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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양보경 |
맺음말 , 조선 , 지리지
조선 중기는 조선의 역사에서 흔히 전란과 그로 인한 침체된 시기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지리학의 변화와 지리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16・17세기는 중요한 변환기였다. 읍지 편찬의 활성화, 『동국지리지』등 주제별 지리서・실학적 지리학의 출현, 서양 지리학과 서양 세계에 대한 지식의 유입과 수용 등 지리학은 큰 전환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지리지에 관한 강연을 16세기 후반 읍지 편찬이 지니는 의미를 되새기면서 마무리한다. 한강(寒岡) 정구(鄭逑)는 임진왜란 중에도 강원도 강릉에서 임영지(臨瀛志)와 관동지(關東志)를 편찬하였다.

 

적이 강역에 가득하고 나라의 온 힘을 그에 맞서 싸울 때 지지를 찬집하는 이유를 묻는 최현(崔睍)에게 한강은 “완급이란 것은 진실로 다름이 있다.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경황이 없다고 해서 지나쳐 버리는 것은 안 된다. 하물며 지금 서적이 완연히 흩어지고 없어졌으니, 만약 견문을 수습하지 않는다면 장차 무엇으로써 후대에 보여주겠는가?”라 설명하였다. 지역 의식의 자각과 성장을 이에서 볼 수 있으며, 지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자료 축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중기는 조선의 역사에서 흔히 전란과 그로 인한 침체된 시기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지리학의 변화와 지리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16・17세기는 중요한 변환기였다. 읍지 편찬의 활성화, 『동국지리지』등 주제별 지리서・실학적 지리학의 출현, 서양 지리학과 서양 세계에 대한 지식의 유입과 수용 등 지리학은 큰 전환을 맞이하고 있었다. 특히 읍지 편찬의 활성화는 자기 고장에 대한 주체적 인식과 공간 인식의 자각 이라는 측면에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지역민들이 편찬에 주도적, 능동적으로 관여하면서 지역에 관한 상세하고 정확한 파악을 할 수 있었으며,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지역 실정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남겨 국토의 옛 모습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쟁과 그 수습으로 어려웠던 16・17세기에, 자료적 가치가 풍부한 많은 사찬읍지를 편찬하였던 것은 조선 중기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재평가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한 시대에 대한 평가가 여러 학문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함을 보여 준다.

역사학과 지리학은 시간과 공간의 두 축을 담당하는 학문이다. 현재 한국에는 국사편찬위원회와 국토 지리정보원이 시간과 공간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간은 지도와 지리지의 양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과 공간, 지리지와 지도의 두 기둥은 어느 시대에나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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