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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원종공신녹권>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 대한 기록
좌익원종공신녹권 , 세조 , 수양대군 , 단종 , 공신
수양대군은 단종을 폐위하고 자신이 왕이 되었는데, 이 거사가 성공하자 신하들의 공적을 따져 공신의 책봉과 포상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좌익원종공신녹권(佐翼原從功臣錄券)>이다.

 

 

 

수양대군은 단종을 폐위하고 자신이 왕이 되었는데, 이 거사가 성공하자 신하들의 공적을 따져 공신의 책봉과 포상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좌익원종공신녹권(佐翼原從功臣錄券)>이다.


 

그림 1. <좌익원종공신녹권(佐翼原從功臣錄券)>


 

‘공신’은 왕조의 변천기나 왕위 계승 때, 또는 국왕을 둘러싼 반정 사건이나 나라가 병난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국가와 왕실을 위해 공을 세워 왕이 내려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공신에 대한 예우는 신라 시대 때에 ‘금서철계(金書鐵契)’를 녹훈했다는 기록이 일연의<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이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이미 공신들에 대한 포상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은 고려 시대로,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공적을 세운 신하들에게 ‘개국공신’이란 칭호와 그에 합당한 포상을 한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는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조선을 건국하는데 동참한 사람들에게 개국공신에 책봉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 영조 4년 1728에 이인좌(李麟佐)의 반란을 진압한 ‘분무(奮武)’ 공신의 칭호가 명나라 숭정제(崇禎帝)의 시호에 들어있다는 이유로 영조 40년 1764에 ‘양무(楊武)’ 공신으로 재발급한 것까지 모두 33회에 걸쳐 대략 3만여 명에 이르는 공신이 책봉되어 녹권이 반사되었다.

 

그중 대표적 사례로 임진왜란 이후 1604년에 공신도감에서는 선무원종공신 9,060명. 호성원종공신 2,475명. 청난원종공신 995명 등을 책봉하고, 그 이듬해 무려 1만 2,000여 명 이상의 공신들에게 공훈을 기재한 3종의 공신녹권을 일시에 발급한 경우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정공신 외에 원종공신을 책봉하는 제도를 두어 많은 사람이 공신으로 선발되어 녹권을 사급 받았다. 본래 ‘원종공신(元從功臣)’이라고 표기하였으나, 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이름자 중 ‘元’과 중복되어 이를 피휘하여 ‘원종(原從)’으로 글자를 바꿔 썼다. 일반적으로 원종공신은 조선 시대 공신의 포상에 있어서 정공신에 비해 작은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공신의 칭호이며, 그 대상은 주로 공신의 자제 및 사위 또는 그들을 따랐던 사람들이다. 이들 원종공신은 대체로 3등급으로 나누어 각 등급에 따라 녹권·노비·토지를 하사함으로써 전란이나 내란 이후 신속하게 정권 안정을 도모하고 동시에 당시 집권층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에서 줄곧 시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원종공신과 그 자손에게 베푸는 은전(恩典) 규정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해당 항목에 분산 기재되었다.

 

이처럼 공신을 책봉하고 그들에게 녹권을 발행하여 발급하는 일은 주로 이조와 그 산하의 공신도감에서 맡아서 수행하였는데, 조선 초기에는 아직 인쇄시설이 미비하여 고려의 목활자를 일시 활용한 적이 있으며, 비로소 금속활자로 녹권을 인쇄한 <좌익원종공신녹권>이 발급되기 전까지 사자관(寫字官)이 일일이 필사하여 반사하였다. 녹권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책한 문서이며, 조선 초기에 반사한 녹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선장본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는 공신으로 책봉한 수가 수천 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초기의 권자본 형태로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 선장본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분량의 녹권을 수백에서 수천 명에게 신속하게 반사하기 위해 녹권의 수급자와 관련된 내용만을 권수 부분에 묵서(墨書)로 기재하고 나머지 내용은 동일하게 활자로 인쇄했다. 녹권은 일반적으로 발급기관 또는 녹권 명칭을 권수에 기재하고, 그다음 행에 녹권을 받는 수급자의 직함과 성명을 묵서로 기재하며 권말에 발급기관 또는 발급을 담당한 도감원의 명단을 하위자로부터 상급자 순서로 열거하였다.
그리고 녹권의 공신력을 담보하기 위해 본문의 주요 부분에 국왕의 어보를 안보(安寶) 하거나 이조의 관인을 날인하고 도감원의 이름을 수결手決로 표시토록 하였다.



 

그림 2. <좌익원종공신녹권>에 이름이 올라있는 사약직의 문금종(文金鍾)은 중인 출신이다.
이와 같이 <좌익원종공신녹권>은 앞서 발급된 <좌명원종공신>에 비해 중인 이하 계층의 수가 크게 늘었다. 

