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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커우 공원의 폭탄,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킨 윤봉길 의거
훙커우공원 , 윤봉길 , 의거
한인애국단의 희생은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을 일깨우고 세계에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떨쳤을 뿐더러, 한국과 중국의 항일 연대 의식을 강화하고 침체되어 가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어 독립의 희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 한인 애국단, ‘의열투쟁’의 맥을 잇다

 

‘천추의열(千秋義烈)’.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도록 빛날 의로움과 열렬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산화한 의사와 열사의 ‘의열투쟁’에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없을 듯싶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의열투쟁 활동을 꼽는다면, 1920년대 ‘의열단’, 1930년대 ‘한인 애국단’의 활약을 들 수 있다. 1919년 11월 김원봉, 황상규 등의 주도로 결성된 의열단은 1920년 부산경찰서,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박재혁, 최수봉 의거를 필두로 더욱 본격화되어 1926년까지 김익상, 김상옥, 황옥, 나석주 등의 의거가 줄을 이었다. 신채호의 유명한 ‘조선혁명선언’은 의열단의 투쟁 정신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의열단은 1920년대 후반 군사 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사실상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 의열투쟁의 맥을 이은 것이 바로 ‘한인 애국단’이었다. 1931년 조직된 한인 애국단은 결성 자체가 비밀에 부쳐진 단체였다. 정확한 설립 시기도, 단원 명단도 분명하지 않고 그나마도 가명을 많이 사용하였다. 단장 김구를 비롯하여 안공근, 김동우, 이봉창, 윤봉길, 유진만, 유상근 등 그나마 일부 인물이 드러났을 뿐이다. 조국을 위해 자신을 바친 이름 없는 전사들인 것이다. 1932년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를 통해 한인 애국단의 존재는 세상에 드러났다. 한인 애국단의 희생은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을 일깨우고 세계에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떨쳤을뿐더러, 한국과 중국의 항일 연대 의식을 강화하고 침체되어 가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어 독립의 희망을 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윤봉길,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폭탄을 던지다.

 

“나는 적성(赤誠, 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 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윤봉길이 한인 애국단에 입단할 때 쓴 선언이다.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는 한인 애국단의 일원으로서 행해졌다. 그런데 왜 한인 애국단원 윤봉길은 조선총독부나 일왕, 친일매국노가 아니라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죽인다고 선언하였던 것일까?
1930년대 초 중국 내 독립 운동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일본의 침략은 거세졌다. 1931년 9월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만주를 점령하였다. 중국인의 반일 감정은 고조되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는 일본 측의 간교한 이간질로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겨 서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었다. 바로 그 직전인 1931년 7월 ‘만보산 사건’ 때문이었다.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한국, 중국 농민 사이에 수로 개설 문제로 충돌이 벌어졌다. 일본 관동군은 이 사건에 대한 과장된 정보를 한국에 전했고, 이를 들은 한국인이 전국 각지에서 중국인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특히 평양에서는 중국인 94명이 학살당했다. 이런 와중에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중국 측의 한국인에 대한 의심의 눈길은 더욱 커져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반일 투쟁과 한국 독립의 의지를 보이고 한중 양국의 악화된 감정을 해소시켜 한중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 새로운 돌파구를 연 것이 바로 한인 애국단의 활동이었고, 그 1차 의거가 이봉창 의거였다. 이봉창은 1932년 1월 일왕이 육군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왕을 죽이고자 그가 돌아오는 길을 노려 궁성 부근에 폭탄을 던졌으나 일왕을 처단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만주사변으로 반일감정이 높아지던 중국 신문에서는 대대적으로 이를 보도하고 일왕이 폭탄에 적중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논조의 글을 싣고 이봉창을 ‘지사’로까지 표현하기도 하였다. 중국 내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차에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인 승려가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빌미로, 일본군이 상하이에 침략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상하이 사변’이다. 여기서 승리한 일본군은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을 기리는 ‘천장절’에 승전 축하식을 거행하였다. 윤봉길은 이 축하식이 거행되는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거행하였다. 폭탄은 단상에 정확히 떨어졌고 시라카와 대장, 가와바다 거류민 단장은 즉사하고 노무라 중장, 우에다 중장, 시게미쓰 주중공사 등 주요 인사는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 의거는 독립운동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한중 연대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 의거 이후 한국 양 국민의 불화감은 깨끗이 해소되고 중국 각계로부터 성금이 쇄도했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재정 지원과 동시에 한국 청년의 군사교육을 지원하였다.


