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돌로 이루어진 섬을 뜻하는 독도의 이름, 석도
돌 , 독도 , 석도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 울릉도는 울릉군으로 승격되어 강원도 독립 군현 27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우산도’라 불리던 ‘독도’의 지명은 돌섬을 뜻하는 ‘석도’로 칭하게 되었다.

“석도 = 독도” 
언제부터 독도가 석도라고 불렸을까? 
왜 독도가 아니고 석도라고 했을까? 석도는 독도가 맞는가?

독도 지명과 관련된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바로 ‘석도’가 오늘날의 ‘독도’를 뜻하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석도’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899년 울릉도의 산림 벌채권을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가 대한제국 정부에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울릉도의 사림을 벌채해 가고 있으니 이를 금지해 달라는 항의를 했다. 이에 대한제국 정보는 이를 금지함과 동시에 러시아 측과 일본 측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1899년 5월 새로 임명한 울릉도 도감(島監)과 부산항 세무사로 근무하고 있던 외국인 세무사를 동행시켜 일본인의 울릉도 침입 실태를 조사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울릉도에는 수백 명의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불법 침투하여 촌락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울릉도의 삼림을 지속해서 벌채하여 선박을 통해 일본으로 이를 운반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제국은 일본인들의 끊임없는 울릉도 불법 입국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지방 행정체계를 개편하였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제정 반포해서 종래 강원도 울진군에 속했던 울릉도를 ‘울도군(鬱島郡)’으로 승격시키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였다. 그리고 울도군이 관할하는 구역은 울릉도·죽도(지금의 죽도)와 석도(石島, 지금의 독도)로 하였다. 이 개정 사항을 중앙 「관보」에 게재하여 공포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공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절차를 마무리하였다. 27일 「관보」에 기재된 칙령 41호에는 ‘울릉도를 울도로 갱칭하며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해 관제 중에 편입한다’는 제1조와 함께, 제2조에서 ‘군청 위치는 태하동(台霞洞)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정도와 죽도 석도(독도 2개 섬)를 관할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관보 제1716호(1900년 10월 27일)

 

이렇게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 울릉도는 울릉군으로 승격되어 강원도 독립 군현 27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우산도’라 불리던 ‘독도’의 지명은 돌섬을 뜻하는 ‘석도’로 칭하게 되었다.

그럼 왜 독도를 석도라고 했을까? 
돌섬이라는 의미의 석도가 독도와 동일한 섬이라는 논리는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할 때 자주 발생하는 한국어의 표기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지명에는 ‘돌섬’처럼 순우리말을 사용한 지명도 있고, 칙령을 발표하거나, 관보 등 문헌상 표기를 위해 순우리말인 ‘돌섬’을 ‘석도’로 한자화한 지명도 있다. 우리말 지명을 한자화하는 과정은 우리말의 뜻에 맞게 훈(訓)을 붙이는 ‘훈차(訓借)’ 방식을 취하거나, 훈차가 어려울 경우에는 음을 그대로 한자로 적는 ‘음차音借’방식을 취하는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말섬·쇠섬·토끼섬·바위섬·대섬·밤섬·돌섬 등의 우리말 지명은 그 자체가 섬의 형상에서 파생한 지명이다. 그리고 마섬(馬島)·우도(牛島)·토도(兎島)·암도(巖島)·죽도(竹島)·율도(栗島)·석도(石島) 등은 순우리말 지명을 문헌상에 기록하기 위하여 훈차한 한자화 지명이다. 울릉도를 왕래하던 사람들은 주로 어부와 약재상들을 포함한 상인들이었으며, 이들은 순우리말로 지명을 불렀을 것이다. 문헌에 어떻게 표기되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하거나 알았다 하더라도 그 지역 사람들이 부르는 한글 지명을 사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지역 주민들이 부르는 한글 지명과 문서나 문헌에 표기되는 지명이 다른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지명의 원래 뜻을 찾기 위해, 또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져버린 우리말 지명을 알기 위해 한자지명을 통해서 거꾸로 추론하기도 한다. 독도를 왕래하던 삼남 지방 사람들은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이 섬을 ‘돌섬’ 또는 ‘독섬’이라고 불렀다. ‘돌섬’ 또는 ‘독섬’을 한자로 표기할 때, 훈자 방식을 사용해 뜻을 가져와 표기하면 ‘석도(石島)’가 된다. 그리고 이를 음차해 음을 가져다 표기하면 ‘독도(獨島)’가 된다. 따라서 독도와 석도는 같은 말이며, 곧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에서 지칭한 ‘석도’는 ‘독도’를 칭하는 것이다. 
울릉도시찰위원(鬱陵島視察委員) 우용정(禹用鼎)은 칙령이 반포되기 직전인, 1900년 5월 25일 울릉도로 떠나, 20일 뒤인 6월 15일 돌아온 후 관제 개편에 참여했다.

 

광무 4년(1900년) 칙령 41호 
(출처: 박물관 포털_e뮤지엄, 독도박물관 소장)

 

칙령에서 주목할 점은 제2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명이다. 우선 울릉도라 하지 않고 ‘울릉전도’라 한 것은 울릉본도(鬱陵本島)와 이에 부속된 죽도, 석도를 제외한 주변의 작은 섬과 바위들을 모두 포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죽도’는 1882(고종 19)년 검찰사 이규원(李奎遠)이 확인한 선판구미(船板邱眉, 섬목)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섬인 오늘날 죽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석도’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돌섬 또는 독섬을 한자화한 지명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울릉도 시찰위원인 우용정이 독도를 석도라고 하였는데, ‘당시 대한제국에서는 독도를 정말 석도라고 불렀을까’하는 것이다.

《대한여지도》 
(출처: 박물관 포털_e뮤지엄, 성신여자대학교 소장)

 

이 지도는 1900년 전후 학부 편집국에서 학교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인데, 울릉도 부분을 보면, 울릉도 동쪽으로 ‘우산(于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위치는 오늘의 독도와 일치하며, 석도라고 하지 않고 조선 시대에 사용했던 독도의 이름인 우산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칙령의 석도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는 우용정이 울릉도 조사 때 전라남도 연해민들과 울릉도에 이주한 사람들이 바라보이는 바위섬을 돌섬이라고 부르는 것을 목격하고, ‘돌섬’이라는 우리말 지명을 자연스럽게 한자지명인 ‘석도’로 표기하여 울릉도 관제개편안에 반영시켰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울릉도민들은 독도를 ‘독섬’ 또는 ‘돌섬’이라고 부르고 있다.

 

 



관련콘텐츠

표제 저자 발행자 발행년도 원문

鬱陵島와 獨島 : 그 歷史的 接近

송병기 단국대학교출판부 1999 원문보기

官報. 1-31

內閣記錄局 刊寫者未詳 1895-1905 원문보기

朝鮮語方言의 硏究. 上, 下

小倉進平 亞細亞文化社 1973-1974 원문보기

울릉도(鬱陵島)와 타케시마(竹島) : 大西俊輝의 의견을 중심으로

權五曄 한국일본어문학회 2004 원문보기

각주


1) 관보, 1716호(1900년 10월 27일)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11, 독도지리지, 푸른길 
   독도자료집, 2005, 동북아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 
   울릉군지, 2007, 울릉군지편찬위원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 유미림, 2012, 차자借字표기 방식에 의한 ‘석도=독도’설 입증,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4(1), 한국정치외교사학회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11, 독도지리지, 푸른길 
3) 송병기, 2007, 개정판 울릉도와 독도, 단국대학교출판부

상세검색

자료유형
KDC 분류
발행년도 ~

다국어입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