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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리지 편찬과 지리학의 지평 확대
양보경 |
지리지 , 전국지리지 , 중국방지 , 여행안내기 , 산천기 , 잡기 , 지리학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관찬지리지
지리지의 편찬은 과거 동양 사회의 정신적인 특징의 하나로 꼽힌다. 지리지는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성리학이라는 철학적 관점과 동양 사회에서 성립된 중세적인 지역 연구 방법이 상호 결합하여 산출한 지리적 성과라 할 수 있다. 지리지는 조선시대의 사람들, 나아가 동양권의 사람들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성격과 특징을 추출, 표현하고자 했던 방법이다. 그러므로 지리지의 성행은 조선 사회는 물론 넓게는 동양 사회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특징짓는 한 단면으로도 이야기 할 수 있다.

1) 지리지의 개념과 유형

 

지리지(地理志)는 지지(地志) 또는 지지(地誌)라 부른다. 지리지는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으로서의 지리지를 포함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지리지는 지리서(地理書) 즉 지리에 관한 서적 전체를 의미한다. 지리지는 여행안내기나 산천기(山川記), 잡기(雜記)부터 이론적이고 전문적인 지리서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뜻으로 쓰였다. 좁은 의미의 지리지는 특정 지역에 대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기록을 지칭한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지역 내에 분포하는 시간적・공간적・자연적・인문적인 제현상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기록으로서 근대 지리학 이전의 지리학의 중요한 부분을 지칭한다.

 

지리학은 땅, 지역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즉 지역의 자연환경은 물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삶의 모습을 알려 주고, 설명해 주는 것을 본래의 목적으로 하였으며, 오늘날 지리학에서는 이를 지지 또는 지역지리학(regional geography)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과거의 지리지와 현대지리학에서의 지역지리학은 지역의 성격과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과 필요성을 지닌 학문 체계라는 본질적인 측면은 공통적이다. 단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사상・학문의 변모와 더불어 방법론상의 차이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지리지는 과거의 지역지리학이라 할 수 있다.

지리지의 편찬은 과거 동양 사회의 정신적인 특징의 하나로 꼽힌다. 지리지는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성리학이라는 철학적 관점과 동양 사회에서 성립된 중세적인 지역 연구 방법이 상호 결합하여 산출한 지리적 성과라 할 수 있다. 지리지는 조선시대의 사람들, 나아가 동양권의 사람들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성격과 특징을 추출, 표현하고자 했던 방법이다. 그러므로 지리지의 성행은 조선 사회는 물론 넓게는 동양 사회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특징짓는 한 단면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중세 지리학은 광범위한 지리지 편찬으로 대표된다.

Fairbank는 중국 인구 연구사에서 역작으로 손꼽히는 허핑티(何炳棣)의 저서 『중국의 인구, 1368~1953; Studies on the Population of China, 1368~1953』 서문을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하였다.

 

 

최근 중국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 중 하나는 방대한 양의 地方志이다. 미국에는 이러한 지방지가 3,000여 종이 넘게 있으며, 초기 희귀본도 300여 종 이상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되어 있다. 이러한 지방지는 중국 전역의 주요 행정구역에 대한 자세하고 폭넓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즉 지리, 경제, 폭넓은 고증이 담긴 역사서술, 개인전기, 풍습과 종교, 혹은 또 다른 제도 등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국의 지원을 받아 편찬되는 백과전서류나 政典類와 함께 이러한 지방지는 현대 사회사가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1]

 

 

조선에서 지리지와 지리학의 관계는 다음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 동방의 문물의 크고 성대함을 살펴 보면, 전적이 극히 넓어, 시서예악의 모든 흐름과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단지 지리학이 빠졌으니, 이는 여지(輿誌)의 책이 없기 때문이다. 고려조에 이르러서는 문헌이 차츰 갖추어지고 유명한 선비가 이어 나오며 공사간의 편집에 공을 쓰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여지를 하나로 합침이 없었다. 삼국사와 고려사에 문자가 보이기는 하지만 고찰한 것과 준거한 것이 적확하지 않고,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2]

 

 

라 하여 지리학을 지리지인 여지(輿誌)의 편찬에서 찾고 있다.[3] 우리나라의 지리지는 수록 대상과 내용에 따라 전국지리지(全國地理志: 輿誌), 읍지(邑誌), 외국지(外國志), 산천지(山川志), 기행(紀行) 및 일기류(日記類), 기타 잡지로 분류할 수 있다(표 1).