 

3) 한인 애국단 투쟁의 기록, 『도왜실기(屠倭實記)』

 

윤봉길 의거가 터지자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과 체포를 시작했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안창호는 일제에 검거되었다. 임시정부 청사에 대한 압수 수사도 벌였다. 일제는 윤봉길 의거의 배후를 캐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일본의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가자 5월 9일 김구는 거사의 전말을 밝히는 영문 편지와 윤봉길 의사 사진을 중국의 각 신문사에 보냈다. 그 편지가 바로 ‘홍구공원작탄안의 진상(虹口公園炸彈案之眞相)’이다. 여기서 김구는 자신과 한인 애국단이 훙커우 의거의 배후이며, 의거를 한 사람은 윤봉길임을 밝혔다. 이어 김구는 한인 애국단의 이름으로, 그해 12월 1일, 윤봉길 의사가 순국하기 19일 전에 김구 소개,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 등 한인 애국단의 활동을 알리는 『도왜실기(屠倭實記)』를 중문으로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이미 발표된 성명을 손질하여 ‘홍구작안의 진상(虹口炸案之眞相)’을 실었다. 김구와 윤봉길의 헤어짐, 의거의 극적 장면, 적의 죽음, 윤봉길의 삶과 의기, 그리고 1932년 11월 26일 자 윤봉길의 소식을 담았다. 『도왜실기』는 광복 직후 김구와 엄항섭에 의해 국문으로 번역하였다. 1946년 3월 6일 자 『한성일보』에 『도왜실기』 광고가 실려있다. “도왜실기는 조선독립운동의 비사(秘史)이니 김구 선생께서 몸소 하신 바를 친히 기록하신 것이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지사들이 악전고투하였던가? 일황(日皇)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나 백천(白川) 대장 등을 도륙한 윤봉길 의사 등은 모두 그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 광고 글로 이 책의 소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늙은 工人(인용자: 김구를 말한다)은 비장한 어조로 청년에게 말하되,
“尹(인용자: 윤봉길)의 목슴은 머지않아서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나는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자유를 위하여 위대한 희생자가 되려는 군에게 혁혁한 성공이 길이길이 군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충심으로 비는 바이다. 단지 최후로 군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적은 왜놈뿐이니 오늘 이 일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신중히 해야할 것이고 결코 왜놈 이외의 각국 인사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김구, 엄항섭(1946). 『도왜실기(屠倭實記)』. 국제문화협회: 서울


 

순식간에 장엄한 경축회는 처참한 수라장으로 변하였으니 이는 실로 일본제국주의의 몰락을 선고하는 조포(弔砲)였고 살인방화의 흉범(凶犯)을 징벌하는 벽력이었다. 이 우렁찬 벽력 소리를 듣고 소리 높여 통쾌를 부르짖는 사람이 어찌 3천만 한인뿐이었으랴? 4억의 중국인도 당연히 똑같은 감격을 느꼈을 것이다. 

김구, 엄항섭(1946). 『도왜실기(屠倭實記)』. 국제문화협회: 서울


 

 

참고문헌

 

조동걸(2007). 『한국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한국독립운동의역사 제1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천안.
조범래(2009).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27 – 의열투쟁Ⅱ 한인 애국단』.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천안.
한인 애국단(1932). 『도왜실기(屠倭實記)』. 한인 애국단: 상하이(중국) (독립기념관 소장)
매헌윤봉길전진편찬위원회(2012). 『매헌윤봉길전집 제2권(상해의거와 순국)』.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매헌연구원: 서울.
김구, 엄항섭(1946). 『도왜실기(屠倭實記)』. 국제문화협회: 서울
김희곤(2012). 윤봉길 현양 자료를 통해 본 상해의거의 역사적 의미.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3, 243-279.
도왜실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4년 11월 28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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