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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평 대중예술가 김성환

김성환작가의약력을 소개합니다

김성환작가의약력을 소개합니다

김성환화백의성장기는대한민국의발자취입니다

소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고, 이후 우리 미술계의 대표적인 화가를 배출한 경복중(현 경복고)에 진학해 미술반장을 지낼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던 소년. 그러나 만화에 대한 관심을 저버릴 수 없어 1949년 경복중 5학년 시절,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라는 만화를 연재하여 가족의 생활비를 마련하였던 청소년. 6.25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해 서울 정릉 다락방에 숨어 지내면서 200여 캐릭터를 그렸고, 그 중에서 대한민국 만화사에 일획을 그은 ‘고바우영감’을 탄생시킨 청년. 산업화와 민주화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도출된 수많은 독재정권의 비행을 드러내 ‘고바우영감’으로 투영시켜 억눌려 지내는 서민들에게 대리만족의 통쾌감을 선사했던 장년. 피말리는 신문사의 마감시간에서 해방되어 서민의 곁으로 돌아가 40~50년 전의 서울의 뒷골목 ‘판잣집’을 소재로 자신만의 화풍을 그려낸 노년. 지금은 버스를 타고 차장 밖을 바라보며 거리를 지키고 있는 가로수에게 “네가 더 오래 살겠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할 수 밖에 없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는 김성환 화백의 짧은 이력이다.

김성환화백과고바우영감은50년이상을함께했습니다

김성환 화백의 만화는 고바우에서 시작하여 고바우로 마감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기록을 양산하였다. 신문에 연재한 것 만해도 총 1만4139회, 50년이었다. 이 기록만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 같은 기록이다. 신문사도 처음 <만화신보(1950)>에서 <동아일보(1955~1980)>, <조선일보(1980~1992)>, <문화일보(1992~2000)>까지 총 4개 신문에서 연재되었다. 

또한 고바우영감은 만화에만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고바우는 영화에도 존재하였고, 우표로도 존재하였다. 그리고 세계만화백과사전에도, 거리의 가로등으로도 존재하며 상으로도 존재하고 박사학위로도 남아있다. 영화 속의 고바우는 같은 이름의 영화 제목으로 50~60년대 우리 영화계를 주름잡던 김승호씨의 주연(고바우역)으로 1959년에 상영되었으며 고바우 탄생 50주년을 맞아 우정사업본부는 고바우 우표를 제작하였다. 또한 ‘만화의 도시’를 선포한 부천시는 고바우 캐릭터를 활용하여 가로등을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1998년에는 미국의 첼시하우스 출판사가 발행한 <세계만화백과사전>에 한국 만화가로 유일하게 등재되었으며 2001년에는 그의 작가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바우 만화상’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박사학위로 존재하는 고바우에 대한 논문은 두 개다. 그 중 첫 번째는 1977년에 하버드대학의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노스이스턴대학 드레즈 교수의 ‘고바우의 언어’라는 논문이다. 두 번째 박사학위는 2006년 일본 교토의 세이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인경강사의 고바우작가 연구논문이다.

고바우영감의탄생기는이렇습니다

생김새가 동안이어서 같은 나이에 비해 3~4살 정도 아래로 보았다는 김성환 화백은 용케도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는 일을 면할 수 있었고, 9.28 수복이 될 때까지 다락방에서 숨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수많은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한다. 200여 개 이상의 캐릭터를 그렸다는 김 화백은 당시 남들이 창조해 낸 주인공과는 판이한 모습의 체격과 표정과 성격을 갖고 있는, 그러면서도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만화의 주인공에 모든 관심이 꽂혀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가 '높을 고(高)' 성씨에, 바위를 뜻하는 '바우'라는 이름을 붙인 고바우영감이다.

당시 만화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과장된 얼굴 표현이 특징이었다고 하는데, 고바우영감은 정반대로 늘 무심한 듯 같은 표정을 하고 있고, 한 가닥 있는 머리카락으로 심리상태를 표현하여 김 화백의 속내를 드러내고자 하였다고 한다. 평소에는 머리카락이 앞으로 약간 구부러져 있다가 놀라면 빳빳해지고, 질릴 정도면 꼬불꼬불해지고 화났을 때는 똑바로 서고하는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탄생한 고바우는 9.28 서울 수복 이후 조각가 윤효중씨와 종군기자 박성환 씨에 의해 발행된 <만화신보>에 첫 데뷔를 하게 된다. 

김 화백은 1.4 후퇴 때엔 국방부 발행인 <만화승리>의 만화 담당자가 되어 활동하였고 서울 환도 이후 <사병만화>, <육군화보> 등의 군인 잡지에 고바우를 등장시키기도 하였으며 1954년 이후에는 대중잡지인 <희망>, <신태양> 등에 4컷의 고바우를 연재하여 식자들에게 호평을 받기 시작한다.

화가로서의김성환화백은지금도계속되고있습니다

1세대 시사만화가의 길을 걸었던 김 화백은 2000년 9월 29일을 마감으로 신문의 시사만화계를 떠난다. 이미 조선일보에서 1992년 정년을 하였고 문화일보에서 덤으로서 시사만화를 더 그렸는데, 더 이상 분초를 다투는 마감의 현장을 지키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문을 떠난 김 화백은 2000년 11월에 고바우 반세기전을 열었고 2004년 현대풍속화 <판자촌 시대> 전시회를, 2007년에는 무릉도원을 주제로 한 ‘고바우 서화 소품전’을 열었다. 김 화백의 전시회가 꼭 은퇴 이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61년 제1회, 1963년 제2회 회화 개인전을 시작으로, 1982~1990년 동양화 개인전 5회, 1987년 고바우영감 1만회 기념전, 1995년 세계풍물화전 등을 가진 바 있다.

이밖에 1996년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고바우 김성환 작품상설전시실이 설치되었으며 1973년 동아대상, 1974년 소파상, 1988년 서울언론인클럽 신문만화상, 1990년 언론학회 언론상, 2002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는 만화집 《세태만상(1954)》, 《캐리커처(1954)》, 《꺼꾸리군장다리군(1954)》, 《고사리군(1955)》, 《김성환전집 고바우영감(전10권, 1973)》, 《고바우아저씨(일어판, 1976)》, 《소케트군(전5권, 1978)》, 《고바우현대사(전4권)》등이 있으며, 수필집 《인간동물원》, 《고바우와 함께 산 반생》, 《고바우방랑기》, 《만화 한국현대사-고바우의 50년(일어판, 2003)》, 《고바우의 판자촌이야기(2004)》, 《나의 육필까세집(2005)》, 《고바우잡학백과(2006)》 등이 있다. 그밖에 《구한국시대 우정사(郵政史)》, 《구한국시대 봉피야화》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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