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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의상도> 서양 천문 관측기기를 만드는 방법을 그리다.
의상도 , 천문학 , 관측기기

 

 

<영대의상지(靈臺儀象志)>는 청나라의 흠천감에서 일했던 벨기에 출신 예수회 선교사인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 1623~1688의 주도로 1674년에 흠천감에서 출간한 책이다. 그가 만든 여러 가지 새로운 관측기기의 구조와 원리, 제작법, 설치법, 사용법 등을 설명하고, 이것들을 사용하여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데 필요한 각종 표와 함께 항성의 황도좌표와 적도좌표를 수록한 성표가 들어 있다. 
<영대의상지>는 총 16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15권과 16권이 바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의상도(儀象圖)>이다. 이 희귀본은 <신제의상도(新制儀象圖)>라고도 한다. 원본은 동판 인쇄로 제작되었으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필사본이다.


 

그림 1. 「관상대도」. <의상도> 1권의 맨 앞에 나오는 그림.
페르비스트가 제작한 각종 천체 관측 기구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조선, 역법의 변동 속에서도 차분히 정비하여 자체 책력을 발행하다 

조선 시대 관상감의 천문학은 책력(일 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절기, 길일과 흉일,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 등을 날의 순서에 따라 적은 책.) 작성을 위한 천문 역법과 날짜와 시간의 길흉을 택하는 술수 선택을 중심으로 하여 실용 위주로 운용되었다. 책력의 역일을 계산하려면, 1년의 날수, 월의 대소, 절기시각 등을 반드시 계산해야 한다. 또한, 낮 시간은 해시계로, 밤 시간은 물시계로 측정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물시계의 측정 오차를 줄이기 위해 매 시각마다 정남 쪽 자오선에 어떤 별이 오는지 관측하여 시간을 측정하고, 이렇게 측정된 시간으로 물시계의 눈금을 조정하였다. 이를 위해 절기별로 어떤 별이 남중하는지 적어 놓은 표를 <중성기(中星紀)>라고 한다. 이러한 시간 제도를 정립하려면 별의 위치를 관측해야 했으므로 조선은 청나라로부터 <영대의상지>, <흠정의상고성>, <흠정의상고성속편> 등을 수입하였다. 한편 조선은 역법에 대한 관심도 커서 세종 때 원나라의 수시력을 연구하고 서울의 위도에 맞게 수정하여 <칠정산(七政算)>이란 역법을 수립해 책력을 발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명나라는 그 말기에 유럽의 선교사를 통해 유럽 천문학을 도입, <숭정역서>라는 새로운 역법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이 역법을 활용한 책력을 미처 반행하기도 전에 다시 청나라가 들어섰다. 이때 선교사들의 건의에 따라, 청은 <서양신법역서>로 제목을 고쳐 <숭정역서>를 채용하고, 이를 사용해 1645년의 <시헌력>부터 새 역법으로 간행하기 시작했다. 그 후 청나라의 역법은 1726년에 <역상고성>, 1742년에 <역상고성후편> 등으로 바뀌면서 안정되었다. 조선은 이렇게 계속 변하는 중국의 역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여 자체적으로 책력을 발행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림 2. <의상도>의 서문. 마지막 줄의 강희(康熙) 갑인년(甲寅年)은 강희 13년 1674년으로 조선 현종15년이다. 
찬자는 극서(極西)의 남회인(南懷仁), 즉 벨기에 태생의 예수회 선교사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라고 되어 있다.


 

1년간 중성을 관찰하여 물시계의 눈금을 정밀하게 조정하다 

조선 초기에 사용되던 <을해중성기(乙亥中星紀)>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새겨져 있다. 또한 구법(舊法) <누주통의(물시계에 사용되는 잣대의 눈금은 절기별로 다른 것을 사용하는데, 그 눈금을 미리 계산하여 적어 놓은 책을 말함)>가 이와 연동해서 사용되었다. 청나라가 역법을 변경하여 1645년도 책력부터 출간한 <시헌력>부터 조선의 책력과 차이를 드러냈다. 조선도 김육金育의 주장으로 1654년 책력부터 <시헌력>을 받아들였다. 기존의 역법과 새로운 역법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하루를 100각으로 나누던 것을 96각으로 나눈 것이다. 시간 표준이 바뀌면서, 조선도 <중성기>와 <누주통의>를 개정해야 했다. 조선은 1718년에야 비로소 시헌력 시각 제도와 중성 관측, 그리고 계산법이 전수되었다. 청나라가 <역상고성>으로 역법을 바꿔서 시행하였으므로 조선도 다시 이를 받아들여 1733년 안중태(安重泰)가 청에서 중성기를 구해왔다. 그 후로 청의 역법이 빈번하게 개정될 때마다 조선 천문학자들은 이를 쫓아가느라 고생을 하였다. 안국빈(安國賓) 등이 1743년 청나라에 사신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어 <신법중성기(新法中星紀)>와 오경(五更)에 시간을 배치하는 방법을 배우고 1744년에 귀국하였다. 그해 입추부터 1745년 입추까지 서로 번갈아 숙직하면서 물시계를 측정하고 중성을 관찰하여 서로 시간이 맞도록 눈금을 조정, 1745년에 <누주통의>를 저술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세차 운동으로 오차가 누적되었으므로, 1789년에 김영(金泳)이 계산을 통해 <신법중성기>와 <신법누주통의>를 저술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영대의상지>는 <승정원일기> 1709년 숙종 35, 3월 23일조에 따르면, 관상감의 허원(許遠)이 청에서 들여왔고, <승정원일기> 1713년 숙종 39, 윤5월 15일조에서 당시 <의상지>를 번각(飜刻)하고 있는데, <숙종실록> 1714년 숙종 40, 5월 23일조에서는 이때 <의상지> 13책과 도본(圖本) 2책으로 번각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규장각에 남아 있는 <의상지> 번각본은 원본과 마찬가지로 14권 14책으로 되어 있고, 15권과 16권의 <의상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의상도>의 원본은 동판 인쇄로 제작되었는데, 당시 조선은 동판 인쇄 기술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세밀한 그림을 번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의상도>만을 화가가 세밀화로 그려서 필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활자로 복제 출간된 1~14권에 비해 15~16권은 대량으로 제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현존하는 <의상지>의 다수가 1~14권만 있고 15~16권의 <의상도>는 빠져있는 까닭이 아닌가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의상도>는 1714년에 조선에서 복제 출간한 <의상지>의 일부로 추정된다.