그림 3. <좌익원종공신녹권>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공신도감명단. 이는 이 책의 공신력을 증명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신제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좌익원종공신녹권>에 대해서 알아보자.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녹권에 수록된 공신은 세조 1년 1455 단종을 폐위하고 그 보위를 찬탈하는 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좌익공신(左翼功臣)’이란 공신 칭호와 그에 합당한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수양대군은 단종 1년 1453 계유정난을 통해 일차적으로 그와 맞서는 사람들을 몰아낸 후 영의정부사.이조판서.병조판서.병마도통사를 겸직하면서 정권과 병권을 독점하였다. 그리고 1455년 수양대군은 그와 대적하는 금성대군을 비롯하여 조유례(趙由禮)와 성문치(成文治) 등을 살해하거나 귀양 보내고, 정인지. 신숙주. 권람 등 그의 심복들을 주요 관직에 임명하였다. <세조실록>을 살펴보면 결국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은 그해 9월 왕위 찬탈에 공이 있는 신하 44명을 좌익공신으로 책봉하고, 정공신을 책봉한 3개월 후에는 세조를 왕위에 추대하는 데 공이 있는 이들을 다시 좌익원종공신으로 책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세조가 내린 교서에 따르면 잠저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세조를 보호하고 수종 하거나 정난(靖難)에 참여하여 힘쓴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포상한 것이었다.

 

좌익공신은 정난공신과 함께 세조의 왕위쟁취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었으며, 좌익원종공신도 정공신을 도와 세조의 왕위 추대에 힘쓴 사람들이었다. 녹권에 따르면 세조 2년 1456에 1등 80명, 2등 835명, 3등 1,269명을 책봉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2등 11명, 3등 170명으로 총 181명을 추가로 녹훈하였다. 그러나 전자의 내용은 <세조실록>에 나타나 있지 않고 오로지 이 녹권을 통해 공신의 전모를 알 수 있어 자료적 가치가 한층 빛이 난다. 이를 통해 당시 책봉된 원종공신은 모두 2,365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를 세부적으로 파악해 보면 1등 원종공신은 80명, 2등 원종공신은 846명, 3등 원종공신은 1,439명이었다. 그런데 1등 공신에 책봉된 80명 가운데 세종의 사위인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이 맨 앞에 기재되어 있어 주목되며, 또한 그중에는 양반이 아닌 중인 한 명이 들어있는데 그는 대궐의 열쇠를 관리하는 사약 직을 맡은 문금종(文金鍾)이란 사람이다. 이와 같이 좌익원종공신에는 중인 이하의 양인이나 천인이 전체의 5% 114명가량 포함되어 있다. 이는 앞서 발급된 좌명원종공신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숫자이며, 이를 기점으로 이후에 책봉한 공신 가운데 중인 이하의 하층 계층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당시 이조에서는 <좌익원종공신녹권>을 2,365명에 이르는 원종공신에게 세종 때 주조한 초주갑인자로 인쇄하여 반급하였다. 이 갑인자는 세종 16년 1434에 서성(書聖) 왕희지의 글씨 스승인 위부인자(衛夫人字)를 자본으로 하여 구리[동銅] 등의 원료로 주성한 금속활자인데, 조선 시대 가장 오랫동안 널리 활용한 세종대의 대표적 발명품이다. 당시 이 활자로 인쇄하여 발급한 녹권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배문욱(裵文郁)에게 내린 녹권을 포함하여 현재 단지 4부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반사과정에 의문이 든다. 더욱이 임진왜란 때의 여러 공적을 포상하기 위해 1605년에 무려 1만 2,000명에 달하는 공신에게 일일이 녹권을 발급한 사실이 보이고 있다. 한국 고전적 종합목록에 의하면 현전하는 녹권의 수량은 50여 부에 불과한데, 과연 임진왜란 이후 어려운 시기에 그것도 활자로 인쇄하여 녹권에 등재된 모든 공신에게 녹권을 반사하였을 것인가가 의문으로 남는다. 만일 하층계층인 중인 또는 천인에게 반사된 녹권이 발견된다면 조금은 수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수급자인 배문욱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녹권에 직함이 ‘승의교부충좌시위사(承義校尉忠佐侍衛司)’로 기재되어 있어 세조 때 승의교위라는 종6품 무관의 품계에 있었던 사람이며 의흥친군(義興親軍)의 십위(十衛)의 하나인 우위(右衛)에 속한 충좌시위사의 무관으로 근무하였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라는 정도만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 시대에 발급된 공신녹권에는 그 시대의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살아간 수많은 공신들의 명단이 등재되어 있다.

 

 


집필자

글. 송일기 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중앙대 교수로 재작하면서 한국서지학회장과 문화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주로 우리의 고문헌을 발굴하고 그 가치를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논문으로는 익산 왕궁리오층석탑에서 발견된 <백제김씨금강경(百濟金紙金剛經)> 2004과 개운사 불복장본에서 수습한 <신라간본화엄경(新羅刊本華嚴經)> 2012 등에 관한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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