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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乾坤(별건곤)
이을 | 개벽사, 1926년 11월
개벽사 , 별건곤 , 대중잡지 , 이을
『별건곤(別乾坤)』은 1926년 11월 1일자로 창간된 대중잡지인데, 1934년 8월 통권 74호로 종간되었다. 이는 1926년 8월 『개벽』이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폐간당하자 그 대신 내놓은 잡지이나, 『개벽』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여 취미와 실익을 위주로 한 대중잡지이다. 창간호의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이을(李乙), 인쇄인 민영순(閔泳純), 인쇄소 대동(大東) 인쇄(주), 발행소 개벽사(서울?경운동 88)...

1. 창간 개요

 

『별건곤(別乾坤)』은 1926년 11월 1일자로 창간된 대중잡지인데, 1934년 8월 통권 74호로 종간되었다. 이는 1926년 8월 『개벽』이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폐간당하자 그 대신 내놓은 잡지이나, 『개벽』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여 취미와 실익을 위주로 한 대중잡지이다. 창간호의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이을(李乙), 인쇄인 민영순(閔泳純), 인쇄소 대동(大東) 인쇄(주), 발행소 개벽사(서울․경운동 88), A5판 150면, 정가 50전이다. 발행인 李乙은 당시 개벽사 광고부 책임자였다. 1년 뒤에 발행인이 차상찬으로 바뀌었다.

 

2. 창간취지

 

창간호에 게재된, “貧趣味症慢性의 朝鮮人 (빈취미증만성의 조선인)”이라는 글에서, 잡지를 내놓는 창간의 변을 대신하고 있다.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인류는 본래 사교적 동물이다. 군중 생활을 하여야 되는 본능을 가지고 잇다.....이와 가튼 사실에 鑑하야 본다 하면 인간 본능에는 성적 본능, 物的 본능, 名的 본능이 잇는 밧게 사교 본능이 잇는 것을 이저서는 안되겟고 또 이것이 얼마나 인간 생활 상에 크나큰 세력을 차지하고 잇는가가 명백한 사실이라 하겟다..... 그럼으로 이 사교 심리를 만족 식힘에는 「취미」가 만흔 군중 생활이라야 된다. 오늘날 농촌ㅅ 사람이 거리로 몰리고 적은 거 ㅅ사람들은 또다시 大都會로 집중하는 것은 복잡한 都會에는 취미 기관이 만흘 것을 동경하는 사교 본능에서 나온 慾的 충동이라 하겟다. 
무미건조한 생활을 실허하고 윤기잇는 취미 생활을 요구함은 이 보통 사람의 심리이다. 그러고 보면 생활한다는 것만이 생활이 아니고 위안과 취미가 附屬된 생활이라야 의의잇는 생활이라 하겟다.
......貪趣味症慢性에 걸린 조선인』은 거의 생활의 凋落이 극도에 달하야 그 氣息은 자못 엄엄한 상태에 잇다고 말하고 십다. 
보라! 오늘날 조선 사람치고 인간적 취미를 가지고 생활하는 자 몃 사람이나 되는가? 
월급 푼에 팔려서 다이푸라이타 모양으로 살아가는 官公吏 及 敎員, 회사원이 잇스니 그네들에게는 인간적 취미가 풍부타 할가? 물론 먹고는 살 것이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 뿐이 생활의 취미는 아니다.....
商利에 몰두되여 점포에서 공장에서 勞勞役役하는 상공업자가 잇스니 그네들에게 인간적 취미가 풍부타 할가? 그 亦 먹고는 살 것이다. 그러나 먹는 것 뿐이 생활의 취미는 아니다. 
진실로 그럿타. 우리 조선에 活動寫眞館이 몃 개지만 그것이 노농대중에게 무슨 위안을 주엇스며 舞蹈, 음악이 유행하지만 그것이 또한 노농대중에게 무슨 취미가 되엿느냐? 박물관, 동물원, 공원, 극장이 다 그러하다. 그것은 다 일부 인사의 독점적 享樂 機關이 되고 마랏다. 우리의 노농대중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든지 이 貧趣味症을 免해 볼 길이 업다. 이제 慢性에서 운명을 재촉할 뿐이다. 
.....
그런데 대체 취미라 하면 그 범위가 그 사람을 따라 달나가나니 한사람 한사람을 본위로 하야 논할 것이 올타. 사람의 얼골이 십인십색인 그마 마치 이 취미도 또한 십인십색이다. 한잔을 마시고 흥이 나서 조와하는 사람 일하든 한참에 담배 한 대가 유일한 맛으로 아는 사람은 酒草의 취미로 살는지 몰나도 그것을 실혀하는 사람은 아모 위안도 못될 것이오 도리혀 고통일 것이다. 
화류계에 출입하며 歌舞鼓吹와 酒池肉林에 흥겨워 노는 것을 위안으로 하는 사람도 잇지만 돈업는 사람은 천만부당한 일, 등산, 기차 여행 등을 취미로 아는 사람도 잇스나 그것을 실혀하는 사람도 잇고 그것이 못되는 사람도 만타하면 민중적 취미는 못될 것이다. 온천, 약수도 또한 그러하다. 삐이오린, 만또린, 오루간, 피어노를 가춰놋코 사이사이 한 곡조 울리는 것을 유일한 취미로 아는 신사숙녀가 잇지만 그는 더욱 유산계급의 享樂所爲이고 대중적 취미는 못될 것이다....
여기에서 민중적으로서의 오락 기관이 생기게 되고 공통되는 취미 기관이 필요케 된다. 그러되 그것은 돈과 장소에 拘碍를 밧지 아니하여야 될 것이 제일 요건이 될 것이다. 
.....
나는 이번 나온 이 취미 잡지가 貧趣味症慢性에 걸린 조선인에게 起死回春의 良劑되기를 바라고 붓을 놋는다.”