 

페르비스트가 만든 천문 관측기구들은 지금도 베이징에 있는 고관상대(古觀象臺)에 남아있다. 그림 1에 페르비스트가 만든 천문 관측기구를 볼 수 있는데, 맨 위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기한의(紀限儀), 상한의(象限儀), 지평경의(地平經儀), 적도의(赤道儀), 천체의(天體儀), 황도의(黃道儀) 등이다. 기한의는 현대의 육분의(sextant)이고, 상한의는 사분의(quadrant)이다.


 

그림 3. <의상도>의 「제11도」. 천체 관측기구의 눈금. 대각눈금을 사용하였고, 
아래에 있는 접을 수 있는 자와 콤파스는 갈릴레오의 비례자이다.


 

그림. 3에서 보듯이 페르비스트의 천체 위치 측정 기구에는 대각 눈금(Diagonal Scale)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15세기 사마르칸트의 천문학자였던 울르그 벡(Ulugh Beg)도 사용하던 방식인데, 이러한 대각 눈금은 1도의 60분의 1인 1분 각 정도까지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림. 3에서는 또한 천체를 조준하는 판을 볼 수 있다. 세로로 난 두 개의 슬릿(Slit), 틈을 통해 눈을 바쁘게 이동하면서 그 반대쪽에 있는 구멍에 천체가 오도록 조정한다.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면 조준 정확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으므로, 요즘도 소총의 가늠자와 가늠쇠에 사용하고 있다. 그 아래에 있는 자는 갈릴레이의 비례자라는 것인데, 1606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소개한 것을 명나라에서 활약하던 쟈꼬모 로우(Giacomo Rho)라는 선교사가 <숭정역서>에 소개하였다. 이것은 삼각형의 닮음과 비례를 응용하여 곱셈, 나눗셈, 비례중항, 제곱근, 세제곱근 등을 구하는 계산자이다. 이러한 것들은 <숭정역서>에 수록되어 있던 튀코 브라에 Tycho Brahe의 것을 계승한 것이다. 또한 <영대의상지>에 있는 성표(星表)도 튀코 브라에가 관측하고 요하네스 케플러가 정리한 <루돌프 성표(Rudolphine Tables)>를 계승한 것이다.


 

그림 4. <의상도>의 「제113도」. 빛의 굴절 현상 때문에 컵 속의 동전이 떠올라 보인다. 지구 대기의 굴절에 의해 천체가 
지평선 아래에 있을 때 보이기 시작한다. 「제114도」. 천체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측할 때, 투영해서 관측하는 방법.


 

관측기구의 설치 및 사용 방법에 이르는 다양한 정보를 <의상도>에 담다 

<의상도>에는 금속을 가공하는 치구들과 사용법까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관측기구를 설치할 때 수평을 잡는 법, 극축을 맞추는 법 등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만 소개하자면, 먼저 제98도에서 제104도까지는 삼각측량에 대한 그림이다. 특히 제100도는 혜성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삼각측량을 사용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튀코 브라에가 1577년에 나타났던 대혜성을 관측하여 혜성이 달보다 먼 월상권(月上圈)에서 일어나는 천문 현상임을 증명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한, 제108도는 압력계이고 제109도는 건습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양으로 보아 압력계는 토리첼리가 1643년에 발명한 수은기압계로 보인다. 제112도는 프리즘에 의해 햇빛이 여러 가지 색깔로 분해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배경에 무지개가 그려져 있으므로 프리즘의 원리와 무지개의 원리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제113도는 컵에 들어 있는 동전이 떠올라 보이는 빛의 굴절을 설명한 그림이다. 대기의 굴절 효과 때문에 천체가 지평선 아래에 있을 때도 관측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그림이다. 제114도는 망원경으로 해를 투영하여 관찰하는 법을 나타냈다. 그림 4. 제116도는 낙체의 운동, 진자의 운동, 빗면에서의 운동을 나타낸 것인데, 이것들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실험과 관계가 있다. 한편, 제117도는 대포의 탄환이나 석궁으로 발사한 화살을 쏘면 포물선을 그린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의상도>에 실려 있는 그림들은 <영대의상지> 본문에 설명된 부분에 덧붙인 것들인데, 내용이 매우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서양의 기계 제작 기술과 길이, 압력, 습도 등의 물리량 측정법,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수학과 물리학 지식까지 전달되고 있다. <의상지>에는 천체 관측기구를 만들 때 사용되는 여러 가지 금속의 물성까지 설명되고 있다. <의상도>는 이와 같이 동아시아에 전파된 유럽의 과학과 기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희귀한 도서이다.

 



집필자

글.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천체물리학자이면서 역사천문학을 연구해왔다. 우리 역사 속의 별똥별, 일식, 월식 등을 연구하였고, <천지서상지>, <보천가>, <천문류초>, <천상열차분야지도>, <황도남북양총성도> 등을 분석하였고, 정두원의 천리경 도입 등을 연구하였다. 저서로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와 <우리 혜성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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