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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文界(신문계)
다케우치 로쿠노스케(竹內錄之助) | 신문사, 1913

1. 창간 서지와 창간호

 

『신문계 新文界』는 1913년 4월 5일자로 일본인 다케우치 로쿠노스케(竹內錄之助)가 창간, 한글로 발행한 일종의 계몽잡지인데, 1917년 3월까지 통권 48호를 내고 종간되었다. 당시로는 장수한 잡지라 하겠다. 한일합방(1910)이 된 3년 후부터 3ㆍ1 운동(1919)이 일어나기 2년 전까지 발간되었는데, 전반적 내용은 일제 식민정책의 선전 역할이 주요했다.
창간호의 판권장을 보면, 발행 겸 편집인 다께우찌(竹內錄之助), 인쇄인 무네조, 인쇄소 경성(京城)인쇄소, 발행소 신문사(新文社 경성‧장곡천정 長谷川町: 지금의 소공동 1가 39), A5판 70면이고 정가 15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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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사인 ‘發行旨’는 다음과 같다.
"冬에 羊裘를 着고 夜에 蠟燭을 店은 全히 時期 適用이라. 만일 冬에 됴타야 夏에도 着며 夜에 다야 晝에도 點면 엇지 愚昧 免리오. 文도 亦是上古엔 古文이 有고 中古엔 中古文이 有고 現代엔 現代文이 有니, 今世에 居야 上古나 中古에 適用 것을 變치 아니면 炎天에 羊裘를 着하고 白晝에 蠟燭을 點함과 如 지라, 所以로 스스로 新치 못 文을 吸收力으로 行케 야 日新月新하고 內新外新 新文으로, 新半島 新靑年에게 夏葛에 新節服과 太陽에 新光線이 身體에 便宜고 眠目에 明朗토록 供노라."

목차는 제목만 나열하고 필자는 내세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원고는 거의 편집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發行旨'/ '春과 學生'/ '新文界論'/ '金剛은 天然的 公園'/ '松陰先生의 士規七則'/ '倫理'/ '憐寸(石硫黃: 성냥) 製活法' / '滋養分이 最當 鷄卵과 牛乳' / '珍奇 雲氣自筆機'/ '日用 石油 吾人의 幸福'/ '生理'/ '朝鮮語에 聯 參考文字'/ '起語虛字',
'算術智慧囊'/ '國語(日本語)速成'/ '簿記'/ '國語練習'/ '學生의 大冒險'/ '書式'/ '書簡文'/ '文苑'/ '唱歌'/ '가뎡학강화'/ '奇書'/ '文林'/ '編輯室通奇' 등이 실렸고, 목차 앞쪽에는 '20年前 京城 南大門'/ '洗濯'/ '東京高等商業學校'/ '米國 콜로라도 附近海岸' 등의 사진화보가 있다. 목차 중의 '松陰 先生'이란 일본 근대의 지사(志士)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959)을 말한다.

 

2. 발행·편집인 다케우치 로쿠노스케(竹內錄之助)

 

