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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본
진단학회 | 군정청문교부, 1946
국사교본 , 국사 , 역사교과서 , 국사교육
『국사교본』은 광복 후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정리하여 편찬.발행한 국사 교과서이다. 저작자는 진단학회이며, 발행자는 군정청 문교부이다. 1946년 5월 26일에 발행되었으며, 발행소는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이다. 정가금은 20원으로 매겨 있다. 광복 직후의 우리나라는 국사 교육이 전무한 실정이었다. 당시 사회.문화를 구성하는 여러 대상들에 대한 교육 개발이 두루 그러했지만, 국사 교육의 경우도 교과서 편찬이나 그에 따른 교수 활동이 막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강점기의 찌꺼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데다 사회적 혼란마저 가중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img_국사교본 표지 

 

국사 교육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편찬.발행된『국사교본』

 

『국사교본』은 광복 후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정리하여 편찬.발행한 국사 교과서이다. 저작자는 진단학회이며, 발행자는 군정청 문교부이다. 1946년 5월 26일에 발행되었으며, 발행소는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이다. 정가금은 20원으로 매겨 있다.
광복 직후의 우리나라는 국사 교육이 전무한 실정이었다. 당시 사회.문화를 구성하는 여러 대상들에 대한 교육 개발이 두루 그러했지만, 국사 교육의 경우도 교과서 편찬이나 그에 따른 교수 활동이 막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강점기의 찌꺼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데다 사회적 혼란마저 가중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사 교육의 어려움은 초.중등학교용 국사 교과서가 없었다는 현실에서 기본적인 문제를 짚게 된다. 광복 직후의 사정으로 보아 시중에 나도는 역사책이라 하면 고작 연대기식이나 지은이가 임의로 써낸 이른바 설화 형식의 옛 이야기책 유형들만 범람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른바 전래 설화나 민족 영웅들의 일대기를 이야기로 꾸민 이야기 국사나 야사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학교 현장에서는 수업을 담당한 교원이 직접 교재를 수집하고 강의안을 만들어 자기 나름대로 가르치는 형편이었다. 그러한 정황 속에서 당시 교수요목이 포고되고*1) 그에 따른 국사 교과목의 수업 배당2)이 정해진 이상, 교재 선택이야말로 시급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 1) 학무통첩 제352호, 1945.10.21. 2) 중학교의 역사.지리 교과: 주당 3~4시간(1945.10.21.)〕. 
당시 일선 교원들이 수집한 국사 교재로는 주로 최남선(崔南善), 황의돈(黃義敦), 권덕규(權悳奎), 김도태(金道泰) 등의 저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저술한 역사서들은 체계와 범위, 인식과 해석상의 한계, 그리고 읽기 쉬움의 정도 등이 각각 다르게 나타났고, 거기에다 객관적인 진술이라고 보기 어려운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그와 같은 시중 교재들은 학교 교육에 부적당하다는 판단을 낳게 되었다*(* 문봉주, 1987, 58~59쪽). 
이 같은 문제점들을 파악한 군정청 문교부 당국과 진단학회 측에서는 새 역사 교과서 편찬에 대한 현안을 협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교부 당국은 1945년 9월 17일 진단학회에 국사 교과서 편찬을 위촉했고 동 학회가 이를 수락하는 절차를 이행한다. 이로써 편찬 작업이 현실화된 역사 교과서는 김상기(金庠基), 이병도(李丙燾)가 각각 상고.중고편과 근세.최근세편으로 나누어 집필하고, 유홍렬(柳洪烈)이 보충하여 마침내 마무리를 보았다. 이렇게 하여 새 역사 교과서는『국사교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광복 이후로 책 이름에 ‘교본’이라는 말을 붙여 낸 교과서로는『초등국어교본』과 함께『국사교본』이 최초 사례이다. 
『국사교본』은 중등학교용으로 편찬.발행된 임시 교재였다. 국사 교육의 공백 상태를 메우기 위해 응급조치로 낸 교재였지만, 학교 현장은 물론 일반에서도 애용된 국사 교양서적으로서 큰 영향을 끼친 책이었다. 
참고로, 1947년의 통계에서 보면『국사교본』은 77,145부가 발행되었고, 이 중 67,279부가 보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국사교본』을 배운 주된 대상이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그 학생수가 38,000여 명 정도였다. 이로 보아, 이 책의 보급률이 높았던 것은 학교에서 사용한 것 외에 일반에서도 널리 애용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국사교본』의 꾸밈

 

