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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지(宮闕志)
궁궐지 , 궁궐 , 건물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의 왕은 궁궐 밖을 자주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궐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정사를 보거나 신하들과 공부를 하고, 군사훈련도 하였으며 손수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이처럼 궁궐은 조선 시대 국왕의 생활공간이자 국정을 수행하던 공간으로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궁궐지󰡕는 그러한 궁궐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담은 책으로, 숙종(肅宗)의 어명에 의해 편찬하였으며, 헌종(憲宗) 때 증보․수정되었다. 고종 연간에 편찬된 󰡔궁궐지󰡕도 있다.

궁궐의 종류는 다양하다. 보통 임금이 늘 거처하고 정사를 보는 법궁(法宮)이 있으며, 궁궐을 수리하거나 변고가 발생했을 때 사용하는 이궁(離宮)이 있다. 또한 특수한 용도로 지어지는 별궁(別宮), 피난이나 나들이 갈 때 사용하던 행궁(行宮)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궁궐지󰡕는 궁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자료가 드문 상황에서 조선 시대 궁궐의 실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헌종 때 지어지고 증보․수정된 󰡔궁궐지󰡕는 경복궁(景福宮창경궁(昌慶宮창덕궁(昌德宮경덕궁(慶德宮어의동궁(於義洞宮)과 부속된 전각(殿閣당재(堂齋누정(樓亭대헌(臺軒) 등의 명칭과 위치, 용도를 밝혔으며 해당 건물에서 왕세자의 출생, 즉위, 왕과 왕비의 죽음, 역사적 사건 등을 기록하였다. 그야말로 궁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숙종 이후 익종까지 역대 임금이 지은 명((((((율부(律賦상량문(上樑文() 등을 실었고, 관원들이 지은 글과 󰡔국조보감(國朝寶鑑)󰡕·󰡔조야첨재(朝野僉載)󰡕·󰡔문헌비고(文獻備考)󰡕·󰡔필원잡기(筆苑雜記)󰡕·󰡔조야집요(朝野輯要)󰡕 등의 자료도 풍부하게 인용하였다.

고종 연간에 편찬된 󰡔궁궐지󰡕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을 대상으로 건물 자체의 형태를 밝혀주는 방향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각 궁의 전각에 대하여 건물의 칸수와 구조를 상세히 적었다. 또한, 각 전각 주변에 있던 행각·월랑 등 부속건물의 규모를 기록하였다. 특히, 건물의 구조에 대해 자세한데 공포(栱包)의 규모·기둥··도리의 치수까지 밝혀놓았기에 궁궐의 복원사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 궁궐도 많은 수난을 당했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은 모두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에 와서 창덕궁과 창경궁이 중건되고 경희궁이 새로 세워진다. 경복궁이 있던 자리는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소실 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에 와서야 중건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말(韓末)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복궁의 많은 전각들이 헐리고 조선총독부가 세워진다. 경희궁은 거의 모든 전각이 헐리고 일본인 중학교가 들어선다.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는 유원지가 되어 ()’이 아닌, ‘()’으로 격하된다. 이처럼 훼손되고 변형된 조선 시대 궁궐의 본모습을 파악하는데 󰡔궁궐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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