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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창간호

 

 

 

 

 

잡지(雜誌) 또는 매거진(magazine)은

이미지신문이나 단행본과 마찬가지로 인쇄된 문자 ·그림 ·사진 따위를 소재로 하여 구성되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이다. 그러나 단행본과는 달리 정기적으로 계속 간행된다는 데에 특색이 있고, 또 신문에 비하면 발행간격이 길기 때문에 뉴스성과 속보성(速報性)이 뒤진다는 차이가 있다. 
 신문 이외의 정기 간행물을 잡지라고 부른 어원은 네덜란드어의 ‘magazien’에서 비롯된다. 본래는 ‘창고(倉庫)’라는 뜻인 ‘매거진’을 잡지에 전용한 최초의 정기간행물은 1731년 영국의 E.케이브가 발행한 《Gentleman’s Magazine》으로서 지식인에게 정보와 오락을 책으로 묶어 제공하는 것을 간행의 취지로 삼았다고 한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여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잡지는 그만큼 정보와 의사소통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근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잡지 형식적 특징으로, 첫째 일정한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같은 제목하에 발행된다는 정기성, 둘째 잡다한 여러가지 읽을거리를 게재하는 내용의 다양성, 셋째 책과 같이 꿰매어놓은 제책성을 들 수 있다. 내용적 차원에서는, 그 기능상 신문이나 방송에 비해서 장기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한 오락면에서도 신문보다 다양한 기사를 통하여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종류는 그 분류기준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각도에서 분류된다. ① 정기별(定期別):잡지는 주로 주간(週刊) ·월간(月刊) ·계간(季刊) ② 영리성(營利性):출판사나 신문사에서 간행되는 잡지의 대부분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상업잡지라고 불린다. 이와는 달리 유가 ·무가를 막론하고 적어도 직접적인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잡지가 있다. 정부기관 등의 공공기관 ·정당 ·대학과 그 밖의 연구기관, 예술단체 ·종교단체 ·회사 ·노동조합 등에서 간행하는 것이 그것으로, 그 대부분은 기관지 라고 불린다. 동호인들끼리 합자해서 간행하는 동인지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가 있다. ③ 내용별(內容別):일반(종합 ·대중) ·생활 ·여성 ·아동 ·문예지 등 외에 각 전문분야별 잡지(전문지)가 있고, ④ 형태별(形態別):잡지는 보통 국판(菊版), 4 ·6배판, 국배판(菊倍版) 4 ·6판의 형태를 취한다. 
 

 

한국잡지의 종류

한국의 잡지는 이런 형식성 외에, 발간주체와 사상적 경향, 취급 정보의 범위에 의한 특징이 부가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잡지의 등장은 개화기 서구문물과의 접촉과 함께 비롯되어 국민계몽이라는 공통의 특성과 억압적 식민권력과의 역관계 속에서 정치사적 기복에 따라 그 형태 및 추세가 변모,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한국근대의 잡지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는 것은 시사·종합·대중지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 부류를 제외한 소수 발간주체별로 나눌 수 있는 잡지분류들의 예이다. 

① 종교계통에서 발간된 잡지들 
기독교 계통에서, 1892년 1월 영국인 선교사 올링거(Ohlinger, F.) 부부에 의하여 창간된 《코리안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1901년에는 헐버트(Hulbert, H.B.)에 의하여 《코리아 리뷰(Korea Review)》가 1904년에는 《코리아 미션필드(Korea Mission Field)》가 뒤를 이었다. 이러한 영문잡지의 창간은 우리의 개화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불교계통에서, 「조선불교월보」, 「불교진흥회월보」 등의 잡지, 천도교 계통의 「천도교회월보」, 「신인간」, 유교 유림을 중심으로 한 「경학원잡지」, 「유도」등이 있다. 

② 유학생들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 
한국에서는 한말(韓末)인 1896년 2월 1일 당시 도쿄[東京]에 있던 대조선일본유학생친목회(大朝鮮日本留學生親睦會)에서 발행한 《친목회 회보(親睦會會報)》가 시초의 잡지이고, 두번째 ≪태극학보 太極學報≫는 1906년 8월 24일자로 창간된, 일본 유학생 단체 태극학회의 기관지인데, 1908년 12월 통권 27호를 내고 종간했다. 한일합방이후 「학지광」이 일본유학생회 기관지로 이어진다. 
이런 일본유학생 잡지 외에, 미국유학생들의 기관지로「우라키」를 들 수 있다. 1925년 9월 26일자로 창간된 ‘북미(北美)학생총회’의 기관지로 서울에서 발행된 《우라끼 The Rocky》는, 제작은 미국과 조선에서, 배포는 조선, 미국, 일본에서 이루어진 잡지이다. 

③ 단체 · 학회를 중심으로 발간된 잡지들 
- 개화기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1930년대에도 「신흥」, 「조선어문학회보」, 「진단학보」처럼 식민지 시대 말기까지 이어진 바 있다. 20-30년대 잡지가 대중화 오락화 되는 상황에서 이계열의 잡지는 학술성, 전문성을 강화, 유지하는 흐름을 이어갔다고 할 수 있다. 

④ 여성 독자를 겨냥하고, 여성계몽을 목표로 한 여성잡지 계열- 「신여성」, 「신여자」, 「부여지광」 등이 있다. 

⑤ 소수이지만 일본인이 만든 잡지가 있다- 「신문계」, 「반도시론」 

⑦ 대중적 오락지- 1920년대 말, 30년대 전반기 「뱔건곤」, 「월간야담」, 「야담」 등이 있다. 

