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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현(국립중앙과학관)·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박호석(농촌문화연구소)·윤광주(복원전문가)·윤명균(복원전문가) |
자승차 , 수차 , 양수기 , 용두레 , 자승차도해 , 자승차의 구조 , 자승차의 작동원리
이번에 다루는 하백원의 자승차(自升車)는 오늘날의 양수기라 할 수 있는 자동기계장치로, 규남이 30세 되던 해인 1810년 자승차(自升車)를 발명, 가뭄에 시달리던 농촌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자승차도해(自升車圖解)>에서 “땅이 비옥한데도 열흘만 비가 오지 않으면 높은 지대의 곡식이 말라 죽고 흉년이 들기 때문에 이를 활용, 밤낮으로 물을 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하고 있어 대민 규휼정신이 가득 배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규남 하백원이 만든

과학기구 자승차(自升車)[1]

 

 

윤용현(국립중앙과학관)·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박호석(농촌문화연구소)·윤광주(복원전문가)·윤명균(복원전문가)

 

 

. 머리말

 

수차(水車)는 한발에 대비한 양수기로서 관개 수리사업에 쓰이는데, 수차는 풍차(風車)와 더불어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이전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장치였다. 수차는 그 용도에 따라 정곡(精穀)과 제분용 물레방아의 동력으로서, 그리고 관개의 수리용의 물레바퀴로서 각각 이름을 달리해서 불렸다.

 

우리는 예로부터 벼농사를 생업으로 해 왔다. 처음에는 밭벼농사를 짓다가 논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어떻게 물을 공급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뭄이 계속되면 논물을 끌어들이는데 긴급대책을 세우고, 기우제를 지내기까지 한다. 물을 퍼올리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개발한 도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맞두레, 용두레, 무자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석유나 전기를 이용하여 물을 퍼 올리는 양수기가 나오기 전까지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도구로서 전근대사회에서 첨단 양수기 역할을 톡톡히 하던 것이다.

 

이번에 다루는 하백원의 자승차(自升車)는 오늘날의 양수기라 할 수 있는 자동기계장치로, 규남이 30세 되던 해인 1810년 자승차(自升車)를 발명, 가뭄에 시달리던 농촌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자승차도해(自升車圖解)>에서 “땅이 비옥한데도 열흘만 비가 오지 않으면 높은 지대의 곡식이 말라 죽고 흉년이 들기 때문에 이를 활용, 밤낮으로 물을 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하고 있어 대민 규휼정신이 가득 배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규남의 자승차(自升車) 조선 세종대에 발명한 자격루(自擊漏) 이후 시도된 자동화 기기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큰데, 그 작동원리의 핵심은 강물의 유속을 이용하여 수삽(터빈)을 돌리고 이 수삽의 회전력으로 수저를 들어 올림으로써 물을 퍼 올리는 것이다.

자승차는 다양한 과학원리를 활용한 높은 수준의 양수과학 장비이며, 본 장비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제작자가 유체역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장비이다. 강물의 흐름을 활용하여 수차를 회전시키는 것은 요즘 터빈(Turbine)을 이용한 수력발전의 원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강물의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변환시키며, 이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전환하는 쌍륜이란 장치는 오늘날의 치차전동장치의 일종인 랙(rack)과 피니언(pinion)과 같은 원리를, 빠른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소접륜과 대접륜은 일종의 감속원리를 적용하는 등 당시 과학기술 수준을 감안 할 때 매우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규남 선생은 자승차(自升車)를 발명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51년 빨리 <동국지도>를 제작했으며, <천문도>, <계영배>를 만드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실학자들에 비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글에서는 ‘실용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규남 하백원 선생의 「자승차도해」에 대한 분석과 복원, 실험연구 그리고 자승차의 구조와 작동원리 등 과학기술의 우수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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