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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之光(조선지광)
장도빈, 김동혁 | 조선지광사, 1922
장도빈 , 김동혁 , 조선지광사
『조선지광朝鮮之光』은 1922년 11월 신문지법에 의거하여 창간된 시사잡지이다. 창간시 발행 겸 편집인은 장도빈張道斌, 인쇄소는 한성도서(주), 발행소는 조선지광사였다. 『조선지광』은 당시 『개벽』과 함께 잡지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잡지였다. 제2호까지는 월간이었으나, 3호부터 60호까지는 주간으로 바뀌었고, 다시 1926년 11월에 나온 61호부터 종간호인 100호까지는 월간으로 나왔다. 편집 겸 발행인인 장도빈은, 1908년

1. 창간 배경과 서지

 

 『조선지광(朝鮮之光)』은 1922년 11월 신문지법에 의거하여 창간된 시사잡지이다. 창간시 발행 겸 편집인은 장도빈(張道斌), 인쇄소는 한성도서(주), 발행소는 조선지광사이다. 『조선지광』은 당시 『개벽』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잡지였다. 제2호까지는 월간이었으나, 3호부터 60호까지는 주간으로 발간했고, 다시 1926년 11월 61호부터 100호(종간호)까지 월간으로 발간했다. 
편집 겸 발행인인 장도빈은, 1908년 대한매일신보사에 입사하여 신채호, 양기탁 등과 함께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가 귀국하여 오산학교 교사로 있었다. 1919년에는 3·1운동 후 처음 나온 잡지『서울』의 편집 겸 발행인이 되었으며, 1920년 5월에는 한성도서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한성도서주식회사는 주로 서북지역 출신들이 자본금 30만원을 모아 출발하였으며, 사장에 이봉하, 전무에 이종준, 취체역에 한규상·장도빈·박태련 등이었다.
한성도서(주)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 5월 1일 장도빈이 중심이 되어 창설되었다. 주로 서북(西北)지역 출신의 젊은 인사들이 모여 자본금 30만원으로 주식회사를 만들어 출발하였다. 간부 진영은 사장에 이봉하(李鳳夏), 전무 이종준(李鐘駿), 취체역에 한규상(韓奎相) 장도빈(張道斌) 박태련(朴泰鍊), 감사역에 한윤호(韓潤鎬) 허헌(許憲) 등이었고, 고문으로는 김윤식(金允植) 양기탁(梁起鐸)을 추대하였다. 장도빈은 월간 언론잡지『서울』의 주간을 겸하였으며, 『학생계』의 주간은 오천석(吳天錫)이 맡았으나 그가 도미(渡美)한 뒤에는 崔八鏞이 맡았다. ‘우리의 진보와 문화의 증장(增長)을 위하여 시종 노력하기를 자임(自任)하노라’라고 선언하고 출발한 이 회사는, 일간 신문의 발간을 의도하였으나 허가를 얻지 못하자 도서 출판과 잡지 발행으로 그 목적을 바꾸었다.

 

2. 창간호

 

