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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화로 보는 시대상

 

 

 

 

시사만화는

이미지시사적 문제나 인물 등에 대한 풍자적 만화로 여러 개의 컷(보통4개)으로 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시사만화는 시사적 문제를 해학과 풍자로써 날카롭게 비평하는 것에 묘미가 있다. 시사적 문제를 풍자한 만화로는 2가지 형태가 있는데 우리나라 조선일보 사회면에 게재되는 오룡의 ‘야로씨’처럼 여러 개의 컷(보통 4개)으로 된 것을 시사만화라고 말하며, 동아일보 제2면에 실리는 백인수 화백의 ‘동아희평’과 같은 것은 만평(漫評: political cartoon)이라고 한다.

신문의 시사만화는 그림으로 표현된 사설이라고도 한다. 독자들은 긴 사설을 읽는 대신 시사만화를 봄으로써 그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의 의미와 신문의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시사만화는 사설보다 더 날카롭고 풍부한 해학과 풍자와 기지가 번득임으로써 독자들에게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설을 통한 한 시대의 주된 관심사를 알 수 있듯이 시사만화를 통해 그 당시의 시대상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성환 화백에 의해 태어난

이미지'높을 고(高)' 성씨에, 바위를 뜻하는 '바우'라는 이름을 붙인 고바우영감은 9.28 서울 수복 이후 조각가 윤효중씨와 종군기자 박성환 씨에 의해 발행된 <만화신보>에 첫 데뷔를 하게 된다. 김 화백은 1.4 후퇴 때엔 국방부 발행인 <만화승리>의 만화 담당자가 되어 활동하였고 서울 환도 이후 김성환 화백은 <사병만화>, <육군화보> 등의 군인 잡지에 고바우를 등장시키기도 하였으며 1954년 이후에는 대중잡지인 <희망>, <신태양> 등에 4컷의 고바우를 연재하여 식자들에게 호평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고바우영감은 신문에 연재된 것 만해도 총 1만4139회, 50년이었다. 이 기록만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 같은 기록이다. 신문사도 처음 <만화신보(1950)>에서 <동아일보(1955~1980)>, <조선일보(1980~1992)>, <문화일보(1992~2000)>까지 총 4개 신문에서 연재되었다. 또한 고바우영감은 만화에만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고바우는 영화에도 존재하였고, 우표로도 존재하였다. 그리고 세계만화백과사전에도, 거리의 가로등으로도 존재하며 상으로도 존재하고 박사학위로도 남아있다.

이처럼 다양한 기록과 역사를 갖고 있는 고바우영감은 태생적으로, 그리고 살아온 이력 자체가 그럴 수 있는 충분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 우선 고바우가 그려진 50년 동안의 대한민국의 역사(6.25 전쟁,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 10월유신, 10.26사태 등의 정치적 격변과 고속의 경제성장)가 그 콘텐츠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고, 또 김성환 화백의 ‘언론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메타포 생산 능력이 그것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격변 속에서 서민에 대한 애정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김성환 화백이다.

 

대한민국 역사와 함께한 고바우영감을 통하여 우리들의 시대상을 만나보시지요.

 

 

집필

김상돈 교수

감수

오금택 교수

 

 

 

 

[카테고리별 소개]

 

 

작가소개 [ 바로가기]

김성환은 1932년 이북에서 태너았다. 아버지 김동순은 1920년경 김상옥 등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여 독리붕ㄴ동을 하다가 10여 년 동안 청진감옥에 수감됐던 독립투사였다고 한다.

시사만평 대중예술가 김성환의 약력과 '고바우 영감'과 김성환의 삶을 살펴본다.

 

 

6.25 전쟁 후 복구시기 [ 바로가기]

1950년 6.25전쟁 이후 전세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월간 『신태양』과 『희망』잡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초로 고바우가 실린 것은『사병만화』라는 잡지로 그 발행일은 1950년 12월 30일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환도 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가 제자리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1954년 후반기부터 신문이 현재의 크기로 바뀌었으며, 지면도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그 당시 서울의 명동에 모나리자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그곳은 언제나 문인, 화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우호가 되면 모나리자 건너편에 자리 잡은 대포집으로 문화인들로 붐비면서 쌀막걸리와 빈대떡 냄새가 골목길 밖까지 배어나오곤 했었다. 1955년 2월 1일 동아일보에 고바우 영감 첫 연재가 실리게 되었다. 1950년대 처음 고바우 영감은 순수한 만화의 기본형을 살린 무언극에서 출발하여 독자들에게 이성에 호소하기 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만화였었다. 그 후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시사성을 띠기 시작하였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고바우 영감을 통하여 시대상을 알아보도록 한다.

 

 

이데올로기 대립시대 [ 바로가기]

1960년대는 6.25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였다. 실직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졸업을 앞두고 구직 광고를 찾는 대학 졸업예정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1962년 1월 13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1966년)을 발표하였다. 정부의 개발 중점사업은 전력·석탄 등 공업화의 원동력이 되는 에너지 자원의 확보, 농업생산력향상, 기간산업과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 국토건설 추진,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수출 증대, 저생산력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 개발 등이었다. 1966년에는 제2차 5개년 계획이 발표 1970년에는 제3차 5개년 계획이 발표되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부흥을 이루었다. 하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어려웠다. 1962년부터 1970년까지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고바우 영감을 통하여 시대상을 알아보도록 한다.

 

 

고속 경제 성장 시기 [ 바로가기]

1970년대는 1970년 7월에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부터 고속 경제 성장을 시작하였다. 1974년 8월에는 서울에 지하철이 처음 개통되었으며, 1977년에는 부가가치세와 의료보험제가 실시되었다. 이러한 경제성장에 따라 상류층 에서는 부인들이 보석을 밀수하는 사건이 일어나며, 복부인들의 부동산 투기와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속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은 데모 격화로 전국의 대학이 조기 방학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며, YH여공 2백여 명 신민당사에서 농성 하는 등의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1971년부터 1980년까지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고바우 영감을 통하여 시대상을 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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