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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통화개혁
김성환 | 동아일보2798, 1962.06.11
통화개혁 , 박정희정권 , 고바우영감 , 화폐개혁 , 군사정권
통화개혁은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서, 또는 사후 수습을 하기 위한 대책으로 시행되는 경제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통화개혁이 이뤄진다. 처음은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2월에 원에서 환으로 100:1 비율로 바꾸면서 이뤄지고, 두 번째는 5.16 군사쿠데타 발발 1년 뒤인 1962년 6월10일에 10:1의 비율로 환을 원으로 변경하면서 단행된다. 두 번 모두 시장에 화폐가 과잉 공급되어 인플레이션 압...

국립중앙도서관│고바우현대사 2권 36p

내용

통화개혁은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서, 또는 사후 수습을 하기 위한 대책으로 시행되는 경제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통화개혁이 이뤄진다. 처음은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2월에 원에서 환으로 100:1 비율로 바꾸면서 이뤄지고, 두 번째는 5.16 군사쿠데타 발발 1년 뒤인 1962년 6월10일에 10:1의 비율로 환을 원으로 변경하면서 단행된다. 두 번 모두 시장에 화폐가 과잉 공급되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자, 시장의 화폐를 흡수하여 인플레이션을 다스리기 위한 안정정책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실행된 두 차례의 통화개혁은 모두 효과가 크지 않았고, 오히려 가난한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mg_통화개혁 10:1 평가절하박정희 군정 하에서 단행된 2차 통화개혁의 실제 목적은 인플레이션보다는 장롱 속에 들어가 있는 돈을 시장으로 끌어내어 장기산업투자재원을 조달하고자하는 목적이 더 컸다. 군사쿠데타 이후 1년간 전례 없이 거액의 통화가 발행되어 시장에 공급되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 돈들이 투기자금으로 변할 위험이 있었고, 구 정권 하에서 음성적으로 축적하여 부정축재된 자금이 상당할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통화개혁을 통해 시장으로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박정희 군정은 유휴 퇴장자금을 동결하여 6개월 내에 설치될 산업개발공사의 출자주식으로 전환할 것을 계획했다. 즉 시장에서 사용되지 않고 장롱 속에 묻혀 있는 돈을 화폐 단위 및 화폐 자체를 새로운 단위로 사용하게 만들어서 억지로 시장에 나오도록 만들고, 그 돈을 바꿔주면서 산업개발공사라는 장기투자재원관리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하여 그 돈을 경제개발에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금봉쇄조치로 시중의 자금이 경색되는 부작용이 발생하자 결국 98억원에 달하는 당시의 예금동결조치를 해제하고 만다. 당시 한국은쟁장도 모르게 군인들에 의해 진행된 2차 통화개혁은 미국정부도 사전 통지를 받지 않아 외교적으로 마찰까지 발생하고 미국의 원조마저 막히게 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기 때문에 국민경제 전반이 흔들리는 결과만 낳았다. 이와 관련 김성환 화백은 『고바우현대사』에서 “이 통화정책은 가난한 서민들에게 고통만 주었으니, 그들이 무슨 여유로 금이나 쌀을 사재기해 놓을 수 있었겠는가. 차라리 자린고비처럼 굴비라도 한 마리 매달아 놓을 걸 하는 후회는 이미 때늦은 것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서민들의 아픔을 대신 말해주었다.
 

화폐개혁 다음날 신문에 실린 고바우영감의 내용은 이렇다. 고바우영감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데, 고바우영감의 부인이 득달같이 달려와 문을 열어젖히면서 “여보 크 큰일 났어요. 돈이 바뀌었어요”라고 말한다. 이 말에 고바우영감은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 “큰일났군”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서둘러 자신의 비자금을 숨겨놓은 가정용 턴테이블 안을 뒤진다. 이 모습을 영감의 부인이 바라보면서 “어머나 저런 속에 돈을 넣어 두었네?”라며 놀라고, 다음 장면에서 영감의 부인은 괘종시계 안에 넣어둔 자신의 비자금을 꺼낸다. 물론 고바우영감도 “앗~ 저 속에 돈을 모았었군”하며 놀란다. 이 만화의 압권은 서로 모르게 비자금을 감춰둔 것에 화가 나 틀어져 버린 부부의 감정이다. 고바우는 “흥! 돈 없다고 밤낮 콩나물국만 끓이더니 시원하겠군”하고 말하며 토라진다. 이에 영감의 부인은 “흥~ 옷감 한감 사달래두 안 사주더니 잘됐구려”라고 맞받아친다. 물론 서로 등을 돌리고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때 각자의 비자금은 방바닥에 어지럽게 놓여 있다. 그 돈은 이제 그냥 쓰레기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바우 부부가 서로 주고받은 감정서린 말들은 당시 가난한 서민들의 심정 그대로였다. 이에 대해 김성환 화백은 『고바우현대사』2권에서 “당시 화폐개혁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안간힘을 쓰고 모은 돈을 장롱 밑이나 이불 속에 숨겨 두던 사람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이며 그 때까지 안 쓰고 모으느라 굶주리고 헐벗은 일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한다.
 

당시의 화폐개혁이 얼마나 졸속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사가 하나있다. 2011년3월21일자 아시아투데이에 소개된 제2차 통화개혁 기사의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지 1년여가 지난 1962년 6월 9일 일요일 저녁, 요정 대하(大河).
송요찬 내각수반이 경제인들을 초청, 술자리가 한창이었다. 참석자들은 삼성그룹 이병철, 금성방직 홍재선, 개풍그룹 이정림, 극동해운 남궁련, 대한산업 설경동 등 거물 기업인들이다.
갑자기 송 수반이 "10시에 중대발표가 있다고 하니 함께 듣자"며 라디오를 가져오게 했다. 당시는 텔레비전이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임시뉴스가 흘러나왔다. 
10시의 중대발표란 바로 제2차 통화개혁이었다. 그때까지의 통화였던 '환'을 '원'으로 바꾸고, 화폐단위를 10분의 1로 평가절하 한다는 것이었다.
송 수반은 그 자리에 있던 기업인들에게 "담화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번 통화개혁 조치는 장롱 속에 숨겨진 퇴장자금을 끌어내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한 산업자금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가워할 줄 알았던 기업인들은 거꾸로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표정이 굳어졌다. 송 수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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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휴지로 변한 돈img_통화개혁 1img_통화개혁 2img_통화개혁 3

                                                                  휴지로 변한 돈               통화개혁 1                   통화개혁 2                   통화개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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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2千(천)2百石(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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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그 내용은 “혹은 말하기를, 우산于山과 무릉武陵은 본래에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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