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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현실화조치
긴급통화조치법 , 통화개혁 , 금리현실화 , 수신금리 , 여신금리
1960년대에 정부는 정부주도의 성장정책을 뒷받침할 관치금융의 골격을 마련하기 위하여 국내 금융시장에 새로운 통제를 도입했다. 사실상 이와 같은 통제 시스템은 1950년대로부터 후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시중은행을 다시 국유화하였고, 중앙은행에 대한 통제권도 강화하는 등 금융시장에 대한 개입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유화의 방향으로 진행했던 정책이 있다.

1960년대에 정부는 정부주도의 성장정책을 뒷받침할 관치금융의 골격을 마련하기 위하여 국내 금융시장에 새로운 통제를 도입했다. 사실상 이와 같은 통제 시스템은 1950년대로부터 후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시중은행을 다시 국유화하였고, 중앙은행에 대한 통제권도 강화하는 등 금융시장에 대한 개입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유화의 방향으로 진행했던 정책이 있다. 바로 1965년 9월 시행된 금리현실화조치이다.

 

1962년 ‘긴급통화조치법’에 의거해 단행된 통화개혁조치 후, 1965년 9월 30일을 기하여 금리현실화조치를 단행하였다. 금리현실화 이전의 시중금리는 연 40%에 달하였는데 우리나라 금융기관 여수신금리는 연 3.5~20.0%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상은 민간유동자금을 금융기관 저축으로 유입시키지 못하여 자본시장의 발달과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내자동원, 자원배분, 금융정책 정상화 등을 위하여 금융기관의 금리가 현실적 시장금리에 근접할 수 있도록 인상하였던 것이다. 
정부는 9월 하반기에 「이자제한법」을 개정하여 금리상한을 연 20%에서 연 40%로 대폭 인상한 다음 금리현실화조치를 단행했다. 금융기관의 수신금리는 정기예금의 경우 연 15%에서 연 30%로 2배 인상하였고, 여신금리는 일반 어음대출의 경우 연 15%에서 연 26%로 대폭 인상하였다. 당시 실질금리의 현황을 보면, 금리현실화 이전 1962년~64년의 은행금리(1년 만기 정기예금 및 일반대출 금리 기준)는 15~16%에 규제되어 상당 폭의 마이너스 실질금리를 나타냈으나 현실화로 인해 1966~68년의 실질금리는 13~14%의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저금리에 체질화된 국내기업에 이러한 금리현실화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금리현실화는 금융기관의 시중자금 흡수능력 제고 및 금리의 자금배분기능 제고를 위한 것이었다. 사채금리가 연 5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수신금리 인상은 시중자금을 공금융부문으로 유도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또 여신금리 인상은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문으로의 자원배분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적어도 시중자금 흡수라는 면에서 금리현실화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은행의 저축동원기능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금리자유화가 진행된 후 저축성예금을 중심으로 은행예금이 급속한 증가를 보였다. 은행의 저축성예금은 1965년 말까지 3개월간 약 50% 증가하였고 그 후에도 1969년 말까지 매년 2배 증가하였다. 그 결과 GDP 대비 저축성예금의 비율은 1964년 말 2%에서 1969년 말 21%로 상승하였고, 총예금의 비율은 6%에서 29%로 상승하였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는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하하였는데, 이는 일부 예금금리가 대출금리를 상회하는 역마진을 시정하고, 기업의 재무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금리현실화로 은행저축성예금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M2(총통화)의 증가율도 1965~69년간 매년 50%를 상회하였다. 하지만 높은 통화 증가율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금리인상에 따른 통화보유 수요 증가를 주로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물가상승압력을 초래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결과적으로 당시 금융심화가 큰 진전을 보였고, 이는 무엇보다도 금리현실화조치의 결과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수신금리가 여신금리보다 더 높음으로 인해 예대금리 간에 역마진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한 금융기관 수지 악화를 보전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지준예치금과 통화안정계정에 묶인 자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국내외 금리차가 커지면서 외자도입이 급증하였고, 이로 인해 기업 및 금융 부문의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1969년 3월 청와대에 ‘부실기업정리반’이 구성되어 부실기업의 처분ㆍ합병 등의 업무를 추진하였다. 그 당시 정부발표에 의하면 외자기업 중 83개사가 은행관리로 넘어갔고 123개사가 경영부실에 빠져 있었다. 1971년에는 외자기업 중 부도업체의 수가 200개로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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