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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의 대량공급 및 외환위기(1990년대)
대량공급 , 외환위기
지속적인 주택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주택부문 투자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1980년 71.2%였던 주택보급률은 1987년 69.2%로 하락하였고, 주택가격도 급등하게 되었다.

1) 주택200만호건설계획 

지속적인 주택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주택부문 투자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1980년 71.2%였던 주택보급률은 1987년 69.2%로 하락하였고, 주택가격도 급등하게 되었다. 서울의 주택가격은 1981년을 기준으로 1983년까지 40.6%가 오른 후 1987년까지는 정체 상태에 있었고, 5개 직할시 주택가격은 1983년까지 7.9%가 오른 후 꾸준히 상승하여 1987년에는 25%까지 올랐다. 전 도시평균은 거의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지방도시는 사실상 주택가격이 하향 안정세에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매가격에 비해 전세가격은 전국적으로 급등하였다. 1981년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의 전세가격 역시 1983년까지 26.5%, 1985년까지 69.5%, 1987년까지 108.4%, 즉 1981년의 배로 급속히 올랐다.

 

연간 주택건설은 1978년 30만호를 기록한 이후 감소하기 시작, 1981년에는 15만호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까지 급감했다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으나, 1987년까지 1978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1980년에서 1987년 사이에 가구는 총 185만 가구가 증가하였으나 주택재고는 같은 기간에 백만 호 증가하는 데 그쳤다. 따라서 주택부족은 심화되어 1987년 주택보급률은 전국적으로 69.2%, 서울은 이보다 훨씬 더 낮은 50.6%로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주거 점유의 안정성도 악화되었다. 호황 속에서의 주택가격과 임대료의 급등은 이처럼 자기 집을 갖지 못하고 불안정한 주거생활을 하던 중·저소득층의 고통을 가중시켰고 민심이 동요하게 되었다. 근로자들의 임금도 급격히 올랐지만 주거비 상승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오른 전세 값을 마련하지 못해 일가족이 함께 자살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결국 1980년대 말의 부동산 붐과 주택가격 상승은 우선 저소득층의 주거불안뿐만 아니라 중간층의 주거까지도 불안하게 만들었고, 투기로 인해 부의 분배라는 측면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또한 토지가격의 상승으로 주택개발이 어렵게 됨에 따라 택지공급은 점점 더 공영개발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0년대 이후의 세 번째의 장기주택건설계획인 200만호 주택건설계획(1988~1992년)이 수립되었고, 처음으로 계층별 주택공급계획 및 빈곤층 주택 지원책이 마련되었으며, 토지공개념의 입법화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공공의 택지공급의 경우 정치적 민주화로 인해 정부와 토지소유자 간의 관계에서 후자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공영개발에 의한 저렴택지 확보가 점차 어렵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여당의 노태우 후보는 그의 6년간 재임기간 중 저소득층을 위한 30만 호의 주택을 포함하여400만호의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정권을 인수한 후 건설호수는 보다 현실적인 200만 호로 축소하여 확정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총생산액(GNP)의 6.5%에 해당하는 65조원을 투자하여 국민주택 85만호, 민영주택 48만호, 민간주택 67만호를 건설하고, 주택보급률을 1992년 72.9%까지 높이는 계획이었다. 또한 소득수준에 따라 주택공급 대상 프로그램을 세분화하여 소득 10분위 가운데 1분위에 해당하는 계층을 영세민으로, 2~4분위를 중산화 가능 계층으로, 5~7분위까지를 중산층, 8~10분위까지를 중산층 이상으로 구분하고, 계층별로 주택을 차등 공급하였다. 이후 1989~1990년 초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의 급등으로 사회문제로 대두된 저소득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부문 물량을 증가시켰다.