발행 및 편집인 다께우찌는 『신문계』를 내기 2개월 전인 1913년 2월 18일자로 『新文世界』를 창간했는데, 곧 『新文界』로 개제하여, 제1권 2권 1호로 발행했다. 이후 다께우찌는 1917년 3월 『신문계』를 종간하고, 4월 10일자로 동경에서 한글판 시사종합지 『반도시론』을 창간했다. 1919년 4월까지 25권을 발행한다. 지금까지 일반 잡지와는 달리, 판형도 크게 B5으로 하고, 내용도 120면이 넘게 상당량의 기사를 담았다. 또 이와 별도로 그는 1913년 12월 15일자로 부녀층을 대상으로 순 한글로 된 『우리의 가뎡』을 창간하여 1914년 11월까지 통권 12호를 발행했다. 
『신문계』와『반도시론』은 발간 당시부터 "시대에 부적절"하고 "몰이상, 무기력, 몰주체, 무정신"적이라고 비판을 받은 바 있었다. 스스로도 "시대가 이를 용서치 아니한 즉 어찌 이상대로 筆을 執하며 주의대로 情을 통하리오"라는 변명을 앞세워(1915. 『편집일기』, 『신문계』3권12호) "일선동화"의 기관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때문에 당연히 친일 잡지로 도외시되었고 다케우치에 대한 연구도 미진한 편이었다.
『신문계』『반도시론』의 기사를 통해 추측해본다면 그는 1904년경 한국에 건너와 처음에는 실업에 종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년 시대에 동경에 遊" 하다가 한국행을 결행한 이후 "명치 37~8년의 일본 청년은 總히 실업을 희망'하는 데 따라 한동안 실업가의 길을 걸었으나 "대정 2년에.... 잡지계에 투신했다고 한다.(음월생, 1917, 「경부선 차중에서」, 죽내생, 「동경아관」, 『반도시론』1권2호) 1913년 『신문계』의 창간은 그 결과였다. 
『신문계』및 『반도시론』에서 그는 단순한 발행인의 입장에 그치지 않고, 집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매호 권두의 글을 담당하는 등 잡지의 편집 방향을 잡고, "금일 천지에 반도 동포도 명의상이나 실행상에 당당한 제국 신민"이라는 시각을 전파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은 기치 아래 실질적으로 가장 강조한 것은 '실업' 즉 산업·농넙·공업·광업·잠업·임업·목축 발전의 요구를 집약한 '식산흥업'의 가치였다고 할 수있다. 그에게 신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실업의 발달'이고, 신문계란 '"야매한 사회를 일변하여 문명한 세계가 됨"을 뜻하는데, "학계 정도를 -악하여 물리 화학과 격치, 경제와 천문 지문의 필요한 학술로 사해 동포를 교육하며 오주종족을 진보케" 하는 것이 그 첩경이다.

 

3. 『신문』의 내용적 특징

 

1910년대 최남선을 중심으로 한 『청춘』과 유학생회 기관지『학지광』에는 이광수, 현상윤, 진학문 및 신진 유학생 지식인들이 필자였지만, 다케우치 중심의 『신문계』에는 최찬식, 백대진, 송순필 등 주로 1900년대, 1910년대 신소설 작가로 알려진 이전세대의 개화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신문계』의 특이점은 이런 주요 필자 그룹 외에,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다수의 현직 교사들을 고문으로 확보하였다. 당시 『경성일보』 주필이자 최찬식의 부 최영년崔永年이 다케우치 그룹의 후견인이자 주요 필자의 한 사람으로 활약한 점도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신문계』는 창간 초기부터 상당 기간 동안 실업, 식산 흥업의 기치를 내세운, 기능적 지식을 전파하는데 주력했다. 초기 『신문계』의 잡지 구성을 이해하기 위해 참고로 4호(1913.7)의 목차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新文은 學海에 輪船」, 「才華보다 勤勉」, 「端陽天氣」 (창가, 碧鍾居士), 「金剛은 天然의 公園」(海東山人), 「朝鮮五大江의 源流及支流」(李石雨), 「倫理」(姜邁), 「植物硏究」(金東赫), 「動物界」(C.T.G생), 「牛骨의 利」(太華逸人), 「洋燭의 原料는 何者」(金珉培), 「空氣는 何如한 者뇨」(洪善杓), 「消化器」(李承靑), 「朝鮮에 關한 參考文」(周時經), 「漢文의 字解」(朴麟鍾), 「文明의 來歷」(洪善杓),「韓語虛字」(權寧瑀), 「算術智慧囊」(柳一宣), 「簿記」(任璟宰), 「國語新話」(4), 「英語」(千東皥), 「實用時文」, 「書簡類語」(일본어 편지), 「詞藻」, 「歌曲」(시조), 懸賞課題(당선작문), 懸賞課題(일본어 글짓기),「家庭學講話」, 「寓意談」, 「文林」(조선어작문), 「衛生學講話」(劉秉珌)

