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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태
김성환 | 동아일보7769, 1979.10.27
계엄선포 , 중앙정보부 , 김재규 , 박정희 대통령 , 중화학공업
고바우씨가 한가롭게 두 발을 책상위에 길게 올리고 회전의자에 앉아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라디오에서 ‘계엄선포’라는 말이 느닷없이 흘러나온다. 유신헌법 발효이후 19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강권통치로 인해 대학가에서도 좀처럼 시위가 발생하지 못할 때였다. 따라서 계엄령이나 위수령 등의 비상사태가 수년 동안 내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던 만큼 ‘계엄선포’라는 라디오 보도에 고바우는 화들짝 놀란다. 그것도 매우 놀란 모습을...

국립중앙도서관│고바우현대사 3권 317p

내용

고바우씨가 한가롭게 두 발을 책상위에 길게 올리고 회전의자에 앉아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라디오에서 ‘계엄선포’라는 말이 느닷없이 흘러나온다. 유신헌법 발효이후 19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강권통치로 인해 대학가에서도 좀처럼 시위가 발생하지 못할 때였다. 따라서 계엄령이나 위수령 등의 비상사태가 수년 동안 내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던 만큼 ‘계엄선포’라는 라디오 보도에 고바우는 화들짝 놀란다. img_10.26사태 1
그것도 매우 놀란 모습을 표현하느라 김 화백은 고바우를 회전의자에서 튕겨 올라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 번째 장에서 고바우씨는 의자에 앉아 벌벌 떨면서 라디오를 지켜보고 있다. 말 그대로 초긴장상태다. 라디오에서 어떤 놀랄 뉴스가 이어질까하고 노려보는 모습이 당시 시국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라디오에서 ‘박 대통령 서거’라고 간략한 멘트가 흘러나온다. 고바우는 의자에서 다시 튕겨져 올라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만화의 칸에 그의 얼굴이 잡히지 않는다. 만화적으로 벽을 뚫을 정도의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다. 김성환 화백은 박정희 18년 집권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매우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였다. 만화 곳곳에 ‘법’ 또는 ‘법치국가’, ‘민권’이라는 단어가 등장시킬 정도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표현하였다. 그런 김 화백에게 경천동지할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10.26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사건 다음날인 1979년 10월27일, 김 화백은 위의 내용으로 고바우영감을 게재한다.
 

그해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은 KBS 당진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참석한 후 서울에 올라온다. 그날 저녁 박 대통령은 궁정동 소재의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등과 함께 가수 심수봉과 여대생을 불러 연회를 가진다.
이 자리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불길이 일고 박 대통령은 수도육군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오후 7시50분경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당시 박정희의 나이는 만 62세.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모든 측면에서 사면초가에 처해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인해 1977년과 78년의 호황이 계속되지 못하고 성장률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사건으로 정국이 급랭하고 있었고 부산과 마산지역에서 반정부 시위까지 발생하여 정치적인 위기상황을 맞고 있었다. 
더욱이 집권층 내부의 갈등이 부마사건의 처리문제로 더욱 커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1인 장기집권에 의한 한국의 인권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점을 들어 인권상황의 개선을 지속적으로 종용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정치 외교 경제적 측면의 모순이 서로 맞물려 유신통치의 한계상황을 맞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권력 실세간의 갈등이 심복에 의한 저격사건으로 이어졌다.img_10.26사태 2
 

위키백과사전에 나온 10.26사건을 발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해 10월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박 대통령과 함께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과 당지에 있는 중앙정보부 시설을 가려고했다. 
하지만 ‘권력의 2인자’라 불리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일방적으로 김재규를 제외시켰다. 김재규는 차지철을 제거해야한다고 판단한다. 
궁정동 안가에서의 연회를 준비하면서 제거계획도 지시를 해둔다. 술을 겸한 저녁식사를 들면서 박정희는 정치 및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대규모 소요사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재규를 질타했다. 
또한 신민당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온건한 자세도 비판했다고 한다. 
평소 대학생시위와 노동자 파업에 대해 강압적인 진압을 주장했던 차지철도 지나치게 온건한 대응으로 혼란이 더 커졌다고 부추기며 “반항하는 자들은 모두 탱크로 눌러버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건의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김재규는 사전에 정승화 참모총장 등을 안가로 초청해두었으며,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박대통령이 있는 만찬장으로 이동한다. 
먼저 김재규는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형님, 각하를 좀 똑바로 모십시오!”라고 큰 목소리로 말한다. 이어 김재규는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놈(차지철)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너 이 새끼 차지철, 아주 건방져! 죽일 놈!”하며 권총을 꺼내 팔을 맞춘다. 박 대통령이 “무슨 짓이야? 김부장!”이라고 말하자 김재규는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말하고 박정희의 가슴에 총을 쐈다. 그 총소리에 중정 부하들은 대기실에서 경비원들과 경호원들을 사살한다. 
이렇게 10.26사건은 권력층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10.26 사건 이전에 김재규가 미국의 CIA 한국지부장를 만났다고 하여 미국의 개입설을 이야기하나 재판때 직접적인 개입에 대해서 김재규 본인이 부정했다. 김 화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내용의 고바우영감을 그 뒤에 게재하는데, 밤하늘에 별이 하나 진다. 그리고 그 밤거리의 무대를 열어 재치면서 “다시 역사가 시작 되는구나”라고 말한다. 박정희의 서거를 새로운 역사의 분기점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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