 

 

<표1> 중국 방지(方志)의 분류

분류

대상지역

方 志의 例

一 統 志

全 國

『大明一統志』 『大淸一統志』 『元和郡縣志』

通 志

省 區

『浙江通志』 『廣東通志』 『盛京通志』

府州廳縣志

府ㆍ州ㆍ廳ㆍ縣

『廣州府志』 『嘉應州志』 『佛岡廳志』 『新安縣志』

鄕 鎭 志

鄕 鎭

『忠義鄕志』 『羅店鎭志』 『八排風土志』

衛 志

『杏花村志』 『香花墩志』

里 志

『威海衛志』

鹽 場 志

鹽 場

『呂四場志』

鹽 池 志

鹽 池

『花馬池誌蹟』

關 隘 志

關 隘

『山海關志』 『居庸關志』 『四鎭三關志』

風景區志

風景區

『西湖遊覽志』 『峨眉山志』 『北載河海濱風景區志略』

자료 : 陳正祥, 1982, 中國文化地理, 木鐸出版社, 台北, p.24.

 

 

 

 

<표 2> 한국의 지리지의 유형

분류

지리지의 종류

대상 지역

대표서적

 

 

 

 

 

輿 誌

全國

『東國輿地勝覽』 『大東地志』

 

道誌

『慶尙道邑誌』 『湖南邑誌』 『關東誌』

郡縣誌

府ㆍ牧ㆍ郡ㆍ縣

『義州牧邑誌』 『龍仁縣邑誌』 『大麓志』

村ㆍ洞ㆍ面誌

村ㆍ洞ㆍ面ㆍ里

『薰陶坊鑄字洞志』 『金溪洞志』

鎭營誌

鎭ㆍ營ㆍ驛

牧ㆍ場ㆍ城

『畿甸營誌』 『群山鎭鎭誌』

『笠巖山城鎭誌』

邊防誌

변경지방

『北關誌』 『北行隨錄』 『北塞記略』

 

外國志

外國

『海東諸國記』 『琉球風俗記』 『寰瀛誌』 『海槎錄』

山川志

山ㆍ川ㆍ명승지

『東國名山記』 『妙香山誌』 『金剛山記』

紀行 및 日記類

 

『流頭遊錄』 『耽羅錄』 『關東日錄』

雜誌

 

『道路表』 『魯城闕里誌』

 

 

 

 

 

 

 

 

 

 

 

 

 

 

 

 

 

 

 

2) 조선 전기 전국지리지의 편찬

 

사람의 정주생활과 함께 지도 등 지리적 자료들이 제작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전쟁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많은 문화유산을 상실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나 그 이전의 우리나라의 지리학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중국의 기록과 고려시대에 편찬된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리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왕이 중국의 당태종에게 ‘봉역도(封域圖)’를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으나(『三國史記』, 卷20, 「高句麗本紀」, 榮留王 11년), 그 내용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백제지리지(百濟地理志)’를 언급하고 있어(『三國遺事』, 卷2, 南扶餘), 삼국유사를 편찬할 무렵에도 『백제지리지』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권22)에 의하면, 백제 무왕 때에 승근륵(覲勒)이 일본에 역(曆), 천문(天文), 지리(地理)에 관한 서적을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백제에 지리학이 발달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신라지(新羅志)’라는 표현이 있어, 이 책의 편찬 당시 신라의 지리에 관한 ‘신라지’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위와 같이 삼국시대에 지도 및 지리지가 있었다는 사실과 군사・행정적인 목적으로 지도를 사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실물로 전하는 것은 없다.

고려시대의 지리학을 전해 주는 자료 중 단독으로 전하는 것은 1145년(인종 23)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편찬한 『삼국사기』의 「지리지」 정도이다.

문헌에 보이는 조선시대 이전의 지리지는 대부분 국가에서 편찬한 관찬지리지(官撰地理志)로서 사서(史書)의 후반에 부록으로 첨부된 것이다. 이러한 체재는 반고(班固)가 쓴 중국의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서 비롯되어 그 영향이 이어져 내려 온 것이었다. 이 맥락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리지인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서 보이며, 조선 초에도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志)」의 편찬에 계승되었다.

