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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상 뒤에 가린 노동자의 저임금
김성환 | 동아일보6905, 1976.12.22
GNP , 경제지표 , 100억불 수출 달성 , 고바우
“상품은 공장에 들어가 값진 물건이 되어 나오지만 인간은 공장에 들어가 폐품이 되어 나온다.” 돌아가신 교황 비오 11세가 발표한 회칙 ‘사십주년(1931년)’에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1970년대 우리 노동자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고 김수환 추기경도 “1970년대 노동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농촌에서 올라온 앳된 소녀들은 먼지구덩이 작업장에서 장시간...

국립중앙도서관│고바우현대사 3권 228p

내용

img_수출상 뒤에 가린 노동자의 저임금“상품은 공장에 들어가 값진 물건이 되어 나오지만 인간은 공장에 들어가 폐품이 되어 나온다.” 돌아가신 교황 비오 11세가 발표한 회칙 ‘사십주년(1931년)’에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1970년대 우리 노동자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고 김수환 추기경도 “1970년대 노동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농촌에서 올라온 앳된 소녀들은 먼지구덩이 작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생존권을 요구하자 기업주와 정부  당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요구를 짓밟았다.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노조 탄압사건이 줄을 이었다”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에서 밝히고 있다. 
 

이렇게 1970년대는 수출목표와 GNP 등 거시지표가 지상최대의 과제였으며, 또 수출상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연말에 수출을 많이 한 기업을 대상으로 상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수출의 역군들은 기업주의 횡포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1978년 동일방직 노조탄압 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8월20일 명동성당 기도회 강론에서 “나라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조국건설의 역군이라고 부르는 연약한 여성 근로자들을 이렇게 학대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왜 이렇게까지 사람이 사람을 짓밟고 울려야합니까? 이 나라 법은 약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까? 정부 당국과 기업주는 제발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자중하고 인내했습니다. 그러나 힘없는 이들을 계속 짓밟으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앙에 따라서 행동할 것임을 밝혀둡니다.”라고 말했다. 종교계에서도 노동문제를 주요한 사회문제로 이해하고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 
 

김성환 화백도 전태일씨의 분신 이후 노동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고바우영감을 통해 자주 내비친다. 1976년 12월22일자 고바우영감에는 이런 만화가 실린다. 첫 장면에는 장수가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 칸의 좌측에는 ‘장수 하나가 공을 세우려면…’이라고 적혀있다. 두 번째 칸에는 ‘수만 군사가 피를 흘리고…’라고 적혀있고 깃발을 든 장수의 발밑에 수만의 병사들이 쓰러져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것을 옆에서 물끄러미 고바우가 바라보고 있다. 세 번째 장면에는 시대가 바뀌어 현재, 김 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그 시점에서 어는 수출기업의 사장이 커다란 수출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나온다. img_수출상 뒤에 가린 노동자의 저임금2그리고 그 장면의 좌측상단에는 ‘기업가 하나가 공을 세우려면…’이라고 적혀있다. 마지막 장에는 그 상을 받은 사장 아래에 여공들이 무수히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그리고 글에는 ‘수만명 공원이 땀을 흘리고…’라고 적혀 있다. 이를 바라보는 고바우 쪽으로 두 명의 여공이 봉투를 들고 나간다. 그 봉투에는 ‘저임금’이라고 적혀있다. 김 화백은 저임금의 노동자들에 의해 수출상을 받는 대기업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성공한 장수의 모습과 대구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의 노동현실은 어떠했는지 경제지표를 더듬어보겠다. 1970년 임금노동자는 378만6000명이었으며 1979년에는 648만5000명으로 배 정도 늘어난다. 임금노동자의 업종별 비중도 같은 기간 제조업이 28.2%에서 43.3%로 많이 늘어나며 기계,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 같은 중화학공업부문 노동자의 비중이 17%대에서 28%대로 급증하였다. 이처럼 노동자의 숫자가 크게 늘었지만 근로조건의 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1970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1.6시간이었으며 1970년의 평균임금도 최저생계비의 61.5%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거시경제지표가 좋아지면 같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인데, 1980년 평균노동시간은 1970년과 같은 51.6시간이었으며 평균임금은 오히려 더 낮아져 최저생계비의 44.6%였다. 1970년 수출액은 8억 4000만 달러였고 1980년 수출액은 175억 달러였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1978년 3월말 기준으로 모든 노동자 가운데 근로소득세 납부에서 제외되는 5만원 미만의 저임금 노동자가 76.7%에 달했고, 전체 노동자의 88.6%가 월 10만 원 이하의 저임금을 받고 있다. 1970년 전태일씨의 분신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노동문제가 아젠다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의 수치는 정부가 노동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김 화백은 다음해인 1977년 ‘100억불 수출 달성’이 이뤄졌을 때 같은 내용의 만화를 그린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100억 달러 수출목표 달성을 홍보하던 시절이다. 그 만화에는 한 기업주가 ‘100억불 수출’이라는 큰 트로피를 들고 자축하고 있다. 그 트로피에서 출렁이는 소리가 들리자, 뚜껑을 열며 “포도주까지 들어있구나”하고 기업주가 기뻐한다. 그러자 고바우는 “이거 땀이 아니오? 선생의 공장직공들의…”라고 말한다. 기업주는 얼굴을 숙이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여전히 노동자들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은 자본가의 귀에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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