⑧ 여러 전문학교에서 나온 교지로 「연희」, 「이화」, 「보전학생」, , 

이외에, 연극, 영화, 무용, 음악 등의 전문분야 잡지인 「녹성」, 「극예술」, 「무대」, 「영화조선」, 「삼광」, 「음악평론」 등, 체육잡지 「조선체육계」, 지방의 문화를 담는 「대평양」, 「여명」(대구), 「함안」 등이 있다. 《태평양잡지》로서 이승만(李承晩)을 발행인으로 하여 호놀룰루에서 출간되었던 것으로 B5판 100면의 상당히 부피 있는 체재였다. 

* 출처참고: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응백ㆍ김원경ㆍ김선풍 교수 감수, 한국사전연구사 
* 최덕교, 한국잡지 백년 
 

 

집필

2011년도 차혜영 교수 
2014년도 이승원 교수

 

감수

2011년도 현길언 교수 
2014년도 정여울 작가 

 

 

 

 

[카테고리별 소개]

 

 

잡지로 태어나다: 태동기(1896~1909)[ 바로가기]

광복 전의 제1기는 1896년부터 1910년의 ‘한일합방’까지의 태동기(胎動期)로서 이 시기는 주로 협회와 학회라는 이름의 민간단체와 종교 단체에서, 문명개화를 향한 새로운 사조와 문물을 소개하는 잡지를 간행하여 계몽과 개화의 역할을 담당한 시기이다. 근대계몽기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는 유력한 통로였던 ‘학회지’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1905년 이후 주로 출신 지역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결성한 학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학술잡지가 등장하여, 신문과 구별되는 담론장을 형성하고 이는 각종 학회지로 나타난 것이다. 

 

 

잡지의 암흑시대: 무단정치기(1910~1919)[ 바로가기]

개화를 촉구하기 위한 계몽적 성격을 띤 제1기를 뒤이어 등장하는 것이 1910∼19년 사이의 일제의 총독통치에 의한 무단정치시대(武斷政治時代)이다. 앞서 통감부 시대에 공표된 신문지법(新聞紙法)과 출판법에 의하여 이중 삼중으로 탄압을 받게 된 한국의 잡지는 ‘거세(去勢)된 언론’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고, 한일합방과 함께 이전 시기 대부분의 신문과 잡지가 폐간되었다. 
이런 탄압 상황하에 이 시기에 창간된 잡지들은 대부분 정치색을 삭제당한 종교 잡지가 다수를 차지한다. 

 

 

잡지로 말하다: 문화정치표방시기(1920~1936)[ 바로가기]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의 함성은, 일제로 하여금 무단통치를 식민지 지배전략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온건한 통치로의 전환을 꾀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3.1운동 이후의 문화정치가 이처럼 내부의 저항에 부딪힌 지배전략의변화라는 차원과 함께, 어떤 측면에서는 무단통치 시기에 이루어진 강제적 병합이 더 세부적이고 합리적인 내부통치 질서로 변화해야할 일제의 지배전략의 변화가 절합된 지점에서 나온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기적 배경하에, 합방이후 최초로, 조선일보(1920.3.5)와 동아일보(1920.4.1)의 창간, 1920년 6월 《개벽(開闢)》이 창간을 시작으로 식민지 시대 중 가장 활발하고 다양한 잡지의 발간이 이루어졌다. 

 

 

잡지를 빼앗기다: 친일언론강요기(1937~1945)[ 바로가기]

이상과 같은 20년대 30년대의 활력은, 1937년 중 ·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시작된 ‘전시동원체제’하의 탄압하에 그 명맥이 거의 대부분 끊겼다고 할 수 있다. 전시체제하의 억압통치는 1945년 8 ·15광복을 맞을 때까지 미증유의 고통과 수난을 우리 민족에게 안겼고, 그러한 박해는 잡지계에도 여지없이 몰아닥쳤다. 민족사상과 독립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말과 글까지 빼앗아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의 길을 치닫기 시작한 이 시기에는 국내의 잡지조차도 거의가 일인(日人)에 의하여 일문(日文)으로 발행되고 한글로 된 잡지도 거의 대부분, “성전”이나 “임전보국”, “일시동인” 등의 논조를 통해 친일적인 색채를 띠지 않을 수 없었다. 

 

 

잡지를 되찾다[ 바로가기]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의 천황 히로히토는 종전조서(終戰詔書)를 발표하였다. 미국과의 전쟁을 끝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종전조서의 발표와 함께 식민지 조선은 해방을 맞이했다. 함석헌은 식민지 조선의 해방을 ‘도둑같이 왔다.’고 말했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해방이 되자 그동안 일본 제국에게 빼앗겼던 많은 것들을 되찾아야만 했다. 그 중 하나가 우리의 말인 한글(한국어)이었다. 한글을 되찾고 한국어로 된 잡지를 다시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해방의 감격도 잠시였다. 해방된 조선은 다시 좌익과 우익의 이념적 대립으로 분열되었다. 해방기 잡지는 좌익과 우익의 이념적 대립을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다. 

 

 

근대잡지의 역사적 전제[ 바로가기]

- 식민지의 언론탄압-법령/검열기구/검열기준/탄압사례

- 출판인, 저널리스트, 편집자 최남선

- 잡지 역사 개관

- 언론사 여기자와 개벽사 여기자들

- 편집인 차상찬은 누구인가?

- 검열과『신생활』그리고 염상섭의『만세전』

- 18세 소년이 만든『소년』과 ‘소년’의 문명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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