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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도 무서워 한 화가, 김홍도
홍재전서 , 정조 , 임하필기 , 도석인물화
김홍도(金弘道, 1745 ~ ?)는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취화사·첩취옹(輒醉翁) 등을 썼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로 이름이 높은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그의 천거로 도화서화원이 되어 영조와 정조의 어진(御眞)을 그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정조의 신뢰와 지원 속에 『원행을묘정리의궤』 등과 같은 작품을 제작한다.

이칭ㅣ단원·단구·서호·고면거사·취화사·첩취옹,   본관ㅣ김해,   생몰년도ㅣ1745-?,   시대구분ㅣ조선

 

1) 김홍도의 생애

 

김홍도(金弘道, 1745 ~ ?)는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취화사(醉畫士)·첩취옹(輒醉翁) 등을 썼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로 이름이 높은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며, 그의 천거로 도화서화원(圖畫署畫員)이 되어 영조와 정조의 어진(御眞)을 그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김홍도는 정조의 신뢰와 지원 속에 조선시대 기록화의 기념비적 대작인 『원행을묘정리의궤」 등과 같은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아래의 인용문은 그에 대한 정조의 신뢰가 반영되어 있는 대목으로 눈길을 끈다.


정조, 『홍재전서(弘齋全書)』 권 7

국사편찬위원회_한국사데이터베이스 

 


김홍도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 그의 이름을 안 지 오래되었다. 30년 전에 그가 어진(御眞)을 그린 이후로는 그림 그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다 그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였다. (金弘道工於畫者 知其名久矣 三十年前圖眞 自是凡屬繪事 皆使弘道主之 ) 

정조, 『홍재전서(弘齋全書)』 권 7

 

김홍도는 화원으로 활동하는 이외에 경상도 안동의 안기찰방, 충청도 연풍현 현감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왕명을 받아 금강산 일대를 기행하며 명승지를 화폭에 담기도 하였다. 1795년 연풍현감 퇴임 후에는 작품 활동에 전념하며 여생을 마쳤다.

 

2) 신분과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세계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김홍도는 산수와 인물화는 물론 풍속화와 화조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특히 평범한 서민들의 생활 풍경을 생동감 있고 재치 있게 그려 담은 풍속화를 많이 남겼다. 그의 풍속화에는 한국적 서정과 해학이 오롯이 녹아 있어,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성히 키우는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김홍도는 또한 불교와 도교의 인물을 화폭에 묘사한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서도 일가를 이루어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이러한 작품에는 당시 서민 대중들이 널리 믿고 있었던 도석(道釋) 신앙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기록 중에는 김홍도의 그림이 가진 영험과 관련된 기사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즐겨 그렸던 도석인물화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생겨난 일화가 아닌가 한다.


성대중(成大中), 『청성잡기(靑城雜記)』 권3 성언(醒言)

국사편찬위원회_한국사데이터베이스 

 


서울에 피씨(皮氏) 성을 가진 자가 장창교(長昌橋) 입구에 있는 집을 샀는데, 대추나무가 담장에 기대어 있기에 베어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도깨비가 집으로 들어와 들보 위에서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때로는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간혹 글을 써서 던지기도 했는데 글자가 언문(諺文)이었고, 부녀자들에게 말을 할 적에 모두 너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혹시라도 “귀신은 남녀도 구별하지 않느냐?” 하고 꾸짖으면, 귀신은 기가 막힌 듯이 웃으면서, “너희는 모두 평민이니 어찌 구별할 것이 있겠냐?”하였다. 그 집의 옷걸이와 옷상자에 보관된 옷들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모두 칼로 찢어 놓은 듯하였다. 유독 옷상자 하나만이 온전하였는데, 상자 밑에는 바로 김홍도가 그린 늙은 신선 그림이 있었다. (都下皮姓者,買第長昌橋口,棗倚於墻,伐焉 魅蓋宅之遽動,或嘯於梁,或語於空,但不見形耳 或投其書,字則諺也 與婦女語,皆爾汝之,人或呵之曰,鬼不別男女耶 魅啞然笑曰,若凡氓也,寧足別也 其家衣裳椸懸笥儲,無一完者,並若刀殘,獨一篋完,篋底,乃有金弘道老仙畫也 ) 

성대중(成大中), 『청성잡기(靑城雜記)』 권3 성언(醒言)

 


이유원(李裕元), 『임하필기(林下筆記)』 권29 춘명일사(春明逸史)

국사편찬위원회_한국사데이터베이스 

 


가인(家人)이 일찍이 말하기를, “매일 밤 베갯머리에서 말을 모는 소리가 들리고, 또 당나귀의 방울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때는 마부가 발로 차서 잠을 깨웠으나,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하였다. 하루는 막 잠들려 할 무렵에 어렴풋하게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소리가 병풍에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풍은 바로 단원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였다. 이상하게 여겨 옮겨 놓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림의 신비함이 예부터 그러하였던 것이다. 

이유원(李裕元), 『임하필기(林下筆記)』 권29 춘명일사(春明逸史)

 

구중궁궐에 기거하는 준엄한 임금의 얼굴에서부터 시골 서당에서 훈장께 혼이 나 훌쩍이는 아이의 얼굴까지, 화려한 궁중 행사의 기록화에서 정겨운 서민들의 일상생활까지, 신분과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하였던 김홍도의 남다른 삶은 당시 사람들은 물론 도깨비들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떨친 모양이다.

 

 

참고문헌

『홍재전서(弘齋全書)』 
『청성잡기(靑城雜記)』 
『임하필기(林下筆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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