재능(才華)보다 근면을 강조하고, 식물연구, 동물연구, 산술기술, 공기의 구성, 성냥의 재료 등, 실용적, 자연과학적 지식이 개요로 전달되고, 실용시문, 영어, 일본어 편지쓰기용어 등 문학에서도 실용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신문계』 편집진들은 그러한 각종 지식을 '보통지식'이라 통칭했다. 요컨대 그들은 서구 근대문명의 성격을 '기려奇麗한 장복裝服, 珍味한 요리, 굉장한 층옥層屋'이라는 측면에서, 물질문명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지식은 그러한 ‘고등생활을 경영’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이런 실용주의적, 물질적 차원의 계몽은,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문학 쪽으로 변화했다. 이는 당대의 다른 잡지, 즉 최남선 중심의 『청춘』이 ‘현상문예’를 문학 분야를 새롭게 정초하고, 『학지광』에서 새로운 신지식인의 심미적 수필, 문학, 해외문학 소개의 글이 등장하면서 그 나타난 변화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신문계』 초기에는 문학이라 해도, 시조와 한시, 백화체 한문소설 등 고답적 양식을 주로 실렸지만, 이후에는 백대진을 중심으로 「현대조선에 자연주의 문학을 제창함」(『신문계』1915.12),「신년 벽두에 인생주의 문학자의 배출을 기대함」(『신문계』1916.1), 「서양문학 일벌」(『신문계』1916.8) 등 작품과 이론 양 측면에서 근대문학에 대한 소개가 점점 많아졌다. 이후 『신문계』5권 2호(1917.2)는 ‘소설 특집호’도 간행되었는데, 그 모두冒頭 논설 「사회교육과 소설」은 소설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문 잡지라 할 것은 智者의 强辯을 不得할지니 신문 잡지에게 사회교육에 대한 원로 원훈의 성망을 讓하야 손색을 現할지나 기 실사회의 진정한 교육은 소설이 是로다.…소설은 태반 句讀이 평이하고 의사가 疏通하야 독자로 하야곰 欲罷不能하고 청자로 하야곰 斷念不得하야 희노애락의 感發이 직접으로 자기가 당함과 여히 善者에게 心賞을 여하고 악자에게 舌誅를 가하야 권선징악의 공정한 태도가 談笑 詼該간이라도 毅然히 발표하야 茶飯갓치 膾炙갓치 念念에 恒在하니 기 進化의 능력이 막대하도다.
이런 입론하에, 벽종거사의 『경성유람기』, 태화산인의 『机床의 夢』, 백대진의 『삼십만원』, 海東樵人의 『壅頭의 春歌』이 실리고 있다. 「궤상의 몽」과 「삼십만원」은 제목처럼 성실과 끈기로 많은 재산을 모은 청년 실업가의 사연을 그린 것이고, 「옹두의 춘가」 역시 성실한 청년을 지원한 후의가 식산의 밑거름이 되고 거액의 보답을 받는다는 내용으로,『신문계』가 취지로 삼은 물질적, 실용적 문명개화를 통한 개인적 성취, 그것을 이루어가는 근면과 성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식민체제하의 저항과 민족주의적 내용과 대별되는 경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4. 1910년대 저널리즘 지평 속에서의 『신문계』

 

한일방방 직후부터 3.1운동 이전까지 소위 ‘무단정치’기간 동안에 인쇄매체 저널리즘 지평에서 볼 때, 또는 국내에서 대중을 상대로 한 계몽지로서 최남선을 중심으로 한『청춘』(1900년대『소년』에 이어서 발행)이 보여주는 민족주의적 계몽적 경향의 신지식인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가 있고, 일본유학생들이 일본에서 발행하던 기관지『학지광』, 그리고 일본인 다께우치가 펴낸『신문계』(『반도시론』)가 친 총독부 성향의 계몽잡지가 있었다. 국내 대중을 상대로 한 조선인 계몽지와 일본인 총독부 성향의 계몽지, 그리고 일본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이 발간하는 새로운 문학, 문화주의 경향의 기관지, 이렇게 세 성향의 잡지 등은 각기의 차별성과 상호간 역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후 한국 근대 저널리즘,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에서 중요한 뿌리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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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잡지 발행자 발행일 수록권호 원문
國語新話 新文界 新文社 1913/01 1권2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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