一牀書 
細火烹茶緩 微香煖酒餘 
疎燈掛古壁 耿耿曉光徐

 

 

                                                                                          그림 4. 허난설헌의 「묵조도(墨鳥圖)」.

그림 4. 허난설헌의 「묵조도(墨鳥圖)」.

 

  「동야독서(冬夜讀書)」라는 시다. 매화향기 그윽한 늦겨울 밤에, 책 읽느라 꼬박 밤을 지새운 여성선비의 고아한 정취가 차향에 묻어난다.

                                                                그림 5. (왼쪽) 『삼국사기(三國史記)』는 1145년(인종 23)경에 고려 인조의 명으로 김부식(金富軾) 등이 편찬한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통일신라)의 정사. 한국 고대사를 설명한 최초의 역사서. (오른쪽) 『삼국사기』 「열전」 제48권13, 신라시대 설씨녀의 사랑과 정절을 그린 신물설화(信物說話).

그림 5. (왼쪽) 『삼국사기(三國史記)』는 1145년(인종 23)경에 고려 인조의 명으로 김부식(金富軾) 등이 편찬한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통일신라)의 정사. 한국 고대사를 설명한 최초의 역사서. l (오른쪽) 『삼국사기』 「열전」 제48권13, 신라시대 설씨녀의 사랑과 정절을 그린 신물설화(信物說話). 
 

  『삼국사기』 「열전」에는 한국여인의 초상이 잘 그려져 있다. 평강공주, 강수의 아내, 설씨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어리석은 남편을 가르쳐 성공시키기도 하고, 고결한 인품과 의리를 지녀 천년의 귀감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상징이 된다. 유교윤리의 프레임을 벗어나더라도 그는 글과 그림은 물론 인품과 기상도 빼어났던 선비였다. 여성 철학자로 인정받는 임윤지당, 이사주당, 비운의 정치가 명성황후, 실학자 이빙허각, 시골양반 여성의 당당한 삶을 시로 유감없이 표현한 김삼의당, 유학자 남편의 스승노릇을 한 강정일당 등은 훌륭한 선비들이다. ‘비좁은 조선 땅에 하필이면 여자로 때어나 김성립의 아내가 된 걸 세 가지 한’이라고 했다던 허난설헌은 당돌하다 못해 혁명적이다.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미국유학 후 독립운동가가 된 하란사 역시 당대의 선비였다.

                                                     그림 6. 『허난설헌』, 윤석남(Yun Suk-nam, 尹錫男) 화백의 2005년 作.

그림 6. 『허난설헌』, 윤석남(Yun Suk-nam, 尹錫男) 화백의 2005년 作. 

 

  21세기는 여성시대다.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참여로 어느 때보다 여성리더십이 요청되고 있다. 각 분야에서 남성들을 제치고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들이 아주 많다. 현모양처라는 가정윤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전통적 여성상도 많이 바뀌었다. 여성 특유의 공감능력에다 전통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리더십까지 갖춘다면 그 영향력은 막대할 것이다.

                                          

                                         그림 7. 지성과 리더십을 갖춰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된 여성들과 명언. (왼쪽부터) 니체와 릴케를 울린 독일 작가, 루 안드레아스살로메(1861~1937) “나는 절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 수상, 마가렛 대처(1925~2013) “네가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어야 해”/ 미국의 유력한 대권 후보, 힐러리 로뎀 클린턴(1947~ ) 주유소에서 일하는 힐러리의 동창을 본 클린턴이 “당신이 저 친구와 결혼했다면 주유소 직원의 아내가 되었겠군” 하자, “아뇨, 저 사람이 나와 결혼했다면 미국 대통령이 되었겠죠!”라고 대답/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1954~ ) “게임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언제나 이기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1956~ ) 교수 “나의 판결을 복기하라”.

그림 7. 지성과 리더십을 갖춰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된 여성들과 명언. (왼쪽부터) 니체와 릴케를 울린 독일 작가, 루 안드레아스살로메(1861~1937) “나는 절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 수상, 마가렛 대처(1925~2013) “네가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어야 해”/ 미국의 유력한 대권 후보, 힐러리 로뎀 클린턴(1947~ ) 주유소에서 일하는 힐러리의 동창을 본 클린턴이 “당신이 저 친구와 결혼했다면 주유소 직원의 아내가 되었겠군” 하자, “아뇨, 저 사람이 나와 결혼했다면 미국 대통령이 되었겠죠!”라고 대답/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1954~ ) “게임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언제나 이기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1956~ ) 교수 “나의 판결을 복기하라”. 

 

  우리는 흔히 결혼했거나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성을 높여서 여사(女史)라고 부른다. 그 여사가 여사(女士)로 바뀌게끔 미래형 여성선비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하며, 우선 몇몇 여사들의 행적과 사상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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