『국사교본』은 국판 규격에 세 번의 철침으로 고정한 호부장(풀매기)*1)이며, 책등〔背面〕을 종이클로스를 붙이는 클로스 붙임2)으로 제본 상태를 견고하게 유지하도록 했다〔* 1) 제책 방법의 하나. 책의 속장을 철사 옆매기로 고정시키고 풀을 발라 표지를 씌우고 표지째 마무리 재단을 하는 제책 방법. 2) 책의 옆매기 부분에 종이 클로스나 천 클로스를 붙여 제책 상태를 튼튼히 하고 철침 등이 보이지 않도록 감싸 고정하는 것〕.표지는 두꺼운 마닐라지(240g/m2 정도)이며, 본문은 갱지를 사용했다. 본문이 5호(10.5포인트) 활자로 조판되어 있으며, 한쪽에 평균 22줄로 배열되어 있다. 표지를 제외한 본문이 총 177쪽이다. 책머리에「범례」(표제지 뒷면)와「목록」그리고 책 끝의 간기면(이상 3쪽)을 합하여 총 180쪽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목록」이란, 본문 주제들을 배열한 ‘차례’를 말한다. 
광복을 맞이하면서 우리 교과서들에 보인 ‘차례’는 목록, 목차, 속판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이것이 ‘차례’로 통일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이후부터였으며, 제1차 교육과정이 공포(1954.4.20.)된 후 교과서의 신.개편과 관련된 ‘집필상의 유의점’ 등 당국의 문건 등에 명시되었다. 
『국사교본』에 나타난 내용 꾸밈을 보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이 4편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제1편 상고의 전기
상고의 후기
제2편 중고의 전기
중고의 후기
제3편 근세의 전기
근세의 중기
근세의 후기
제4편 최근

 

img_국사교본 목차 1~2 페이지 

 

이와 같이,『국사교본』에서는 상고에서 최근까지의 국사 내용을 8개 시기로 나누어 다루었다. 주로 정치사를 중심으로 하여 통사적으로 살폈음이 이 책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전체를 볼 때, 이 책은 ‘상고의 전기’에서 고대사를, ‘상고의 후기’에서 삼국과 통일신라의 정치.사회.문화를, ‘중고의 전기 및 후기’에서 통일신라와 고려의 교체기로부터 고려 말까지를 살펴나갔다. 그리고 ‘근세’의 경우는 전기, 중기, 후기로 이어 가면서 각각의 해당 시기에 일어난 역사적 현상을 편년체* 방식으로 정리해 보였다〔* 연월(年月)에 따라 역사 내용을 기술하는 역사 편찬의 한 체제임.〕. 
본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가로짜기 체제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주된 사용 대상이 중등학교 과정임에 비추어 본문 중에 보인 한자의 수준이 꽤 높으며, 그 노출 빈도 또한 매우 많다. 한자 전환이 가능한 거의 모든 단어들을 한자어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또 본문의 진술도 ‘각주’나 ‘참고’ 등을 이용하여 쉽게 안내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단지 국사에 관한 지식 내용만을 하나의 그릇에 최대한 담아내려 노력한 인상이 짙다.

 

시대ㆍ대상의 비중

 

『국사교본』에서 다룬 시대별 비중은 오늘의 우리에게 흥미를 끌게 한다. 이는 본문 총 분량에 대비 점유율을 말한다. 먼저, 시대별 비중을 보면 ‘상고’의 전후기(21쪽) 11.9%, ‘중고’의 전후기(56쪽) 31.6%, ‘근세’의 전.중.후기(94쪽) 53.1%, ‘최근’(7쪽) 4.0%로 되어 있다. 이로 보아 ‘근세’ 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을 점하며, 특히 ‘최근’의 경우는 점유율이 가장 적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 사실을 다룬 비중이 지나치게 특정 구간으로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민족의 수난과 저항」(제4편 제1장),「민족의 해방」(동 제2장)을 주제로 다룬 내용이 적은데, 이러한 본문 안배는 오늘의 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를 중시하는 관점과 차이를 보인다. 
또 한 연구에 의하면,『국사교본』 본문에 제시된 총 155개 소항목의 영역별 비중이정치 영역에서 무려 104개로 나타나며, 이는 전체 155개 소항목 대비 67%나 점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 10개(6.5%), 사회 15개(9.7%), 문화 26개(16.7%)로 밝혀졌다*(* 김경미, 1991, 13쪽). 
이와 같은 불균형이 있음에도『국사교본』은 우리나라의 변천사를 우리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정리했다는 점과 광복 후 최초의 국사 교과서로 이룩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업적으로 평가된다. 


img_국사교본 1 페이지 

 

『국사교본』의 편찬 기관인 진단학회에서 제시한「범례」에 의하면, 그 사용 대상 및 성격을 "임시 고급용 국사교본"임을 전제하고, "운영 여하에 따라 중등 내지 전문 정도에서 쓸 수 있음"과 또 "국민학교 교원의 참고용으로도 물론 쓸 수 있음"도 밝혔다. 따라서 이 책은 "민족 문화와 국가 사회 변천 발전의 대요를 될수록 간명히 서술함에 힘썼음"을 알리고 있다. 이러한 알림은 직접 본문을 열면서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본문 첫머리를 시작한「국사 학습의 의의」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밝혔음이 그것이다.