 

정부는 특히 1970년대 말부터 부동산 가격 급등의 진원지가 되어온 서울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수도권의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대책을 마련하였고, 1989년 4월 박승 건설부 장관은 분당, 일산 두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분당은 일제강점기 말부터 입지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고, 일산은 군사시설이 많아 개발이 어려웠으나 지역균형개발을 명목으로 하여 신도시 개발로 선정하였다. 대도시 지역의 경우 개발가능지가 부족하고 가용토지의 지가가 비싸기 때문에 서울 주변 수도권에 신도시 건설 계획 시 기본원칙은 다음의 네 가지였다. 첫째, 서울의 교통 및 주거문제 완화, 둘째, 주거기능위주의 개발에서 탈피하여 수도권 기능의 일부를 분담, 셋째, 신도시에 자체적 기능을 부여하여 자족적 도시로 육성, 넷째, 서울의 수도 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상호 보완적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민간사업체의 재원조달을 위해 ‘주택상환사채제도’를 시행하였는데, 이 채권은 기명식보증사채로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주택으로 상환받을 수 있는 채권이다. 1978~1979년 동안 주택공사가 발행한 사례가 있는데, 1989년 신도시 개발 지원을 위해 다시 발생하였다. 이 채권 발행의 목적은 주택을 선 분양하고 실수요자들의 유휴자금을 주택시장에 흡수하여 자금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계획은 구체적으로 1992년까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일대 540만평과 당시 고양군 일산읍 일대 460만 평에 각각 105,000호(42만 명 수용)와 75,000호(30만 명 수용)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신도시로도 부동산 투기가 근절되지 않으면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투기를 잡겠다’고 하여 부동산 가격안정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200만 호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총 64조 2,830억으로 추정되었는데, 이 중 67.7%는 입주자 부담, 나머지 22.3%는 국민주택기금과 민영주택자금으로부터 융자받아 충당하도록 계획되었다. 택지는 총 5,700백만 평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 중 3,500만평은 앞서 언급한 공영개발을 통해 공급하도록 하였다. 이 개발비용은 전부 자체 개발이익으로 충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200만 호 건설도 민간자금, 즉 투기성 자금에 의존해야 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1980년대 초의 500만호 계획과 같이 그 목표달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당시 200만호 건설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부처 간에도 이견이 있었다. 주택건설경기가 과열될 우려가 보이자, 조순·문희갑을 뒤이은 이승윤 부총리, 김종인 수석 등 성장지향적인 경제 각료들조차 신중론을 폈다. 그러나 권영각 건설부 장관은 공약사항이므로 무리가 있더라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대통령이 이를 지지함으로써 결국 신도시 건설과 같은 대대적 주택건설이 과거 군사정부의 ‘군사작전식’으로 추진되었다. 이 결과 1982년에서 1987년까지 연평균 23만호에 불과하던 주택 건설량이 1988년 32만호, 1989년 46만호로 급증하였고, 1990년에는 사상최대인 75만호를 기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1년 앞당긴 1991년 8월말까지 200만호가 건설되었다. 이는 1987년의 우리나라 주택재고 645만 호의 40%에 달하는 양이었다.

 

이 200만호 건설의 추진은 우리나라의 당시 주택공급 능력을 초과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우선 당시 내수경기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어 안정화 시책이 필요할 때인데 건설경기가 달아오르는 바람에 과열경기를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임금의 급상승을 초래하여 1990년 한 해 동안 건설노임은 평균 40% 이상 올랐다. 또한 공장근로자들이 고임금을 쫓아 대거 건설현장으로 옮겨감으로써 제조업의 인력난을 초래하였고, 철근, 위생도기, 시멘트, 골재 등 건자재의 부족과 함께 공사 단가를 급등시켰다.

 


 

참고문헌

공동주택연구회. 1999. 「한국 공동주택계획의 역사」. 세진사.
구본호·이규억. 1991. 「한국경제의 역사적 조명」. 한국개발연구원.
권영덕. 1999.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대한 평가분석과 개선방안」.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국토개발연구원. 1981a. 「주택자료편람」. 국토개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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