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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
김성환 | 동아일보7106, 1977.08.24
집값 , 부동산 , 주택가격 , 토지 가격 , 분양가 규제
10년을 주기로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 ‘10년 주기설’을 이야기하는 학계 및 부동산 시장의 공통된 시각이다. 최초의 부동산 폭등은 1970년대 후반에 발생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1974년 오일쇼크 이후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는데, 1976년부터 세계경기가 되살아나면서 한국 경제도 회복세를 보였고 게다가 중동특수까지 겹치면서 서울의 땅값이 136%(1978년)를 치솟게 된다. 두 번째는 3저 호황기였던...

국립중앙도서관│고바우현대사 3권 254p

내용

10년을 주기로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 ‘10년 주기설’을 이야기하는 학계 및 부동산 시장의 공통된 시각이다. 최초의 부동산 폭등은 1970년대 후반에 발생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1974년 오일쇼크 이후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는데, 1976년부터 세계경기가 되살아나면서 한국 경제도 회복세를 보였고 게다가 중동특수까지 겹치면서 서울의 땅값이 136%(1978년)를 치솟게 된다. 두 번째는 3저 호황기였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기간이며 세 번째는 풍부한 저금리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부동산가격이 폭등한 2001년 이후이다. 첫 번째 부동산 시장의 과열현상은 온 국민이 처음 경험하는 터라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고, 그 기간에 등장한 ‘복부인’들의 활개에 일반서민은 급하게 오르는 부동산가격을 눈뜨고 지켜봐야만했다.
img_집값 상승

1977년은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 해이다. 당시 정부는 1980년까지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를 목표로 매진하던 때인데, 수출목표가 조기에 달성된 것이다. 그 이유는 수출경기가 1976년부터 호전 된데다 국제 에너지가격이 안정되고, 중동의 건설 붐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중동지역에 진출한 해외기능공의 숫자가 3배가 늘어 4만여 명에 달하던 때인데, 그 해 한국의 경상수지는 중동에서의 달러 유입과 수출호조로 123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경제성장률이 10%를 넘는 고공행진을 한데다가 달러가 남아돌게 되고, 더욱이 정부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풀면서 시장의 통화량을 빠른 속도록 팽창하게 된다. 그 결과 당시 도매물가상승률이 11.6%를 기록한다. 이런 경제 상황은 자연스럽게 부동산시장을 자극하여 토지와 주택의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래서 1977년부터 아파트 투기바람이 인 것이다. 현재는 부도가 난 삼익주택이 당시 여의도의 목화아파트를 분양하는데 경쟁률이 당시 최고수준인 45대1이었다. 그 이어 분양된 화랑아파트는 70대1이었다. 당첨자들은 하루아침에 15~250만원의 웃돈을 거머쥐게 되었다. 많게는 하루아침에 쌀 100가마의 돈(당시 80kg 쌀 한가마의 가격은 2만4196원)을 벌게 되니 여윳돈을 가진 복부인들이 당연히 아파트 분양시장으로 몰린 것이다. 또한 부동산 미등기전매가 가능하던 때라 한 다리만 건너면 20~30%의 프리미엄까지 얻을 수 있는 손쉬운 돈벌이를 누가 마다하였겠는가.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결과이지만 건설부의 당시 표본조사에 따르면, 이런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투기세력에게 분양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복부인’ 역사의 시작이다. 
 

김성환 화백은 1977년 8월24일자 고바우영감을 통해 당시 주택시장이 서민들의 바람과 달리 급하게 상승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첫 장면은 400만원이라고 적혀 있는 주택을 향해 평범한 서민이 땀을 흘리며 ‘헉헉’하면서 달려간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그 집 앞에 도착하자 400만원으로 적힌 주택이 600만원으로 올라 ‘깡충’ 뛰어간다. 세 번째 장면에선 다시 600만원을 저축한 시민이 ‘헉헉’ 거리면서 달려간다. 그러자 그 주택의 가격은 900만원으로 바뀌고 산토끼마냥 ‘깡충’ 뛰어가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거기서 서민은 600만원의 돈더미 앞에 무릎 꿇고 “깡충 깡충 뛰면서 어디로 가~느냐?” 산토끼 노래를 부른다. 서민들의 저축으로는 도저히 오르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김 화백은 말하고 있다.
 

1977년 당시 분양된 반포2단지 16평 아파트의 가격은 579만 원 정도. 약 쌀 2390가마 정도의 가격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가격은 평당 33만원. 24평 기준으로 792만원이다. 일반 서민들은 언감생심, 쳐다볼 수 없는 가격이다. 보통 강북지역의 주택 가격은 300~400만원 정도였다. 이런 가격이 한 해에 136%나 오르는 상황을 상상해보라.(1978년 전국 땅값은 평균49%가 올랐다) 콩나물가격 아껴가며 한푼 두푼 저축하여 집을 사려하는데, 이미 주택가격은 자신의 저축액보다 더 오른 상황. 이게 그 시절 서민들의 풍속도였다.
 

이렇게 토지 및 주택 가격이 오르자 박정희 정부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1977년에는 분양가 규제 등의 내용을 담은 부동산투기억제특별조치법을 발표하였고 1978년에는 ‘8.8조치’로 이름 지어진 ‘부동산 투기억제 및 집값안정을 위한 종합대책’과 추가 대책을 내놓는다. 미등기 전매에는 양도세 100% 부과, 부동산소개업 허가제 실시, 양도소득세 및 토지 건물의 기본세율 50%, 인감증명의 유효기간을 3개월에서 1개월로 변경하는 등 10개 항목의 부동산 투기억제 종합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 조치의 정책적 의미는 토지거래신고제 등을 만들어 부동산으로 이익을 본 사람들에게 무겁게 세금을 부과하고 부동산을 사고팔 때 정부가 감시하겠다는 것이었다. 8.8조치와 같은 해 발생한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 터지면서 이번에는 부동산 경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는데,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한풀 꺾인 부동산 가격 때문에 한시름 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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