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조선에 성리학의 학문적 기초를 뿌리내린 유학자 권근(權近)
권근 , 학자 , 유교 , 태종 , 조선 초기 , 양촌집 , 시집
권근(權近)은 고려말인 1352년(공민왕 1)에 출생하여 조선초인 1409년(태종 9)에 타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소오자(小烏子)이다.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친명 정책을 주장한 대표적인 신진사대부였다.

이칭ㅣ양촌,   본관ㅣ안동,   생몰년도ㅣ1352~1409,   시대구분ㅣ조선

 

1) 조선에 유학의 기틀을 마련한 권근(權近)

 

권근(權近)은 고려말인 1352년(공민왕 1)에 출생하여 조선초인 1409년(태종 9)에 타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소오자(小烏子)이다.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친명 정책을 주장한 대표적인 신진사대부였다. 조선 개국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조선 개국을 찬송하는 노래를 태조에게 바치며 새 왕조에 출사하였다. 이후 명나라와의 외교적 사명을 완수하고, 사병 혁파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태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져 활발한 정치 활동을 전개하면서 조선왕조의 각종 제도 정비에 이바지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경학에 밝아 왕명으로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을 정하기도 하였다. 유학 제조를 겸하면서 유생 교육에 힘쓰고, 「권학사목(勸學事目)」을 지어 올려 조선 초기의 교육 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성리학 입문서인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하여 조선시대 성리학 심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2) 권근의 학문세계와 저술 활동

 

고려말 정치상황에서 권근은 개혁 추진과 외교활동을 통하여 왕조를 유지하려 하였고, 조선 개국 후에는 관학을 이끌어가면서 성리학에 대한 저술 작업을 통해 새로운 왕조의 유교 정치 이념을 보급하는데 주력하였다. 권근은 성리학자이면서도 사장(詞章)을 중시해 경학과 문학을 아울러 연마하였다. 고려말에는 이색(李穡)을 스승으로 모시고, 정몽주(鄭夢周)·김구용(金九容)·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정도전(鄭道傳) 등 당대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여 학풍을 새로이 하고 일신하고, 유교 사상을 학문적․이론적으로 정리하는데 힘썼다. 그리하여 그는 고려말 조선초 여말선초 관학(官學)을 이끈 유학자이면서 조선 성리학을 이론적인 면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천지만물의 생성 변화가 인간 심성의 생성 변화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심성을 제대로 발현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수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곧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실현 과정에서 인간의 주체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성리학적 윤리의 실천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가정윤리의 측면을 특히 강조하였다. 이는 신분에 따른 예제(禮制)의 구분, 하위 계층의 신분 상승 억제 등을 통한 엄격한 신분 윤리로 연결되었다. 그의 성리학 이해는 『입학도설(入學圖說)』과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입학도설』에서는 도해(圖解)의 방식으로 성리학의 기초지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첫머리에 나오는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는 성리학의 중심 개념인 태극·천명·이기·음양·오행·사단·칠정 등을 하나의 도표 속에 요약하고 이들의 상호관계와 각각의 특성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서오경구결(四書五經口訣)』과 『동현사략(東賢事略)』을 저술하고, 왕명으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하여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하여 우리나라 역사 체계를 재구성하였다. 문집으로는 『양촌집(陽村集)』이 있고, 작품으로 「상대별곡(霜臺別曲)」이 있다.

 

3) 시문집 양촌집(陽村集)

 

『양촌집(陽村集)』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이자 학자인 권근의 시문집이다. 모두 4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근의 둘째 아들 권도(權蹈, 후에 제(踶)로 개명하였다.)가 세종초에 편찬 간행하였다. 『양촌집』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1부터 권10까지는 시 980수가 실려 있고, 권11~권14는 기(記), 권15~권20은 서(序), 권21은 설(說)․전(傳), 권22는 발어(跋語), 권23은 명(銘)․찬(贊)․제문(祭文), 권24는 사대표전(事大表箋)ㆍ본조 전문(本朝箋文), 권25~권26은 본조 전문ㆍ사직전(辭職箋)ㆍ차자ㆍ계본(啓本), 권27~권28은 소어(疏語), 권29는 청사(靑詞), 권30은 교서(敎書), 권31~권32는 상서(上書), 권33은 잡저(雜著)가 실려 있고, 권34에는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 권35에는 동현사략(東賢事略), 권39와 권40에는 묘지(墓誌)와 행장(行狀) 등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동국사략론』은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의 역사적 사실 중에 28개 항목을 뽑아 저자의 의견을 붙인 사론집(史論集)이며, 『동현사략』은 고려시대의 명현(名賢) 24인의 행적을 기록한 간단한 전기(傳記) 자료이다. 그 가운데 「영흥부학교기(永興府學校記)」는 학교를 세워 유학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권근의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비평을 실은『동국사략론』은 권근의 역사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予惟三代之學 皆所以明人倫 六籍之書 亦所以明斯道 居是學而讀是書者 當思有以求其道 亦思有以厚其倫 爲臣盡忠 爲子盡孝 以至長幼朋友 隨所往而各盡其職 此乃儒者之實學也”

『陽村集』 권14, 「永興府學校記」

 

내가 생각하건대, 삼대 때의 학교는 모두 인륜을 밝히던 곳이고, 6경의 글 또한 그 도리를 밝힌 것이니, 이 학궁에 있으면서 그 글을 읽는 사람은 마땅히 도리 구하기를 생각하고 또한 그 인륜을 두터이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을 다하고 아들이 되어서는 효도를 다하여, 장유(長幼)와 친구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각각 그 직분을 다하여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유자(儒者)의 실학(實學)이다.


“十七年庚辰 王巡撫六部 勸督農桑 妃閼英從焉
按 省方 人君之事也 古之人君 春省耕而補不足 秋省斂而助不給 一遊一豫 無非所以爲民也”
『陽村集』 권34, 「東國史略論」

 

17년 경진(서기전 41) 왕이 6부(部)를 순시하며 농사와 양잠을 권장하였는데, 왕비 알영(閼英)이 따라갔다.
【안】 지방을 순시하는 것은 임금의 일이다. 옛날 임금이 봄에는 경작을 살펴 모자란 것을 보충해 주고, 가을에는 추수를 살펴 넉넉하지 못한 것을 도와주므로 왕이 한번 놀고 한번 즐기는 것이 모두 백성을 위하는 일이 아님이 없었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김종서, 정인지(1451).『고려사(高麗史)』 .
권근.『양촌집(陽村集)』. 
박천규(1964).「양촌 권근 연구-그의 선초 관학계에서의 위치와 활약을 중심으로-」.『사총』. 9. 1-50.
도광순(1989).『권양촌사상의 연구』. 서울: 교문사.

 

관련콘텐츠

 

陽村先生文集
卷27-28

陽村集
卷1-5

東國史略

陽村先生入學圖說

入學圖說

상세검색

자료유형
KDC 분류
발행년도 ~

다국어입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