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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지리서의 편찬과 지역 파악의 체계화
양보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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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전에는 지리지, 풍수서 이외의 지리서가 매우 드물었지만, 17세기에는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1614년), 한백겸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1615년), 유형원의 『군현제(郡縣制)』, 『여지지(輿地志)』 등의 주제별 지리서가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전에는 지리지, 풍수서 이외의 지리서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1614년), 한백겸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1615년), 유형원의 『군현제(郡縣制)』, 『여지지(輿地志)』 등의 주제별 지리서가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8세기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실학의 체계화, 발달과 함께 많은 실학자들이 활동함으로써 지리학도 성숙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실학자들은 지리학에 관한 저서 또는 논설들을 남겼다. 실학적 지리학은 조선 후기 지리학의 발달을 선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실학적 지리학은 재야적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반면에 국가에서 만든 각종 지리지나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등의 유서류, 관서지 등은 실용적 성격을 지닌 책으로서 실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지닌다.

 

 

그 대표적인 책이 『동국문헌비고』 「여지고(輿地考)」이다. 『동국문헌비고』는 총 10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여지고」는 17권이다. 『동국문헌비고』 「여지고」는 한백겸 이후 일련의 역사지리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지고」는 전장・제도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백과전서학적 연구에, 한백겸, 유형원, 홍만종, 임상덕 등 관련 학자들이 발전시켜 온 역사지리학의 연구성과를 정부적인 차원에서 최대한 결집시키면서 이루어낸, 조선 후기 역사지리학의 학문적 발전에 중요한 결과물이자 발전의 지표라고 평가할 수 있다(朴仁鎬, 1996).

 

18세기 이후 지지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호구총수(戶口總數)』, 『동국문헌비고』 「여지고」, 『도로고(道路考)』 등 다양한 주제별 지리서가 활발하게 편찬되었음을 통해 국가가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강화하고, 효율적인 지방 통치를 위해 지리서와 지도의 편찬에 노력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1789년에 편찬된 인구통계 정리서인 『호구총수』는 가장 직접적인 예이다. 토지와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물적, 인적 토대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국가의 통치자는 영토와 국민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국가의 제도와 통치가 정비됨에 따라 국민을 파악하는 정도와 정확성이 커졌으니, 그 기초는 정확한 인구자료였던 것이다.

특히 지역의 사정을 파악하는 지역의 지지 외에 관청의 연혁과 기구, 체례, 사례를 정리한 각종 관서지(官署志)들도 편찬되었다. 국가의 공공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각 관청의 기능과 역사 등을 정리한 책들이 18세기 중・후반에 집중적으로 편찬되었다. 1744년 『춘관지(春官志)』(李家煥이 1781년에 증보 완성),

1778년 『통문관지(通文官志)』 증보편, 1781년 『규장총목(奎章總目)』 『추관지(秋官志), 1784년 『규장각지(奎章閣志)』 『시강원지(侍講院志)』, 『홍문관지(弘文館志)』, 1785년 『대전통편(大典通編)』 『태학지(太學志)』, 1787년 『전율통보(典律通補)』, 1788년 『춘관통고(春官通考)』 『동문휘고(同文彙考)』 『탁지지(度支志)』, 1789년

『해동읍지』(1799, 海東輿地通載) 『호구총수(戶口總數)』, 1790년 『동국문헌비고』를 증보한 『증정문헌비고(增訂文獻備考)』, 1791년 『추관지(秋官志)』 등 각 관서지들이 편찬 또는 간행되었다. 조선시대에 지지(地志)는 대부분 지역을 단위로 하여 작성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지역 단위의 지지의 편찬과 아울러 관청에 대한 지지들이 조선역사상 가장 활발하게 편찬되었다(楊普景, 199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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