창간호의 앞머리에 실린 「우리의 주의 주장」창간호의 첫 페이지에는 <본사의 주의주장>을 내세웠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본사는 조선민족 또는 세계를 위하여 다음 3개 주장을 입(立)함. 1)조선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정의와 지식과 모든 문명을 선전함. 1) 조선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조선민족의 교육·식산(殖産)·협동을 고취함. 1)이상의 주장을 관철하여 조선민중의 권리와 행복을 옹호하며 진(進)하여 세계문화에 공헌함을 기도(期圖)함."
또 <본사의 간행 요령>에서는 "본사는 '신문지법'에 의하여 설립되어, 정치·학술·문예 기타 모든 필요한 언론 기사를 게재함"이라고 했으며, 이어 <본사의 조직 개요>에서는 "본사는 조선 사상계의 중심되기로 자신(自信)하여, 모든 방면의 명사 대가(大家)를 망라하여 조직함"이라고 했다.
창간사는 간단하다.
"캄캄한 조선에 『조선지광』이 출(出)하였도다. 캄캄한 세계에 『조선지광』이 출하였도다. 이 『조선지광』이 가까이 조선에 조(照)하고 멀리 세계에 조하도다. 이에 조선인은 앞길을 찾고 세계인은 ‘조선의 광’을 앙(仰)하리로다."
창간호에 실린 편집진을 보면, 주간에 장도빈, 집필인에 강매(姜邁), 장응진(張膺震)·선우전(鮮于全)·황달영(黃達永)·이대위(李大偉)·주종의(朱鍾宜) 등이다. 
목차를 보면 장도빈의 「조선민족의 미래를 논함」, 강매의 「정신생활과 문화가치」, 장응진의 「중등교육에 대한 희망의 일단」, 선우전의 「실력주의」, 황달영의 「만언불휴」, 주종의의 「여학교를 설립하라」, 이대위의 「Editorial」, 장도빈의 「조선민족발달사개론」, 최린 등 「5대가의 시국담… 崔麟·李昇薰·朴勝鳳·許憲·劉銓」, 「조선 10대 위인전… 檀君·東明王·溫祈王·新羅太祖·廣開土王·乙支文德·淵蓋蘇文·渤海太祖·姜邯贊·李舞臣’」등과 몇 편의 문예물이 실려 있다.
첫머리에 실린 장도빈의 「조선민족의 미래를 논함」이라는 글은, 민족의 애끓는 소리를 담은 ‘시국선언’이다. 제1절 ‘조선민족의 현재는 어떠하뇨’에서 그 일부를 소개한다. 
"지금 조선민족은 쇠약하였도다. 정신으로나 물질로나 다 쇠약하였도다. 이렇게 쇠약한 원인은 하(何)이뇨. 그 원인이 다(多)하지만 일언으로써 폐(蔽)할진대, 근대 조선민족이 1) 혁신치 못하고, 2) 계속치 못하였음이라, 다시 말하면 조선민족은 고유의 미풍(美風)은 퇴보시키고, 시대의 진보에 낙오하였도다."
제2절은 '조선 교(古)문화의 연구와 세계 신문화의 수입', 제3절은 '교육과 식산(殖産)과 협동', 제4절은 '조선민족의 미래는 어떠할까' 등인데, 마지막 결구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매우 총명한 본성이 있나니 우리는 우리의 자각이 생긴지라, 지금 향학열이 저렇게 성(盛)한 것과 근로하는 인(人)이 많아짐과, 모든 남녀가 활동함을 견(見)하면 확실히 우리의 자각이 생긴지라, 그런즉 차제(次第)로 우리의 결점이 없어지고 선과(善果)가 성숙하여 교육의 왕성, 식산의 진흥, 협동의 공고(鞏固) 등으로써 우리의 재생(再生)을 실현할 날이 있나니라."

 

3. 사회주의적 성향의 잡지들과 『조선지광』

 

