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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지도 속 독도와 동해 - 동해(東海)
한국 , 근대지도 , 독도 , 동해
한국 근대지도들은 구한말(1879-1910)에서 일제강점기(1910-1945)까지의 지도들을 살펴볼 것이다. 구한말에 동해(東海) 지명은 보통명사로의 동해(東海)와 민족적인 해명(海名)이 다수 표시되어 있다. 보통명사로의 동해의 경우는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한 19세기 후반 이후 문호를 개방하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던 국내외 정세와 관련되어 이것으로 인해 기록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계 지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조선과 동북아시아에 한정되었던 지리적 인식의 수준이 크게 확장되었다.

한국 근대지도들은 구한말(1879-1910)에서 일제강점기(1910-1945)까지의 지도들을 살펴볼 것이다. 구한말에 동해(東海) 지명은 보통명사로의 동해(東海)와 민족적인 해명(海名)이 다수 표시되어 있다. 보통명사로의 동해의 경우는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한 19세기 후반 이후 문호를 개방하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던 국내외 정세와 관련되어 이것으로 인해 기록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계 지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조선과 동북아시아에 한정되었던 지리적 인식의 수준이 크게 확장되었다. 
‘동해(東海)’라는 명칭은 앞서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등장 했던 ‘동해’ 명칭과 그 상징성이 구한말지식인들에 의해 계승되어, 이후에 민족적인 해명(海名)의 인식과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여 진다. 
1904년에 러일전쟁과 1905년에 을사조약의 체결로 인해서 일본의 동해 해역과 독도에 대한 영유권 강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여러 문서의 기록에 공식적인 해명(海名)으로의 ‘일본해(日本海)’ 의 출현과 비공식적 차원에서의 ‘동해(東海)’ 및 ‘동해안(東海岸)’의 명칭이 통용되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동해’의 영역이 분화되고 침탈되는 현상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1905년 이후에는 각종 기록에 ‘동해’ 명칭 대신에 ‘일본해’ 명칭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동쪽 바다 해역을 지칭하던 해명으로 ‘동해’가 여전히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그림 1. ‘대한해(大韓海)’ 명칭으로 표기된 《大韓帝國地圖》(1908)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그 예로 《大韓帝國地圖》(1908)<그림 1>와 《대한전도(大韓全圖)》(1907)<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동해’, ‘대한해(大韓海)’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림 2. 《대한전도(大韓全圖)》(1907), ‘대한해’ 명칭 표기 
(출처: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또한 1908년 『초등대한디지』에 수록된 <대한전도(大韓全圖)>에도 동해 해역을 ‘대한해’의 명칭을 표기하였다.<그림 3>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들어서고 ‘대한해(大韓海)’라는 명칭의 기록은 찾을 수 없고, 다만 ‘동해’라는 명칭은 일본의 묵인하에 ‘동해(東海)’, ‘동해안(東海岸)’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림 3. 『초등대한디지』 中 <대한전도(大韓全圖)> ‘대한해’ 명칭 
(출처: 심정보, 2013, 근대 일본과 한국의 지리교과서에 나타난 동해 해역의 지명에 대한 고찰, 문화역사지리 제25권 제2호, pp.51)

 

1919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에 전 세계의 바다 명칭을 부여하는 국제수로회의가 열리게 된다. 그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참가하여 ‘동해’의 이름을 ‘일본해’라고 등록하였다. 이후 1929년에 국제수로국에서 펴낸 『해양과 바다의 경계』라는 책에 ‘일본해’라고 수록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우리나라는 국제수로회의에 참석을 못 하는 상황이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회의가 개최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때였다. 
동해라는 명칭외에 이때 ‘조선해(朝鮮海)’라고 명칭하였다. 1930년대까지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동해에 대해 ‘조선해(朝鮮海)’ 명칭으로 표기한 출판물들이 발간되었다. 1935년에 일본의 가이조출판사에서 <걸리버의 여행기(하)>이 일본어로 번역되었는데, 우리나라 동해에 대한 명칭을 ‘조선해(朝鮮海)’ 라고 쓴 것이 그 예이다.

근대지도 속 ‘동해’의 명칭은 1904년 러일전쟁과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인해서 ‘일본해’라는 명칭이 출현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공식적인 바다의 명칭으로는 ‘일본해’로, 비공식적인 차원에서는 ‘동해’, ‘동해안’이 통용되고 있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러일 전쟁의 해전(海戰)과정에서 동해 해역에 대한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그 명칭 또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동해에 대한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일본에 의해 동해와 동해 부속 도서(울릉도∙독도)에 대한 영유권 강화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급기야 1905년 이후의 각종 기록에 ‘동해’ 대신 ‘일본해’의 명칭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위에서 살펴보았던 《대한전도(大韓全圖)》 (1907)와 《대한제국지도(大韓帝國地圖)》(1908)의 예와 같이 1910년에 대한제국의 멸망 이전까지 적극적으로 ‘대한해(大韓海)’의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대한해’라는 민족 해명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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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 저자 발행자 발행년도 원문

大韓新地志. 乾,坤

張志淵 漢陽書報 1907 원문보기

大韓新地志

張志淵 微文館 1907 원문보기

대조선국전도

독도박물관 원문보기

만국지구전도

독도박물관 원문보기

각주


1) 김순배, 2013, 동해 지명의 의미들과 영역들의 변화, 문화역사지리 제25권 제3호, pp.117. 
2) 김순배, 2013, 앞의 논문, pp.119-121. 
3) 심정보, 2013, 근대 일본과 한국의 지리교과서에 나타난 동해 해역의 지명에 대한 고찰, 문화역사지리 제25권 제2호, pp.51. 
4) 양보경, 2004, 조선시대 고지도에 표현된 동해 지명, 문화역사지리 제16권 제1호, pp.89. 
5) 리호, 강현창, 2006, 우리나라 동해(東海) 이름에 대한 역사 지리적 고찰. 독도연구(2), pp.77. 
6) 김순배, 2013, 위의 논문, pp.119,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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