 

국사 학습의 의의: 우리 민족 및 문화의 전통과 발전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하고, 민족성의 본질을 체득하여 건전한 국민정신과 국민적 도덕 및 정조(情操)를 배양함. 〈현대어 표기: 필자〉
〈『국사교본』, 1쪽〉

 

이와 같이, 국사 학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책의 첫머리를 시작한다. 그에 따른 전제점이 우리 민족 및 문화의 전통과 발전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학습 태도를 가짐으로써 국민정신과 국민의 도덕 및 정조*를 기를 수 있다고 보았다(* 진리, 아름다움, 선행, 신성한 의지의 정신). 이로써 국사 학습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인지를 거듭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국사교본』의 의의

 

8.15 광복을 맞이하면서 무엇 하나 급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교육을 다시 세우는 일이야말로 특별히 시급한 현안일 수밖에 없었다. 침략 세력에 의해 빼앗긴 세월을 겪은 끝에 국민 교육을 세워 나라 부흥을 앞당겨야 한다는 생각이 온 나라에 출렁였다. 
그래서 1945년 9월 24일에 초등학교가 개교를 보았고, 뒤이어 10월 1일에 중등학교도 문을 열었다. 일제의 패망과 미군 진주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휴교 사태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럴 때 교과서 문제는 매우 중대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광복을 맞이한 세상에서 침략 세력의 찌꺼기(일본강점기에 사용하던 교과서들)가 남아 있어 하루빨리 우리 교과서를 갖추어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일본 교과서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말로 만든 교재가 시급했던 것이다. 당시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잇따라 한글 강습회가 열리고, 각급 학교에서는 당장 필요한 교육 수단을 만들기 위하여 자율적인 노력으로 정식 교과서가 출판될 때까지 임시 교재를 서둘러 마련해 사용하는 일이 흔했다. 
『국사교본』은 그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편찬.발행되었다. 그만큼 극소수의 필자들만 이 책의 집필자로 참여했다든지, 또 개발 기간도 너무 단기간이었다는 점 등 기본적인 문제점을 떠안고 있던 책이『국사교본』이기도 했다. 따라서 내용상의 비중이 편중되어 있었다는 것과 한자 어휘들의 지나친 노출도 문제였다. 거기에다 여러 중요한 유물.유적과 역사 지도 등을 삽도로 소개해야 함에도 이것이 빠져 있다는 등의 문제점을 보였다. 이 책의「범례」에서 밝혔듯이 “편찬이 창졸* 간에 되어 삽화와 지도를 넣지 못했음을 유감으로 여김”이라 한 말이 그러한 사정을 말해 준다(* 미처 어찌할 사이 없이 매우 급작스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국사교본』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첫째, 광복 이후 최초로 편찬.발행된 본격적인 국사 교과서라는 기록성이 있다.
둘째, 국사 교육의 공백 상태에서 이를 앞당겨 메워 준 교과서로 존재했다.
셋째, 국사 교육의 시급성을 중대시한 역사학자 단체인 전문 연구 기관에서 편찬을 담당했다. 
넷째, 이 책은 임시 교재였으나 당시 널리 학습된 국사 교과서로서,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도 광범한 보급을 실현한 국사 교양 도서로 존재했다. 
다섯째, 이 책은 뒷날의 국사 교과서 편찬에 매우 중요한 참고 자료로 이바지했으며, 국사 연구에도 중요한 기본 자료로 활용되었다. (이종국)

 

참고문헌

김경미,「미 군정기《국사교본》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1991. 
문봉주,「해방 직후의 문화 건설 운동과《국사교본》」,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1987.
오천석,『한국교육사(하)』, 광명출판사, 1975. 
이종국,「우리나라의 발달 1 편찬 발행에 대한 고찰」, 한국출판학회 편,《'85출판학연구》, 범우사, 1998.
조선통신사 편,『1948년판 조선연감』, 조선통신사, 1947. 
중앙대학교 부설 한국교육문제연구소 편,『문교사』, 중앙대학교 출판부, 1974. 
함종규,『미 군정시대의 교육과 교과과정』(KR 84-2), 한국교육개발원,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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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史敎本 震壇學會 編 軍政廳文敎部 1946 한국교육개발원 단행본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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