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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선조, 학문의 깊은 전통
야사리 , 진양하씨역대유록 , 봉선계첩 , 하씨문중사실 , 금사집 , 병암유고 , 병암만록 , 병암기 , 하영청
규남 하백원 선생의 본관인 진주하씨(晉州河氏)는 본래 진주의 중심도시인 진주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고려 말 조선 초에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태종과 세종때 영의정까지 오른 하륜(河崙, 1347~1416)과 하연(河演, 1376~1453) 선생을 배출하였다.

 

인류는 하나의 종으로 분화된 이후 수백 만 년 동안 먹잇감을 찾아 수렵·채집의 이동생활을 지속해 오다가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마을 중심의 정착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약농업을 통해 문명을 일으키면서 정치·경제·문화의 지배 거점인 도시라는 새로운 정주 공간을 탄생시켰고, 전통시대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지배신분은 마을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도 고조선부터 고려 중기까지 지배신분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려 말부터 고을의 지배신분으로서 중심도시에 거주하던 향리 신분으로부터 분화된 지방 양반들이 마을로 이주하는, 세계적으로 아주 독특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현상은 조선 초기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어 16세기 이후에는 어떤 양반도 그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을의 중심도시에 살지 않아야 하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대로 이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의 세거지(世居地)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굳어졌습니다. 그 과정은 첫째, 고을의 중심도시에서 벼슬을 하기 위해 수도로 상경했다가 지방으로 다시 이주할 때는 중심도시가 아니라 마을에 터를 잡거나 둘째, 고을의 중심도시에서 수도로 상경하지 않고 곧바로 마을에 터를 잡는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1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남녀균분상속제의 원리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본가뿐만 아니라 처가나 외가로 가는 경우도 많아 여러 성씨의 양반이 함께 살아가는 세거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딸이 상속대상에서 제외되고 아들 중에서도 장자우선상속제가 정착되면서 하나의 성씨만으로 이루어진 세거지가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정착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동성동본(同姓同本)의 동족마을이 양반의 세거지로서 일반화되었습니다.

 

규남 하백원 선생의 본관인 진주하씨(晉州河氏)는 본래 진주의 중심도시인 진주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고려 말 조선 초에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태종과 세종때 영의정까지 오른 하륜(河崙, 1347~1416)과 하연(河演, 1376~1453) 선생을 배출하였습니다. 선생의 직계 조상인 하결(河潔, 1380~?) 선생은 하연 선생의 동생으로 1451년(문종 1)에 정3품의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역임하다가 1453년(단종 1)에 물러난 후 세조(재위: 1455~1467)가 즉위하던 즈음에 정읍현의 초산(楚山)[1]으로 낙향하여 은거하였습니다. 그 후손의 일부가 1500년대 중반부터 동복현으로 옮겨 살았고, 1600년대 초반에 규남 선생의 7대조이신 하윤구(河潤九) 선생이 무등산 동남쪽의 동복현 외서면 야사리에 터를 잡았습니다. 이후 야사리는 규남 선생 집안의 세거지가 되었고, 이곳에 대대로 거주해온 진주하씨는 ‘동복하씨’로 불렸습니다. 금사(錦沙) 하윤구 선생은 1623년(인조 1)에 이조판서로 추증된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선생에게 『소학(小學)』을 배웠습니다. 1610년(광해군 2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어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1633년(인조 11)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벼슬로는 종6품의 율봉찰방(栗峯察訪)과 전적(典籍)에 올랐고,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올라갔다가 화친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청나라에 대한 설욕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시책을 제안하며 집념을 불태우시다 돌아가셨는데, 문집으로는 『금사유집(錦沙遺集)』을 남겼습니다.

 

규남 선생의 증조 할아버지이신 병암(屛巖) 하영청(河永淸. 1697~1771) 선생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두 형까지 세상을 떠나자 과거 응시를 단념하고 가문의 일에 힘을 쏟아 문중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고, 향촌의 운영에 적극적이었으며, 마을 자제의 공부를 위한 강당을 마련하였습니다. 여기에 돈을 아끼지 않고 서적을 구입하여 ‘만권의 책을 가진 집’이란 뜻의 만권택(萬卷宅)이라 불릴 만큼 많은 장서를 가지게 되었고, 병암정사(屛巖精舍)를 지어 학문에 정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각각 정2품의 공조판서까지 역임한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 선생과 구암(久庵) 윤봉구(尹鳳九, 1683~1768) 선생, 정2품의 우참찬(右參贊)까지 역임한 자락헌(自樂軒) 유최기(兪最基, 1689~1768) 선생, 정3품의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한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1702~1772) 선생, 정3품의 찬선(贊善)을 역임한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 1705~1768) 선생, 1700년대의 실학자로 유명한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 선생과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1) 선생 등 당대의 많은 학자들과 서신을 교환하거나 직접 만나는 등 활발하게 교류하였습니다. 문집으로는 『병암유고(屛巖遺稿)』, 『병암만록(屛巖漫錄)』, 『병암기(屛巖記)』를 남기셨습니다.