편집후기인 「여언 餘言」의 일부에서도 잡지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아픈 생활에서 때때로는 웃어도 보아야겠다. 웃어야 별수는 없겠지마는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것도 아니다. 우리는 형편도 그렇게 되지 못하였지만 웃음을 웃을 줄도 모른다. 자! 좀 웃어보자! 입을 크게 벌리고 너털웃음 웃어보자. 그렇다고 아픈 것을 잊어서도 아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벌써 1년이나 전부터 취미와 과학을 갖춘 잡지 하나를 경영해 보자고 생각하였었다. 『개벽』이 금지를 당하자 틈을 타서 『별건곤』이라는 취미잡지를 발간하게 되었다. ”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별건곤』의 창간 취지는 ‘무산자의 취미 증진’을 겨냥하고 있었다. 즉 ‘취미’를 목적을 발간된 최초의 잡지인 셈이다.『별건곤』에서 ‘취미’는 인간의 본능으로서 간주되고, 무산 노동계급은 경제적으로 그 본능을 억압당해 ‘寶趣味振’이 ‘慢性’화된 것으로 평가한다. 인쇄물을 통한 취미의 증진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주장된다. 그리고 인쇄물에 의한 취미의 증진은 문학의 제 장르를 포함하여 다양한 양식의 소설 외 서사 그리고 영화와 음악, 상식에 이르기까지 망라된 것이었다.
결국, 앞 시기『개벽』 등이 담당했던 민족계몽과는 달리, 취미, 즉 가벼운 읽을거리와 흥미, 오락, 여가의 개념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한국 근대잡지사에서, 계몽에서 이런 취미(여가 / 흥미 / 오락)으로의 변모를 가장 앞서 제기한 것이『별건곤』이고, 이런 경향은 이후 나온『삼천리』, 『조광』 등 대중종합지로 그대로 이어진다.

창간호 목차는 아래와 같다.

李箕永 이기영 朴先生 / 尙火 상화 地球黑點의 노래(1925作) / 懷月 회월 徹夜/ 웰스(原作), 影洲(... 世界的 名作 八十萬年後의 社會, 現代人의 未來社會를 旅行하는 科學的大發見/鼻下八寸 / 李益相 이익상 婦人運動者와 會見記 /碧朶 벽타 貧趣味症慢性의 朝鮮人 / 夜雷 야뢰 大宇宙와 趣味 /八峰 팔봉 新秋雜筆 / 鄭錫泰 정석태 洋行中 雜觀雜感 /李樂春 撰 이악춘 ... 世界音樂名曲解說 /웻딍테블生 自由結婚式場巡禮記(一), 抱腹絶倒할 結婚 形式의 各樣各色 /一記者 일기자 名士의 遺族訪問記(其一), 朝鮮語硏究에 一生盡ㆍ한 周時經先生의 遺族을 찻고/ 車相瓚 傳記 萬古精忠 林慶業將軍 /金振九 김진구 金玉均先生의 배노리/速記者 속기자 對話 暗室鶯歌, 『輿論』社 編輯室의 一日生活記 / DTY DTY 사랑의 마호멧트 / 金滄海 김창해 海洋中에 잇는 人魚는 美女인가 動物인가ㆍ, 아름다운 傳說에서 자미잇는 科學으로/ 盤松雀 반송작 제비의 旅行과 기럭이의 問安/ 崔承一 최승일 身邊雜事(雜筆), 東京行/鄭顯模 정현모 周王山探勝記 / 餘言

창간호의 목차는 고ㆍ저급의 구별 없이 구성되어 있다. 창작(소설, 시) .수필 · 상화ㆍ풍자, 논설, 방문기, 번역 · 傳記, 상식ㆍ잡조 등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이 분류에 속하기 어려운 매우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가 대거 등장한다. 특히 經驗談과 探記(르포)ㆍ對話와 풍자, 哀話와 實話, 史話와 野談, 手記와 萬話, 奇談과 怪談, 漫談(코믹)과 閔話풍의 이야기, 對談, 방문기, 解說. 지상논쟁, 說問(앙케이트) , 品評등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별건곤』에서 등장해 1920년대의 잡지와 신문에 저변화된 양식들이다.

