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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계> 창간호

 

 

 

1913년에 발간된 <신문계(新文界)>라는 잡지의 창간호는 연도순으로 따지자면 이미 살펴보았던 <소년 >(1908) 보다는 늦고 <청춘>(1914) 보다는 빠르다. 이 잡지는 ‘친일 성향’이 있는 잡지라는 사전 설명이 있었다.

 



그림 1. <신문계(新文界)> 표지


 

“부녀자 대상으로 친일 성향이 강한 순 한글 잡지.” 목록에는 이렇게 간단히 나와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신문계>는 역시나 합본판이었다. 갈색의 하드커버 안에 1913년 창간호(4월 5일 자)부터 제5호(8월 5일 자)까지가 모두 들어 있다. 하드커버를 넘기니 창간호의 표지가 나타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신문계>는 비슷한 시기의 <청춘>에 비해서도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둥근 테두리 안에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의 모습이 선명한 것이 마치 지구를 상징하는 듯한 그림이 가운데에 있고, 그 위에는 호랑이한 마리가 축 늘어지듯 올라앉아 있다.

 

발행처는 京城 新文社로 되어 있는데 어쩌면 일본인 소유였는지, 판권 면에는 발행인 겸 편집인이 竹內錄之助, 인쇄인이 宗像イツ으로 나온다. 차례와 화보, 그리고 표지를 제외하고 딱 70쪽이다. 내부 디자인은 비교적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글과 그림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느낌이었던 다른 잡지와는 달리, 기사며 화보가 비교적 균형을 잘 잡고 배치되어 있다. 비록 선명하지는 않지만, 사진도 상당히 많아서, 이 당시의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아닐까 싶다.
화보 중에서 맨 처음에 나온 남대문 사진이 그런 경우인데, ‘20년 전 남대문’이란 설명에 따르면 대략 1893년의 풍경이다. 이 당시의 잡지에는 나이아가라 폭포나 에펠탑 같은 해외의 풍경 사진이 많이 등장하는데, 학습 효과보다는 전시 효과를 위해 넣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가령 여기 등장하는 ‘고로라도 海岸의景’이라는 사진이 그러했는데, 정작 나와 있는 모습은 콜로라도 강의 한 구간인 듯하다.(콜로라도 주는 내륙이라 바다가 없다). 그러면 ‘해안’이 아니라 ‘강변’이라야 정확했으리라.



 

그림 2. 그림이 실린 <신문계(新文界)>


 

글과 그림이 비교적 세련되게 배치되었다고 했지만, 막상 내용 면에서는 어딘가 부조화한 경우도 여전히 있다. 가령 석유에 관한 기사 한가운데에 난데없이 “箕子墓” 사진이 등장한 경우가 그렇다. 별도로 나온 광고를 보니 이 잡지에서는 독자들을 향해서 국내 주요 명승고적의 사진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환등기나 사진기를 보유했던 사람들의 회고를 몇 번 접한 것 같았는데, 그런 물건들의 국내 보급 과정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흥미로울 듯하다. 광고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림 3. <신문계(新文界)>에 실린 광고


 

그나저나 ‘신문계(新文界)’라는 제목은 무슨 의미일까? 1쪽의 권두언에서는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낮밤을 가려 조명을 써야 하듯이, 文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 즉 現代에 맞는 現代文을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日新月新하고 內新外新한 新文으로 新半島 新靑年에게” 감명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新文이나 現代文이 이 잡지에 사용된 국한문 혼용체 문장을 가리킨다면, 굳이 <신문계>가 그 선구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4쪽에는 “신문계론(新文界論)”이라는 글도 나와 있어서 앞서의 논의를 더 자세히 서술한다. “新文界라 함은 何를 지칭함이뇨. 今文古文에 亦無한 新言辭라”로 시작되어 “我同志여, 舊文界를 棄하고 新文界로 進할진뎌” 끝나는 글이다. 결국 새 시대를 맞이하여 새 글을 사용하자는 이야기인 듯한데, 여기서 ‘새 시대’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으리라.



 

그림 3. 4쪽에 실린 글, 신문계론(新文界論)


 

그런데 정작 <신문계>의 실물을 구경하고 보니, “부녀자 대상으로 친일 성향이 강한 순 한글 잡지”라는 애초의 설명과는 어딘가 맞지 않는 듯했다. 57~9쪽에는 “가뎡학 강화”라는 제목의 순 한글 기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 놓고 순 한글 잡지라고 단언하기는 곤란해 보인다. 또한 “春과 學生”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고, 이후의 호에 등장한 독자 투고 중에도 학생들의 글과 그림과 서예 투고가 많은 것을 보니, 부녀자 대상 잡지라고 단정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적어도 창간호의 경우에는 말이다. 대신 학생이나 청년을 주 독자로 겨냥했다고 간주한다면, 주요 기사에서 계몽적인 성격이 두드러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가령 ‘無線電의 發展’이라는 제목으로 ‘마루고니’에 대한 짤막한 기사가 들어 있다. 미국의 ‘살도유스’가 개발한 ‘見星機械’라든지, ‘水陸通用의 自動自轉車’라든지, ‘에리샤 구례이’의 ‘데로-도구 라후’(현재 사용되는 팩스의 원형 중 하나인 ‘텔로토그래프’)처럼 당시의 신발명품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외 에 ‘生理’나 ‘簿記’나 ‘暗算法’에 대한 기사도 눈에 띈다.
시대의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한 가지 기사는 ‘ 物: 日用하는 石油는 吾人의 幸福’이다. 당시 전세계 생산량 1, 2위인 미국과 러시아의 연 생산량은 4억5천만 배럴인데, 한 세기 뒤인 지금은 양국의 연 생산량이 무려 60억 배럴 이상이다. 이 당시에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는 있지도 않았다. 이 잡지가 창간되고 20년 뒤인 1932년에야 국가가 수립되었고, 1938년에야 처음 석유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환경오염이나 피크 오일의 우려 역시 없었으리라.

 

나중에 알아보니 ‘金剛은 天然的 公園’이라는 연재 기사의 저자 海東山人이 신소설의 저자로도 유명한 친일 논객 崔瓚植이라 지만, 그 기사 자체가 딱히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國語速成’이나 ‘國語練習’이란 기사에서 말하는 國語가 한글 아닌 일본어라는 점은 의미심장 하다.



집필자

글. 박중서 출판칼럼니스트
출판 저작권 회사와 출판사에서 근무했다.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 <내 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처럼 책 문화와 관련된 책들을 기획하거나 번역했고 <월간 비읍>에 독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장서 수로는 국립중앙도서관의 400분의 1에 불과한 깜찍 발랄한 개인 서재에 파묻혀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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