 

 

그림 1. 일제강점기 1:5만 지형도의 야사리·적벽·물염정·옹성산

* 출처 : 종로도서관 홈페이지

 

 

 

전시 자료

 

 

진양하씨역대유록(晋陽河氏歷代遺錄)

 

      

 

 

- 저자 : 하정익(河廷益) 편

- 판본 : 목활자본

- 발행연도 : 1772

- 크기(가로×세로 cm) : 35.5 x 23.7 cm

- 책수 : 1책

- 청구기호 : 규-037

 

진양하씨 족보의 서문과 선조의 기록들을 모아 목활자로 간행한 책이다.

 

 

 

봉선계첩(奉先契帖)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봉선계첩.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47pixel, 세로 640pixel      

 

 

저자 : 하백원 편

- 판본 : 필사본

- 발행연도 : [1800]

- 크기(가로×세로 cm) : 36.4 x 24.9 cm

- 책수 : 1책

- 청구기호 : 규-028

 

규남 선생의 7대조이신 금사 하윤구 선생의 후손들이 선조를 추승하는 계모임을 만들고 규약 등을 작성한 책이다. 규남 선생이 편찬을 맡았으며, 1799년에 「봉선계첩서(奉先契帖敍)」를 직접 작성하여 수록하였다.

 

 

 

하씨문중사실(河氏門中事實)

 

      

 

 

저자 : 하옥(河沃) 씀(書)

- 판본 : 필사본

- 발행연도 : 1844

- 크기(가로×세로 cm) : 37.7 x 25.6 cm

- 책수 : 1책

- 청구기호 : 규-027

 

규남 선생이 병환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하씨 문중과 관련된 주요 사항으로 제사와 관련된 일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장만한 토지인 위토(位土), 선조를 추승하는 계모임인 봉선계(奉先契), 묘역 주변에 훼손하지 않고 보존해야 할 나무와 관련된 금양(禁養)에 대해 집필하라고 명해서 작성한 책이다.

 

 

 

금사집(錦沙集)

 

      

 

 

저자 : 하윤구

- 판본 : 필사본

- 발행연도 : 발생년 미상

- 크기(가로×세로 cm) : 30.1 x 20.7 cm

- 책수 : 1책

- 청구기호 : 규-039

 

규남 하백원 선생의 7대조이신 금사(錦沙) 하윤구(河潤九) 선생의 문집 간행을 위해 필사하여 교정을 끝낸 정고본(定稿本)이다.

 

 

 

병암유고(屛巖遺稿)

 

      

 

 

- 저자 : 하영청

- 판본 : 필사본

- 발행연도 : 발생년 미상

- 크기(가로×세로 cm) : 22.8 x 19.7 cm

- 책수 : 1책

- 청구기호 : 규-009

 

규남 하백원 선생의 증조 할아버지인 병암(屛巖) 하영청 선생의 필사본 문집이다.

 

 

 

 

병암만록(屛巖漫錄)

 

      

 

 

- 저자 : 하영청

- 판본 : 필사본

- 발행연도 : 발생년 미상

- 크기(가로×세로 cm) : 26.0 x 16.5 cm

- 책수 : 1책

- 청구기호 : 규-010

 

규남 하백원 선생의 증조 할아버지인 병암(屛巖) 하영청 선생의 필사본 문집이다.

 

 

 

병암기(屛巖記)

 

      

 

 

저자 : 하영청

- 판본 : 필사본

- 발행연도 : 발생년 미상

- 크기(가로×세로 cm) : 25.6 x 15.0 cm

- 책수 : 1책

- 청구기호 : 규-016

 

규남 하백원 선생의 증조 할아버지인 병암(屛巖) 하영청 선생이 지은 기문(記文)을 병풍식의 절첩 형식으로 묶은 책으로, 그 내용은 『병암유고』에도 수록되어 있다.

 

 

 


[1]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초산동으로, 우리말 이름은 ‘쌀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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