이 결과 세종대인 1432년(세종 14)에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가 완성되었으나, 이 책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이 전국지리지의 저본이 되었던 각 도별지리지 가운데 1425년(세종 7)에 작성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부본이 남아 있어 지리지 원본의 내용을 짐작케 한다. 또한 1454년(단종 2)에 세종대에 편찬되었던 지리지를 세종실록에 등재하기로 함에 따라 실록에 수록한 것이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이며, 이를 통해서도 신찬팔도지리지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1455년(세조 원년)과 1469년(예종 원년)에도 지리지 편찬령이 하달되었으나 실록 편수로 계속 지연되다가 1477년(성종 8)에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가 완성되었다. 이 지리지 역시 전하지 않으며, 편찬 자료로 만들어졌던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1469)』만이 전한다.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에 국왕인 성종의 뜻에 따라 우리나라 문사들의 시문인 동국시문을 모아 첨재한 것이 1481년(성종 12)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다. 현재 영인, 번역되어 널리 보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성종대와 연산군대에 수교를 거치고 중종대에 새로 증보하여 1530년(중종 25)에 완성해 1531년에 간행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으로서 이후 조선 지리지의 규범이 되어 조선 후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앙의 중신들이 수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작성하는 국가적인 전국지리지 편찬 사업은 이후에는 시행되지 않았다.

신찬팔도지리지 → 경상도지리지 → 세종실록 지리지 계통의 세종대 지리지와, 팔도지리지 → 경상도속찬지리지 → 동국여지승람으로 이어진 성종대 지리지들은 책의 성격이 다르다. 즉 세종대 지리지가 호구・전결・군정・토의・공물등 경제・군사・행정적 측면이 상세한 지리지이었음에 반하여 동국여지승람으로 대표되는 성종대 지리지는 인물・예속・시문등에 치중한, 문화적 성격이 강한 지리지였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 지리지들은 그 이전의 지리지들과 비교해 볼 때 국가에서 편찬한 관찬지리지라는 점이 동일하였으며, ‘지리지’라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사서의 부록으로서 역사서에 포함된 책이 아니라 독자적인 지리서로 만들어졌던 점은 한국지리학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독립된 형태로 제작되었다는 외형적인 측면을 넘어서는 내용상의 변화가 병행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리서들은 지명의 변천이나 고증에 치중한 행정지명집・지명연혁집에 가까웠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지리서들은 정치・사회・경제・인물・예속・시문・행정 등 각 분야에 걸쳐 매우 상세하여 지리지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역사서에서 기록하지 못하는 각 지역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를 수록하여 오늘날까지 당시의 지역

사정을 전해 주게 되었다. 또한 중세 지리지의 체제를 정립하고 조선의 새로운 지리학을 성립시켰다.

계속적인 증보를 통해 변화된 시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점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또한 처음으로 지도를 지리지에 첨부함으로써 초보적인 단계이기는 하나 지리지에 수록된 내용의 공간적 파악과 도시를 달성하려 한 점등이 이들 지리지가 가지는 의의이며 발전적 면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John K. Fairbank, 1958, 서문, 허핑티 지음ㆍ정철웅 옮김, 1994, 『중국의 인구』, 책세상, p.7

[2] 『杞人閒商量』(藏 2-417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소장.

[3] 현재의 지리학은 매우 넓은 분야를 포함하고 있는 종합과학임을 특징으로 한다. 조선시대에도 지리학의 범위는 매우 넓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 ‘지리학’이라는 용어는, 하나의 하위 분야였던 ‘풍수학’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조실록』에는 풍수학을 지리학으로 개칭한 기록이 있다. 이후 과거의 음양과의 분야나 관상감에서 풍수를 담당하는 분야를 지리학으로 불렀다. 『世祖實錄』 권38, 世祖 12년 正月 戊午 “風水學 改稱地理學 置敎授訓導各一”『經國大典』 권3 禮典 諸科 陰陽科 “地理學 講書(靑烏ㆍ錦囊 背講. 胡舜申ㆍ名山論ㆍ地理門庭ㆍ撼龍ㆍ洞林照膽”『大典會通』 권1 吏典 京官職 觀象監 “地理學敎授(從6품, 原 一員 補 革)” “天文學ㆍ地理學訓導各一員(正9품) 命課學訓導一員(正9품, 原 二員 續 減 一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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