 

3. 대경성 백주암행기, 대경성 암야탐사기

 

이처럼 종류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기사들이 등장했고, 이것들이 대부분 몇 년 후『조광』, 『삼천리』로 확장되지만, 『별건곤』만이 갖는 가장 특색있는 기사를 꼽으라면 아마도 「대경성 백주 암행기」, 「대경성 암야탐사기」란 일 것이다.
이 글은 편집장의 명령으로 서울의 불특정 지역을 정해진 시간 동안 탐방하고, 그 즉시에서 기사거리를 찾아 쓴 기사이다. 「암야탐사기」는 서울의 한밤중의 세태의 풍경을, 「백주 암행기」는 서울의 한낮의 풍경을 생생하게 기록했고, 이는 1927년 2월~1929년 2월 동 지속적으로 씌어졌다. 
이를 통해 가난한 사람의 노숙자, 거지, 땅꾼, 백화점과 카페의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취객과 음란한 연애, 여학생 기생, 야시, 야앵(밤벚꽃놀이) 마약중독자, 인신매매범 등, 당시 막 형성되는 대도시 경성의 겉과 속이 낱낱이 기록되고 있다. 이런 한밤중의 음습한 욕망이 오가는 뒷골목의 풍경뿐 아니라, 한 낮의 경성일보, 백화점, 한성은행, 재판정에서 눈물 흘리는 사연, 경찰서, 검사국 대기실, 직업소개소, 서울 부근의 토막민들 등을 통해 서울을 둘러싼 계급과 계층의 분화, 식민지하의 도시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사가 일개 기자의 임의적 기사가 아니라, 편집장의 명령으로, 정기적으로 기획된 기사라는 점에서-실제로 기자들은, 밤 12시에 출동하느라 졸린 눈을 비벼 뜬다든지, 밤거리를 다니기 위해 동네 야경꾼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 등을 기록하기도 한다.『별건곤』 편집진이 당대 대도시 경성의 도시성을 예의 주시하는 새로운 리얼리티에 대해 매우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대중 잡지 『별건곤』의 위치

 

『별건곤』은 거의 8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발간되었다. 1932년 2월까지 200쪽가량의 분량으로 한 권에 50전에 판매되다가, 1931년 1월 『신여성』이 다시 속간되고 1931년 3월 『개벽』의 후신인 『혜성』이 창간되면서, 1931년 3월부터 60쪽 정도 분량의 5전 잡지로 발행되다가 결국 1934년 8월에 종간되었다.
당시 『별건곤』의 정확한 발행 부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1931년 『별건곤』이 가격을 5전으로 인하한 후 독자층이 지식인 중심에서 일반 대중으로 급격히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별건곤』의 편집후기를 보면 당시 발행 후 3일 만에 절판된다 하여 ‘삼일 잡지’,‘절판 잡지’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2만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한다. 『별건곤』에는, 잡지를 구독하고 있는 독자가 잡지가 도착하면 우체국에서 먼저 보고, 우체부가 이장 집에 배달하면 이장과 동네 사람들이 돌려 보았다. 그러므로 잡지의 발행부수로만 그 독자에 대한 영향력을 평가할 수 없다. 1930년대 초반, 『별건곤』은 대략 십만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잡지와 유사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취미, 가벼운 읽을거리를 표방하고 등장한 『별건곤』은, 1930년대 들어 특히 더 시사적인 내용의 기사가 줄어들고, ‘에로 그로 넌센스’ 성의 기사들로 많은 지면이 채워졌다. 발행 초기 ‘취미독물’임을 내세웠던 『별건곤』의 가격은 50전으로 중간층 이상의 사람들만을 겨냥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반면, 1932년부터는 잡지의 가격을 5전으로 내리며, 발행 목적 또한 “일반 대중에게 보다 널리 읽히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1929년 이후 과도해진 잡지사들간의 경쟁, 더 자극적인 내용을 통해 독자를 확보하려는 경향이 잡지 가격 인하와 “에로, 그로” 기사의 증가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개벽』을 통해 민족과 계몽이 결합될 수 있는 근대잡지의 모범답안을 보여준 개벽사가, 역설적으로 『별건곤』을 통해 근대 잡지가 갈 수 있는 대중성, 오락성, 상업성이라는 또 다른 방향성을 가장 예리하게, 가장 시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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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 저자 발행년도 소장기관 콘텐츠유형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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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乾坤」을 중심으로 본 신여성의 복장에 관한 연구 김희정 2004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국내학술지논문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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