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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창간호
개벽 , 창간호

 

 

그림 1.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개벽>


 

1920년(大正 9년) 6월에 발행된 <개벽(開闢)>의 창간호부터 제5호까지 합본 되어 있는 두툼한 하드커버를 받아들고 딱 펼치자마자, 여기저기 새빨간 사인펜 자국이 큼직큼직 나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누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를 남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메모는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고, 밑줄이나 다른 표시는 어딘가 교정부호 같은 느낌을 주었다. 혹시 개인 소유였다가 나중에 도서관에서 입수한 책인가 확인해 보았더니, 본래 총독부에 납본된 책이라는 도장이 선명했다. 총독부와 납본. 여기까지 생각하니 대략 무슨 사정인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바로 검열이었다.


 

 

그림 2. <개벽> 본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개벽> 합본 호의 하드커버를 넘기면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開闢’이 아니라 ‘開闢號外’라는 제목이다. 네 글자가 세로로 적혀 있고, 그나마 ‘號外’라는 글자를 지우려는 듯 두 줄로 선을 그어 놓았다. 그 옆에는 붉은 잉크로 뭐라고 적혀 있는데, 잉크가 번져서 쉽게 알아볼 수가 없다. 거의 떨어질 듯 너덜너덜한 표지를 넘기면 ‘開闢 編輯室’ 명의로 ‘謝告’가 등장한다. 내용 중 일부가 ‘當局’으로부터 ‘忌諱’ 대상이 되어서 ‘掃除’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 3. 검열의 흔적이 보이는 <개벽> 본문


 

해당 본문을 확인해 보니, 일부를 시커멓게 덧칠해 지운 부분이 몇 군데 눈에 띄었다. 어떤 기사의 하단에는 마치 글자 크기의 까만 네모가 무늬처럼 찍혀 있었는데, 이것 역시 문제가 되는 기사를 삭제한 흔적이었다. 붉은 줄은 창간호에는 거의 없고 제2호부터 제5호까지에 많은데, 아마도 납본 직후에 다시 한 번 이루어진 검열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개벽>은 창간 이후 7년간 제72호까지 내면서 판매금지 34회, 발행 금지 1회, 벌금 1회, 기사 삭제 85회를 당했다고 전한다. 나중에 최수일의 저서 <“개벽”연구>(2008)를 참고했더니 <개벽> 창간호의 판본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같은 호라도 검열 정도에 따라 ‘본 호’(미검열 간행)와 ‘호외’(사전검열 후 간행)와 ‘임시 호’(재검열 후간행)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개벽> 창간호는 이 가운데 ‘호외’뿐이고, 다른 도서관 및 개인 문고에는 ‘임시 호’가 소장되어 있으며, 표지 사진으로만 전하는 ‘본 호’는 2008년 당시까지 정확한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창간호의 ‘본 호’와 기타 판본의 가장 큰 차이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의 원색 표지다. 총독부의 검열로 ‘호외’와 ‘임시 호’에서는 원색 표지가 없어져 버렸고,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개벽> 창간호는 ‘호외’의 납본이므로 그냥 종이에 제목만 인쇄된 표지다. 다만 창간 1주년 기념호인 제13호의 표지가 창간호의 원색 표지를 재사용한 것이어서 그 대략적인 모습은 짐작이 가능하다. 어떤 책이나 사이트에서는 제13호 표지를 창간호라고 게재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론 납본 시스템 덕분에 <개벽>의 검열 과정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창간호의 온전한 표지가 사진으로나마 전하는 것은 어떤 개인의 성실한 노력 때문일 터이다. <개벽>은 보통 천도교 잡지로 분류된다. 하지만 창간호의 내용만 보면 종교색이 아주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물론 ‘人乃天의 硏究’라는 기사도 있지만, 종교 이외의 기사가 더 많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의외로 ‘改造’라는 단어다. 근대화를 향한 성급한 예찬, 또는 권유야말로 이 시기의 보편적인 풍조이겠지만 <개벽> 창간호에서는 유난히 이 단어가 두드러졌다.


 

    

그림 4. <개벽> 기사


 

가령 “時急히 解決할 朝鮮의 二大 問題”라든지 “自我를 改革하라” 같은 기사가 그렇다. “좀, 그러지 말아주셔요”라는 기사에서는 당시 우리나라의 구태, 또는 폐습을 일곱 가지 거명하면서 개선을 요구한다. 가령 상투를 없애자, 허리를 곧게 펴자 같은 제안에서부터, “아이고” 소리 좀 그만하자, 심지어 걸음을 빨리 걷자는 제안까지 나온다. “문명시대에는 거름이 빨라야 합니다”라면서“ 안이, 빨은 체라도 하여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다급한, 또는 성급한 어조다. 지금까지 본 다른 잡지보다는 훨씬 더 수준 높은 기사가 들어 있다. 가령 “近代 勞動問題의 眞意,” “宇宙 開闢說의 古今,” “데모크라시의 略意,” “太陽熱의 硏究,” “衛生眼으로 본 二大 害毒” 등이 그렇다. “力 萬能主義의 急先鋒”이라는 기사는 “푸리드리히 니체 先生을 紹介함”이라는 부제에 드러났듯이 이 철학자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한다. 합본된 제2호부터 제5호까지를 훑어봐도 사회주의, 칸트의 영구평화론, “막쓰와 唯物史觀” 같은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번역물로는 “바-구다-도”에 사는 “신도바-도”의 모험을 다룬 “七難記”라는 것, 그리고 “이완 툴게넵”의 소설을 각색한 희곡 “隔夜”가 특히 눈에 띈다. 타고르의 시를 번역한 “잔물”은 나중에 확인해 보니 “小波,” 즉 방정환의 또 다른 필명이었다. 비록 창간호에서는 문학의 비중이 높지 않지만, <개벽>은 문학사적으로도 주목할 가치가 높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현진건의 <빈처>,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유명한 작품이 발표된 지면이기 때문이다. ‘호외" 130쪽에는 “여러분께 告하나이다”라는 공지가 또 나온다. “개벽이란 명의를 가지고 개벽적 사실이 업사오니 개벽의 책임을 당한 자”로서 송구스럽다면서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본년 1월부터 개벽으로 하여금 개벽이 되게 하랴고 애는 한 업시 썻삽니다.” 하지만 “엇더한 사정”(보나 마나 검열) 때문에 무려 5개월이 지나서야 나왔으며, 그나마도 준비한 원고가 이미 때늦은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집필자

글. 박중서 출판칼럼니스트
출판 저작권 회사와 출판사에서 근무했다.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 <내 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처럼 책 문화와 관련된 책들을 기획하거나 번역했고 <월간 비읍>에 독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장서 수로는 국립중앙도서관의 400분의 1에 불과한 깜찍 발랄한 개인 서재에 파묻혀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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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벽』과 『조선지광』의 역사적 위상 분석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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