『조선지광』은, 그 이전의 『신생활』, 그 이후의 『비판』과 함께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한 잡지로 알려져 있다. 
3·1운동 이후에는 레닌의 혁명이론이 수입되고 노동자 단체인 서울공제회가 조직되는 등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되는 현실과 같이 하여, 사회주의를 하나의 신념체계로 받아들인 지식인이 늘어갔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언론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장덕수와 김명식을 들 수 있다. 이들은 1920년대 초반 국내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한 사회혁명당 (상해파)소속으로 둘 다 『동아일보』에서, 장덕수는 주필로, 김명식은 논설위원으로 활약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사회주의 확산을 주도한 매체는 신문이 아니라 잡지였다. 지식인 사회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자 좌파 잡지 들이 많이 발간되었다. 사회주의자들 내부에서 분리와 대립 역시 더해가면서, 1922년 1월 15일 타계한 김윤식의 사회장 추진을 둘러싸고 장덕수와 첨예한 감정 대립을 보인 김명식 등은 결국 상해파를 탈퇴했다. 김명식을 비롯한 유진회,신일용, 이혁노, 이성대, 정백 등 일군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른바 ‘신생활그룹’을 형성하여 1922년 1월 15일 민족주의자들인 박희도,이승준 등과 자본금 1만5천 원으로 신생활사를 창립하였고 1922년 3월11일 『신생활』을 창간했다. 신생활사는 창립총회에서 박희도를 이사 겸 사장으로, 김병조를 전무이사로, 강매 김명식, 김원벽, 이경호, 이승준, 민관식 등을 이사로 선출했다. 신생활사는 1922년 10월 사업을 확장할 목적으로 자본금을 4만 원으로 증자하고 순간을 주간으로 바꾸고 인쇄소를 사들여 자체 인쇄시설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잡지의 러시아혁명 5주년 기념호 내용이 문제가 되어 11월 22일 발행금지 처분을 당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좌파 잡지인 『신생활』은 폐간되었지만 그 뒤로 여러 갈래의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좌파 잡지를 발행했다. 『조선지광』을 비롯하여 『신계단』, 『비판』, 『사상운동』, 『이론투쟁』, 『노동운동』 등이 대표적인 좌파 잡지이다. 
이중 『조선지광』은 유물론 및 사적유물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26년 8월 58호에서 ‘연구생’이름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단편」이라는 논설을 실었으며, 1926년 11월 61호에서는 『조선일』기자로 1925년 12월 조공 상해부 상해야체이카 위원을 지낸 사회주의자 양명이 유물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비판한「사회과학의 진보와 종교」라는 논설을 싣었다. 또 일본인이 쓴 논설을 이영성이 번역한 「변증법과 마르크시즘」도 실었다. 
1927년 3월호의 목차를 보면 독고독의 「사상단체의 해체시비」, 김만규의 「조선의 신흥운동」, 김추수의 「조선소작관습의 일단」, 한치진의 「동적 생활주의의 도덕문제」, 공평학인의 「생명과 의의」, 박형병의 「사회진화의 필연성을 논함」, 박영희의 「무산예술의 집단적 의의」, 한병도의 「계급대립과 계급문학」, 이인걸의 「중국무산계급과 그 운동의 특질」, 신언준의 「투쟁의 철학」, 대산생의 「신간회창립총회 방청기」, 오기석의 「과학과 의의」, 서춘의 「경제적 신용의 필요」, 김적우의 「무산계급적 아동운동」, 염상섭의 「나에게 대한 반박에 답함」, 심훈의 「정치운동의 ABC」등과 기타 문학 작품이 실려 있다. 여기서 독고독·김만규·박형병·박영희·김적우 등은 사회주의자로 볼 수 있다.
이후 특히 1926〜1927년 에는 안광천·박문병·박형병·박영희 등 사회주의자들의 글이 많이 실렸다. 1926년 부터 1928년 까지는 사상단체의 해체 문제, 정우회 선언, 신간회의 발족, 신간회 내의 헤게모니 쟁탈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안광천과 박문병의 논쟁적인 글이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지광』은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노선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러한 사상론 이외에도, 한병도(한설야)의 「계급대립과 계급문학」, 박영희의 「무산예술의 집단적 의의」같은 카프(KAPF) 논쟁에서의 중요한 문학비평을 게재했다. 1928년부터는 철학사상보다는 당시의 당명 문제인 사회운동 문제, 농촌문제, 예술운동 문제 등 현실적인 주제에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4. 조선공산당 기관지 여부

 

이처럼 『조선지광』에 발표되는 글의 성향은 분명하게 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조선공산당 기관지였느냐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당시 총독부 경찰당국종로경찰서은 공산주의자인 주종건(朱鍾健)이 실제로는 전권을 쥐고 있었다고 보았다. 즉 당시 외부로는 발행을 위한 경비를 여러 사람들이 출연하는 것으로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주종건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최팔용이 김립으로부터 받은 선전비 가운데 나머지를 보관하고 있던 자금을 주종건이 받아서 『조선지광』을 인수하여, 폐간된 『신생활』을 사실상 부활시킨 것이다. 그래서 기자로 유진희·신일용·변희용·정백·이성태·이정윤 등 공산주의자들을 채용하여 공산주의를 선전하려 하였다는 주장이다.
실제 『조선지광』과 조선공산당은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 확실한 근거는 불분명하나, 제1차 조선 공산당 산하의 고려공산청년회는 한때 『조선지광』을 기관지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분명치 않다. 제4차 조공에서는 1928년 2월 27일 제3차 대회에서 이정윤이 『조선지광』을 새로 당 기관지로 지정할 것을 동의하여 가결하고, 책임자를 이성태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 자료 때문에 그동안 여러 연구자들은 『조선지광』이 조선공산당의 기관지로 되었다고 보아왔다. 그러나 이후에도 조공 관계자들이 『조선지광』을 인수한 것은 아니었고, 4차 조공은 얼마 존속하지 못했다. 또 『조선지광』은 1932년 초까지 김동혁에 의해 계속해서 발간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지광』이 조선공산당의 기관지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5. 맺음말

 

조선공산당 기관지였는지의 여부와는 별도로,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적 사상이 전면적으로 부각되던 시기, 『조선지광』은 『개벽』과 쌍벽을 이룬 종합지였다. 더구나 사회주의문학·프로문학·계급문학·노동문학·이데올로기문학·카프문학 등으로 일컬어진 ‘신경향파문학’ 의 작품들은 주로 『개벽』과 『조선지광』에서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처럼 왕성하던 『조선지광』은 제 100호인 1932년 1·2월 합병호를 2월에 내놓고는 종간되었다. 그 후신으로 나온 것이 사회주의 성향의 잡지『新階段』(1932. 10 발행인 兪鎭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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